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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6, 2012

[culture] 지는 도시의 뜨는 갤러리, 터너 컨템포러리(Turner Contemporary)

Margate, Turner Contemporary



다행입니다. 매일매일 캘린더에 그 날의 스케줄을 기록해 놓은 덕에 작년의 오늘에는 터너 컨템포러리(Turner Contemporary)에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야말로 발견입니다.

터너 컨템포러리. 뭔가 범상치 않음이 느껴지시나요? 예, 맞습니다. 영국의 국민화가이자 손꼽히는 풍경 화가인 윌리엄 터너의 이름을 딴 갤러리 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저도 처음에는 터너의 작품들을 모아놓은 갤러리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터너의 작품을 보려거든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으로 가시는 편이 낫습니다.

터너는 생전에 터너 컨템포러리가 위치한 마게이트라는 도시를 종종 방문했고, 이곳 해변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갤러리 이름을 짓고, 상징적으로 그의 작품을 한 작품(제가 방문했을 당시) 걸어 놓고 있었습니다.

작년 4월에 오픈했고, 계절마다 전시를 바꾸며, 영국의 갤러리답게 무료입장이 가능하고, 멤버십 혜택이 꽤 괜찮습니다.

단점이라면,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한 시간쯤 가야 도착하는 도시, 마게이트(Margate)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행기나 유로스타 등이 발달하기 전, 대륙과 통하는 대표 항구도시였던 마게이트는 이제, 뭐 하나 내 놓은것 없는 죽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물론, 터너 컨템포러리가 오픈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갤러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죽은 도시에 현대 갤러리를 오픈하며, 국민 화가의 이름을 빌려와 이름을 지은 것. 생김새도 분위기도 뭉뚱한 이 해변 도시에 유명 건축가와 함께 날카로운 외관의 건물을 짓고, 엣지있는 기획전을 벌이고 있는 것. 덕분에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었고, 런칭한지 1년도 안 되어 목표의 두배에 가까운 30만 명의 관객을 유치한 것.

게다가 작년에는 여왕을 방문하게 하고, 지금은 트레이시 에민의 기획전을 열고 있는 것.

도대체 누굴까요?

마게이트와 터너 컨템포러리에 관한 글은 밤새라도 쓸 수 있을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마을, 흥미로운 갤러리, 흥미로운 전시, 흥미로운 동행, 그래서 흥미로운 여행이었다는 주제로 장편 소설도 하나 쓸 수 있을 것 같고, 도시 브랜딩 사례연구 논문도 하나 쓸 수 있을 기세입니다. 그러나 아껴두고 싶네요.

런던에 계신 분이라면 브라이튼 해변이나 옥스포드만 다녀오지 마시고, 마게이트에도 한 번 들러보세요. 올드 타운에 새로운 가게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고 하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작년보다 더 놀거리가 많아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갤러리 구경을 하고 기차역에서 왔던 길을 따라 걷다보면 숨겨진 아름다운 해변에도 도착할 수 있습니다.

런던에 계신 분들이 새삼 부럽네요. 윔블던, 올림픽, 테이트 모던 데이만 허스트 전, 터너 컨템포러리 트레이시 에민 전, 사우스뱅크 위의 룸 포 런던... 즐기세요!

그나저나, 데미안 허스트 전은 예약해야만 갈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 본래 걷는 속도의 세 배쯤 되는 속도로 걷느라 제대로 된 사진이 많지 않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도시, 아름다운 갤러리 입니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고 들르세요. 홈페이지 바로가기













Jan 3, 2012

[culture] 베를린 신 국립미술관의 몇 가지 관람 포인트



사진은 베를린의 신 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erie)입니다.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인만큼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술 작품은 시대별로 구 국립미술관, 신 국립미술관, 함부르그 반호프 현대미술관에 나뉘어져 전시됩니다. 신 국립박물관은 구 서독지역의 문화 지구인 컬처 포럼을 대표하는 갤러리로, 20세기 초중반의 모던 아트 컬렉션으로 유명합니다. 피카소, 르누아르, 고흐의 유명작품들도 있지만 이것들을 기대하고 가면 실망할 것이니, 독일 표현주의 작품들을 기대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의 포츠다머 플라츠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키르히너를 비롯한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제가 생각하는 '독일스러운 이미지'와 무척 닮아 있어서 보고 또 보게 됩니다. 채도가 높은 컬러 톤에 대비도 강하고 이미지의 선들도 굵습니다. 동시에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는데, 직선의 날카로움이 아니라 곡선의 날카로움 입니다.


저만의 생각인지 다른 이들도 이런 이미지를 '독일스럽다'고 느끼는지 궁금해서 열심히 검색을 해 봤지만, 원래 궁금했던 답은 찾지 못하고 '독일인은 내륙이라 외부와 교류가 비교적 원만하지 않고, 일조량이 적은 날씨 탓에 실내에 머물며 사색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추가 정보만을 확인했습니다. 그에 대한 근거로는 독일 출신의 많은 철학자들을 들고 있습니다. 키르히너도 이런 말을 한 것을 보니 내면을 향하는 민족성이 추상적인 이미지를 많이 그려내게 했다고 봐도 될듯 합니다. 


'라틴 인들은 대상에서 형식을 만들어 내지만 게르만 계 인간은 내면의 환상에서 형식을 만들어 낸다. 눈에 보이는 자연의 형체는 게르만 계 인간에게는 상징에 불과하다. 따라서 라틴계 민족은 현상 속에서 미를 인정하고, 게르만계 민족은 사물의 배후에 있는 미를 추구한다.' 


Ernst Ludwig Kirchner: Potsdamer Platz, 1914 
George Grosz: Stützen der Gesellschaft, 1926   

신 국립미술관에서 표현주의 작품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신 국립미술관 하면 생각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미스 반 데어로에, 초상화의 방, 그리고 나치입니다. 

신 국립미술관의 건물은 바우하우스의 교장이기도 했던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가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유리로 된 빛의 사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라는데, 흐린 날 지나가서였는지 이제는 어딘가에서 많이 본 듯한 건물이어서 그랬는지 눈에 띄지 않아 사진도 하나 남기지 못했습니다. 실내 사진만 몇 개 가지고 있는데, 아래 사진에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의자도 보입니다. 직사각형의 낮은 건물을 보고는 '쉽게 만들었군' 이라는 농담을 던지고 들어간 것은 오로지 무지 탓이었습니다. 바우하우스의 교장이자 건축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그가 설계한 동선을 따라 작품들을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초상화이 방에 들어가 있게 됩니다.

