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artist.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artist. Show all posts

Jun 26, 2012

[culture] 지는 도시의 뜨는 갤러리, 터너 컨템포러리(Turner Contemporary)

Margate, Turner Contemporary



다행입니다. 매일매일 캘린더에 그 날의 스케줄을 기록해 놓은 덕에 작년의 오늘에는 터너 컨템포러리(Turner Contemporary)에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야말로 발견입니다.

터너 컨템포러리. 뭔가 범상치 않음이 느껴지시나요? 예, 맞습니다. 영국의 국민화가이자 손꼽히는 풍경 화가인 윌리엄 터너의 이름을 딴 갤러리 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저도 처음에는 터너의 작품들을 모아놓은 갤러리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터너의 작품을 보려거든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으로 가시는 편이 낫습니다.

터너는 생전에 터너 컨템포러리가 위치한 마게이트라는 도시를 종종 방문했고, 이곳 해변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갤러리 이름을 짓고, 상징적으로 그의 작품을 한 작품(제가 방문했을 당시) 걸어 놓고 있었습니다.

작년 4월에 오픈했고, 계절마다 전시를 바꾸며, 영국의 갤러리답게 무료입장이 가능하고, 멤버십 혜택이 꽤 괜찮습니다.

단점이라면,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한 시간쯤 가야 도착하는 도시, 마게이트(Margate)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행기나 유로스타 등이 발달하기 전, 대륙과 통하는 대표 항구도시였던 마게이트는 이제, 뭐 하나 내 놓은것 없는 죽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물론, 터너 컨템포러리가 오픈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갤러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죽은 도시에 현대 갤러리를 오픈하며, 국민 화가의 이름을 빌려와 이름을 지은 것. 생김새도 분위기도 뭉뚱한 이 해변 도시에 유명 건축가와 함께 날카로운 외관의 건물을 짓고, 엣지있는 기획전을 벌이고 있는 것. 덕분에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었고, 런칭한지 1년도 안 되어 목표의 두배에 가까운 30만 명의 관객을 유치한 것.

게다가 작년에는 여왕을 방문하게 하고, 지금은 트레이시 에민의 기획전을 열고 있는 것.

도대체 누굴까요?

마게이트와 터너 컨템포러리에 관한 글은 밤새라도 쓸 수 있을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마을, 흥미로운 갤러리, 흥미로운 전시, 흥미로운 동행, 그래서 흥미로운 여행이었다는 주제로 장편 소설도 하나 쓸 수 있을 것 같고, 도시 브랜딩 사례연구 논문도 하나 쓸 수 있을 기세입니다. 그러나 아껴두고 싶네요.

런던에 계신 분이라면 브라이튼 해변이나 옥스포드만 다녀오지 마시고, 마게이트에도 한 번 들러보세요. 올드 타운에 새로운 가게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고 하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작년보다 더 놀거리가 많아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갤러리 구경을 하고 기차역에서 왔던 길을 따라 걷다보면 숨겨진 아름다운 해변에도 도착할 수 있습니다.

런던에 계신 분들이 새삼 부럽네요. 윔블던, 올림픽, 테이트 모던 데이만 허스트 전, 터너 컨템포러리 트레이시 에민 전, 사우스뱅크 위의 룸 포 런던... 즐기세요!

그나저나, 데미안 허스트 전은 예약해야만 갈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 본래 걷는 속도의 세 배쯤 되는 속도로 걷느라 제대로 된 사진이 많지 않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도시, 아름다운 갤러리 입니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고 들르세요. 홈페이지 바로가기













Jan 4, 2012

[culture] 독후감. 알랭 드 보통.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열린 토마스 스트루스 전의 광고. 그 안의 그의 작품. 뮤지엄 연장 중 하나. 로마 판테옹을 채운 관광객.

1. 토마스 스트루스의 사진과 알랭 드 보통의 글

언젠가부터 갤러리에 가면 걸려있는 사진이나 그림, 때론 설치 작품을 보면서 그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이 작가는 도대체 왜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 자체를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사실 아름다움이란 보는 이에 따라 다르고 당시의 시대정신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작품을 보면 그 앞에 한참을 머물게 되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느껴질 때만큼은 아닙니다.

지난 여름, 런던 화이트채플(Whitechaple) 갤러리에 들렀을 때 독일의 사진작가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토마스 스트루스를 처음 알게 됐지만, 그의 대표작들, 특히 뮤지엄 시리즈를 보며 작가와의 작은 공감대가 만들어졌다고 느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의도에 공감했기에 작품이 알려지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 않나 합니다.

+그의 작품은 구글 이미지에서도 많이 검색 되지만, 여기 사이트에서 봐도 좋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알랭 드 보통의 신작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읽다가 다시 토마스 스트루스의 사진을 만났습니다. 이 책은 무신론자에게 종교가 어떤 (긍정적) 의미가 있는지, 또한 무신론자에게 종교를 대체할 수 있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 중 '미술'이 종교를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챕터에서 토마스 스트루스의 뮤지엄 연작(로마 판테온이나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유명 작품 앞에서 우르르 몰려가 작품의 제작 연도나 화가의 이름을 확인하는 듯한 관광객을 찍은)을 예로 듭니다. 알랭 드 보통은 '지금의 뮤지엄/갤러리들이 과연 교회/성당/절을 대신할 수 있을까?'에 회의적인 입장을 토마스 스트루스의 사진을 통해 보여줍니다. 그 역시 그와 작은 공감대를 형성했던 모양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보는 사람들을 보고 느낀 감정도 이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과연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 두어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고는 '모나리자 봤으니 됐어'라며 한 시간도 채 둘러보지 않고 나가는 (저를 포함한) 관광객들에게 박물관은, 또 그 유명 작품들은 무슨 의미가 있는것일까요. 


이런 스치고 지나가는 삶의 의문들, 느끼기는 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알랭 드 보통은 명확하게 활자로 풀어내곤 합니다. 느낌을 논리적 활자화하는 능력, 이것이 알랭 드 보통의 힘입니다. 그가 국내에서는 소설가로 소개되지만 외국에서는 writer보다 philosopher로 소개되는 이유기도 할 것입니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울림이 있었던 또 하나의 주장은 '문화가 종교를 대신할 수 있다'입니다. 신을 믿는 절친한 친구들의 집요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의 늦잠을 포기할 수 없다'는 핑계로 교회나 절에 가지 않는 제가 일요일 아침에 갤러리나 영화관, 도서관에 놀러가는 일에는 본능을 거스르면서도 기어이 나가는 기현상을 설명해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인생의 키워드 중 하나로 '문화'를 꼽는 배경으로도 적당한 주장입니다. 

책에서 말한대로 '우리는 심지어 미술관에서도 가끔 교회에 있을 때처럼 지루함을 느끼지만, 그곳을 나설 때만은 -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이' 듭니다. 


2. 맞설 이데올로기도 없는 지금을 사는 아티스트들에게

다시 그림 이야기로 돌아가면, 토마스 스투르스의 사진을 보고 난 후 이 책을 읽으며 어딘가서 읽었던 이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아티스트의 본질은 선동가다'. 예술을 위한 예술의 시대, 즉 순수 예술을 선언한 시대 이전에 아티스트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는 선동가였습니다. 선동은 마치 파시스트의 어휘같아서 한 발 물러서게 되는 경향이 있지만, 바로 이것이 제가 예술 작품을 보며 찾고자 하는 '이 작가는 말하고 싶은 바가 무엇일까'에 관한 것입니다.

