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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1, 2012

night lights in Melbourne

2011, Melbourne




Let's leave the city lights beh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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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8, 2012

[culture] Knockin' On Heaven's Door

Beach, near Melbourne


제가 머무는 사무실에는 모든 직원들 자리 앞에 각자가 좋아하는 영화 제목과 함께 자리 주인의 이름을 적어 놓은 작은 푯말이 붙어 있습니다. 제 자리에는 쿠보즈카 요스케가 주연한 영화 <고>가 적혀 있는데, 사실 너무 급하게 고르느라 먼저 생각나는 영화를 적었습니다. 적어 놓고도 내내 '분명 <고>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아닌데, 그럼 뭐지?'라는 자문을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하루하루를 무언가로든 꾹꾹 채우며 지내다가, 얼마전 작년 한 해 동안 찍은 필름을 현상했습니다. 멜번에서 머무는 동안 근처 해변으로 소풍을 갔던 사진을 넘겨보다가 생각이 났습니다. 독일 영화 <노킹온헤븐스도어 Knockin' On Heaven's Door>가 말입니다. 중학교 때 흐린 날 거실에서 친구와 비디오를 빌려다가 봤던 기억입니다. 그후 이 영화는 내내 좋아하는 영화 탑5 안에 들어 왔습니다. 이제서야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아메리칸 뷰티>... 줄줄줄 생각이 나네요.

위 사진에서 날씨만 조금 흐려지면 <노킹온헤븐스도어>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 바다와 꼭 같습니다. 해변에 들어서는 순간, 그 해변을 생각했습니다. 곧 죽음을 맞이해야만 할 두 남자가, (그 중 한 명이 바다를 본 적이 없다는 말에) 바다를 향해 떠나는 로드무비인데, 마지막이 저렇게 낮은 풀숲이 사이로 연결된 바다에서의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런 대사도 있죠.

"천국에서는 주제가 하나야, 바다..."

그때 이후로 제게 키 작은 건조하게 생긴 풀이 바닷바람에 흔들이며 파도소리와 함께 '솨아솨아'거리는(?) 해변은 일종의 로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상치도 않은 멜번의 해변에서 보게 된 것이죠. 열심히 셔터를 눌렀는데, 키작은 풀들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쉽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밥 딜런의 노래 제목과도 같습니다. 영화도 노래도 결코 희망적이지 않은데 이 영화와 마지막 장면의 배경음악을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이런 영화야말로 힐링 무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마음의 평화 그대로 잠들어야겠습니다. 멜번이 아닌 독일의 바다로 가 있기를.






Mar 3, 2012

[trend] 부티크(boutique) 맥주의 세계 2. 멜번 편, 스몰 브로어리와 모던펍의 만남





부티크 맥주에 '본격'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멜번의 핫 플레이스라는 브런즈윅 스트릿(Brunswick st.)의 이곳, Little Creatures Dining Hall 때문입니다. '요 귀엽고 작은 피조물'이라는 이름의 부티크 맥주 회사, 리틀 크리에이처스에서 나온 에일 맥주는 이미 맛을 본 후였습니다. 그렇지만 양조장의 느낌을 살린 다이닝 홀에서 생맥주와 함께 도톰한 감자튀김을 아이올리 소스에 찍어 먹지 않았다면 부티크 맥주 회사들의 홈페이지까지 방문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카스나 하이트에서도 이런 직영 펍을 운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공장 투어나 대학생 대상 행사들은 잘 운영되고 있는 것 같은데 간단히 홈페이지를 둘러본 바로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대형 맥주 제조사와 스몰 브로어리를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지만, 리틀 크리에이처스와 같은 작은 회사들에서 영감을 받을만한 것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리틀 크리에이처스의 다이닝 홀은 이 회사의 플레그십 스토어 역할을 하는 모던 펍입니다. 호주에서도 가장 문화적인 도시로 꼽히는 멜번에, 멜번에서도 가장 쿨한 지역으로 꼽히는 피츠로이에 자리잡은 이곳에서는 리틀 크리에이처스의 여러 종류의 맥주와 어울리는 간단한 음식을 맛볼 수 있고, 그곳의 분위기나 공간 구성, 점원들과 손님들의 느낌에서 이 브랜드를 경험하게 됩니다. 보통은 작은 브로어리들이 브로어리에 체험관 개념의 펍을 운영하는 것 같지만 이렇게 도심에 직영 펍을 운영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호주에는, 특히 멜번에 속해있는 빅토리아 주에는 와이너리가 많은데 와이너리 투어를 하다가 우연히 하얀 토끼(White Rabbit) 사의 부티크 맥주 양조장을 발견하는 행운도 있었습니다. 시음도 하고 샵 구경도 했는데, 기사를 찾다보니 이런 작은 브로어리들을 정부 차원에서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며 지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카페 트렌드를 이야기하면도서 느꼈지만 호주는 자국(혹은 개별 도시)의 정체성을 다지고, 국민들의 놀거리를 지원하고, 나아가서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에도 국가 정부와 주 정부가 보이지 않는 손을 참 구석구석에 뻗치고 있습니다.

아무튼, 작은 브로어리들의 직영 펍은 괜찮은 유통 전략이기도 합니다. 사실 주류 시장은 유통 전쟁입니다. 더 많은 술집에 우리 술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느냐 마느냐가 매출을 상당부분 좌지우지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장에서 작은 브로어리들이 주류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기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도 못 됩니다. 그 시장에 발도 들여놓기 힘들죠. 따라서 이런 직영 펍에 투자하는 것이 브랜드 인지도와 가치를 높이고, 푸시 마케팅이 어려운 시장에 풀 마케팅으로 고객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White Rabbit Brewery, Victoria


사진은 멜번에서 즐겨 마시던 두 종류의 부티크 맥주 입니다. James Squire에서 나온 골든 에일과 Little Creatures의 페일 에일입니다. 이 두 맥주 회사는 맛있는 맥주도 만들지만 홈페이지도 들러볼만 합니다. James Squire은 그들의 스토리텔링이, Little Creatures는 브랜드 심볼과 홈페이지 디자인이 탐납니다.



호주는 영미권에서 짧은 역사와 범죄자 선조를 둔 덕에 문화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 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호주에 머무는 동안 이들이 얼마나 그 조상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그들 자신의 문화에 자신감을 가지고 알리려 노력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티크 맥주들 또한 '오지(Aussie, 호주) 커피 스타일'이 자리잡은 것처럼 '오지 맥주'로 그 색깔을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실제로 호주 맥주들의 경우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사탕 수수를 원료로 하여 독특한 맛을 낸다고 하니 유럽의 오래된 맥주 회사들과 경쟁할 만한 차별점으로 내세우는건 어떨까요. 오리지널리티를 브랜드 자산으로 가지고 올 수 없다면, 일단은 품질(특별한 맛)과 트렌드(부티크 맥주)로 승부수를 띄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테니까요.


부티크(boutique) 맥주의 세계 1. 맥주맛도 모르면서
부티크(boutique) 맥주의 세계 2. 멜번 편, 스몰 브로어리와 모던펍의 만남
부티크(boutique) 맥주의 세계 3. 런던 편, 보기 좋은 맥주가 맛도 좋다 
부티크(boutique) 맥주의 세계 4. 코펜하겐 편, 왕실 맥주의 실험작
부티크(boutique) 맥주의 세계 5. 베이루트에 가면


Jan 27, 2012

[culture] 멜번, 런던, 파리의 공공 도서관 이야기


Melbourne State Library


아프리카의 투와레그 족에는 '한 명의 노인이 죽는 것은 하나의 도서관이 불 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중고등학교 때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한 귀로 흘려버리게 된 핵가족화라는 것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배울 지혜를 책에 의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책에 많은 빚을 지고 있지요.