초상화의 방. 이것이 정식 명칭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붙여준 이름입니다. 일층에는 주로 기획전이, 지하에는 상설전이 열리는데 하얀 벽의 지하 전시 실 중, 유일하게 빨간 벽의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곳에 들어가면 그 시대(20세기 초 중반)를 산 작가들이 그린 초상화가 모여져 있습니다. 가운데에 있는 의자에 앉아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 보고, 어떤 그림을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지를 살펴보다가 방을 나가면서 누구의 그림인지 확인하고 나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초상화를 위한 초상화 방은 아니고, 따로 걸기에 애매한 작품들을 모으다 보니 초상화가 꽤 되어서 모아놓은 느낌인데, 다행히도 보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공간입니다. 런던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가 생각났습니다. 신기하게도 사람의 얼굴 그림은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재미있습니다. 

신 국립미술관 실내의 미스 반 데어 로에 의자
초상화의 방



마지막으로, 키르히너나 그로츠, 딕스, 헤켈 등 표현주의 화가들의 그림 설명을 읽는데 유독 'Degenerate Art'라는 단어가 많이 보였습니다. 무얼까 궁금해서 돌아와서 찾아보니, 1937년에 히틀러에 의해 주도된 현대 미술 탄압과 관련된 단어였습니다. 나치는 '퇴폐예술전 (Degenerate Art Exhibition)'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의 30여개 도시에서 순회전을 했다고 합니다.


히틀러도 미대에 가고 싶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역시 역사적 선동가...'라고 감탄해 버렸습니다. 당시 독일 정부의 입장과 다른 그림들을 모아서 전시하며, '이것이 바로 퇴폐한 예술이다, 이들이 정부의 돈을 갉아 먹고 있다' 등의 선전 문구로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반감을 만들게 한 후, 그림을 모아 소각하거나 외국에 팔아서 예산을 벌었다고 합니다.


히틀러라는 희대의 캐릭터에 대해서 하나하나 알아갈 때마다 놀라는 것은, 나도 만약 당시에 독일 국민이었다면을 떠올렸을 때, 어쩌면 나 역시 게르만 만세를 외치며 옆집의 유대인을 벌레보듯 바라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퇴폐미술전 시작 전에 히틀러는 무려 한 시간 동안 연설을 했으며, 전시장 벽에는 그림을 나치당 입맛에 맞게 재 분류해서 '독일 여성에 대한 모욕' '미술관의 거물들은 이런 작품을 독일 민족의 예술이라 부르는가?' 등의 제목을 달아 놓았다고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예술가들을 바로 수용소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들을 모아 대중에게 보여주고 설득한 후 그 예술가들을 탄압한 인물. 미술 전시조차 자신의 목적에 맞게 설계해서 선동할 줄 알았던 이 인물. 새삼 또 한 번 놀랐습니다.









Sep 26, 2011

[inspiration] 종합예술인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의 인터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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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site: interviewproject.davidlynch.com)






오늘은 한량처럼 호스텔 라운지에서 종일 빈둥댔습니다. 여행 중에도 가끔 이렇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습니다. 다행히 코펜하겐의 호스텔들은 시설이 매우 훌륭하고, 스칸디나비안의 유명한 디자인 감각 때문인지 인테리어도 멋져서 하루종일 놀아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제가 묵고 있는 제너레이터 호스텔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유명한 단 호스텔에 대항하기 위해서인지 경쟁력을 갖기 위해 애쓴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단 호스텔의 최근 리뷰를 보면 불친절 하고, 침대 커버부터 시작해서 많은 부분 추가 요금이 있기 때문에 저렴한 것이 아니라는 불평들이 많은데, 다행히 이곳에서 그런 불만은 없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1층 라운지는 밤이 되면 마치 클럽같이 변합니다. 한 쪽은 쿵쿵쾅쾅 크게 음악을 틀어 놓고 맥주를 한 잔 하거나 춤도 추고 당구를 치거나 체스를 두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조용하게 수다를 떨거나 노트북을 가지고 내려와 각자의 시간을 갖습니다. 칼스버그도 20크로네면 마실 수 있고, 바에서 놀다보면 심심치 않게 다양한 덴마크 술들을 공짜로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쓰고 보니 술만 마시는 것 같지만, 오늘은 오후 내내 한쪽 구석에서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와 놀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심란한 영화를 만드는 예술 영화 감독으로 알려져 있죠. 사실 <세븐>을 만든,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인,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가 없었다면 이름이 비슷한 데이비드 린치는 덜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의 대표작이라는 <이레이저 헤드> <트윈 픽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도 두 편은 대학 수업 중에, 다른 한 편은 3편 동시 상영하는 심야영화관에서 보다가 잤던 기억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데이비드 린치에 관한 기사들을 연달아 보게 되면서 이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끔 '이 사람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을까?'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재미있는 사람을 만납니다. 최근에는 데이비드 린치가 그렇습니다.

런던에 있는 동안 사치 갤러리에서 발행하는 잡지를 주워와서 보는데, 데이비드 린치 특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를 크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그가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작곡도 하고, 비밀스럽게 가구 디자인도 하는 아티스트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 놀란 것은 David Lynch Coffee의 존재였습니다. 이름만 듣고 런던의 한 카페인가 해서 찾아보니, 그의 시그니처 블렌딩이었습니다. 데이비드 린치의 커피 사랑은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의 몇 영화에서도 커피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고 하는데,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영국에서는 그의 열혈 팬 중 한 명이 커피를 유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브뤼셀에서 유로스타에서 발행하는 잡지를 보다가 또 그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파리의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커뮤니티의 리더이기도 하답니다. 잡지를 스크랩 해 놨는데, 베를린을 떠나며 버렸는지 그 클럽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네요.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해서 또 다른 창작물을 만드는 커뮤니티였던 것 같습니다.

과연 이 종합예술인은 무슨 생각으로 이 많은 일들을 벌이는 걸까요? 조금 찾아 보니 몇년째 똑같은 옷을 그것도 목 바로 아래까지 단추를 채워 입고 매일 같은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할 정도의 괴짜라고 합니다. 그의 도무지 알 수 없는 행보는 팬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데이비드 린치의 미스테리한 세계, 부조리의 도시(www.thecityofabsurdity.com)'라는 이름의 웹사이트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둘러봤는데, 데이비드 린치가 인터뷰 중에 한 말인 "You build your own world", 이것이 바로 그가 하고 있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당신만의 세계를 짓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하고 있는 일 중에 가장 독특한 건 '데이비드 린치 재단'의 활동입니다. 일종의 명상 센터라고 해야 하나요. 데이비드 린치는 오랫동안 명상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가꿔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명상법을 학생들이나 교도소의 수감자들, 노숙자와같은 이들과 공유하는 재단입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의 활동 중 가장 재미있는 프로젝트는 지금부터입니다. 


