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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6, 2012

[culture] 지는 도시의 뜨는 갤러리, 터너 컨템포러리(Turner Contemporary)

Margate, Turner Contemporary



다행입니다. 매일매일 캘린더에 그 날의 스케줄을 기록해 놓은 덕에 작년의 오늘에는 터너 컨템포러리(Turner Contemporary)에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야말로 발견입니다.

터너 컨템포러리. 뭔가 범상치 않음이 느껴지시나요? 예, 맞습니다. 영국의 국민화가이자 손꼽히는 풍경 화가인 윌리엄 터너의 이름을 딴 갤러리 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저도 처음에는 터너의 작품들을 모아놓은 갤러리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터너의 작품을 보려거든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으로 가시는 편이 낫습니다.

터너는 생전에 터너 컨템포러리가 위치한 마게이트라는 도시를 종종 방문했고, 이곳 해변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갤러리 이름을 짓고, 상징적으로 그의 작품을 한 작품(제가 방문했을 당시) 걸어 놓고 있었습니다.

작년 4월에 오픈했고, 계절마다 전시를 바꾸며, 영국의 갤러리답게 무료입장이 가능하고, 멤버십 혜택이 꽤 괜찮습니다.

단점이라면,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한 시간쯤 가야 도착하는 도시, 마게이트(Margate)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행기나 유로스타 등이 발달하기 전, 대륙과 통하는 대표 항구도시였던 마게이트는 이제, 뭐 하나 내 놓은것 없는 죽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물론, 터너 컨템포러리가 오픈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갤러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죽은 도시에 현대 갤러리를 오픈하며, 국민 화가의 이름을 빌려와 이름을 지은 것. 생김새도 분위기도 뭉뚱한 이 해변 도시에 유명 건축가와 함께 날카로운 외관의 건물을 짓고, 엣지있는 기획전을 벌이고 있는 것. 덕분에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었고, 런칭한지 1년도 안 되어 목표의 두배에 가까운 30만 명의 관객을 유치한 것.

게다가 작년에는 여왕을 방문하게 하고, 지금은 트레이시 에민의 기획전을 열고 있는 것.

도대체 누굴까요?

마게이트와 터너 컨템포러리에 관한 글은 밤새라도 쓸 수 있을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마을, 흥미로운 갤러리, 흥미로운 전시, 흥미로운 동행, 그래서 흥미로운 여행이었다는 주제로 장편 소설도 하나 쓸 수 있을 것 같고, 도시 브랜딩 사례연구 논문도 하나 쓸 수 있을 기세입니다. 그러나 아껴두고 싶네요.

런던에 계신 분이라면 브라이튼 해변이나 옥스포드만 다녀오지 마시고, 마게이트에도 한 번 들러보세요. 올드 타운에 새로운 가게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고 하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작년보다 더 놀거리가 많아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갤러리 구경을 하고 기차역에서 왔던 길을 따라 걷다보면 숨겨진 아름다운 해변에도 도착할 수 있습니다.

런던에 계신 분들이 새삼 부럽네요. 윔블던, 올림픽, 테이트 모던 데이만 허스트 전, 터너 컨템포러리 트레이시 에민 전, 사우스뱅크 위의 룸 포 런던... 즐기세요!

그나저나, 데미안 허스트 전은 예약해야만 갈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 본래 걷는 속도의 세 배쯤 되는 속도로 걷느라 제대로 된 사진이 많지 않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도시, 아름다운 갤러리 입니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고 들르세요. 홈페이지 바로가기













Jan 3, 2012

[inspiration] Hard to find. Easy to love., 스톡홀름 마가신3 갤러리에서 만난 안드레아 지텔



'찾기는 어려워도 사랑에 빠지긴 쉬울거야'라고 조근조근 말해주는 작은 갤러리. 스웨덴 스톡홀름의 마가신3(Magasin3)의 첫 느낌입니다. 가이드 북에는 잘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로컬들에게 몇 번 추천을 받고 나서 스톡홀름 최북단으로 올라갔습니다. 사실 스톡홀름은 작은 도시라 최북단이라 해도 서울의 노원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홍대에서 종로 정도의 거리라고 보면 될까요.