이 블로그에서도 소개한 뉴욕도서관 100주년 기념행사에 앞서 도서관의 디렉터는 한 인터뷰에서 도서관에 대하여 이런 말을 남긴적이 있습니다. "You walk inside and suddenly you feel anything is possible. And there are so many real treasures inside." 실제로 여행을 하다 지쳐갈 때 즈음에 도서관에 가서 사진집이든 여행책이든 잡지든 무엇이라도 집어들고 책장을 넘기고 있다 보면 어느새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요즘 한국의 도서관들은 책을 보러 가는 곳이 아니라 공부할 자리를 맡으러 가는 독서실이 되어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동시에, 사회의 자정작용을 믿는 제게 들려온 최근 파주 출판단지의 한 도서관 이야기는 반가웠습니다. 그 도서관은 도서관의 본질을 회복하겠다는 의미로 부러 열람실 없는 도서관을 열었다고 합니다.

야구 구단 마케팅 팀에 계시는 선배님의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나라의 입시 정책과 노동 정책이 바뀌면 프로야구 시장은 완전히 변할거야." 이 둘이 바뀌면 비단 프로야구와 도서관뿐만 아니라 뭔들 안 바뀔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며 즐겨 찾았던 도서관들을 소개합니다. 도서관은 여행자에게 생각보다 유용하고 흥미로운 공간입니다. 대부분 무료 와이파이가 지원되고 그 도시의 여행책자나 한국에서 찾을 수 없는 책들이 발견되가도 하며 왠지 로컬들의 일상을 엿보고 있는 기분도 듭니다. 여행이 지루해질 즈음이라면 도서관에 들러보세요.


멜번 주립 도서관 (Melbourne State Library)
멜번은 유네스코 창의도시 중 문학의 도시입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건너온 문학가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곳이며 덕분에 초기부터 출판업이 번성했고, 시드니보다 '문학적'인 도시로 통합니다. 이 도시의 특색을 알지 않더라도 여행자로서 멜번에 간다면 멜번 주립 도서관은 들를만 한 곳입니다. 이 도시의 많은 젊은이를 만날 수 있고, 아무런 제지없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료 전시나 공연도 종종 열리니 홈페이지나 도서관에 비치된 책자를 보고 그 날의 행사에 놀러가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무료 인터넷을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입니다. 

1층 입구 맞은편 끝의 예술의 방은 사진집과 그림집을 마음껏 볼 수 있고, 3, 4층의 열람실은 고풍스러운 나무 책상과 의자에 앉아 우아하게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동서양을 막론하고 엎드려 자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또한 입구 왼쪽의 Mr. Tulk라는 카페는 커피와 음식이 무난하고 위치가 좋아 주말에는 거의 자리가 없으니 여유로운 시간대에 들러보세요. 

멜번 시립 도서관 (Melbourne City Library)
시립 도서관은 주립 도서관에 비하면 단독 건물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규모도 작지만 왠지 아담해서 또 다른 분위기를 냅니다. 그런데 시립 도서관에는 책을 보러 가기 보다는 약속 장소로 활용하거나 1층의 분위기 좋은 카페 저널(Journal)을 더 많이 이용했네요.

시드니 커스텀 하우스 (Sydney Custom House)
호주의 도서관들은 대부분 대중에게 오픈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나다 쉬거나 책이나 잡지를 보기에 좋습니다. Circular Quay 근처 커스텀 하우스는 책도 책이지만 1층의 잡지와 신문 코너가 좋습니다. 호주에서 발행되는 거의 모든 신문과 잡지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분위기도 좋달까요.

런던 대영 도서관 (British Library)
브리티스 라이브러리는 안타깝게도 여행자에게는 출입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영국 거주자 혹은 외국인 중에서도 조사의 목적이나 특별한 허가를 받은 사람에게만 오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찾은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많아서였지만) 1층 박물관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본이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노트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헤드폰을 끼고 성우가 그것을 읽어주는 것을 듣는 재미가 있습니다. 마치 할머니가 어린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자상하고 때론 드라마틱한 목소리로 읽어 줍니다. 

이 도서관은 박물관에 가까운 도서관이어서인지 출입 조건도 까다롭습니다. 모든 짐을 맡겨야 하고, 들고 갈 수 있는 문구류도 연필류로 제한되는가 하면, 사진 촬영도 금지고 등등 책을 잘 보존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대영 도서관을 제외한 공공 도서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어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에 좋습니다. 가방 검사를 하긴 하는데, 그것은 음식물 반입 때문입니다. 숙소 근처에 있던 켄징턴 공공 도서관에 종종 찾았는데 놀란 것은 그들도 자리를 맡기 위해 새벽같이 도서관에 간다는 것입니다. 

파리 국립 도서관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파리 국립 도서관은 미테랑 도서관으로 더 유명합니다. 문화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미테랑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파리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베르시 공원에 들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La Cinematheque Francaise) 구경을 하고 작은 다리만 건너면 국립 도서관입니다. 

이화여대 ECC를 설계해서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가 책을 네 권 세워놓은 형태로 지은 건축물 자체도 멋집니다. 이곳 역시 회원카드가 있어야 열람실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책을 보기에는 무리지만 워낙 건물이 웅장해서 건물 구경만 해도 흥미롭습니다. 카페테리아 정도는 이용할 수 있으니 현지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맛도 있습니다. 파리지앵들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모습은 잘 상상이 안 갔는데 이 곳에 가니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가득한 것도 의외였습니다.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Dec 25, 2011

[culture] 커피의 진화 카페의 진화 1. 오지(Aussie) 카페 문화의 자존심, 멜번(Melbourne)




전형적인 오지(Aussie, 호주 사람) 스타일의 라테 잔입니다. 멜번에 처음 도착해서 카페에 들어가 라테를 시켰는데 커피를 저 유리잔에 담아 주기에 사실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서울에서는 물이나 담아 줄만한 컵에, 그것도 이케아에서 1달러는 줬을까 싶은 잔에 커피를 담아주니 말입니다.


그런데 10주 동안 호주에 머물며 저 잔에 라테를 홀짝이던 것에 익숙해져서인지 간사하게도 라테는 저 잔과 가장 궁합이 잘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만약 만약 만약에 카페를 열면 이케아에 가서 저 잔을 잔뜩 산 후, 한 손으로 들고 마셔도 뜨겁지 않을 온도의 부드러운 라테를 만들어 팔겠습니다. 식사를 한 후에 후식으로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홀짝이기 좋은 양입니다. 카페 이름이 오지 카페여도 나쁘지 않네요.


또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오늘 하려던 이야기는 오지 카페 문화입니다. 요즘 오지(호주)와 키위(뉴질랜드)가 카페 문화의 중에 들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5년 전에는 론리 플래닛이 멜번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무얼 하라고 권했을까요? 요즘 론리 플래닛은 멜번에 가면 좁은 골목 골목을 헤매며 발견되는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라고 합니다. 몇년 전만 해도 블럭마다 자리하고 있던 스타벅스가 멜번에 4개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멜버니언들의 로컬 카페에 대한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말해줍니다.


그나저나 오지 스타일의 커피가 뭔지 궁금하실 것 같네요. 특별한 맛이 있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 이들의 커피와 카페에 대한 새로운 태도에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시민들은 커피 맛 자체에 대해서 까다로워졌고, 커피맛 뿐만 아니라 카페의 인테리어나 음식도 평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카페 주인들은 자신만의 블렌딩으로 직접 로스팅을 하고 괜찮은 바리스타를 키워내는가 하면 카페 홍보에도 열을 올립니다.