다니엘 벨은 이미 1960년대에 이데올로기의 종언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겪어보지도 못한 제게 새삼 이제서야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것 같습니다. 현대미술을 보고 해석이 무의미하다라고 하는데, 무조건 비난하기 어려운 이유는 어쩌면 현대미술은 대항마로 세울만한 이데올로기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장 미로는 스페인의 민주화라는, 독일 표현주의자들은 파시즘이라는, 러시아의 이동파는 권위적인 왕궁이라는 적이 있었기에 그들의 작업에 사회적인 의미가 덧입혀졌습니다. (물론 그 전에는 종교라는 엄청난 이데올로기가 있었지요.) 원래 공공의 적이 있을 때 공공들은 똘똘 뭉치고 쉽게 공감하기 마련이니 어쩌면 이데올로기에 시큰둥한 현대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현대의 아티스트들을 불리한 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아티스트들이 선동가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프로파간다, 이데올로기, 이런 단어들은 듣기만 해도 벌써 무겁습니다. 대신 요즘 movement라는 말이 적당히 가볍고,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는 것 같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운동이라고 하면 될텐데, 우리 사회에서의 운동은 또 다시 이데올로기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 같으니, 그냥 무브먼트라고 하렵니다.

트레이시 에민처럼 작품에 분명한 자기 생각을 담는 아티스트도 좋고, 칼 라커펠트처럼 내추럴본크리에이터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제 취향은 얼마전 소개한 안드레아 지텔(Andrea Zittel) 쪽입니다. 아름다운 작품으로 귀여운 무브먼트를 만드는 아티스트는 좋아하는 것에서 나아가 지지하게 됩니다. 



얼마 전 소개한 이스트 런던의 크라이시스 스카이 라이트 카페는 1967년에 캔 로치(Ken Loach) 감독의 영화 Cathy Come Home을 보고 충격을 받고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을 담고 있는 예술 작품은 다른 이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은 사람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행동을 취합니다. 켄 로치의 영화를 본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재미없는 영화를 만드느냐고 하지만, 이것이 아티스트 켄 로치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이라고 불리겠죠. 


+ 찾기는 어려워도 금세 사랑에 빠져버리는 갤러리, 스톡홀름 마가신3에서 만난 안드레아 지텔
+ 이스트 런던의 사회적기업 카페, 크라이시스 스카이라이트 카페(crisis skylight cafe) 


알랭 드 보통의 신작을 읽고 독후감이나 써야지 하고 시작한 포스팅인데 결론은 '아티스트들 만세'로 끝나버렸습니다. 열심히 갤러리든 도서관이든을 찾으며 이 시대에 의미있는 작품을 남기는 아티스트들에게 감사합을 표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Jan 3, 2012

[inspiration] Hard to find. Easy to love., 스톡홀름 마가신3 갤러리에서 만난 안드레아 지텔



'찾기는 어려워도 사랑에 빠지긴 쉬울거야'라고 조근조근 말해주는 작은 갤러리. 스웨덴 스톡홀름의 마가신3(Magasin3)의 첫 느낌입니다. 가이드 북에는 잘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로컬들에게 몇 번 추천을 받고 나서 스톡홀름 최북단으로 올라갔습니다. 사실 스톡홀름은 작은 도시라 최북단이라 해도 서울의 노원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홍대에서 종로 정도의 거리라고 보면 될까요.

특히 위 갤러리 소개 책자의 표지 이미지가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마가신 갤러리가 저렇게 생겼다는 것인지, 주위 풍광인지, 도대체 뭘까하는 호기심을 가득 안은 채로 도착 했습니다. 기대가 컸는지 갤러리는 컨테이너 박스들이 여기 저기 놓인 부두 근처 커다란 건물 안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위 사진의 이미지는 당시 열리고 있던 전시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전시가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잊혀지지 않는 인상적인 전시 중 하나입니다. 설치 미술은 한 번 스쳐지나가기 마련인데, 안드레아 지텔(Andrea Zittel)이라는 미국 작가의 'Lay of My Land'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 작은 웨건이 품고 있는 것들이 많아서, 하나의 인스톨레이션이 아니라 스토리로 기억되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이 전시를 통해서 안드레아 지텔에 대해서 처음 알았지만, 그녀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티스트입니다. 좋아하는 일로 돈도 벌고, 자기만족도 하며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줍니다. 또한 히틀러와 같은 대중 선동가는 아니지만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하나의 movement를 만듭니다.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방식의 하나로 놓아 둡니다. '아티스트는 선동가요, 예술작품은 프로파간다다'라는 말을 고요하게 실천합니다. 제게 과격한 급진주의는 맞지 않는지 오히려 이런 담담하고 귀여운 선동가들에게 단단히 마음을 빼앗기곤 합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웨건들은 안드레아 지텔이 하나의 리빙 시스템으로 만든 집이자 작업실 입니다. 컨셉에 맞는 최소한의 생필품을 전시해 두고 있고, 실제로 지텔은 이 웨건을 사막에 놓아두고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전시실에 중계되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우리의 삶의 방식에 관심이 많은 아티스트로 보입니다.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그리고 사막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실험적 대안들을 연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뒷조사를 시작해야겠습니다.

마가신3 갤러리가 마음에 드는 점이 또 있습니다. 재미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1년 회원권이 매우 저렴하고, 작지만 알찬 도서관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다른 갤러리보다 한 발 앞서 있습니다. 'Lay of My Land' 전만 하더라도 저 웨건을 스톡홀름 근처에 전시해 두고 실제로 아티스트들이 살아보게 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모양입니다. 스웨덴어로 된 블로그이지만 이 블로그에는 사막의 작업실 웨건에서 생활하는 아티스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남긴 모양입니다. 단지 전시 홍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역 아티스트들을 지원하고 그럼으로 인해서 스톡홀름의 미술계가 다양해지고 활기넘치게 하는 이들의 기획에 절로 흥이나고, 동시에 부럽습니다. 






[culture] 베를린 신 국립미술관의 몇 가지 관람 포인트



사진은 베를린의 신 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erie)입니다.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인만큼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술 작품은 시대별로 구 국립미술관, 신 국립미술관, 함부르그 반호프 현대미술관에 나뉘어져 전시됩니다. 신 국립박물관은 구 서독지역의 문화 지구인 컬처 포럼을 대표하는 갤러리로, 20세기 초중반의 모던 아트 컬렉션으로 유명합니다. 피카소, 르누아르, 고흐의 유명작품들도 있지만 이것들을 기대하고 가면 실망할 것이니, 독일 표현주의 작품들을 기대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의 포츠다머 플라츠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키르히너를 비롯한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제가 생각하는 '독일스러운 이미지'와 무척 닮아 있어서 보고 또 보게 됩니다. 채도가 높은 컬러 톤에 대비도 강하고 이미지의 선들도 굵습니다. 동시에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는데, 직선의 날카로움이 아니라 곡선의 날카로움 입니다.