특히 위 갤러리 소개 책자의 표지 이미지가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마가신 갤러리가 저렇게 생겼다는 것인지, 주위 풍광인지, 도대체 뭘까하는 호기심을 가득 안은 채로 도착 했습니다. 기대가 컸는지 갤러리는 컨테이너 박스들이 여기 저기 놓인 부두 근처 커다란 건물 안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위 사진의 이미지는 당시 열리고 있던 전시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전시가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잊혀지지 않는 인상적인 전시 중 하나입니다. 설치 미술은 한 번 스쳐지나가기 마련인데, 안드레아 지텔(Andrea Zittel)이라는 미국 작가의 'Lay of My Land'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 작은 웨건이 품고 있는 것들이 많아서, 하나의 인스톨레이션이 아니라 스토리로 기억되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이 전시를 통해서 안드레아 지텔에 대해서 처음 알았지만, 그녀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티스트입니다. 좋아하는 일로 돈도 벌고, 자기만족도 하며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줍니다. 또한 히틀러와 같은 대중 선동가는 아니지만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하나의 movement를 만듭니다.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방식의 하나로 놓아 둡니다. '아티스트는 선동가요, 예술작품은 프로파간다다'라는 말을 고요하게 실천합니다. 제게 과격한 급진주의는 맞지 않는지 오히려 이런 담담하고 귀여운 선동가들에게 단단히 마음을 빼앗기곤 합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웨건들은 안드레아 지텔이 하나의 리빙 시스템으로 만든 집이자 작업실 입니다. 컨셉에 맞는 최소한의 생필품을 전시해 두고 있고, 실제로 지텔은 이 웨건을 사막에 놓아두고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전시실에 중계되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우리의 삶의 방식에 관심이 많은 아티스트로 보입니다.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그리고 사막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실험적 대안들을 연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뒷조사를 시작해야겠습니다.

마가신3 갤러리가 마음에 드는 점이 또 있습니다. 재미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1년 회원권이 매우 저렴하고, 작지만 알찬 도서관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다른 갤러리보다 한 발 앞서 있습니다. 'Lay of My Land' 전만 하더라도 저 웨건을 스톡홀름 근처에 전시해 두고 실제로 아티스트들이 살아보게 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모양입니다. 스웨덴어로 된 블로그이지만 이 블로그에는 사막의 작업실 웨건에서 생활하는 아티스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남긴 모양입니다. 단지 전시 홍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역 아티스트들을 지원하고 그럼으로 인해서 스톡홀름의 미술계가 다양해지고 활기넘치게 하는 이들의 기획에 절로 흥이나고, 동시에 부럽습니다. 






[culture] 베를린 신 국립미술관의 몇 가지 관람 포인트



사진은 베를린의 신 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erie)입니다.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인만큼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술 작품은 시대별로 구 국립미술관, 신 국립미술관, 함부르그 반호프 현대미술관에 나뉘어져 전시됩니다. 신 국립박물관은 구 서독지역의 문화 지구인 컬처 포럼을 대표하는 갤러리로, 20세기 초중반의 모던 아트 컬렉션으로 유명합니다. 피카소, 르누아르, 고흐의 유명작품들도 있지만 이것들을 기대하고 가면 실망할 것이니, 독일 표현주의 작품들을 기대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의 포츠다머 플라츠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키르히너를 비롯한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제가 생각하는 '독일스러운 이미지'와 무척 닮아 있어서 보고 또 보게 됩니다. 채도가 높은 컬러 톤에 대비도 강하고 이미지의 선들도 굵습니다. 동시에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는데, 직선의 날카로움이 아니라 곡선의 날카로움 입니다.