서울과 뭐가 다르냐고 물어보시는 분의 목소리가 벌써 들립니다. 카페의 생김새는 서울과 거의 같습니다. 서울의 카페들이 일본 스타일에 가깝기는 하지만 인테리어에 많은 신경을 쓴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많이 다릅니다. 먼저 오전 11시에 열어서 자정 근처에 문을 닫는 서울의 카페들과 달리, 이 동네에서는 아침 7~8시에 문을 열어서 오후 4~6시면 문을 닫습니다. 카페가 서울에서처럼 친구를 만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출근하며 커피 한 잔을 하고, 식사하며 신문을 보는 곳이었다는 의미 입니다. 그래서 커피 문화와 카페 문화가 동시에 시작된 서울과 달리, 커피가 생활의 일부였던 멜번을 포함한 서구에서의 새로운 커피 문화는 그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혁명이라고도 말하는 새로운 카페 문화는 멜번과 시드니에서는 5년 정도, 북유럽에서는 20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멜번이 이렇게 빨리 카페 문화의 중심부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생각해 봤습니다. 이번 여행의 첫 도시가 멜번이었기에 그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 돌아보니 즐기는 데 관심이 많은 이 도시의 젊은이들, 시민들을 위해 돈 쓸 준비가 되어 있는 부자 주정부, 지역이 살아야 자신도 사는 지역 매체들의 합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동물은 호주인이라는 농담도 있는데, 멜번에 갔을 때 가장 놀란 것 중 하나는 일할 때는 나무늘보만큼 게으를지 모르는 이 사람들이 놀 때에는 열심히라는 겁니다. 빅토리아주 홈페이지에 가면 거의 매주 축제가 열리는 것을 알 수 있고, 거의 모든 축제에는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Melbourne Coffee Review라는 스마트폰 어플의 공도 큽니다. 멜번의 커피 마니아들은 이 어플로 새로 생긴 카페를 알아보고 최근 가장 별점이 좋은 카페에 찾아다니는 놀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Coffee Guide Melbourne이라는 카페 리뷰 책자도 있습니다. 이제 5번째 에디션을 발간한 이 책에서 별 5개를 받은 카페는 한 해 동안 그 영광을 누립니다. 빅토리아주 대표 일간지인 Age와 멜번의 문화 무가지라고 할 수 있는 Broadsheet 역시 멜번의 카페 문화에 대한 기사나 카페 리뷰를 꾸준히 생산하며 멜번을 커피 시티로 키우고 있습니다.


북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자신의 카페를 오픈하겠다고 시장 조사를 나온 어린 친구를 만난 적이 있는데, 이런 분들이 이 친구만은 아닐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께 저는 북유럽보다는 멜번을 추천합니다. 성숙기에 접어든 북유럽보다는 성장기인 이 시장에서 보고 배울게 더 많을테니까요. 무엇보다 더 생기 넘칩니다. 정말 멜번에 카페 트렌드 시장 조사를 가실 분께는 멜번 커피 리뷰 어플이 가장 유용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지 커피에 대한 기사 하나와 멜번을 대표하는 몇 카페를 소개합니다.


런던에 머무는 동안 이 기사(Aussie Rules in London)를 보고 올드 스트릿에 생겼다는 세인트 알리(St. Ali)를 찾아간 이유는 커피 맛도 커피 맛이지만 유리 잔에 담긴 고소하고 부드러운 라테가 그리워서였습니다. 세인트 알리는 멜번에서 오지 스타일의 카페 트렌드를 이끄는 성공적인 카페 중 하나입니다. 아쉽게도 런던의 세인트 알리는 머그잔에 라테를 담아줬지만 그리고 커피 맛보다 사업 확장에 관심이 더 많이 보이지만, 멜번 출신도 아닌 제가 런던까지 진출한 이들이 괜히 대견했습니다.  



마켓 래인 커피 Market Lane Coffee (www.marketlane.com.au)




사우스 야라에 위치한 프라한 마켓 한쪽 귀퉁이에 있습니다. 멜번에서 처음 방문한 카페고, 한국인 바리스타도 있고, 와이파이도 가능하고, 공간도 마음에 들어서 가장 자주 갔었네요. 그 독특한 블렌딩의 맛은 사라졌지만 고객들에게 언제나 친절하고 흥미로운 행사도 자주 기획합니다. 무엇보다 모노클이 늘 멜번의 대표 카페로 꼽는 카페고요. 이 역시 모노클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마켓레인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이 런던 최고의 카페인 몬머스(www.monmouthcoffee.co.uk)의 로스팅 견습생이었다고 하네요. 결국 또 뿌리는 영국이었다니 씁쓸합니다.


옥션룸 Action Room(www.auctionroomscafe.com.au)






노스 멜번에 자리잡은 옥션룸은 실제로 과거에 경매장이었다고 합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말입니다. 임대료 비싼 시티를 벗어나서 다소 위험하고 가난한 동네에 이런 시크한 카페를 낸 것은 자신감 때문이 분명합니다. 커피 맛도 음식 맛도 바리스타도 모이는 손님도 최고입니다.


코인론더리 Coin Laundry




아... 코인론더리... 감탄사를 먼저 뱉지 않을 수 없을만큼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멜번에서 2년을 산 친구 덕분에 카페 투어는 거의 친구를 따라 다녔는데, 이 카페는 머물던 집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직접 발견했다고 볼 수 있기에 더 애착이 가는지도 모릅니다. 항상 새벽부터 문을 닫는 시간까지 북적여서 처음에는 부자 동네 사람들이라 동전 세탁소에 세탁물을 맡겨 놓고 커피 한 잔씩 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마터면 빨래감을 가져갈 뻔 했는데 호기심에 문닫은 카페 안을 들여다 보고서야 카페인 줄 알았습니다. 홈페이지도 없는 이 카페는 제가 멜번을 떠나기 직전에 가장 핫한 카페였습니다. 커피맛도 수준 이상, 음식 맛도 수준 이상, 무엇보다 알마데일이라는 한적한 동네게 자리잡고 있어서 좋습니다.


Omar and the Marvellous Coffee Bird(www.omars.com.au)






이름이 너무 길어서 외우기도 힘든 이 카페는 맛으로는 멜번 최고였습니다.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서 찾아 갔기 때문에 이미 그 처음 맛이 변했을 수도 있습니다. 단단한 의지가 있는 주인이 아니고서야 첫 열정을 똑같이 유지하기는 힘드니 말입니다. 차가 없으면 가기 힘든 사우스 야라 한참 남쪽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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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진화 카페의 진화 1. 오지(Aussie) 카페 문화의 자존심, 멜번(Melbourne)

Dec 16, 2011

[brand] 버거왕(Burger King)이 배고픈 잭(Hungry Jack)이 되는 나라





여행자에게 패스트푸드점은 고마운 존재입니다. 특히 맥도널드가 그렇습니다. 맥도널드는 배 채울 곳, 쉴 곳, 인터넷 할 곳, 비 피할 곳 등 다양한 역할을 전 세계 거의 모든 대도시에서 수행 중입니다. 버거킹이나 KFC도 종종 그러한데, 호주에서의 버거킹은 쉽사리 들어가 지지 않았습니다. 호주에서는 '버거 킹'이 아니라 '헝그리 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거든요. 왠지 그곳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측은지심 비슷한 마음이 솟아 오릅니다. 그래서 가난한 여행자가 제 발로 그 곳에 들어가 햄버거를 사 먹으면 스스로 너무 처량해 보일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한 번은 가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사진도 찍었네요. 그 날은 시드니에서 멜번으로 놀러온 친구가 너무너무 버거킹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해서였습니다. 그런 날도 있었군요.