저만의 생각인지 다른 이들도 이런 이미지를 '독일스럽다'고 느끼는지 궁금해서 열심히 검색을 해 봤지만, 원래 궁금했던 답은 찾지 못하고 '독일인은 내륙이라 외부와 교류가 비교적 원만하지 않고, 일조량이 적은 날씨 탓에 실내에 머물며 사색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추가 정보만을 확인했습니다. 그에 대한 근거로는 독일 출신의 많은 철학자들을 들고 있습니다. 키르히너도 이런 말을 한 것을 보니 내면을 향하는 민족성이 추상적인 이미지를 많이 그려내게 했다고 봐도 될듯 합니다. 


'라틴 인들은 대상에서 형식을 만들어 내지만 게르만 계 인간은 내면의 환상에서 형식을 만들어 낸다. 눈에 보이는 자연의 형체는 게르만 계 인간에게는 상징에 불과하다. 따라서 라틴계 민족은 현상 속에서 미를 인정하고, 게르만계 민족은 사물의 배후에 있는 미를 추구한다.' 


Ernst Ludwig Kirchner: Potsdamer Platz, 1914 
George Grosz: Stützen der Gesellschaft, 1926   

신 국립미술관에서 표현주의 작품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신 국립미술관 하면 생각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미스 반 데어로에, 초상화의 방, 그리고 나치입니다. 

신 국립미술관의 건물은 바우하우스의 교장이기도 했던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가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유리로 된 빛의 사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라는데, 흐린 날 지나가서였는지 이제는 어딘가에서 많이 본 듯한 건물이어서 그랬는지 눈에 띄지 않아 사진도 하나 남기지 못했습니다. 실내 사진만 몇 개 가지고 있는데, 아래 사진에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의자도 보입니다. 직사각형의 낮은 건물을 보고는 '쉽게 만들었군' 이라는 농담을 던지고 들어간 것은 오로지 무지 탓이었습니다. 바우하우스의 교장이자 건축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그가 설계한 동선을 따라 작품들을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초상화이 방에 들어가 있게 됩니다.

초상화의 방. 이것이 정식 명칭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붙여준 이름입니다. 일층에는 주로 기획전이, 지하에는 상설전이 열리는데 하얀 벽의 지하 전시 실 중, 유일하게 빨간 벽의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곳에 들어가면 그 시대(20세기 초 중반)를 산 작가들이 그린 초상화가 모여져 있습니다. 가운데에 있는 의자에 앉아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 보고, 어떤 그림을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지를 살펴보다가 방을 나가면서 누구의 그림인지 확인하고 나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초상화를 위한 초상화 방은 아니고, 따로 걸기에 애매한 작품들을 모으다 보니 초상화가 꽤 되어서 모아놓은 느낌인데, 다행히도 보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공간입니다. 런던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가 생각났습니다. 신기하게도 사람의 얼굴 그림은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재미있습니다. 

신 국립미술관 실내의 미스 반 데어 로에 의자
초상화의 방



마지막으로, 키르히너나 그로츠, 딕스, 헤켈 등 표현주의 화가들의 그림 설명을 읽는데 유독 'Degenerate Art'라는 단어가 많이 보였습니다. 무얼까 궁금해서 돌아와서 찾아보니, 1937년에 히틀러에 의해 주도된 현대 미술 탄압과 관련된 단어였습니다. 나치는 '퇴폐예술전 (Degenerate Art Exhibition)'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의 30여개 도시에서 순회전을 했다고 합니다.


히틀러도 미대에 가고 싶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역시 역사적 선동가...'라고 감탄해 버렸습니다. 당시 독일 정부의 입장과 다른 그림들을 모아서 전시하며, '이것이 바로 퇴폐한 예술이다, 이들이 정부의 돈을 갉아 먹고 있다' 등의 선전 문구로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반감을 만들게 한 후, 그림을 모아 소각하거나 외국에 팔아서 예산을 벌었다고 합니다.


히틀러라는 희대의 캐릭터에 대해서 하나하나 알아갈 때마다 놀라는 것은, 나도 만약 당시에 독일 국민이었다면을 떠올렸을 때, 어쩌면 나 역시 게르만 만세를 외치며 옆집의 유대인을 벌레보듯 바라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퇴폐미술전 시작 전에 히틀러는 무려 한 시간 동안 연설을 했으며, 전시장 벽에는 그림을 나치당 입맛에 맞게 재 분류해서 '독일 여성에 대한 모욕' '미술관의 거물들은 이런 작품을 독일 민족의 예술이라 부르는가?' 등의 제목을 달아 놓았다고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예술가들을 바로 수용소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들을 모아 대중에게 보여주고 설득한 후 그 예술가들을 탄압한 인물. 미술 전시조차 자신의 목적에 맞게 설계해서 선동할 줄 알았던 이 인물. 새삼 또 한 번 놀랐습니다.









Jan 2, 2012

[inspiration] 러시아 미술, 이동파(Peredvizhniki)의 용기를 바라보기

Nationalmuseum, Stockholm, Sweden

여행자는 이렇게 분류할 수도 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오를 의지가 있는 여행자와 그렇지 않은 여행자. 20대까지만 해도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마무리하는 러시아 여행을 꿈꿨습니다. 소녀 감성으로 일주일쯤 머리를 못 감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죠. 네, 물론 지금은 아닙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기차 여행의 로맨스와 러시아라는 미지에 대한 환상, 그리고 오지에서나 느낄 법한 극체험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만족시킵니다. 제 경우에는 그 중 '러시아'에 대한 환상이 가장 컸습니다. 하얀 눈 위의 차가운 러시아 정교식 건축이 쿠바 거리의 뜨거운 원색 풍광보다 이국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에서는 영어권의 대도시가 목표였기에 러시아는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환상은 가득하고, 러시아 여행에 대한 가능성을 낮았기 때문에 스톡홀름 국립박물관에서 러시아 근대 미술전을 우연히 관람하고는 그것에 매료된 것은 당연했습니다. 러시아 미술의 '러' 자도 몰랐던 덕분에 그들이 담아낸 러시아 풍광에, 독특한 색채에, 묘하게 낯선 분위기에 넋을 놓고 두어 시간은 구경 또 구경했습니다. 

이 전시가 러시아 미술을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뭐라고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Peredvizhniki(이동파)'의 대표작들을 모아 놓은 전시(The Peredvizhniki – Pioneers of Russian Painting)였습니다. 러시아와 가까운 북유럽이었는데도 전시의 취지가 '러시아 국립미술관과의 특별한 만남으로 그 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러시아의 걸작들을 소개한다'는 것을 보니 활자로만 보아왔던 '냉전의 시대'가 실감이 납니다.

이동파는 러시아 왕립 미술학교 쯤에 해당하는 아카데미에 대항하여 만든 예술인 단체입니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가 초까지 활동한 이들은 최초로 '리얼 러시아'를 작품화했다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인상파 화가들이 주목을 받고 있을 때, 러시아에서는 궁전을 나온 화가들이 서민들의 삶을 화폭에 닮아 도시를 돌며 전시를 합니다. 