제가 오후 내내 놀았던 곳도 바로 여기, 인터뷰 프로젝트(interviewproject.davidlynch.com)입니다. 처음에 사치 매거진에서 보고는 데이비드 린치 정도 되니 전 세계의 유명인사들을 연달아 인터뷰 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09년에 미국 대륙을 종횡무진하며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총 121명의 인터뷰가 올라와 있는데, 한 인물당 3~4분 정도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평균연령은 50세쯤 되는 것 같습니다. 도시가 아닌 시골 마을에는 젊은이들이 없어서인지 인터뷰에 응해주는 사람이 보통 마음 넓은 할머니 할아버지였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사진을 보고 가장 말끔해 보이는 사람의 인터뷰를 골라 봤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냥 순서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누가되든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 정도 본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의 투아레그 족의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노인이 죽는 것은 하나의 도서관이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 50여명의 적어도 50년은 산 어른들의 자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촬영 방식도, 편집 방식도, 음악 선곡도 영화감독 출신답게 세련되어서 신선한 에세이집 한 권을, 아니 반 권을 읽은 기분입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위기가 언제냐고? 그건 내가 지루해질때지." 이런 멋진 말들도 툭툭 흘러 나오고, 한 게이는 "만약 신을 믿는다면, 너는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거야."라고 말하며 웃기도 하고, 25년 째 자식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한 할아버지는 "그래서 뭐? 난 60살이고, 이렇게 멋진 은발이 가득하고, 키도 6피트나 되는데!"라며 너털 웃음을 짓기도 합니다. 가끔 "내 여자친구가 전 남자친구를 죽이러 가기 전날..."과 같은 단편소설의 주인공같은 이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희극보다 비극에 가까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자기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말합니다. 몇몇은 눈물 짓기도 하지만, 그 나이가 되면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가 봅니다. 덕분에 오후 내내 심심하지 않게 이곳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즐겁네요!

북마크 해 놓고 심심할 때 마다 하나씩 골라 보세요. 영어 공부도 되고,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를 눈으로라마 하는 것 같아 재밌습니다. 




Sep 24, 2011

[brand] 금요일을 기념하야, 금요일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 쇼핑 가이드





프라이탁의 로고
무료로 빌려주는 픽시 바이크와 프라이탁을 유명하게 만든 메신저 백



Heute ist Freitag!
Today is Friday!
오늘은 금요일 입니다!


매주 있는 이 흔하디 흔한 금요일을 기념하야, '금요일(독일어로 프라이탁, Freitag)' 브랜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프라이탁은 제가 로모만큼 좋아하는 브랜드입니다. 태생이 착하고, 디자인이 쿨하고, 하는 짓이 멋진 브랜드랄까요.


+프라이탁이 어떤 브랜드인지 더 궁금하다면, 또 다른 포스팅 '프라이탁을 소개합니다'를 참고하세요. 


그래서 여행하는 동안 자제하고 있던 쇼핑이란 걸 하고야 말았습니다. 한 달 동안 북유럽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하기에 무거운 건 종이 한 장이라도 버리고 있는 요즘, 무언가를 사서 짐을 늘이는 건 큰 부담이지만, 그래도 독일을 떠나면 (온라인이나 10꼬르소꼬모와 같은 비싼 편집 매장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다시는 프라이탁을 사지 못할 것 같아서, '선물'이라는 적절한 핑계를 찾아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새로운 라인인 프라이탁 레퍼런스(Freitag Reference)의 가방이나 노트북 파우치를 사고 싶었지만, 무게 최소화의 원칙에 따라 (사실은 낮은 가격 우선 원칙에 따라) 카드 지갑 세 개를 질렀습니다. 아이폰 케이스도 예쁘게 나왔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은 아이폰 4를 위한 케이스 밖에 없어서 만지작 거리기만 하다 포기했습니다. 곧 아이폰 5가 나온다고 하니까요.


원래는 베를린을 떠나기 하루 전 날 베를린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세 개의 디자인을 골라 놓았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사지 못해서 코펜하겐으로 오는 동안에 환승지였던 함부르크에서 대신했습니다. 운명이었는지 유럽에 7개 밖에 없는 매장이 함부르크에 있었습니다. 베를린 매장에서 본 제품과 꼭 같은 것은 없었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만약 프라이탁에서 무언가를 살 일이 있다면 주의하세요. 프라이탁에 완전히 똑같은 제품이란 없습니다. 모든 제품은 하나하나 잘라지고, 컬러 조합을 고려해서 손으로 직접 꿰매 만들어집니다. 컬러 조합이 비슷하더라도 원재료의 손상 정도나 후가공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느낌이 모두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골라 놓고 다음 번에 가서 사야지 혹은 다른 매장에서 사야지 하고 마음 먹으면, 골라 놓은 그 제품을 사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베를린 플래그십 스토어
창고이자 디스플레이 역할을 맡고 있는 한쪽 벽면





베를린에 머물면서 미테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프라이탁 매장에 들른 이유는, 이 브랜드가 고객과 만나는 접점에서는 어떨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프라이탁은 주로 온라인으로 판매 됩니다. 유럽에 6개, 뉴욕에 1개 있는 매장은 플래그십 스토어에 가깝습니다. 그들도 그렇게 부르고 있고요. 매장의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런칭 파티가 열리기도 하고 실험적인 프로모션의 현장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베를린에 도착해서 매장 위치를 북마크 해 놓고, 처음 매장을 방문한 날에는 기대가 상당했습니다. 첫 날에는 제품 구경, 인테리어 구경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지만 매니저가 저를 알아 볼 때 쯤이 되어서는 편안한 분위기 자체를 즐겼던것 같습니다. 혹시 베를린 매장 사람들만 그럴까 싶었는데, 함부르크 매장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신 제품의 광고컷을 보고 무심코 던진 질문 때문에 온 매장의 직원들이 소집되었습니다. 왜 광고 모델이 낙타인지, 낙타에 숨은 의미가 있는지, 아니면 그냥 귀여워서인지 물었는데 다른 직원들을 불러서 의미를 아느냐고 물어보며 일 분 정도 이상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매장을 나가면서 언제나 그렇듯, '난 프라이탁이 너무 좋다, 사랑하는 것 같다'라고 했더니 한 매니저는 '내가 너보다 더 사랑할껄'이라고 하기에, '내가 졌소'라며 두 손을 드는 포즈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백팩 라인을 기념하는 문제의 낙타 광고 컷 (사진: www.freitag.ch)

여러모로 멋진 브랜드입니다. 최근 놀란 것 중 하나는, 위에서 사고 싶다고 말한 프라이탁 레퍼런스 라인의 런칭 캠페인입니다. 베를린 매장에 신문같은 것들이 쌓여 있기에, 다른 매장들이 그러는 것처럼 인테리어 소품의 하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프라이탁 레퍼런스 런칭 당시에 한 달 동안 찍어낸 신문이었습니다. 매니저가 한 뭉치를 보라고 주기에 들고 와서 훑어 보고는 또 한 번 프라이탁에 반해 버렸습니다.