Nov 6, 2011

[brand] 브랜드를 책으로 배웠어요 2. 저렴하게 경영하라, 알디(ALDI)






(알디(ALDI)는 독일의) 알브레히트 형제가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시작한 구멍가게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소매상으로 거듭났다. 이들 형제는 <포브스> 선정, 세계 3위의 부자가 되었고 단순함이라는 경영원칙을 내세우며 오늘날의 성공신화를 창출하였던 것이다. 초저가할인매장 체인인 '알디'의 성공은 기업 성공에 머물지 않고 이른바 '알디화'라는 신조어까지 등장시키며 일종의 사회적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단순하게 경영하라 (알디 마케팅의 황금률)>의 교보문고 북리뷰에서 카피해 왔습니다. 알디는 몇 마케팅 서적에서 케이스로 간단히 다뤄진 것을 보고 알게 된 후, 알디에서 임원을 지냈던 저자가 쓴 이 책을 읽고 감명, 감복했었습니다. 책만 읽어서는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브랜드가 있을수 없습니다.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하는 완벽한 전략에, 엄청난 매출, 그리고 고객만족으로 이어지는 브랜드로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기사에 참고하기 위해 읽은 책이었지만 굉장히 잘 구성되어 있고, 쉽게 쓰여졌고, 무엇보다 촌철살인에 가까운 문장들이 엄청나게 쏟아지기에 누군가가 경영 사례집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늘 꼽는 책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독일에 가면 꼭 방문해보리라 다짐했었습니다. 글로 읽은 전략들이 눈으로 보면 어떨가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첫 번째 알디를 발견했습니다. 호주 멜번의 프라한 마켓 옆이었습니다. 이 알디가 그 알디임을 확인하고 친구를 먼저 보낸 후 떨리는 마음으로 매장 안으로 향했습니다. 정말 약간 긴장했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물건과 가격, 인테리어, 직원들, 매장 안의 소비자들을 살피는 동안 뭔가 내가 잘못된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해외 브랜드'라고 하면 모두 세련되고 멋진 외관에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질 것 같은데, 알디의 첫 느낌은 뭔가 많은 것들이 생략된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선반도, 조명도, 직원도, 굳이 필요 없는 비용이 될 만한 것은 모두 생략되어 있었습니다. 짠돌이 형제의 기업인만큼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싼 가격의 상품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제품의 박스가 선반을 대신하고, 조명도 한톤 어둡고, 음악이나 방송은 있을리 없고, 무표정한 직원들도 몇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전략에 충실한 모습이었겠지만 왠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돌아와서 친구에게 물어보니 싸지만 잘 가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멜번을 떠나 시드니에서도 알디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드니에서 오래 산 친구는 몇몇 제품을 살 때에는 꼭 알디에 간다고 합니다. 그 가격에 그 제품을 살 수 있는 곳은 알디 뿐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알디에 대한 결론은 본토인 독일에 가서 내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를린의 한 알디 매장입니다. 모든 제품이 PB 상품이며(제가 찾은 Private label이 아닌 제품은 누텔라가 유일했습니다), 몹시 저렴한 가격과 불필요한 것은 모두 생략한 인테리어는 멜번이나 시드니 매장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른 것이라면 독일 내에서의 평판과 경쟁구도입니다.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독일에서 유학중인 방 주인에게 알디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유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되도록이면 알디 대신 리들(Lidl)에 가라며, 알디에서 사면 안 되는 제품까지 일러주었습니다. 알디는 싸지만 때때로 상하거나 제대로되지 않은 상품들이 놓여져 있기도 하다고 합니다. 그 친구가 말해준 리들이 바로 알디의 가장 큰 경쟁 상대입니다. 리들 역시 알디만큼 몹시 저렴한 PB상품을 파는 디스카운트 체인 스토어이지만 알디에 비해 인심은 덜 잃은 모양입니다. 베를린이나 알디와 리들이 동시에 진출해 있는 북유럽에서도 알디보다 리들의 매장이 더 눈에 많이 보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멜번의 첫 알디에서 느낀 그 기분이 살아났습니다. smart한 브랜드일 것이라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왠지모르게 depressed 되어 나왔던 날이었습니다. 저녁 찬거리를 사며 활기차야 할 곳에서 왠지 모를 우울함을 느꼈던 것은 단지 조명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단순하게 경영하라'가 아니라 '저렴하게 경영하라'가 되다보니 '싼' 가격이 우선이 되어 고객들의 안전과 즐거움도 생략시켜버렸나 봅니다. 


물론 이 책이 실제로 쓰여질 당시에는 알디가 독일의 노동자계급의 일상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그것만으로도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였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친구만의 경험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설사 그것이 단 한 번이었다 하더라도 정상적이지 않은 상품으로 소비자의 건강을 위협했고, 경쟁사에 의해 시장 점유율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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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3, 2011

[culture] 거리에서 브랜드를 생각하다

S E O U L, B R A N D  V I E W 


며칠 전에 가로수길에 다녀왔습니다. 역시 서울은 잠깐만 자리를 비워도 쉴새 없이 무언가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뜨거운 도시입니다. '빨리빨리'가 우리의 약점이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커다란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변화의 여지가 크니까요.

가로수길에 새로 생긴 한 카페에서는 요즘의 대세가 뭔지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습니다. 각자가 가진 경험들을 쏟아 놓고 이야기 하다보니 어느새 괜찮은 카페의 컨셉이 하나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컨셉은 너무 괜찮아서 비밀일 정도로 모두가 동의했지만, 문제는 '어디에' 열어야 할 것인가 였습니다.

홍대, 가로수길, 삼청동, 이태원은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그 다음으로 효자동, 가회동, 유엔빌리지, 경리단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심지어 서판교까지 갔다가 다시 가로수길로 돌아왔습니다. 문제는 '임대료'였습니다. 뜬다는 거리는 어김없이 임대료가 비싸고, 곧 뜰것 같은 거리는 곧 비싸질 것이고, 우리의 카페는 한 곳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데 과연 비싸지는 임대료를 감당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친구들이 합정으로 갈 것이냐 차라리 대전으로 갈까로 고민하는 사이 저는 혼자 '언제부터 이렇게 거리가, 동네가 브랜드화 되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브랜드화 되었다기 보다는 '이제는 거리를 브랜드라고 우겨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브랜드라는 말이 일상화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맞을것 같습니다. 가로수길, 경리단길, 서래마을. 각자가 가진 아이덴티티가 있고, 소비자들은 그 동네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높은 값을 지불합니다.

브랜드(brand)라는 말은 옛날 옛적에 소와 같은 가축을 키우는 사람들이 자기 소유의 가축을 구분하기 위해 뜨겁게 달궈진 쇠로 소의 엉덩이 등에 찍은 마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나 브랜드라는 가져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지만 사실 브랜드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5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브랜드계의 구루라고 불리는 데이비드 아커, 케빈 켈러, 장 노엘 캐퍼러 모두 브랜드 이론의 1세대이지만 아직도 정정 하십니다. 브랜드가 경영학에서 하나의 실제하는 이론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브랜드라는 말이 처음에는 회사의 로고 정도로 받아들여 졌지만, 지금은 이렇게 어디에도 브랜드를 가져다 놓아도 어울리는 이유는 이것은 하나의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업에게 유용한 관점이기에 상업적으로 비추어지기도 하지만 브랜드적 사고는 어쩌면 일상의 효율화를 만드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창업을 할 때에도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 돈을 많이 벌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브랜드로 만들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면접을 볼 때에도 어떻게 하면 나를 브랜딩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동네 세탁소 아줌마에게도 나는 어떤 브랜드로 비춰질까를 생각해 보면 당연히 실보다 득이 많을 것입니다. 자칫 과하게 포장을 하면 사기꾼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브랜드의 핵심은 아이덴티티, 즉 자기 정체성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유니타스브랜드에서 배운 '자기다움으로 만드는 남과 다름'이라는 말이 가장 훌륭한 브랜드에 대한 정의가 아닐까 합니다. 