The Volga Boatmen, 1870-73, Ilya Repin

이들의 스타일을 분류하자면 단순히 리얼리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 생계를 위해 짐을 끄는 노동자들을 그렸으니까요. 그렇지만 단지 리얼리즘의 계파 중 하나로 보기에는, 소비에트 공산혁명 정부에 의해 해체되기 전까지 그림을 왕국 밖으로 가지고 나와 시골 마을을 돌며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공유할 수 있게 하고자 했던 이들의 노력에 대한 예의가 아닌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온실을 뿌리치고 나와 선동가가 된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럴 용기가 없는 우리는 그것을 바라보며 인정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스톡홀름에 계신 분들은 국립박물관에 들러보세요. 1월 22일까지는 보기 힘든 이 러시아 걸작들을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살인적인 물가의 도시라 가난한 여행객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박물관 지하의 카페테리아 뷔폐식 점심도 괜찮습니다. 비싼 값을 한달까요. 


러시아 Peredvizhniki들의 작품 감상과 함께 큐레이터의 의도를 듣고 싶으신 분은 클릭해 보세요. 스웨덴어지만 영어 자막이 함께 있습니다. 이동파에 대한 설명은 이 블로그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Dec 31, 2011

[inspiration]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사람이 없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








제주도에 가시거든 김영갑 갤러리에 들르시길. 김영갑 사진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온 힘을 다해 가꾼 앞뜰 구경도 하고, 뒤뜰의 카페에서 차도 한 잔 하고, 그가 찍은 사진도 천천히 감상하세요.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한 눈에 볼 수도 있고, 아름다움에 대하여, 대자연에 대하여, 그리고 사진에 대하여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게 되는 공간입니다.

루게릭 병을 앓았다는 작가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미리 읽고 갤러리에 가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만약 그의 스토리를 알았다면 괜한 동정비슷한 것이 섞여 사진 그대로를 바라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혹자는 '나도 찍겠다'라고 말하는 사진이라지만, 다행히 결코 누구도 쉽게 찍지 못할 사진이라는 것을 알아봤습니다.

'나는 가수다'나 '슈스케'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감동이라는 것은 따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감동하면 나만 감동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 멋진 그림, 기억에 남는 사진이란 듣는 사람과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김영갑 작가의 사진도 그랬습니다. 무엇보다 아름다웠고, 작가는 절대로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지만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작가 자신이 느낀 대자연의 감동을 보는 이에게도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냈을지도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감동이란 그것을 만든 사람이 얼마나 그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았느냐와 관련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기하게도 그것은 보는 이에게도 전달이 됩니다. 찌릿, 하고요.

언젠가 사진을 찍는 분에게 그 분의 사진을 쭈욱 보고나서 "왜 사람이 없는 사진을 찍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단순한 의문이었는데 그 분에게도 저에게도 꽤 오랫동안 따라다닌 질문이었습니다. 그 의문은 베를린에서 풀렸습니다. 물론 저 스스로 내린 결론이고, 대답이 되었다기 보다 더이상 궁금하지 않았다는 편에 가깝지만요.

헬뮤트 뉴튼(Helmut Newton)의 사진 박물관에서 그의 인물 사진을 한참을 보고 나와 서점에 들러 마틴 파(Martin Parr)의 사진집을 보며 피식피식 웃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진작가들이 인물 사진을 찍는 이유는 사람 사진이야 말로 보는 이가 가장 공감하기 좋은, 다시 말해 감동을 주기 쉬운 피사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덕분에 사람 없는 그림(사진)으로 보는 이들을 감동시키는, 다시 말해 어려운 길을 택하고도 인정을 받은, 터너(J.M.William Turner)나 안셀 아담스(Ansel Adams), 그리고 김영갑이 새삼 위대하게 느껴졌습니다.

Nov 21, 2011

[brand] 브랜드 광고, 다르고 싶다면 이들처럼 2. 아크네(Acne)



쿠플스라는 브랜드를 알게 된 계기는 마레 지구에서 스타일 좋은 파리지앵들이 이 브랜드의 백(천으로 된 쇼핑백)을 메고 다니는 것을 몇번 본 이후였습니다. 사실 런던에서도 쿠플스의 매장을 봤었지만 로고 타입이 마음에 안 들어서 매장 안에는 들어갈 생각조차 안 하다가, 파리에 넘어와서야 매장에 들어갔습니다. 반면 아크네는 잡지를 통해서 먼저 알게 됐습니다. 디자이너인 친구가 이 잡지에 실린 사진들의 느낌이 너무 괜찮다며 추천을 해 준 것이 아크네 페이퍼(Acne Paper) 였습니다.

아크네 그룹은 본래 1996년 광고/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프로모션용으로 만든 청바지가 히트를 치며 패션사업으로 진출을 하고 대성공을 이룹니다. 지금은 회사가 점점 커져서 광고회사인 Acne Advertising, 디자인 에이전시 Acne Art Department, 영상 프로덕션 Acne Production, 어린이 장난감 회사 Acne Jr, 아트 매거진 Acne Paper, 패션 브랜드 Acne Fashion & Denim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www.acne.se
shop.acnestudios.com


아크네 그룹의 광고 에이전시들 홈페이지에 가서 지난 광고를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이들 스스로 independent and unique라는 형용사로 자신들을 설명하는만큼 북유럽에서 가장 창의적인 집단이 만들어낸 창작물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장난감도 너무 귀여워서 조카를 위해 하나 사주고 싶은 충동이 일고, 아크네 페이퍼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아트 매거진입니다. 이 중 가장 제 관심을 끈 것은 아크네 페이퍼와 아크네 스튜디오(패션) 입니다. 

아크네 스튜디오는 재미있게도 광고를 하지 않습니다. 광고 전문가들이 만든 브랜드임에도 ATL이든 BTL이든 어떤 광고도 하지 않는 것이 전략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택한 방식은 어떤 매체에 어떤 이미지를 노출시킬것인가가 아닙니다. 매체를 고르지 않고 매체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아크네 페이퍼입니다. 하지만 이 잡지 어디에도 아크네의 광고는 없습니다. 단지 평균 이상의 판형에 평균 이상의 두께, 그리고 퀄리티를 앞세운 이 잡지는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아크네의 아이덴티티로 가득합니다. 최고의 사진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수준 높은 컬럼니스트의 글을 통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닮은 아티스트를 소개하면서 자신들은 옷 장사치 혹은 광고쟁이가 아니라 '창작 집단'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많은 브랜드들이 자신의 이름을 단 잡지를 발행하곤 하지만 이만한 퀄리티를 자랑하는 잡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검색해 보니 한국의 몇 서점에도 아크네 페이퍼가 들어와 있군요. 무거워서 사올 생각도 못 했는데 여기에서도 구할 수 있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왜 아크네는 북유럽 최고의 광고 에이전시이면서 왜 스스로의 광고는 만들지 않을까요?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부정하면서 창작집단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고집하고 있을까요? 