프라이탁 레퍼런스 소개까지 하면 저도 쓰다 지치고, 읽으시는 분들도 읽다 지치실 것 같아 따로 포스팅을 해야겠습니다.


+ 프라이탁 레퍼런스 런칭 캠페인 이야기


마지막으로 지갑을 사고 선물용이니 포장도 되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또 한 번 제 눈에서 하트를 뿜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선물용 포장은 없고 따로 담아서 밀봉해 주겠다고 하기에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공중에 달린 공업용 제봉틀 같은 기계로 드르륵 박아주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놀란 이유를 설명하자면 또 한참이 걸릴것 같지만,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브랜드 컨셉에, 그러니까 본질에,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한 브랜드임을 알 수 있는 일종의 퍼포먼스같았기 때문입니다.


함부르크 플래그십 스토어
화룡점정




프라이탁의 모든 활동은 '연결'을 상징합니다. 네 가지 각기 다른 원재료(폐비닐, 폐차의 안전벨트와 에어백, 그리고 폐 자전거 타이어의 안쪽 고무)를 바늘과 실로 연결해서 하나의 제품을 만들고, 이들의 시초는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누비는 메신저들을 위한 메신저백이었습니다.


프라이탁 형제는 탁월한 아티스트가 맞는 모양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구체화해서 표현하고 그것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작품(상품)을 팔아 돈도 벌구요. 결국 아티스트도 같은 일을 하는 것 아닐까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보부셰 디자인 워크샵의 프라이탁 형제 워크샵이 듣고 싶어 졌습니다. 과연 내년에도 이들이 참여할까요?











Sep 19, 2011

[culture] 도시 정체성을 넘어서 산업이 된 베를린의 그래피티 (Berlin and Graffiti)

로모그래피에서 나온 <베를린 시티 가이드>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지금의 베를린은 마치 70년대의 런던, 80년대의 뉴욕과 같다. 여기는 자유의 공기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이게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베를린에서 3주 정도 지내고 나서 이 문장을 읽고는 '바로 이것!'이라며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내리칠 뻔 했습니다. 지금의 베를린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문장을 발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가장 먼저 베를린의 그래피티를 떠올리지 않을까 합니다.

처음 이 도시에 와서 놀란 것은 '파리의 그래피티는 애교'라는 생각이 들만큼 스케일이나 수준이 스트릿 '아트'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위의 두 사진이 주로 (베를린에서 찍은) 파리 스타일의 그래피티입니다. 물론 런던에서도 브뤼셀에서도 더블린에서도 지하철 역이나 외진 골목에서 이런 타이포 위주의 그래피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파리 스타일이라고 한 건, 파리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었고 사람이 어떻게 올라갔지 싶을 만한 곳, 이를테면 5층 건물 높이의 외벽이나 고가 도로의 옆면이나 아랫면과 같은 곳에도 이런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북역 근처에서는 런던이나 더블린에 비하면 아티스틱한 그래피티들을 보고 깜짝 놀라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베를린은 일단 그 스타일이 다양합니다. 처음에는 벽을 캔버스 삼아 아티스트들이 그림 연습을 하나 싶은 순수한(?) 상상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용도도 다양합니다. 단순한 장식용부터, 안내판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개인 블로그를 홍보하기도 합니다. 유리창에 그려진 그래피티는 스테인드 글라스 같기도 합니다. 







아래 사진의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는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에 아티스트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해서 하나의 거대한 전시 벽이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베를린의 그래피티는 이제부터입니다.



숨은 카페와 재미있는 샵들이 많은 Kreuzburg의 Oranien Strasse 입구에서 발견한 베를린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그래피티입니다. 멀리서 봐도, 가까이에서 봐도 압도적입니다.


베를린 북쪽의 Prenzlauer 지역의 마우어 벼룩시장이 서는 동네의 그래피티 입니다. 나이키에서 아티스트를 고용해서 그린 그림인가 싶기도 하지만, 가장 윗 부분에는 Welcome to Berlin이라고 써 준 센스에 미소짓고 말았습니다.


Jannowitzbrucke 역과 Ostbahnhof 사이 슈프레 강 건너편에 자리잡은 재미있는 공간, Kater Holzig의 한 쪽 벽면입니다. 날씨 좋은 날 강 건너에서 봤을 때에는 귀여웠는데, 비오는 오늘날 바로 앞에서 보니 좀 공포스럽더군요.


Friedrichshain과 Kreuzburg 사이의 Schlesische Strasse에 있는 재미있는 이 그림은 금 시계 겸 수갑을 찬 남자가 넥타이를 매고 있고, 오른쪽의 두 사람은 서로의 마스크를 벗기려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 멋대로 이름 없는 아티스트가 무언의 메시지를 남긴 그래피티라고 생각하고는 매우 감격했었는데, 알고보니 유명한 그래피티 아티스트 Blu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하긴 저 정도의 그림을 그릴 정도면 몇일 밤낮은 그렸어야 할테니 뱅크시 식의 게릴라 그래피티는 불가능 했겠죠.


Schlesische Tor 역에서 나오면 보이는 재미있는 그래피티 입니다. 일본 스타일의 일러스트같기도 한데 자세히 한참 들여다 보고 있으면 무언가 독특한 스토리가 튀어 나올 것 같습니다.


Prenzlauer Burg에서 Mitte로 걸어가다 발견했습니다. 저 글자들은 무슨 의미일까요? 창문도 없는 이 폐 건물에 왜 이런 그림을 그려 놓았을까요?


이렇게 베를린의 벽들은 그래피티로 가득합니다. 그들 스스로도 이 거리 그림들이 장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다른 도시와 다르게 기념품 샵에 가면 베를린의 주요 관광지 엽서와 나란히 멋진 그래피티를 찍어 놓은 엽서들을 팔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베를린스럽다'고 느끼기 때문이겠죠.


스트릿 아트의 신화적 인물이라고 하면 될까요? 런던의 스트릿 아티스트 뱅크시(Banksy)도 미테 지역에 흔적을 남겼다고 하고, 어떤 이는 이런 베를린의 거리를 보고 'bombed city'라고 이름 붙여줬다고 합니다. 정말 거리를 걷다보면 스프레이 폭탄에 습격이라도 받은듯 합니다.