O T H E R  C I T E S,  O T H E R  T H O U G H T S


정신을 차리고 친구들의 수다에 다시 합류했는데 이번에는 UV의 신곡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이태원 프리덤' 중 "강남 사람 많아, 홍대 사람 많아, 신촌은 뭔가 부족해"를 흥얼거렸습니다. '역시 UV는 달라...'라고 중얼거리면서 말입니다. UV를 아끼기에, 이들의 이 한 소절을 '거리 아이덴티티에 대한 풍자'라고 맘대로 해석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문득 거리 브랜드에는 뭔가 다른 역학관계가 함께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제 졸업 논문 주제가 '홍대 문화 정체성과 형성 과정'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2005년이었네요. 그때 논문을 같이 쓴 친구와 술파는 꽃집의 사장님, 빵의 대표님 등을 인터뷰하며 우리가 먹고 마시는 그 공간을 둘러싼 갈등과 고민을 주저리주저리 적어 놓았던 생각이 납니다. A+를 주신 서동진 선생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네, 자랑을 하고 싶었습니다.)

논문을 쓰면서도 나중에는 "뭐야, 결국 부동산 문제잖아"라고 결론 내렸던 기억입니다. 홍대라는 지역의 정체성이 만들어진 것도 임대료가 싼 지역을 찾아 아티스트들이 모여들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뿌리 내리게 했고, 덕분에 문화지구라 불리게 됐지만 그 흥미로운 곳에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려는 자본이 몰려들고, 임대료는 상승하고 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아티스트들은 또 다른 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홍대를 누가 문화지구라고 할까요, 최고의 상업지구겠지요. 그 경계가 더더더 넓어져서 이제는 홍대와 신촌, 그리고 합정을 구분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거리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부동산이라는 역학관계가 함꼐 돌아가고 있는 것은 비단 홍대나 삼청동, 가로수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멜번에서는 피츠로이(Fitzroy), 런던에서는 이스트 런던, 베를린에서는 프렌츠라우어(Prenzlauer), 스톡홀름에서는 쇠데르말름(södermalm)이 모두 같은 문제를 겪었거나 겪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는 과거 동독 시절 부촌이었던 프렌츨라우어가 지금은 여피족이나 돈 잘 버는 아티스트들의 주거 단지가 되면서 비싸지고, 베를린의 싸다는 물가를 듣고 찾아온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은 남쪽의 노이쾰른 쪽으로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임대료에 휘둘리는 삶을 참을 수 없자, 임대업자들을 대상으로 시위를 하도 한답니다. 베를린은 타헬레스(kunsthaus tacheles, 가난한 아티스트들이 폐건물을 불법 점거해서 그곳에서 작업을 하며 예술의 성지가 된 곳, 그러나 지금은 관광지에 가까운)를 탄생시킨 정신을 가진 도시니 이런 적극적 활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멜번에서는 피츠로이의 브런즈윅(Brunswick st.), 스미스(Smith st.), 거트루드(Gertrude st.) 스트릿 부근이 그렇습니다. 피츠로이는 런던의 브릭레인(Brick lane)처럼 이민자들이 살던 동네에 아티스트들이 모여들면서 소규모의 갤러리나 독특한 바, 카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hot하다는 바나 카페들이 즐비합니다. 하지만 임대료는 점점 상승하고 그 임대료를 감당할만한 부자들이 원주민(?)들을 몰아내는 전형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다보니 컨텐츠에 자신이 있는 곳들은 비싼 임대료를 일부러 감당하면서까지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으니 쌩뚱맞은 곳에 둥지를 트는 경우도 많습니다. 멜번 최고의 라테를 맛보게 해 주었던 오마르앤더마벌러스커피버드(omar and the marvellous coffee bird)나 옥션룸(Action Room), 코인론드리(coin laundry) 모두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언제나 찾는 사람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멜번에 머무는 동안 하루는 피츠로이에서 놀다 왔다고 하자 하우스 메이트였던 멜번에서 오래 산 태국 친구가 유튜브 동영상을 하나 보여줬습니다. "그거 알아? 브런즈윅에도 페이크(fake)들이 많아"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브런즈윅에는 '브런즈윅 스타일'로 꾸며 놓고 오리지널, 그러니까 가난한 아티스트가 자신의 정신세계를 담아 쿨 하게 만든 카페나 숍, 인척 하는 곳들이 많답니다. 그래야 클러스터 효과를 봐서 비싼 임대료에 대한 보상을 조금이나마 받을테니까요. 아래의 뮤직비디오의 일부는 그들을 비꼬고 있답니다.






최근 다시 이 영상을 보며 가사를 함께 봐도 100% 이해할 수 없는 걸 보니, 멜번 사람들의 일상을 모르고서는 이 뮤직비디오를 봐도 피식 웃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곡을 만든 The bedroom philosopher는 코미디언이자 저널리스트이자 풍자가입니다. 이 사람의 짧은 인터뷰를 찾아보니 미국 문화, 영국 문화에 쌓여 정작 호주다움을 못 찾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아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세 번째 앨범은 멜번의 86번 트램 루트를 따라가며 얻은 영감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86번은 개발 붐이 불고 있는 도크랜드와 멜번CBD, 피츠로이를 지나 저 북쪽의 노스코트(Northcote)까지 가는 트램입니다. 다양한 이민자에서부터 비즈니스맨, 아티스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트램이니만큼 멜버니언들의 정체성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은 트램입니다. 하지만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아니라 자학 개그에 가깝습니다. 최근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이 생각났습니다. 덕분에 이 앨범은 멜번, 그리고 호주 사람들의 상당한 공감을 얻은 이 앨범은 2010년 멜번 코미디 페스티벌과 각종 호주 음악 어워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나 봅니다. 



거리가 가진 정체성으로 돈을 버는 임대업자가 있는가 하면, 이렇게 사람들을 웃게하고 동시에 생각하게 하는 아티스트도 있습니다. 






Aug 22, 2011

[travel] 새 도시에 도착한 장기 여행자를 위한 몇 가지

Tegel Airport in Berlin


여섯 번째 도시, 베를린에 도착했습니다.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이 뉴욕과 런던 대신 선택하는 도시라는 이 곳에서 한 달을 머물 예정입니다. 그런데 파리에서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사전 조사는 커녕,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는 방법도 검색하지 않고 와 버렸습니다. 방을 빌려주기로 한 친구가 공항에 나오기로 한 덕분이지만, 여행이 길어 질수록 '준비'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네요.


좋게 생각하면 새 도시에 적응하는 노하우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해요. 저는 새 도시에 도착하면 먼저 이런 것들을 챙기게 되었습니다. 여행 초반에 집중해서 신경을 써 놓으면, 무작정 발품을 팔지 않아도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어요.


1. 인포메이션 센터
가장 먼저 공항 인포메이션에 가서 그 도시의 지도를 얻습니다. 보통은 지도만 주지 않죠. 갖가지 여행 가이드 자료를 함께 받고 나면 든든합니다. 공항에서 숙소 가는 길에 그 자료를 훑어보면 이 도시의 커다란 모양새와 관광지는 대부분 파악 가능합니다. 어디에 관광객이 많고, 어디에 로컬들이 많을지 정도는 구분이 되기도 해요.


+ 멜번에는 페더레이션 스퀘어에 있는, 런던에서는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밀레니엄 브릿지 가는 길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가 좋습니다.