저만의 생각인지 다른 이들도 이런 이미지를 '독일스럽다'고 느끼는지 궁금해서 열심히 검색을 해 봤지만, 원래 궁금했던 답은 찾지 못하고 '독일인은 내륙이라 외부와 교류가 비교적 원만하지 않고, 일조량이 적은 날씨 탓에 실내에 머물며 사색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추가 정보만을 확인했습니다. 그에 대한 근거로는 독일 출신의 많은 철학자들을 들고 있습니다. 키르히너도 이런 말을 한 것을 보니 내면을 향하는 민족성이 추상적인 이미지를 많이 그려내게 했다고 봐도 될듯 합니다. 


'라틴 인들은 대상에서 형식을 만들어 내지만 게르만 계 인간은 내면의 환상에서 형식을 만들어 낸다. 눈에 보이는 자연의 형체는 게르만 계 인간에게는 상징에 불과하다. 따라서 라틴계 민족은 현상 속에서 미를 인정하고, 게르만계 민족은 사물의 배후에 있는 미를 추구한다.' 


Ernst Ludwig Kirchner: Potsdamer Platz, 1914 
George Grosz: Stützen der Gesellschaft, 1926   

신 국립미술관에서 표현주의 작품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신 국립미술관 하면 생각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미스 반 데어로에, 초상화의 방, 그리고 나치입니다. 

신 국립미술관의 건물은 바우하우스의 교장이기도 했던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가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유리로 된 빛의 사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라는데, 흐린 날 지나가서였는지 이제는 어딘가에서 많이 본 듯한 건물이어서 그랬는지 눈에 띄지 않아 사진도 하나 남기지 못했습니다. 실내 사진만 몇 개 가지고 있는데, 아래 사진에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의자도 보입니다. 직사각형의 낮은 건물을 보고는 '쉽게 만들었군' 이라는 농담을 던지고 들어간 것은 오로지 무지 탓이었습니다. 바우하우스의 교장이자 건축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그가 설계한 동선을 따라 작품들을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초상화이 방에 들어가 있게 됩니다.

초상화의 방. 이것이 정식 명칭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붙여준 이름입니다. 일층에는 주로 기획전이, 지하에는 상설전이 열리는데 하얀 벽의 지하 전시 실 중, 유일하게 빨간 벽의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곳에 들어가면 그 시대(20세기 초 중반)를 산 작가들이 그린 초상화가 모여져 있습니다. 가운데에 있는 의자에 앉아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 보고, 어떤 그림을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지를 살펴보다가 방을 나가면서 누구의 그림인지 확인하고 나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초상화를 위한 초상화 방은 아니고, 따로 걸기에 애매한 작품들을 모으다 보니 초상화가 꽤 되어서 모아놓은 느낌인데, 다행히도 보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공간입니다. 런던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가 생각났습니다. 신기하게도 사람의 얼굴 그림은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재미있습니다. 

신 국립미술관 실내의 미스 반 데어 로에 의자
초상화의 방



마지막으로, 키르히너나 그로츠, 딕스, 헤켈 등 표현주의 화가들의 그림 설명을 읽는데 유독 'Degenerate Art'라는 단어가 많이 보였습니다. 무얼까 궁금해서 돌아와서 찾아보니, 1937년에 히틀러에 의해 주도된 현대 미술 탄압과 관련된 단어였습니다. 나치는 '퇴폐예술전 (Degenerate Art Exhibition)'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의 30여개 도시에서 순회전을 했다고 합니다.


히틀러도 미대에 가고 싶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역시 역사적 선동가...'라고 감탄해 버렸습니다. 당시 독일 정부의 입장과 다른 그림들을 모아서 전시하며, '이것이 바로 퇴폐한 예술이다, 이들이 정부의 돈을 갉아 먹고 있다' 등의 선전 문구로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반감을 만들게 한 후, 그림을 모아 소각하거나 외국에 팔아서 예산을 벌었다고 합니다.