어제는 베를린에 사는 친구에게 그래피티는 불법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받는 가장 많은 질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질문이라며 준비된 듯한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물론 불법이지만 시에서 강력하게 제지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는 것이 대답이었습니다. 베를린 시도 알겠죠? 이제 그래피티는 베를린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Antigraffiti Task Force라는 것도 운영하고 있고요. 이거야 말로 전시 행정인가요?

궁금해져서 조금 더 찾아보니, 이제 베를린의 그래피티는 자유의 표현 혹은 정치적 슬로건 보다는 '산업'에 가깝다고 합니다. 만약 이 불법행위를 강력하게 제지하면 베를린 관광 산업뿐만 아니라 스프레이를 파는 로컬 샵들이 다 죽어 나갈 것이라는 재미있지만은 않은 글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로모그라피 베를린 시티 가이드의 첫 문장을 생각해 보면, 과거의 런던과 뉴욕같이 지금의 베를린도 언젠가는 다른 도시에게 그 역할을 내 줄 것입니다. 아티스트들이 모여 도시에 생기를 불어 넣고 그 생기를 찾는 사람들이 모여들면 돈도 따라 모여들테고, 그렇게 되면 가장 먼저 임대료가 비싸지고 생활 물가도 올라가겠죠.

요즘은 건물주들이 건물의 홍보를 위해서나 건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그래피티 아티스트에게 돈을 주고 벽을 맡기기도 한답니다. 몇몇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손을 걷어 붙이고 그림을 팔고 있기도 하고요. 이렇게 비단 그래피티의 상업화만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도시가 커나가는 속도를 보면,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이 베를린으로 모여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싼 물가' 때문이라고 하는데 왠지 이럴 날도 오래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베를리너들도 알고 있는지, 미테의 유명한 타헬레스(kunsthaus tacheles)의 한 쪽 벽면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습니다. 불안함인지 체념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그들 그리고 베를린이 얼마나 갈 것인가에 대한 자문이 아닐까합니다.







Aug 7, 2011

[travel] 루브르 박물관, 그까이꺼 (Le musée du Louvre)







드넓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앞. 
모두 이렇게 "모나리자 봤다"하고서는 오르셰 미술관으로 갑니다. 
저 역시.






a tiny slice of Paris









Jul 31, 2011

[culture] 더블린 휴 레인 갤러리(Hugh Lane Gallery)의 숨은 히어로, 마크와 프란시스 베이컨






"안녕, 마크?" 이 친구(?)의 이름은 마크입니다. '푸딩 카메라'로 찍은 덕에 뽀얗게 나왔지만, 게다가 배경이 본의 아니게 명품 매장 앞이지만, 미안하게도 이 친구를 처음 봤을 때 저는 그가 노숙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더블린의 휴 레인 갤러리(Hugh Lane Gallery) 로비였는데, 그는 하얀 비닐봉지에 알수 없는 소지품들을 채워 넣고 "여기 누구 가이드 투어 들을 사람들 있어?"라고 물었습니다. 가이드 투어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뭐... 기다리고 있긴 해"라고 말하면서도, 설마 그가 가이드 투어를 이끌 가이드일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희뿌연 안경은 사고 나서 한 번도 닦지 않은 것 같았고, 머리에 있는 핏자국은 그의 손톱에도 같은 색의 무언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열심히 긁어서 생긴 상처로 추정됐고, 아주 오랫동안 씻지 않은게 분명해서 생긴 악취에 가까운 체취 때문에 그가 이동할 때마다 투어의 무리는 홍해처럼 갈라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습니다. 그의 가이드는 정말이지 fantastic 했습니다. 그림 하나를 설명해도, 이 작품이 휴 레인 갤러리에 걸리게 된 경로와 아일랜드 미술사에서 갖는 의미, 영향을 준 다른 작가의 그림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해서 루트를 짠 세심함까지 보였다면 놀랄만 하지 않나요? 


투어가 끝나고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지는 한 할머니는 그에게 "네 이야기는 내가 들어본 그 어떤 가이드보다 훌륭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감격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으셨는지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제게 다가오셔서는 그의 말을 다 알아들었냐며 정말 훌륭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할머니에게 완전히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남다른 건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이, 아쉽게도 마크는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반전이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더블린의 가장 번화가라는 Grafton street을 걷다가 그를 우연히 만났고 우리는 서로를 알아봤습니다. 그가 같은 차림에 같은 봉지를 들고 있지 않았더라도 저는 그를 알아봤을 테고, 그는 열심히 자기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제가 인상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알고보니 그는 "박사 학위는 없어"라고 말하는 겸손한 미술사 학도였습니다. 대학에서 미술사로 석사까지 마치고 더블린 주요 갤러리에서 가이드 투어를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자원봉사냐고 물어보니 그렇지는 않은데 페이가 짜다며 잠깐 인상을 찌뿌렸습니다. 그리고는 금세 얼굴을 바꾸어 제게 더블린의 멋진 갤러리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중 임마(IMMA, Irish Museum of Modern Art)는 휴 레인 갤러리와 더불어 더블린에서 가장 멋진 갤러리로 기억됩니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한 컷 찍은 후에 찍은 사진을 보여주려 했더니, 손사래를 치며 안 봐도 된다고 하고 다시 어딘가로 사라졌습니다. 원래 묻고 싶었던 연락처를 물어보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그래서 휴 레인 갤러리에 그의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 하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답이 없습니다.


누군가 아일랜드에 갈 일이 있다면, 휴 레인 갤러리에서 있는 일요일 2시 가이드 투어를 권합니다. 아무리 행색이 누추하고 고약한 체취를 풍기는 남자가 나타나더라도 마음을 활짝 열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옛말이 떠오르고, 인간적인 매력이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휴 레인 갤러리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네요. 


여러 나라의 갤러리를 다니다 보면 국가나 시 정부에서 운영하는 갤러리가 아님에도 상당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갤러리들이 있습니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이나 사치 갤러리가 그렇고, 아직 못 가봤지만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도 엄청나다고 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각각 헨리 테이트(Henry Tate),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의 이름을 딴 갤러리들이고 이들은 모두 세기의 아트 컬렉터로 꼽히는 사람들입니다. 


헨리 테이트는 설탕 회사로 막대한 돈을 벌어서, 찰스 사치는 광고 회사의 성공으로, 페기 구겐하임은 유산으로 얻은 재산으로 그림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그림을 모으고 모아 테이트는 그것을 나라에 기증하며 영국에 4개의 테이트 갤러리를 세웠고, 사치는 그림을 모으며 신진 작가를 양성하고 있고, 구겐하임은 아티스트들과 연애도 하고 후원도 했습니다. 