2. 어플리케이션 다운로드
숙소에 도착하며, 와이파이를 연결하죠. 적어도 오스트레일리아 대륙과 유럽에서는 무료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이 굉장히 굉장히 드뭅니다. 아무튼 와이파이가 연결되면, 앱스토어에 접속해서 그 도시의 이름으로 어플리케이션을 검색합니다. 지도나 대중교통 맵, 간단한 여행 가이드 등을 받아 놓으면 유용해요.


+ 도시별 무료 와이파이가 가능한 곳
- 멜번 : 공공 도서관(State Library, City Library), 맥도널드, 마켓레인(Marker Lane)을 비롯한 소수의 카페(패스워드 확인 후 가능)
- 런던 : 스타벅스(스타벅스 카드를 한 번만 사서 등록하면 언제나 무료), 애플스토어(아이폰 유저의 경우)
- 파리 : 맥도널드(로그인 페이지에서 D'accord 클릭 후 사용 가능)
- 베를린 : 스타벅스(로그인 페이지에서 connect 클릭 후 사용 가능), 소니 센터(로그인 페이지에서 두개 박스에 동의 체크 표시 후 사용 가능), 그외 불특정 다수의 지역


3. 트위터 업데이트
시간 여유가 생기면 트위터에 접속합니다. 역시 그 도시의 소식을 알려주는 트위터를 검색해요. 교통 소식, 날씨 소식, 파업 소식, 축제 소식, 맛집 소식, 파티 소식 등을 알려주는 고급 트위터 계정을 다섯 개 정도만 찾아 놓으면, 매일 '오늘 뭐하지!?'를 고민하거나, 일정이 갑자기 바뀌었을 때 당황할 일이 줄어 듭니다. 게다가 이 트위터 계정을 찾다 보면 괜찮은 사이트나 블로그도 자연스레 발견됩니다. 그 사이트들을 북마크해 놓고, 틈틈히 들여다 보는 것도 재밌어요. 하지만 문제는 괜찮은 트위터 계정을 확보해 놓더라도 거리에서 인터넷을 쓸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아침에 나갈 때 업데이트 된 트윗들을 다운 받아 놓고, 나가는 길이나 버스, 지하철 안에서 그것들을 체크합니다.


+ 유용한 사이트


- 멜번 
thethousands.com.au/melbourne/ 월페이퍼 시티 가이드 멜번 편을 담당한, 스완스톤 거리의 유명한 타이 레스토랑 Cookie의 사장이기도 한, Barrie Barton가 이끄는 시티 가이드. 
www.broadsheet.com.au/ 멜번의 트렌드와 문화를 소개하고 이끄는 무가지. 멜번의 새로운 샵들을 발굴해서 알려주는 유용하고 흥미로운 사이트. 


- 런던 
now-here-this.timeout.com/ 너무도 유명한 시티 가이드 시리즈 타임아웃에서 운영하는, 타임아웃보다 빠르고 재미난 사이트. 참고로 런더너들은 타임아웃에 소개되면 '쿨하지 않은'으로 간주한다고 함.
londonist.com/ 잘은 활용하지 않았지만, 타임아웃만큼 많은 정보가 잘 정리된 사이트.


- 더블린 
www.culturefox.ie/ 홍보가 아주 열심히 되고 있는 사이트. 정부 기관의 펀드를 받은 덕분에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는 듯. 카테고리 별로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음. 무료 app도 함께 운영.
www.dnote.info/ 역시나 정부 기관의 도움이 있지만, 개인이 운영을 하고 있는 듯. 컬처폭스보다 Art에 초점이 맞추어진 사이트. 디노트(dnote)에서 만든 관광용 더블린 지도가 매우 유용함. 무료 app도 함께 운영.


- 파리 
www.60by80.com/paris/ 불어가 아닌 영어로 채워지는 파리 관련 사이트는 귀함. 발견한 영어 사이트 중 가장 쿨한 사이트
www.secretsofparis.com/ 사이트 이름에 낚여서 들어가서 디자인에 실망했지만, 정보는 가장 알참.
10daysinparisistheshit.tumblr.com/ 사진 구경만 해도 재미있는, 클럽을 중심으로 한 파리의 핫스팟 정보가 가득한 사이트.



4. 현지 서점/도서관
여행을 하면서 진짜 궁금한 것들은 대부분 책에서 찾게 됩니다. 이를테면, '왜 멜번 사람들은 카페 문화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왜 런던에는 직선 도로가 드물까?'하는 것들이요.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도시의 문화나 역사에 관한 책들을 뒤적이다 보면 그 답들을 만나곤 합니다. 꼭 어떤 책이 아니더라도, 론리 플래닛의 처음 몇 페이지(역사, 문화 등을 다룬)만 읽어도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또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를 보며 이 도시의 사람들이 어디에 열광하는지 상상해 보기도 하고, 월페이퍼 시티 가이드를 보며 이 도시에서 럭셔리 여행을 한다면 어디에 갈 수 있을까를 살펴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발견한 아주 좋은 책이 있는데, <Free and Dirt-Cheap> 시리즈예요. 한 도시에서 '공짜이거나 더럽게 싼' 모든 것을 모아 놓았어요. 공짜 공연, 강습, 행사나 저렴한 숙소, 맛집 등의 정보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가득합니다.


5. 현지 친구 사귀기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좋은 방법은 현지인을 친구로 두는 거예요. 궁금한 것들을 바로바로 물어 볼 수 있고, 그들이 그 도시를 즐기는 방법을 엿볼 수도 있으니까요. "네가 이 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데려가달라"는 한 마디면 인터넷이나 여행책에서 찾을 수 없는 멋진 곳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친구 사귀기가 쉽지가 않은 게 문제죠. 그렇지만 여행 시작하기 전에 약간의 준비를 하고 마음을 활짝 연 후에 이 사이트, 카우치 서핑(www.couchsurfing.org)을 활용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예요. 




그나저나 저도 시작을 해야 하는데, 영어권 국가를 벗어나고 나니 좀 막막합니다. 그래도 독일은 영어 사이트가 활성화되어 있는 것 같아요. 프랑스처럼 영어 사이트로 들어가도 첫 페이지만 영어고 결국은 불어 사이트로 넘어가는 일은 드문 것 같네요. 


베를린에서 베를린 리포트 외에 현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영문 사이트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독어는 읽을 줄도 모릅니다. 





Apr 22, 2011

[culture] 논쟁적 사진작가, 빌 헨슨 (the Bill Henson Controversy)


15 April, Tolarno Gallery in Melbourne


생각보다 세련되고, 생각보다 친절하고, 생각보다 자부심 강한 멜버니언들. 늘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사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멜번에서 알게 된 친구, Danica에게 멜번의 문화를 느낄 수 있을 만한 곳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아티스트답게 멜번 시티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갤러리들과 아티스트들의 작업공간으로 날 초대했는데, 그 중 한 갤러리에서 알게 된 빌 헨슨(Bill Henson)이라는 사진 작가의 스토리가 흥미롭다.

사진 이론을 전공하고 있는 이 친구가 데려간 갤러리 중에서 유일하게 위 갤러리에서, 내가 지금 돈이 있다면 이 사진을 사고 싶다,며 시간을 끌었던 기억이 난다. '아름답다'고 느낀 사진 작품들을 보기도 오랫만이었다. 요즘은 '예쁜, 재미있는, 아무렇지 않은척 하는' 사진이 대세니까.

Danica가 말한대로 마치 카라바지오(Caravaggio)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Bill Henson, Paris Opera Project, 1991

행운이 계속 따른 날이었는지 Danica와 갤러리 매니저가 아는 사이였던 덕분에 사진 하나하나마다 열정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열정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도 그런 마음이어서, 너무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아름답다고 빌 헨슨이 누구냐고 유명한 사람이냐며 물어댔다. 신나서 멜번 출신이고, 뉴욕 파리 런던 등에서도 전시회를 했던 작가라고 설명해주는 매니저와 달리, Danica는 갤러리를 나오면서 사실 이 작가는 굉장히 논란이 많은(controversial) 작가라고 덧붙였다.