요즘 시대에 가장 쿨한 사람들은 바로 아티스트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자기 세계 확고하고 스타일까지 좋은 아티스트만큼 매력적으로 보이는 집단이 또 있을까요? 진입장벽이 높으니 흠모할 만한 이유가 또 하나 추가됩니다. 따라서 아티스트같은 브랜드로 인식된다면 모두가 꿈꾸는 쿨한 브랜드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아크네처럼 그룹 전체가 자신을 창작집단이라고 정의내리고 그렇게 활동하지 못하더라도 많은 브랜드들이 간접적으로라도 아티스트들과 그 브랜드를 연결시키려고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G-Star RAW나 Dunhill의 광고, 그리고 스웨덴의 다른 의류 브랜드에서 진행한 크리에이터스 호텔의 경우에서도 이런 경향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아크네와 비슷한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브랜드는 모노클(monocle)입니다. 모노클은 매체 광고도 꽤 진행하지만 잡지를 광고의 도구로 활용하는 전략이 비슷합니다. 모노클은 아크네와 반대로 (브랜드를 메인에 두고 잡지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잡지를 메인으로 브랜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자신을 창작집단으로 알리고 싶어하는 이 두 브랜드는 모두 디자인 에이전시와 잡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모노클과 아크네 페이퍼는 일반 서점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다른 잡지들과 달리 작고 큰 갤러리나 아트북 전문 서점에서도 발견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스톡홀름에서 magasin3라는 독특한 갤러리의 작은 도서관에서 몇 권 안 되는 잡지들 중 모노클과 아크네 페이퍼가 모두 놓여져 있는 것을 보고, 이건 우연이 아니라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에도 다른 도시의 많은 아트북 서점이나 갤러리 도서관에서 모노클 혹은 아크네 페이퍼를 봤던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의 고리에 꿰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분명 두 브랜드는 잡지가 놓이는 공간을 관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유통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주로 아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에 자연스럽게 놓아둠으로써 '모노클, 아크네 = 예술을 좀 아는' 브랜드로 포지셔닝하고 결국 쿨한 브랜드, 그래서 더 높은 값을 지불할만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아마도 가장 돈을 많이 그리고 잘 쓰는 소비자 군 중 하나인 '유사 디자이너 군'을 타겟으로 삼은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예뻐서 용서한다"라는 말을 하며 지갑을 여는 소비자군 말입니다. 

+
브랜드 광고, 다르고 싶다면 이들처럼 1. 쿠플스(Kooples)
브랜드 광고, 다르고 싶다면 이들처럼 2. 아크네(Acne)



[brand] 브랜드 광고, 다르고 싶다면 이들처럼 1. 쿠플스(kooples)



4P(Price, Place, Product, Promotion) 중 가격이나 유통 전략을 무시하고, 제품이나 프로모션으로만 보았을 때 한국에 들여오고 싶은 패션 브랜드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파리(프랑스) 브랜드 쿠플스(Kooples)이고 다른 하나는 스톡홀름(스웨덴) 브랜드 아크네(Acne)입니다. 이 둘은 제품과 브랜드 컨셉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프로모션 전략 중 특히 광고 전략이 멋집니다. 이들이 자신을 알리는 방식만 살펴봐도 얼마나 통합적 브랜딩을 능숙하게 실행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쿠플스의 컨셉은 '커플(couple)'입니다. 브랜드의 하나부터 열까지 거의 '커플'이라는 아이디어로 통합되어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브랜드의 광고 모델들입니다. 예상하셨다시피 실제 모델을 광고모델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커플들이 프로 모델 뺨치도록 아름다워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짜 커플 맞아? 모델 고용해서 커플이라고 연기시킨 것 아냐?'라는 의심을 살 정도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런 의심을 품고 파리에서 쿠플스 매장의 문이 닳도록 들락거리다 결국 블랙진을 하나 사면서 점원에게 물어봤습니다.



"지난번에 여기서 가져간 잡지를 보니까 이 모델들이 실제 커플이라고 써 있던데, 진짜야?"

"나도 진짜 커플들로 알고 있어. 본사에서 그렇게 말해주니까. 그런데 누가 알겠어? 때로는 나도 궁금한걸. 내가 일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도 이거야."



믿는 수밖에 없지만, 제 결론은 진짜 커플과 가상의 커플이 적절하게 섞여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기 홈페이지(www.thekooples.com)에 가보면, 지금 첫 화면에 이번 시즌의 신상품을 입은 새로운 커플의 스토리가 올라와 있습니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the kooples를 검색하면 지난 시즌에 광고 모델이었던 커플들의 스토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중 가장 아름다워서 마음에 드는 커플은 초등학교때부터 알아서 9년이나 만났다는 'Jonas & Venus'입니다. 하지만 몇몇은 눈빛이나 자태를 보아하니 고용된 모델같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진짜 커플인지 아닌지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구요?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 브랜드의 컨셉은 커플(만남)입니다. 광고 모델이 서로 다른 두 인격체의 만남을 강조하고 있고, 디자인 컨셉도 프랑스와 런던의 만남, 모던과 빈티지의 만남이고, 프로모션 컨셉도 브랜드와 음악의 만남입니다. 때문에, 가짜 커플이라면 이 브랜드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에 거짓을 심어놓은 꼴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성 여부로 심각해지지 않더라도 진짜 커플인지 아닌지는 의미를 떠나 이 브랜드에게 중요합니다. 사실 가십을 즐기는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참 영리한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나 저러나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거 알아? 그런데 그들 진짤까?"라고 하며 입소문을 만들게 하고, 그럴수록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는 강해질테니까요.


광고와 광고 모델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유튜브에서 영상 광고들을 찾아보고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실제 커플들의 1분도 안 되는 인터뷰 영상이 꽤나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상품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쿠플스를 입을만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인터뷰 내용을 통해서 그들이 어디에서 만났고 어디에서 데이트를 하는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곧 쿠플스 타겟들의 행동 반경이 됩니다. 또한 영상이 촬영된 거리는 홈페이지에서도 밝혔듯 이 브랜드 정체성의 한 부분입니다. '거기를 지나가다 스쳐 지나갈만한 멋진 커플들이 입는 옷'이 이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니까요. 


적은 비용(모델료)으로 만든 이 짧은 영상의 임팩트가 강한 이유는 소비자들에게 '나도 이들 커플처럼 멋드러지게 입고 싶다'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뿐만이 아니라, 이들의 대화 속에서 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바가 간접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꽉막힌 프랑스 브랜드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한 열린 태도는 모델 선정에서도 보입니다. 인도네시아와 시드니 출신의 커플, 뉴저지와 베를린 출신의 커플, 그리고 게이 커플들이 불어가 아닌 영어로 인터뷰를 합니다. 


쿠플스의 홈페이지나 이들이 만들어내는 잡지를 보면 이렇게 파리 안에만 머물지 않고 '파리 밖'으로 나가 글로벌 브랜드가 되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자존심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의 오리지널리티를 런던의 유서깊은 재단사의 거리인 *새빌 로(Savile Row)에서 가져오고,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의 한 명인 알렉산더 맥퀸을 상징하는 해골 문양을 주요 패턴이나 심볼로 활용하고 있는 점도 그렇습니다. 런던과 파리는 서로를 무시하는 동시에 질투하는 경쟁적인 관계에 주로 있었는데, 쿠플스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런던을 끌고 들어와 자신을 프랑스-영국(Franco-British) 스타일이라고 말합니다. 