휴 레인 역시 아트 컬렉터이자 딜러로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가장 왕성하게 그림을 사고, 팔고, 모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휴 레인이 태어나기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지만 활동은 영국을 중심으로 했고, 그의 유언장에는 유산을 영국에 남긴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일랜드와 영국 간에 그의 엄청난 유산(피카소, 마네, 드가, 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의 상당한 작품들)을 두고 갈등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최근에 많은 부분 아일랜드로 넘어왔고, 그 작품들이 바로 여기 휴 레인 갤러리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가 살아 생전 상당한 작품을 이미 영국에 기증했기에 테이트의 갤러리들과 같은 대규모는 아닙니다. 굉장히 아담한 규모지만 알차다고 할까요.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은 적어도 한 두 점씩은 모두 있고, 아일랜드 현대 미술의 대표 작가들의 그림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에게는 '일그러진 얼굴을 그리는 화가'로 기억되는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작업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베이컨이 영국 출신인 줄 알았는데 더블린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부모님도 영국인이었고 영국에서 주로 활동을 했지만, 출생지가 더블린이다보니 더블린 사람들의 베이컨 사랑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어느 갤러리를 가도 그의 작품 엽서는 꼭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걸 두고 세렌디피티라고 하나요? 얼마 전 '프란시스 베이컨은 살아 생전 그의 작업실을 단 한 번도 청소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듣고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라며 그를 두고 수다를 떤 적이 있는데, 정말 그의 작업실을 여기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원래 런던 사우스 켄징턴에 있던 스튜디오가 그의 상속자의 기증으로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유명한 동성애자였던 그에게는 유산을 물려줄 가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유산은 친구(연인이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인 존 에드워즈(Jone Edwards)에게 남겨졌는데, 그는 베이컨의 스튜디오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더블린이라고 했다는군요. 스튜디오는 상상대로 무척 더러웠습니다. 아래 사진은 깨끗하게 나온 편입니다.





베이컨의 스튜디오 방에는 그가 왜 이런 환경에서 작업을 했는지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어록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디지털 갤러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런 카오스가 자신에게 영감을 준다고 말합니다. 

“I feel at home here in this chaos because chaos suggests images to me.” - Bacon


더블린에서 기대한 건 중학교 때 좋아하던 밴드 크랜베리스와 기네스 맥주, 그리고 런던보다 더하다는 변덕스러운 날씨 정도였습니다. 사실 커다란 기대 없이 어려서부터 막연히 가 보고 싶은 도시였기 때문에 왔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블린에서 주로 하고 있는 건, 숨은 갤러리들을 돌아보는 일이 됐습니다. 


영국의 소도시 중 최근 개발의 바람이 분 도시에 온듯한 인상을 주는 더블린은 특색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서인지 발견의 묘를 느끼게 하는 도시입니다. 오늘은 마크와 베이컨을 발견한 덕분에 더블린의 추적추적 음산한 날씨가 용서됩니다. 






Apr 22, 2011

[culture] 논쟁적 사진작가, 빌 헨슨 (the Bill Henson Controversy)


15 April, Tolarno Gallery in Melbourne


생각보다 세련되고, 생각보다 친절하고, 생각보다 자부심 강한 멜버니언들. 늘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사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멜번에서 알게 된 친구, Danica에게 멜번의 문화를 느낄 수 있을 만한 곳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아티스트답게 멜번 시티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갤러리들과 아티스트들의 작업공간으로 날 초대했는데, 그 중 한 갤러리에서 알게 된 빌 헨슨(Bill Henson)이라는 사진 작가의 스토리가 흥미롭다.

사진 이론을 전공하고 있는 이 친구가 데려간 갤러리 중에서 유일하게 위 갤러리에서, 내가 지금 돈이 있다면 이 사진을 사고 싶다,며 시간을 끌었던 기억이 난다. '아름답다'고 느낀 사진 작품들을 보기도 오랫만이었다. 요즘은 '예쁜, 재미있는, 아무렇지 않은척 하는' 사진이 대세니까.

Danica가 말한대로 마치 카라바지오(Caravaggio)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Bill Henson, Paris Opera Project, 1991

행운이 계속 따른 날이었는지 Danica와 갤러리 매니저가 아는 사이였던 덕분에 사진 하나하나마다 열정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열정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도 그런 마음이어서, 너무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아름답다고 빌 헨슨이 누구냐고 유명한 사람이냐며 물어댔다. 신나서 멜번 출신이고, 뉴욕 파리 런던 등에서도 전시회를 했던 작가라고 설명해주는 매니저와 달리, Danica는 갤러리를 나오면서 사실 이 작가는 굉장히 논란이 많은(controversial) 작가라고 덧붙였다.

간단히 설명을 듣고 돌아와서 찾아보니, 얼마 전 그의 작품을 두고 법적 공방까지 갔었고, 말 아끼기로 유명한 호주의 전 수상, 케빈 러드가 '굉장히 혐오스럽다'고 표현했을만큼이었다고 한다.

논란의 중심에는 '예술 vs 포르노'가 있었고, 더 문제가 되는 건 그것이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사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실제로 한 학교에 찾아가 12세 여자 아이와 13세 남자 아이를 '고른?' 뒤, 부모의 허락을 받고 부모가 동석한 가운데 누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지금 구글 이미지에 Bill Henson을 검색해 보시라.)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작가가 파리의 작가였다면, 이런 논란에 중심에 설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만한 유명세를 탈 수 있었을까? 아마도 Danica는 이런 멜번과 호주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Thank you, Danica!

멜번에 있으며 이 도시는 penalty의 도시로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물론 학교에서 선진의식이라는 것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우는 것 같지만, 과연 penalty가 없다면 이 젠틀하고 질서정연한 겉모습이 유지될까?

친구의 학교에 '도강'을 갔다가 놀란 것이,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의 디테일한 법규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날은 음주법 관련 수업이었는데, '라이센스 없는 곳에서 술 팔면 얼마, 바텐더가 취한 것 같아 보이는 손님한테 경고 없이 술 팔면 얼마, 지정된 지역 외에서 술 먹으면 얼마....'를 듣고 있자니, 엄청난 벌금도 벌금이지만 법 만드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중에 이곳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 분 역시, 이곳의 사회복지 법규가 얼마나 디테일하게 거의 모든 부분을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 입이 닳도록 설명하더라.

빌 헨슨이름 앞에 늘 'controversial'이라는 단어가 붙는 이유는, 바로 이 '큰 정부'가 유지되기 위한 '규제의 구멍'에서 예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2008년 전시회 오프닝 날, 그의 사진들이 경찰에 의해 압수되고 그는 법정에 섰지만, 결국 풀려난 근거는 '예술이냐 아니냐는 법정에서 다룰만한 소재가 아니다'였다.