간단히 설명을 듣고 돌아와서 찾아보니, 얼마 전 그의 작품을 두고 법적 공방까지 갔었고, 말 아끼기로 유명한 호주의 전 수상, 케빈 러드가 '굉장히 혐오스럽다'고 표현했을만큼이었다고 한다.

논란의 중심에는 '예술 vs 포르노'가 있었고, 더 문제가 되는 건 그것이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사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실제로 한 학교에 찾아가 12세 여자 아이와 13세 남자 아이를 '고른?' 뒤, 부모의 허락을 받고 부모가 동석한 가운데 누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지금 구글 이미지에 Bill Henson을 검색해 보시라.)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작가가 파리의 작가였다면, 이런 논란에 중심에 설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만한 유명세를 탈 수 있었을까? 아마도 Danica는 이런 멜번과 호주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Thank you, Danica!

멜번에 있으며 이 도시는 penalty의 도시로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물론 학교에서 선진의식이라는 것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우는 것 같지만, 과연 penalty가 없다면 이 젠틀하고 질서정연한 겉모습이 유지될까?

친구의 학교에 '도강'을 갔다가 놀란 것이,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의 디테일한 법규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날은 음주법 관련 수업이었는데, '라이센스 없는 곳에서 술 팔면 얼마, 바텐더가 취한 것 같아 보이는 손님한테 경고 없이 술 팔면 얼마, 지정된 지역 외에서 술 먹으면 얼마....'를 듣고 있자니, 엄청난 벌금도 벌금이지만 법 만드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중에 이곳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 분 역시, 이곳의 사회복지 법규가 얼마나 디테일하게 거의 모든 부분을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 입이 닳도록 설명하더라.

빌 헨슨이름 앞에 늘 'controversial'이라는 단어가 붙는 이유는, 바로 이 '큰 정부'가 유지되기 위한 '규제의 구멍'에서 예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2008년 전시회 오프닝 날, 그의 사진들이 경찰에 의해 압수되고 그는 법정에 섰지만, 결국 풀려난 근거는 '예술이냐 아니냐는 법정에서 다룰만한 소재가 아니다'였다.

이런 아티스트를 규제할 만한 디테일한 규정은 커녕,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에 대처할 만한 정부의 입장도 정리가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당황한 큰 정부는 일단 그를 잡아넣고 보았던 것이다. 덕분에 빌 헨슨은 더 유명해지고 말이다.

'예술 vs 포르노'는 아주아주 오래된 논란일테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논란일텐데, 이것으로 뜨거웠다는 호주의 2008년에는, 사실 빌 헨슨보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그리고 미디어들이 더 달떠있었던 것 아닐까.

멜번이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부끄러원 하는 작가, 빌 헨슨. 이런 멜번, 이런 호주.






a tiny slice of Melbou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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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9, 2011

[culture] 멜번의 옛 닉네임, 멜보링에 대한 수다 (Melbourne is not boring!)




축제가 끝나고 난 오후, 알마데일 하이스트릿
현대적인 건물과 역사적인 건물이 뒤섞인 멜번의 시티
만남의 장소이자, 시위의 장소이자, 피크닉의 장소이자, 책도 보고 인터넷도 할 수 있는 멜번 스테이트 라이브러리
끊임없이 무언가가 열리고 닫히는 페러레이션 스퀘어


시드니에 사는 친구가 멜번의 별명을 알려줬습니다. '멜보링(Melbouring)'이랍니다. Melbourne is boring! 멜번은 따분(boring)하다며 얼른 시드니로 오라고 야단입니다. 처음 들을 때에는 웃어 넘겼는데, 생각해보니 재미있어서 멜버니언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재회해서 친구가 된 다니카(Danica)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고 반 나절을 함께 멜번의 구석구석을 다녔습니다. 인터뷰라기 보다는 수다에 가까웠지만, '멜보링'이란 별명에 대한 의문도 풀리고 멜번의 히든 플레이스도 알게 되었습니다. 

"시드니에 있는 친구가 멜번의 별명이 '멜보링'이래. 정말 그래?"

"하하하, 나도 처음 들어봤는데?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것 같아. 멜번이랑 시드니는 'vs'를 달고 다니잖아. 어느 도시나 그렇겠지만 우리는 자기가 사는 도시를 사랑해. 모든 도시는 흥미롭고, 나에게는 멜번은 전혀 지루하지 않아."

호주에서 멜번과 시드니의 경쟁구도의 역사는 깊습니다. 1901년에 정식으로 나라가 세워지고 나서, 1927년에 수도가 캔버라로 정해지기 전까지 호주의 수도는 멜번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드니를 호주의 수도라고 생각할 만큼 시드니가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는 하지만 멜번 사람들은 원래 멜번이 호주의 수도였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캔버라가 수도로 지정된 이유 중 하나도 두 도시의 경쟁 구도를 고려해서 시드니와 멜번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을 우선 순위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반구 최초의 올림픽도 멜번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시드니 올림픽이 있기 반 세기나 전에 말입니다.

"나도 멜번에 오기 전에는 멜번이 어떤 도시일지 상상이 안 됐어. 그런데 한 달 넘게 지내보니 전혀 지루하지 않아서 친구가 그 말을 했을 때 그냥 웃어 넘겼어. 멜번은 생각보다 굉장히 핫한 도시 같아. 론리 플래닛에서 왜 Lane Culture를 즐기라고 했는지도 알겠어. 멜번에서는 골목의 끝까지 들어가 봐야 거기에 뭐가 있는 지 알 수 있어. 간판도 없고, 조명도 없지만 혹시 하고 들어가 보면 멋진 카페나 바들이 숨어 있더라구."

"맞아, 그런데 이렇게 변한 건 얼마 되지 않았어. 20년 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어. 그때는 지루했을지도 몰라. 그런데 60년대부터 개발의 붐이 불면서 70-80년대에는 동쪽으로 도시가 점점 더 넓어졌고, 근교로 갔던 사람들이 아이들의 교육같은 문제로 다시 중심부로 모이면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건 뭐야?"

"글쎄, 나도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워. 지금 멜번은 모호(ambiguity)해. 이 단어 '모호함, 애매함'은 내가 좋아하는 말이기도 해. 내 작품들의 중심 생각이기도 하고 말야. 모호하다는 건 계속 자라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 지금의 멜번이 그런 것 같아."

"브로드쉿(Broadsheet)알아? 그 웹사이트에서 니가 하는 말과 비슷한 문장을 읽은 것 같아. 잠깐만 웹사이트에 들어가보자. 바로 이거야. 편집장 겸 발행인이 자신들을 소개하는 페이지에 쓴 글이야."

From where we’re standing Melbourne is going through an extraordinary boom at the moment. I think most would agree, it's virtually unrecognisable from the city we remember as kids. There seems to be an energy about the city right now; things are really happening.

"어때?"

"음...보자... 맞아, 나도 완전히 동의해. 내 말도 이 말이었어."

"그럼 그 다음 문장은 어때? 마지막의 컴플렉스란 뭐지? 너희들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인가?"

Don’t worry, we wont bang on about how Melbourne is hailed for its restaurant scene, laneways and boutique shopping; that’s well beyond the point of cliché and, frankly, reeks of an inferiority complex.

"나도 단언하기는 어려워. 그렇지만 호주가 역사적 기반이 영국이나 독일, 네덜란드에 비해서 약한건 사실이야."

"좋아, 그럼 내가 멜번에 궁금한 것 더 물어볼게. 지금은 멜번에서 가장 핫한 서버브(suburb)는 어디라고 생각해?"