또 하나 광고를 보고 느낀 것은 파리지앵의 감각입니다. 호텔 코스테(hotel costes) 관련 포스팅에서도 이야기 했듯, 파리 사람들의 감각은 남다릅니다. 이 영상 광고의 촬영 방식을 살피거나 배경음악만 듣고 있어도 '감각 좋은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특히 음악은 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브랜드와 문화의 만남이 이것입니다. 쿠플스는 패션 브랜드 런칭과 동시에 같은 이름의 인디 뮤직 레이블을 런칭했습니다. 그리고 커플 뮤지션들의 음반 발매를 지원합니다. 아마도 이 영상의 배경음악 역시 이 레이블의 음악일 가능성이 크겠죠. 


광고만 살펴봐도 참 재밌는 브랜드 아닌가요? 실제 모델 커플, 런던과 파리라는 커플, 패션과 음악이라는 커플, 모던과 빈티지라는 커플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컨셉에 충실한 보기 드문 브랜드입니다. 




*새빌로
런던에는 특색있는 거리들이 많은데, 그 중 새빌로는 영국 신사들이 장인들에 의해 한땀 한땀 만들어지는 정장을 맞추러 가는 곳입니다. 이 거리에는 100년도 넘는 전통을 지닌 많은 수트 전문점이 있는데, 유명한 알렉산더 맥퀸은 이 거리의 한 숍에서 견습생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현대식 남성복인 영국식 수트는 사실 프랑스에서 건너왔다는 것입니다. 산업혁명 이후에 엄청난 부를 축적한 영국의 브르조아 계층은 프랑스 지배층의 패션을 흠모했습니다. 그래서 기계화된 방직공장에서 프랑스 귀족들의 의상을 대량생산한 것이 수트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파리 브랜드 쿠플스는 런던의 새빌로에서 오리지널리티를 가져오고, 새빌로의 오리지널리티는 다시 프랑스로 가야 찾을 수 있습니다. 쿠플스는 알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여기 쿠플스와 관련된 좋은 기사를 찾았습니다. 뭔가 다르다 했더니, 어머니도 남다르고, 창업자인 세 형제의 전공도 남달랐습니다. 패션과 마케팅, 그리고 사회학의 만남이라...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
브랜드 광고, 다르고 싶다면 이들처럼 1. 쿠플스(Kooples)



Nov 3, 2011

[culture] 거리에서 브랜드를 생각하다

S E O U L, B R A N D  V I E W 


며칠 전에 가로수길에 다녀왔습니다. 역시 서울은 잠깐만 자리를 비워도 쉴새 없이 무언가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뜨거운 도시입니다. '빨리빨리'가 우리의 약점이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커다란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변화의 여지가 크니까요.

가로수길에 새로 생긴 한 카페에서는 요즘의 대세가 뭔지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습니다. 각자가 가진 경험들을 쏟아 놓고 이야기 하다보니 어느새 괜찮은 카페의 컨셉이 하나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컨셉은 너무 괜찮아서 비밀일 정도로 모두가 동의했지만, 문제는 '어디에' 열어야 할 것인가 였습니다.

홍대, 가로수길, 삼청동, 이태원은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그 다음으로 효자동, 가회동, 유엔빌리지, 경리단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심지어 서판교까지 갔다가 다시 가로수길로 돌아왔습니다. 문제는 '임대료'였습니다. 뜬다는 거리는 어김없이 임대료가 비싸고, 곧 뜰것 같은 거리는 곧 비싸질 것이고, 우리의 카페는 한 곳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데 과연 비싸지는 임대료를 감당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친구들이 합정으로 갈 것이냐 차라리 대전으로 갈까로 고민하는 사이 저는 혼자 '언제부터 이렇게 거리가, 동네가 브랜드화 되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브랜드화 되었다기 보다는 '이제는 거리를 브랜드라고 우겨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브랜드라는 말이 일상화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맞을것 같습니다. 가로수길, 경리단길, 서래마을. 각자가 가진 아이덴티티가 있고, 소비자들은 그 동네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높은 값을 지불합니다.

브랜드(brand)라는 말은 옛날 옛적에 소와 같은 가축을 키우는 사람들이 자기 소유의 가축을 구분하기 위해 뜨겁게 달궈진 쇠로 소의 엉덩이 등에 찍은 마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나 브랜드라는 가져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지만 사실 브랜드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5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브랜드계의 구루라고 불리는 데이비드 아커, 케빈 켈러, 장 노엘 캐퍼러 모두 브랜드 이론의 1세대이지만 아직도 정정 하십니다. 브랜드가 경영학에서 하나의 실제하는 이론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브랜드라는 말이 처음에는 회사의 로고 정도로 받아들여 졌지만, 지금은 이렇게 어디에도 브랜드를 가져다 놓아도 어울리는 이유는 이것은 하나의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업에게 유용한 관점이기에 상업적으로 비추어지기도 하지만 브랜드적 사고는 어쩌면 일상의 효율화를 만드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창업을 할 때에도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 돈을 많이 벌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브랜드로 만들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면접을 볼 때에도 어떻게 하면 나를 브랜딩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동네 세탁소 아줌마에게도 나는 어떤 브랜드로 비춰질까를 생각해 보면 당연히 실보다 득이 많을 것입니다. 자칫 과하게 포장을 하면 사기꾼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브랜드의 핵심은 아이덴티티, 즉 자기 정체성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유니타스브랜드에서 배운 '자기다움으로 만드는 남과 다름'이라는 말이 가장 훌륭한 브랜드에 대한 정의가 아닐까 합니다. 



O T H E R  C I T E S,  O T H E R  T H O U G H T S


정신을 차리고 친구들의 수다에 다시 합류했는데 이번에는 UV의 신곡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이태원 프리덤' 중 "강남 사람 많아, 홍대 사람 많아, 신촌은 뭔가 부족해"를 흥얼거렸습니다. '역시 UV는 달라...'라고 중얼거리면서 말입니다. UV를 아끼기에, 이들의 이 한 소절을 '거리 아이덴티티에 대한 풍자'라고 맘대로 해석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문득 거리 브랜드에는 뭔가 다른 역학관계가 함께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제 졸업 논문 주제가 '홍대 문화 정체성과 형성 과정'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2005년이었네요. 그때 논문을 같이 쓴 친구와 술파는 꽃집의 사장님, 빵의 대표님 등을 인터뷰하며 우리가 먹고 마시는 그 공간을 둘러싼 갈등과 고민을 주저리주저리 적어 놓았던 생각이 납니다. A+를 주신 서동진 선생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네, 자랑을 하고 싶었습니다.)