이런 아티스트를 규제할 만한 디테일한 규정은 커녕,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에 대처할 만한 정부의 입장도 정리가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당황한 큰 정부는 일단 그를 잡아넣고 보았던 것이다. 덕분에 빌 헨슨은 더 유명해지고 말이다.

'예술 vs 포르노'는 아주아주 오래된 논란일테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논란일텐데, 이것으로 뜨거웠다는 호주의 2008년에는, 사실 빌 헨슨보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그리고 미디어들이 더 달떠있었던 것 아닐까.

멜번이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부끄러원 하는 작가, 빌 헨슨. 이런 멜번, 이런 호주.






a tiny slice of Melbou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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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9, 2011

[culture] 멜번의 옛 닉네임, 멜보링에 대한 수다 (Melbourne is not boring!)




축제가 끝나고 난 오후, 알마데일 하이스트릿
현대적인 건물과 역사적인 건물이 뒤섞인 멜번의 시티
만남의 장소이자, 시위의 장소이자, 피크닉의 장소이자, 책도 보고 인터넷도 할 수 있는 멜번 스테이트 라이브러리
끊임없이 무언가가 열리고 닫히는 페러레이션 스퀘어


시드니에 사는 친구가 멜번의 별명을 알려줬습니다. '멜보링(Melbouring)'이랍니다. Melbourne is boring! 멜번은 따분(boring)하다며 얼른 시드니로 오라고 야단입니다. 처음 들을 때에는 웃어 넘겼는데, 생각해보니 재미있어서 멜버니언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재회해서 친구가 된 다니카(Danica)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고 반 나절을 함께 멜번의 구석구석을 다녔습니다. 인터뷰라기 보다는 수다에 가까웠지만, '멜보링'이란 별명에 대한 의문도 풀리고 멜번의 히든 플레이스도 알게 되었습니다. 

"시드니에 있는 친구가 멜번의 별명이 '멜보링'이래. 정말 그래?"

"하하하, 나도 처음 들어봤는데?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것 같아. 멜번이랑 시드니는 'vs'를 달고 다니잖아. 어느 도시나 그렇겠지만 우리는 자기가 사는 도시를 사랑해. 모든 도시는 흥미롭고, 나에게는 멜번은 전혀 지루하지 않아."

호주에서 멜번과 시드니의 경쟁구도의 역사는 깊습니다. 1901년에 정식으로 나라가 세워지고 나서, 1927년에 수도가 캔버라로 정해지기 전까지 호주의 수도는 멜번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드니를 호주의 수도라고 생각할 만큼 시드니가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는 하지만 멜번 사람들은 원래 멜번이 호주의 수도였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캔버라가 수도로 지정된 이유 중 하나도 두 도시의 경쟁 구도를 고려해서 시드니와 멜번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을 우선 순위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반구 최초의 올림픽도 멜번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시드니 올림픽이 있기 반 세기나 전에 말입니다.

"나도 멜번에 오기 전에는 멜번이 어떤 도시일지 상상이 안 됐어. 그런데 한 달 넘게 지내보니 전혀 지루하지 않아서 친구가 그 말을 했을 때 그냥 웃어 넘겼어. 멜번은 생각보다 굉장히 핫한 도시 같아. 론리 플래닛에서 왜 Lane Culture를 즐기라고 했는지도 알겠어. 멜번에서는 골목의 끝까지 들어가 봐야 거기에 뭐가 있는 지 알 수 있어. 간판도 없고, 조명도 없지만 혹시 하고 들어가 보면 멋진 카페나 바들이 숨어 있더라구."

"맞아, 그런데 이렇게 변한 건 얼마 되지 않았어. 20년 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어. 그때는 지루했을지도 몰라. 그런데 60년대부터 개발의 붐이 불면서 70-80년대에는 동쪽으로 도시가 점점 더 넓어졌고, 근교로 갔던 사람들이 아이들의 교육같은 문제로 다시 중심부로 모이면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건 뭐야?"

"글쎄, 나도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워. 지금 멜번은 모호(ambiguity)해. 이 단어 '모호함, 애매함'은 내가 좋아하는 말이기도 해. 내 작품들의 중심 생각이기도 하고 말야. 모호하다는 건 계속 자라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 지금의 멜번이 그런 것 같아."

"브로드쉿(Broadsheet)알아? 그 웹사이트에서 니가 하는 말과 비슷한 문장을 읽은 것 같아. 잠깐만 웹사이트에 들어가보자. 바로 이거야. 편집장 겸 발행인이 자신들을 소개하는 페이지에 쓴 글이야."

From where we’re standing Melbourne is going through an extraordinary boom at the moment. I think most would agree, it's virtually unrecognisable from the city we remember as kids. There seems to be an energy about the city right now; things are really happening.

"어때?"

"음...보자... 맞아, 나도 완전히 동의해. 내 말도 이 말이었어."

"그럼 그 다음 문장은 어때? 마지막의 컴플렉스란 뭐지? 너희들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인가?"

Don’t worry, we wont bang on about how Melbourne is hailed for its restaurant scene, laneways and boutique shopping; that’s well beyond the point of cliché and, frankly, reeks of an inferiority complex.

"나도 단언하기는 어려워. 그렇지만 호주가 역사적 기반이 영국이나 독일, 네덜란드에 비해서 약한건 사실이야."

"좋아, 그럼 내가 멜번에 궁금한 것 더 물어볼게. 지금은 멜번에서 가장 핫한 서버브(suburb)는 어디라고 생각해?"

"그건 니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 다를꺼야. 만약 비주얼 아트에 관심이 많다면, 우리가 처음 만난 피츠로이 쪽이지 않을까?"

"피츠로이 갤러리 투어는 정말 멋있었어. 너 아니었다면 브런즈윅 스트릿(Brunswick st.)의 뒷골목 이층에 갤러리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을거야. 멜번에는 그런 숨은 갤러리가 많아? 시드니보다 많을까?"

항상 시드니와 비교하는 제 질문을 불편해 했는지 모르겠지만, 다니카는 언제나 객관적으로 이건 자기 의견이고 정확한 수치는 확인해 보지 않았다며 겸손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시드니의 아트 시장이 더 크겠지만 멜번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를 멜번 시티에 있는 숨은 갤러리들로 데려가 주었습니다. 덕분에 빌 헨슨(Bill Henson)이라는 사진 작가도 알게 되었고, 그 복잡한 스완스톤 스트릿(Swanston st.)에 신생 아티스트들에게 스튜디오 겸 전시 공간을 빌려주는 빌딩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시티 라이브러리 옆 건물이었는데 일층에는 편집 매장들이 있고, 오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건물 밖과는 전혀 다른 아티스트들의 세상이 펼쳐집니다. 