"그건 니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 다를꺼야. 만약 비주얼 아트에 관심이 많다면, 우리가 처음 만난 피츠로이 쪽이지 않을까?"

"피츠로이 갤러리 투어는 정말 멋있었어. 너 아니었다면 브런즈윅 스트릿(Brunswick st.)의 뒷골목 이층에 갤러리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을거야. 멜번에는 그런 숨은 갤러리가 많아? 시드니보다 많을까?"

항상 시드니와 비교하는 제 질문을 불편해 했는지 모르겠지만, 다니카는 언제나 객관적으로 이건 자기 의견이고 정확한 수치는 확인해 보지 않았다며 겸손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시드니의 아트 시장이 더 크겠지만 멜번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를 멜번 시티에 있는 숨은 갤러리들로 데려가 주었습니다. 덕분에 빌 헨슨(Bill Henson)이라는 사진 작가도 알게 되었고, 그 복잡한 스완스톤 스트릿(Swanston st.)에 신생 아티스트들에게 스튜디오 겸 전시 공간을 빌려주는 빌딩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시티 라이브러리 옆 건물이었는데 일층에는 편집 매장들이 있고, 오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건물 밖과는 전혀 다른 아티스트들의 세상이 펼쳐집니다. 

이제 막 떠오르는 작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아트 스쿨을 졸업한 학생들이 자신의 포트폴리오와 일종의 제안서를 내고 통과가 되면 공간을 저렴한 가격에 빌려주고 전시도 후원해 준다고 하네요. 우리 나라에도 이런 플랫폼 역할을 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있겠죠?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번은 아티스트가 활동하기 어렵다고 한참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일단 물가가 비싸니까요.





몇 군데의 갤러리들을 돌아 본 후에 시티 라이브러리의 작은 세미나 룸에 들어가 조용히 수다를 떨 수 있었습니다. 

"멜번은 마치 스위스의 바젤 같아. 바젤도 굉장히 작은 도시인데 골목마다 개인 갤러리든 공공 갤러리든 없는 블럭이 없을 정도야. 덕분에 바젤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것 같았어. 실제로 바젤 시립 미술관(Kunstmuseum Basel)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개인 컬렉션을 시에 기증하면서 만들어 졌대. 그 중에는 피카소의 작품같은 유명 그림들도 상당했다나봐. 원래 그 동네 사람들은 예술을 사랑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디자이너 친구는 유럽 여행을 할 때 꼭 바젤에 가 보라고 권하기도 하던데, 바젤 가 봤어?"

"응, 아트 바젤 페어도 유명하잖아. 바젤 좋아. 그런데 멜번은 바젤만큼은 아니야. 멜번도 2년에 한 번씩, 불행히도 올해는 아니지만, 아트 페어가 열려. 하지만 규모 면에서 바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아. 말했지만 호주는 역사가 길지 않거든. 덕분에 호주의 예술문화는 젊다고 할 수 있어."

"꼭 비주얼 아트를 말하지 않더라도 멜번은 문화적인 도시같아. 페스티벌 일정이 달력에 빼곡하고, 주 정부에서도 관리를 잘 하는 것 같던데, 아니야?"

"음... 주 정부의 예산은 스포츠에 가장 많이 쓰이지 않을까? ^^ 비주얼 아트 부분에는 포션이 매우 작고, 페스티벌이나, 뮤지컬, 오케스트라 같은 다른 문화 활동에는 적지 않을거야."

"그렇구나. 아무튼 언제든 즐길 거리가 있는 멜번 사람들이 부러웠어. 어느 주말에든 나가 놀 거리가 있던데? 게다가 커피도 맛있고, 맥주도, 와인도 맛있잖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문화들이 많아 보여."

"그걸 두고 핫 하다고 할 수 있을 거야. 뜨겁지.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소비 중심적인 문화라고 생각해. 쉽게 소비할 수 있는 먹고 마시고 놀 거리가 많이 생겼지. 그런 면에 있어서 멜번의 아트 씬은 좀 달라. 숨겨져있고 뭔가 혼합되어 있어."

"역시, 모호한건가?"

"맞아. ^^ 멜번의 아트 씬은 한 번도 주류가 된 적은 없어. 그렇지만 안에서 더 커지고 있어. 애매하지만 말야. 우리는 행운아야. 우리에게는 많은 자유가 있거든."

"와, 어쩜... 내가 묻고 싶었던 걸 어떻게 알고 대답한거니? 서점에 갔다가 <The Lucky Country>라는 책을 봤어. 이 책을 쓴 도널드 혼(Donald Horne)이 마지막 챕터에 이 말을 쓰고 제목으로 붙이고 나서 이 단어가 호주의 별명처럼 됐다고 하더라구. 정말 너희들은 스스로 행운이 가득하다고 생각해?"

"응,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가진 자원이나 자연환경을 봐. 그렇지만 그건 미디어 센세이셔널리즘(media sensationalism)의 하나이기도 해. 일종의 프로파간다지. 그런데 지금 우리가 정말 럭키할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 비싼 의료보험 시스템을 봐, 엄청나게 비싼 렌트비는 또 어떻구."

멜번대에서 순수 예술을 전공한 이 친구와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6시가 돼서 도서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우리는 오프닝 행사가 있는 다른 갤러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쉽게도 뭔가 착오가 있어서 오프닝을 보지는 못했지만, 뭔가 멜번에 대한 많은 의문이 풀려서 신이 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를 골라달라고 했습니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1살 부터 28살까지 유럽, 아메리카 대륙, 아시아, 그리고 알라스카까지 안 가본 곳이 없었습니다. 현지에서 돈을 벌며 여행을 하고 다시 호주에 왔다가 다시 여행을 떠나기를 반복한 후에 29살이 되어서야 공부가 하고 싶어서 대학에 왔다고 합니다. 

지금은 여러 단체의 후원을 받으며, 여러번의 전시회를 연 신생 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그녀가 보여준 작품 중에 저는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뭔가 감정 이입이 되었다고 하는게 맞을까요? 숍의 한 구석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한 여자가 자신의 발에 맞지 않지만 맘에 드는 구두를 억지로 신는 모습을 연속 촬영한 이미지 입니다. 


다니카는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주는데, 이렇게 사진이 되기도 하고 설치 미술이 되기도 하고 조각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늘 고민하고 그것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고민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이런 그녀가 꼽은 최고의 도시는 바로 '베를린'이었습니다. 역시 아티스트답게 최근 아티스트들의 성지라는 베를린에 꼭 가보라고 합니다. 

"하나를 꼽아야 한다고?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 그렇지만 베를린이라고 말할게. 베를린에는 다양성이 있어. 국경을 넘나드는 다양성. 그리고 굉장히 현실적이고 강렬해. 멜번은 규제와 압력이 있다는 점에서 베를린을 따라가기 어려워. 지금의 베를린은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고 있거든. 
"무엇보다 이야기를 하기 위한 플랫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이 베를린을 움직이게 한다고 생각해.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실제로 이야기를 해. 좀 전에 네가 멜번 사람들도 이야기를 하기 좋아한다고 말했지? 그런데 그건 좀 다른 차원이야. 멜번 사람들의 대화는 조킹 컬처(joking culture)라고 할 수 있어. 
"베를린에는 프로페셔널리즘이 있어. 사람들은 진지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어해. 내 생각에는 유럽은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들이 서로 가까이에 붙어 있잖아. 그래서 오랫동안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대화를 했어야 하는 것 같아. 그 문화가 베를린에도 있는것 같아. 서로를 알리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려는 공간이 자연스럽고 도시 각지에 굉장히 많아. 베를린 또한 모호함을 가지고 있는 도시야. ^^"




Thank you, Dan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