히틀러라는 희대의 캐릭터에 대해서 하나하나 알아갈 때마다 놀라는 것은, 나도 만약 당시에 독일 국민이었다면을 떠올렸을 때, 어쩌면 나 역시 게르만 만세를 외치며 옆집의 유대인을 벌레보듯 바라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퇴폐미술전 시작 전에 히틀러는 무려 한 시간 동안 연설을 했으며, 전시장 벽에는 그림을 나치당 입맛에 맞게 재 분류해서 '독일 여성에 대한 모욕' '미술관의 거물들은 이런 작품을 독일 민족의 예술이라 부르는가?' 등의 제목을 달아 놓았다고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예술가들을 바로 수용소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들을 모아 대중에게 보여주고 설득한 후 그 예술가들을 탄압한 인물. 미술 전시조차 자신의 목적에 맞게 설계해서 선동할 줄 알았던 이 인물. 새삼 또 한 번 놀랐습니다.









Jan 2, 2012

[inspiration] 러시아 미술, 이동파(Peredvizhniki)의 용기를 바라보기

Nationalmuseum, Stockholm, Sweden

여행자는 이렇게 분류할 수도 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오를 의지가 있는 여행자와 그렇지 않은 여행자. 20대까지만 해도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마무리하는 러시아 여행을 꿈꿨습니다. 소녀 감성으로 일주일쯤 머리를 못 감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죠. 네, 물론 지금은 아닙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기차 여행의 로맨스와 러시아라는 미지에 대한 환상, 그리고 오지에서나 느낄 법한 극체험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만족시킵니다. 제 경우에는 그 중 '러시아'에 대한 환상이 가장 컸습니다. 하얀 눈 위의 차가운 러시아 정교식 건축이 쿠바 거리의 뜨거운 원색 풍광보다 이국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에서는 영어권의 대도시가 목표였기에 러시아는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환상은 가득하고, 러시아 여행에 대한 가능성을 낮았기 때문에 스톡홀름 국립박물관에서 러시아 근대 미술전을 우연히 관람하고는 그것에 매료된 것은 당연했습니다. 러시아 미술의 '러' 자도 몰랐던 덕분에 그들이 담아낸 러시아 풍광에, 독특한 색채에, 묘하게 낯선 분위기에 넋을 놓고 두어 시간은 구경 또 구경했습니다. 

이 전시가 러시아 미술을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뭐라고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Peredvizhniki(이동파)'의 대표작들을 모아 놓은 전시(The Peredvizhniki – Pioneers of Russian Painting)였습니다. 러시아와 가까운 북유럽이었는데도 전시의 취지가 '러시아 국립미술관과의 특별한 만남으로 그 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러시아의 걸작들을 소개한다'는 것을 보니 활자로만 보아왔던 '냉전의 시대'가 실감이 납니다.

이동파는 러시아 왕립 미술학교 쯤에 해당하는 아카데미에 대항하여 만든 예술인 단체입니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가 초까지 활동한 이들은 최초로 '리얼 러시아'를 작품화했다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인상파 화가들이 주목을 받고 있을 때, 러시아에서는 궁전을 나온 화가들이 서민들의 삶을 화폭에 닮아 도시를 돌며 전시를 합니다. 

The Volga Boatmen, 1870-73, Ilya Repin

이들의 스타일을 분류하자면 단순히 리얼리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 생계를 위해 짐을 끄는 노동자들을 그렸으니까요. 그렇지만 단지 리얼리즘의 계파 중 하나로 보기에는, 소비에트 공산혁명 정부에 의해 해체되기 전까지 그림을 왕국 밖으로 가지고 나와 시골 마을을 돌며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공유할 수 있게 하고자 했던 이들의 노력에 대한 예의가 아닌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온실을 뿌리치고 나와 선동가가 된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럴 용기가 없는 우리는 그것을 바라보며 인정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스톡홀름에 계신 분들은 국립박물관에 들러보세요. 1월 22일까지는 보기 힘든 이 러시아 걸작들을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살인적인 물가의 도시라 가난한 여행객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박물관 지하의 카페테리아 뷔폐식 점심도 괜찮습니다. 비싼 값을 한달까요. 