이제 막 떠오르는 작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아트 스쿨을 졸업한 학생들이 자신의 포트폴리오와 일종의 제안서를 내고 통과가 되면 공간을 저렴한 가격에 빌려주고 전시도 후원해 준다고 하네요. 우리 나라에도 이런 플랫폼 역할을 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있겠죠?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번은 아티스트가 활동하기 어렵다고 한참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일단 물가가 비싸니까요.





몇 군데의 갤러리들을 돌아 본 후에 시티 라이브러리의 작은 세미나 룸에 들어가 조용히 수다를 떨 수 있었습니다. 

"멜번은 마치 스위스의 바젤 같아. 바젤도 굉장히 작은 도시인데 골목마다 개인 갤러리든 공공 갤러리든 없는 블럭이 없을 정도야. 덕분에 바젤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것 같았어. 실제로 바젤 시립 미술관(Kunstmuseum Basel)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개인 컬렉션을 시에 기증하면서 만들어 졌대. 그 중에는 피카소의 작품같은 유명 그림들도 상당했다나봐. 원래 그 동네 사람들은 예술을 사랑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디자이너 친구는 유럽 여행을 할 때 꼭 바젤에 가 보라고 권하기도 하던데, 바젤 가 봤어?"

"응, 아트 바젤 페어도 유명하잖아. 바젤 좋아. 그런데 멜번은 바젤만큼은 아니야. 멜번도 2년에 한 번씩, 불행히도 올해는 아니지만, 아트 페어가 열려. 하지만 규모 면에서 바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아. 말했지만 호주는 역사가 길지 않거든. 덕분에 호주의 예술문화는 젊다고 할 수 있어."

"꼭 비주얼 아트를 말하지 않더라도 멜번은 문화적인 도시같아. 페스티벌 일정이 달력에 빼곡하고, 주 정부에서도 관리를 잘 하는 것 같던데, 아니야?"

"음... 주 정부의 예산은 스포츠에 가장 많이 쓰이지 않을까? ^^ 비주얼 아트 부분에는 포션이 매우 작고, 페스티벌이나, 뮤지컬, 오케스트라 같은 다른 문화 활동에는 적지 않을거야."

"그렇구나. 아무튼 언제든 즐길 거리가 있는 멜번 사람들이 부러웠어. 어느 주말에든 나가 놀 거리가 있던데? 게다가 커피도 맛있고, 맥주도, 와인도 맛있잖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문화들이 많아 보여."

"그걸 두고 핫 하다고 할 수 있을 거야. 뜨겁지.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소비 중심적인 문화라고 생각해. 쉽게 소비할 수 있는 먹고 마시고 놀 거리가 많이 생겼지. 그런 면에 있어서 멜번의 아트 씬은 좀 달라. 숨겨져있고 뭔가 혼합되어 있어."

"역시, 모호한건가?"

"맞아. ^^ 멜번의 아트 씬은 한 번도 주류가 된 적은 없어. 그렇지만 안에서 더 커지고 있어. 애매하지만 말야. 우리는 행운아야. 우리에게는 많은 자유가 있거든."

"와, 어쩜... 내가 묻고 싶었던 걸 어떻게 알고 대답한거니? 서점에 갔다가 <The Lucky Country>라는 책을 봤어. 이 책을 쓴 도널드 혼(Donald Horne)이 마지막 챕터에 이 말을 쓰고 제목으로 붙이고 나서 이 단어가 호주의 별명처럼 됐다고 하더라구. 정말 너희들은 스스로 행운이 가득하다고 생각해?"

"응,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가진 자원이나 자연환경을 봐. 그렇지만 그건 미디어 센세이셔널리즘(media sensationalism)의 하나이기도 해. 일종의 프로파간다지. 그런데 지금 우리가 정말 럭키할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 비싼 의료보험 시스템을 봐, 엄청나게 비싼 렌트비는 또 어떻구."

멜번대에서 순수 예술을 전공한 이 친구와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6시가 돼서 도서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우리는 오프닝 행사가 있는 다른 갤러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쉽게도 뭔가 착오가 있어서 오프닝을 보지는 못했지만, 뭔가 멜번에 대한 많은 의문이 풀려서 신이 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를 골라달라고 했습니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1살 부터 28살까지 유럽, 아메리카 대륙, 아시아, 그리고 알라스카까지 안 가본 곳이 없었습니다. 현지에서 돈을 벌며 여행을 하고 다시 호주에 왔다가 다시 여행을 떠나기를 반복한 후에 29살이 되어서야 공부가 하고 싶어서 대학에 왔다고 합니다. 

지금은 여러 단체의 후원을 받으며, 여러번의 전시회를 연 신생 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그녀가 보여준 작품 중에 저는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뭔가 감정 이입이 되었다고 하는게 맞을까요? 숍의 한 구석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한 여자가 자신의 발에 맞지 않지만 맘에 드는 구두를 억지로 신는 모습을 연속 촬영한 이미지 입니다. 


다니카는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주는데, 이렇게 사진이 되기도 하고 설치 미술이 되기도 하고 조각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늘 고민하고 그것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고민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이런 그녀가 꼽은 최고의 도시는 바로 '베를린'이었습니다. 역시 아티스트답게 최근 아티스트들의 성지라는 베를린에 꼭 가보라고 합니다. 

"하나를 꼽아야 한다고?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 그렇지만 베를린이라고 말할게. 베를린에는 다양성이 있어. 국경을 넘나드는 다양성. 그리고 굉장히 현실적이고 강렬해. 멜번은 규제와 압력이 있다는 점에서 베를린을 따라가기 어려워. 지금의 베를린은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고 있거든. 
"무엇보다 이야기를 하기 위한 플랫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이 베를린을 움직이게 한다고 생각해.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실제로 이야기를 해. 좀 전에 네가 멜번 사람들도 이야기를 하기 좋아한다고 말했지? 그런데 그건 좀 다른 차원이야. 멜번 사람들의 대화는 조킹 컬처(joking culture)라고 할 수 있어. 
"베를린에는 프로페셔널리즘이 있어. 사람들은 진지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어해. 내 생각에는 유럽은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들이 서로 가까이에 붙어 있잖아. 그래서 오랫동안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대화를 했어야 하는 것 같아. 그 문화가 베를린에도 있는것 같아. 서로를 알리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려는 공간이 자연스럽고 도시 각지에 굉장히 많아. 베를린 또한 모호함을 가지고 있는 도시야. ^^"




Thank you, Dan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