논문을 쓰면서도 나중에는 "뭐야, 결국 부동산 문제잖아"라고 결론 내렸던 기억입니다. 홍대라는 지역의 정체성이 만들어진 것도 임대료가 싼 지역을 찾아 아티스트들이 모여들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뿌리 내리게 했고, 덕분에 문화지구라 불리게 됐지만 그 흥미로운 곳에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려는 자본이 몰려들고, 임대료는 상승하고 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아티스트들은 또 다른 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홍대를 누가 문화지구라고 할까요, 최고의 상업지구겠지요. 그 경계가 더더더 넓어져서 이제는 홍대와 신촌, 그리고 합정을 구분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거리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부동산이라는 역학관계가 함꼐 돌아가고 있는 것은 비단 홍대나 삼청동, 가로수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멜번에서는 피츠로이(Fitzroy), 런던에서는 이스트 런던, 베를린에서는 프렌츠라우어(Prenzlauer), 스톡홀름에서는 쇠데르말름(södermalm)이 모두 같은 문제를 겪었거나 겪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는 과거 동독 시절 부촌이었던 프렌츨라우어가 지금은 여피족이나 돈 잘 버는 아티스트들의 주거 단지가 되면서 비싸지고, 베를린의 싸다는 물가를 듣고 찾아온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은 남쪽의 노이쾰른 쪽으로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임대료에 휘둘리는 삶을 참을 수 없자, 임대업자들을 대상으로 시위를 하도 한답니다. 베를린은 타헬레스(kunsthaus tacheles, 가난한 아티스트들이 폐건물을 불법 점거해서 그곳에서 작업을 하며 예술의 성지가 된 곳, 그러나 지금은 관광지에 가까운)를 탄생시킨 정신을 가진 도시니 이런 적극적 활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멜번에서는 피츠로이의 브런즈윅(Brunswick st.), 스미스(Smith st.), 거트루드(Gertrude st.) 스트릿 부근이 그렇습니다. 피츠로이는 런던의 브릭레인(Brick lane)처럼 이민자들이 살던 동네에 아티스트들이 모여들면서 소규모의 갤러리나 독특한 바, 카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hot하다는 바나 카페들이 즐비합니다. 하지만 임대료는 점점 상승하고 그 임대료를 감당할만한 부자들이 원주민(?)들을 몰아내는 전형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다보니 컨텐츠에 자신이 있는 곳들은 비싼 임대료를 일부러 감당하면서까지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으니 쌩뚱맞은 곳에 둥지를 트는 경우도 많습니다. 멜번 최고의 라테를 맛보게 해 주었던 오마르앤더마벌러스커피버드(omar and the marvellous coffee bird)나 옥션룸(Action Room), 코인론드리(coin laundry) 모두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언제나 찾는 사람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멜번에 머무는 동안 하루는 피츠로이에서 놀다 왔다고 하자 하우스 메이트였던 멜번에서 오래 산 태국 친구가 유튜브 동영상을 하나 보여줬습니다. "그거 알아? 브런즈윅에도 페이크(fake)들이 많아"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브런즈윅에는 '브런즈윅 스타일'로 꾸며 놓고 오리지널, 그러니까 가난한 아티스트가 자신의 정신세계를 담아 쿨 하게 만든 카페나 숍, 인척 하는 곳들이 많답니다. 그래야 클러스터 효과를 봐서 비싼 임대료에 대한 보상을 조금이나마 받을테니까요. 아래의 뮤직비디오의 일부는 그들을 비꼬고 있답니다.






최근 다시 이 영상을 보며 가사를 함께 봐도 100% 이해할 수 없는 걸 보니, 멜번 사람들의 일상을 모르고서는 이 뮤직비디오를 봐도 피식 웃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곡을 만든 The bedroom philosopher는 코미디언이자 저널리스트이자 풍자가입니다. 이 사람의 짧은 인터뷰를 찾아보니 미국 문화, 영국 문화에 쌓여 정작 호주다움을 못 찾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아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세 번째 앨범은 멜번의 86번 트램 루트를 따라가며 얻은 영감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86번은 개발 붐이 불고 있는 도크랜드와 멜번CBD, 피츠로이를 지나 저 북쪽의 노스코트(Northcote)까지 가는 트램입니다. 다양한 이민자에서부터 비즈니스맨, 아티스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트램이니만큼 멜버니언들의 정체성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은 트램입니다. 하지만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아니라 자학 개그에 가깝습니다. 최근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이 생각났습니다. 덕분에 이 앨범은 멜번, 그리고 호주 사람들의 상당한 공감을 얻은 이 앨범은 2010년 멜번 코미디 페스티벌과 각종 호주 음악 어워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나 봅니다. 



거리가 가진 정체성으로 돈을 버는 임대업자가 있는가 하면, 이렇게 사람들을 웃게하고 동시에 생각하게 하는 아티스트도 있습니다. 






Sep 26, 2011

[inspiration] 종합예술인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의 인터뷰 프로젝트







d
(website: interviewproject.davidlynch.com)






오늘은 한량처럼 호스텔 라운지에서 종일 빈둥댔습니다. 여행 중에도 가끔 이렇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습니다. 다행히 코펜하겐의 호스텔들은 시설이 매우 훌륭하고, 스칸디나비안의 유명한 디자인 감각 때문인지 인테리어도 멋져서 하루종일 놀아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제가 묵고 있는 제너레이터 호스텔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유명한 단 호스텔에 대항하기 위해서인지 경쟁력을 갖기 위해 애쓴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단 호스텔의 최근 리뷰를 보면 불친절 하고, 침대 커버부터 시작해서 많은 부분 추가 요금이 있기 때문에 저렴한 것이 아니라는 불평들이 많은데, 다행히 이곳에서 그런 불만은 없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1층 라운지는 밤이 되면 마치 클럽같이 변합니다. 한 쪽은 쿵쿵쾅쾅 크게 음악을 틀어 놓고 맥주를 한 잔 하거나 춤도 추고 당구를 치거나 체스를 두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조용하게 수다를 떨거나 노트북을 가지고 내려와 각자의 시간을 갖습니다. 칼스버그도 20크로네면 마실 수 있고, 바에서 놀다보면 심심치 않게 다양한 덴마크 술들을 공짜로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쓰고 보니 술만 마시는 것 같지만, 오늘은 오후 내내 한쪽 구석에서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와 놀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심란한 영화를 만드는 예술 영화 감독으로 알려져 있죠. 사실 <세븐>을 만든,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인,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가 없었다면 이름이 비슷한 데이비드 린치는 덜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의 대표작이라는 <이레이저 헤드> <트윈 픽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도 두 편은 대학 수업 중에, 다른 한 편은 3편 동시 상영하는 심야영화관에서 보다가 잤던 기억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데이비드 린치에 관한 기사들을 연달아 보게 되면서 이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끔 '이 사람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을까?'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재미있는 사람을 만납니다. 최근에는 데이비드 린치가 그렇습니다.

런던에 있는 동안 사치 갤러리에서 발행하는 잡지를 주워와서 보는데, 데이비드 린치 특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를 크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그가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작곡도 하고, 비밀스럽게 가구 디자인도 하는 아티스트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 놀란 것은 David Lynch Coffee의 존재였습니다. 이름만 듣고 런던의 한 카페인가 해서 찾아보니, 그의 시그니처 블렌딩이었습니다. 데이비드 린치의 커피 사랑은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의 몇 영화에서도 커피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고 하는데,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영국에서는 그의 열혈 팬 중 한 명이 커피를 유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브뤼셀에서 유로스타에서 발행하는 잡지를 보다가 또 그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파리의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커뮤니티의 리더이기도 하답니다. 잡지를 스크랩 해 놨는데, 베를린을 떠나며 버렸는지 그 클럽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네요.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해서 또 다른 창작물을 만드는 커뮤니티였던 것 같습니다.