러시아 Peredvizhniki들의 작품 감상과 함께 큐레이터의 의도를 듣고 싶으신 분은 클릭해 보세요. 스웨덴어지만 영어 자막이 함께 있습니다. 이동파에 대한 설명은 이 블로그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Jul 31, 2011

[culture] 더블린 휴 레인 갤러리(Hugh Lane Gallery)의 숨은 히어로, 마크와 프란시스 베이컨






"안녕, 마크?" 이 친구(?)의 이름은 마크입니다. '푸딩 카메라'로 찍은 덕에 뽀얗게 나왔지만, 게다가 배경이 본의 아니게 명품 매장 앞이지만, 미안하게도 이 친구를 처음 봤을 때 저는 그가 노숙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더블린의 휴 레인 갤러리(Hugh Lane Gallery) 로비였는데, 그는 하얀 비닐봉지에 알수 없는 소지품들을 채워 넣고 "여기 누구 가이드 투어 들을 사람들 있어?"라고 물었습니다. 가이드 투어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뭐... 기다리고 있긴 해"라고 말하면서도, 설마 그가 가이드 투어를 이끌 가이드일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희뿌연 안경은 사고 나서 한 번도 닦지 않은 것 같았고, 머리에 있는 핏자국은 그의 손톱에도 같은 색의 무언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열심히 긁어서 생긴 상처로 추정됐고, 아주 오랫동안 씻지 않은게 분명해서 생긴 악취에 가까운 체취 때문에 그가 이동할 때마다 투어의 무리는 홍해처럼 갈라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습니다. 그의 가이드는 정말이지 fantastic 했습니다. 그림 하나를 설명해도, 이 작품이 휴 레인 갤러리에 걸리게 된 경로와 아일랜드 미술사에서 갖는 의미, 영향을 준 다른 작가의 그림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해서 루트를 짠 세심함까지 보였다면 놀랄만 하지 않나요? 


투어가 끝나고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지는 한 할머니는 그에게 "네 이야기는 내가 들어본 그 어떤 가이드보다 훌륭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감격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으셨는지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제게 다가오셔서는 그의 말을 다 알아들었냐며 정말 훌륭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할머니에게 완전히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남다른 건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이, 아쉽게도 마크는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반전이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더블린의 가장 번화가라는 Grafton street을 걷다가 그를 우연히 만났고 우리는 서로를 알아봤습니다. 그가 같은 차림에 같은 봉지를 들고 있지 않았더라도 저는 그를 알아봤을 테고, 그는 열심히 자기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제가 인상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알고보니 그는 "박사 학위는 없어"라고 말하는 겸손한 미술사 학도였습니다. 대학에서 미술사로 석사까지 마치고 더블린 주요 갤러리에서 가이드 투어를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자원봉사냐고 물어보니 그렇지는 않은데 페이가 짜다며 잠깐 인상을 찌뿌렸습니다. 그리고는 금세 얼굴을 바꾸어 제게 더블린의 멋진 갤러리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중 임마(IMMA, Irish Museum of Modern Art)는 휴 레인 갤러리와 더불어 더블린에서 가장 멋진 갤러리로 기억됩니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한 컷 찍은 후에 찍은 사진을 보여주려 했더니, 손사래를 치며 안 봐도 된다고 하고 다시 어딘가로 사라졌습니다. 원래 묻고 싶었던 연락처를 물어보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그래서 휴 레인 갤러리에 그의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 하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답이 없습니다.


누군가 아일랜드에 갈 일이 있다면, 휴 레인 갤러리에서 있는 일요일 2시 가이드 투어를 권합니다. 아무리 행색이 누추하고 고약한 체취를 풍기는 남자가 나타나더라도 마음을 활짝 열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옛말이 떠오르고, 인간적인 매력이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휴 레인 갤러리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네요. 


여러 나라의 갤러리를 다니다 보면 국가나 시 정부에서 운영하는 갤러리가 아님에도 상당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갤러리들이 있습니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이나 사치 갤러리가 그렇고, 아직 못 가봤지만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도 엄청나다고 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각각 헨리 테이트(Henry Tate),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의 이름을 딴 갤러리들이고 이들은 모두 세기의 아트 컬렉터로 꼽히는 사람들입니다. 


헨리 테이트는 설탕 회사로 막대한 돈을 벌어서, 찰스 사치는 광고 회사의 성공으로, 페기 구겐하임은 유산으로 얻은 재산으로 그림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그림을 모으고 모아 테이트는 그것을 나라에 기증하며 영국에 4개의 테이트 갤러리를 세웠고, 사치는 그림을 모으며 신진 작가를 양성하고 있고, 구겐하임은 아티스트들과 연애도 하고 후원도 했습니다. 


휴 레인 역시 아트 컬렉터이자 딜러로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가장 왕성하게 그림을 사고, 팔고, 모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휴 레인이 태어나기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지만 활동은 영국을 중심으로 했고, 그의 유언장에는 유산을 영국에 남긴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일랜드와 영국 간에 그의 엄청난 유산(피카소, 마네, 드가, 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의 상당한 작품들)을 두고 갈등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최근에 많은 부분 아일랜드로 넘어왔고, 그 작품들이 바로 여기 휴 레인 갤러리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가 살아 생전 상당한 작품을 이미 영국에 기증했기에 테이트의 갤러리들과 같은 대규모는 아닙니다. 굉장히 아담한 규모지만 알차다고 할까요.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은 적어도 한 두 점씩은 모두 있고, 아일랜드 현대 미술의 대표 작가들의 그림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에게는 '일그러진 얼굴을 그리는 화가'로 기억되는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작업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베이컨이 영국 출신인 줄 알았는데 더블린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부모님도 영국인이었고 영국에서 주로 활동을 했지만, 출생지가 더블린이다보니 더블린 사람들의 베이컨 사랑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어느 갤러리를 가도 그의 작품 엽서는 꼭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걸 두고 세렌디피티라고 하나요? 얼마 전 '프란시스 베이컨은 살아 생전 그의 작업실을 단 한 번도 청소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듣고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라며 그를 두고 수다를 떤 적이 있는데, 정말 그의 작업실을 여기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원래 런던 사우스 켄징턴에 있던 스튜디오가 그의 상속자의 기증으로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유명한 동성애자였던 그에게는 유산을 물려줄 가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유산은 친구(연인이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인 존 에드워즈(Jone Edwards)에게 남겨졌는데, 그는 베이컨의 스튜디오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더블린이라고 했다는군요. 스튜디오는 상상대로 무척 더러웠습니다. 아래 사진은 깨끗하게 나온 편입니다.





베이컨의 스튜디오 방에는 그가 왜 이런 환경에서 작업을 했는지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어록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디지털 갤러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런 카오스가 자신에게 영감을 준다고 말합니다. 

“I feel at home here in this chaos because chaos suggests images to me.” - Bacon


더블린에서 기대한 건 중학교 때 좋아하던 밴드 크랜베리스와 기네스 맥주, 그리고 런던보다 더하다는 변덕스러운 날씨 정도였습니다. 사실 커다란 기대 없이 어려서부터 막연히 가 보고 싶은 도시였기 때문에 왔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블린에서 주로 하고 있는 건, 숨은 갤러리들을 돌아보는 일이 됐습니다. 


영국의 소도시 중 최근 개발의 바람이 분 도시에 온듯한 인상을 주는 더블린은 특색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서인지 발견의 묘를 느끼게 하는 도시입니다. 오늘은 마크와 베이컨을 발견한 덕분에 더블린의 추적추적 음산한 날씨가 용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