과연 이 종합예술인은 무슨 생각으로 이 많은 일들을 벌이는 걸까요? 조금 찾아 보니 몇년째 똑같은 옷을 그것도 목 바로 아래까지 단추를 채워 입고 매일 같은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할 정도의 괴짜라고 합니다. 그의 도무지 알 수 없는 행보는 팬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데이비드 린치의 미스테리한 세계, 부조리의 도시(www.thecityofabsurdity.com)'라는 이름의 웹사이트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둘러봤는데, 데이비드 린치가 인터뷰 중에 한 말인 "You build your own world", 이것이 바로 그가 하고 있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당신만의 세계를 짓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하고 있는 일 중에 가장 독특한 건 '데이비드 린치 재단'의 활동입니다. 일종의 명상 센터라고 해야 하나요. 데이비드 린치는 오랫동안 명상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가꿔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명상법을 학생들이나 교도소의 수감자들, 노숙자와같은 이들과 공유하는 재단입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의 활동 중 가장 재미있는 프로젝트는 지금부터입니다. 


제가 오후 내내 놀았던 곳도 바로 여기, 인터뷰 프로젝트(interviewproject.davidlynch.com)입니다. 처음에 사치 매거진에서 보고는 데이비드 린치 정도 되니 전 세계의 유명인사들을 연달아 인터뷰 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09년에 미국 대륙을 종횡무진하며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총 121명의 인터뷰가 올라와 있는데, 한 인물당 3~4분 정도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평균연령은 50세쯤 되는 것 같습니다. 도시가 아닌 시골 마을에는 젊은이들이 없어서인지 인터뷰에 응해주는 사람이 보통 마음 넓은 할머니 할아버지였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사진을 보고 가장 말끔해 보이는 사람의 인터뷰를 골라 봤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냥 순서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누가되든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 정도 본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의 투아레그 족의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노인이 죽는 것은 하나의 도서관이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 50여명의 적어도 50년은 산 어른들의 자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촬영 방식도, 편집 방식도, 음악 선곡도 영화감독 출신답게 세련되어서 신선한 에세이집 한 권을, 아니 반 권을 읽은 기분입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위기가 언제냐고? 그건 내가 지루해질때지." 이런 멋진 말들도 툭툭 흘러 나오고, 한 게이는 "만약 신을 믿는다면, 너는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거야."라고 말하며 웃기도 하고, 25년 째 자식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한 할아버지는 "그래서 뭐? 난 60살이고, 이렇게 멋진 은발이 가득하고, 키도 6피트나 되는데!"라며 너털 웃음을 짓기도 합니다. 가끔 "내 여자친구가 전 남자친구를 죽이러 가기 전날..."과 같은 단편소설의 주인공같은 이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희극보다 비극에 가까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자기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말합니다. 몇몇은 눈물 짓기도 하지만, 그 나이가 되면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가 봅니다. 덕분에 오후 내내 심심하지 않게 이곳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즐겁네요!

북마크 해 놓고 심심할 때 마다 하나씩 골라 보세요. 영어 공부도 되고,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를 눈으로라마 하는 것 같아 재밌습니다. 




Apr 22, 2011

[culture] 논쟁적 사진작가, 빌 헨슨 (the Bill Henson Controversy)


15 April, Tolarno Gallery in Melbourne


생각보다 세련되고, 생각보다 친절하고, 생각보다 자부심 강한 멜버니언들. 늘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사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멜번에서 알게 된 친구, Danica에게 멜번의 문화를 느낄 수 있을 만한 곳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아티스트답게 멜번 시티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갤러리들과 아티스트들의 작업공간으로 날 초대했는데, 그 중 한 갤러리에서 알게 된 빌 헨슨(Bill Henson)이라는 사진 작가의 스토리가 흥미롭다.

사진 이론을 전공하고 있는 이 친구가 데려간 갤러리 중에서 유일하게 위 갤러리에서, 내가 지금 돈이 있다면 이 사진을 사고 싶다,며 시간을 끌었던 기억이 난다. '아름답다'고 느낀 사진 작품들을 보기도 오랫만이었다. 요즘은 '예쁜, 재미있는, 아무렇지 않은척 하는' 사진이 대세니까.

Danica가 말한대로 마치 카라바지오(Caravaggio)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Bill Henson, Paris Opera Project, 1991

행운이 계속 따른 날이었는지 Danica와 갤러리 매니저가 아는 사이였던 덕분에 사진 하나하나마다 열정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열정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도 그런 마음이어서, 너무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아름답다고 빌 헨슨이 누구냐고 유명한 사람이냐며 물어댔다. 신나서 멜번 출신이고, 뉴욕 파리 런던 등에서도 전시회를 했던 작가라고 설명해주는 매니저와 달리, Danica는 갤러리를 나오면서 사실 이 작가는 굉장히 논란이 많은(controversial) 작가라고 덧붙였다.

간단히 설명을 듣고 돌아와서 찾아보니, 얼마 전 그의 작품을 두고 법적 공방까지 갔었고, 말 아끼기로 유명한 호주의 전 수상, 케빈 러드가 '굉장히 혐오스럽다'고 표현했을만큼이었다고 한다.

논란의 중심에는 '예술 vs 포르노'가 있었고, 더 문제가 되는 건 그것이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사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실제로 한 학교에 찾아가 12세 여자 아이와 13세 남자 아이를 '고른?' 뒤, 부모의 허락을 받고 부모가 동석한 가운데 누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지금 구글 이미지에 Bill Henson을 검색해 보시라.)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작가가 파리의 작가였다면, 이런 논란에 중심에 설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만한 유명세를 탈 수 있었을까? 아마도 Danica는 이런 멜번과 호주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Thank you, Danica!

멜번에 있으며 이 도시는 penalty의 도시로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물론 학교에서 선진의식이라는 것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우는 것 같지만, 과연 penalty가 없다면 이 젠틀하고 질서정연한 겉모습이 유지될까?

친구의 학교에 '도강'을 갔다가 놀란 것이,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의 디테일한 법규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날은 음주법 관련 수업이었는데, '라이센스 없는 곳에서 술 팔면 얼마, 바텐더가 취한 것 같아 보이는 손님한테 경고 없이 술 팔면 얼마, 지정된 지역 외에서 술 먹으면 얼마....'를 듣고 있자니, 엄청난 벌금도 벌금이지만 법 만드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중에 이곳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 분 역시, 이곳의 사회복지 법규가 얼마나 디테일하게 거의 모든 부분을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 입이 닳도록 설명하더라.

빌 헨슨이름 앞에 늘 'controversial'이라는 단어가 붙는 이유는, 바로 이 '큰 정부'가 유지되기 위한 '규제의 구멍'에서 예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2008년 전시회 오프닝 날, 그의 사진들이 경찰에 의해 압수되고 그는 법정에 섰지만, 결국 풀려난 근거는 '예술이냐 아니냐는 법정에서 다룰만한 소재가 아니다'였다.

이런 아티스트를 규제할 만한 디테일한 규정은 커녕,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에 대처할 만한 정부의 입장도 정리가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당황한 큰 정부는 일단 그를 잡아넣고 보았던 것이다. 덕분에 빌 헨슨은 더 유명해지고 말이다.

'예술 vs 포르노'는 아주아주 오래된 논란일테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논란일텐데, 이것으로 뜨거웠다는 호주의 2008년에는, 사실 빌 헨슨보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그리고 미디어들이 더 달떠있었던 것 아닐까.

멜번이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부끄러원 하는 작가, 빌 헨슨. 이런 멜번, 이런 호주.






a tiny slice of Melbour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