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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1, 2012

[inspiration] 베를린 프란츠라우어의 바, 본침머(wohnzimmer)










wohnzimmer, Berlin


사진으로 다시 보니 햇살 가득한 행복이 가득한 집의 거실같지만, 사실은 찌든 담배 냄새가 인상적이었던 베를린의 바. 대낮에 가서 전세 낸 듯 쉬다 왔는데 다시 가게 되면 자정 무렵게 가렵니다.

+ www.wohnzimmer-bar.de

Jan 5, 2012

[inspiration] 생각을 사러 책방에 갑니다



잡스러운 것은 싫은데, 잡지도 좋고 잡지식도 좋고 최근에 읽은 하루키의 <잡문집>도 마음에 듭니다. 어쩌면 '잡스럽다'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싫을뿐 잡스러운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을 하며 어느 도시에 가든 가장 많이 찾은 공간은 카페, 그 다음은 서점입니다. 혼자서 북키시 프로젝트(Bookish Project)라며 각 도시의 아름다운 서점들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쌓아가고 있었는데, 이미 벌써 <유럽의 명문서점>이라는 책이 나와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아차 싶었습니다. 

그 중 요즘 자주 생각나는 서점은 베를린의 모토(Motto) 입니다. 예술 서적과 독립 출판물을 전문으로 하며 Schlesische Tor 역에서 크레우츠베르 (Kreuzberg)로 가는 길 초입의 한 호프(Hof, 독일식 건축의 안 뜰)에 둥지를 트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낯선 도시, 낯선 주제의 잡지나 개인이 만들어서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출판한 책들을 한참동안 뒤적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은 작은 동네 서점이 아니라 생각 전시장이구나. 자기의 생각을 글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표현한 종이 묶음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아이디어입니다. 덕분에 낯설게하기 효과를 주는 제목, 날선 편집 디자인, '나는 달라'라고 외치는 문장과 이미지가 가득한 생각 전시장에서 생각 수집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손과 눈과 뇌의 자극을 즐기며 '서울에도 이런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되뇌던 날이었습니다.

다행히 돌아와서 보니, 모토와 같은 공간이 서울에도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홍대의 유어마인드나 땡스북스, 더북소사이어티, 이태원의 포스트 포에틱스가 그렇습니다. 아직 모두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곧 모두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Motto, Berlin

Jan 3, 2012

[culture] 베를린 신 국립미술관의 몇 가지 관람 포인트



사진은 베를린의 신 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erie)입니다.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인만큼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술 작품은 시대별로 구 국립미술관, 신 국립미술관, 함부르그 반호프 현대미술관에 나뉘어져 전시됩니다. 신 국립박물관은 구 서독지역의 문화 지구인 컬처 포럼을 대표하는 갤러리로, 20세기 초중반의 모던 아트 컬렉션으로 유명합니다. 피카소, 르누아르, 고흐의 유명작품들도 있지만 이것들을 기대하고 가면 실망할 것이니, 독일 표현주의 작품들을 기대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의 포츠다머 플라츠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키르히너를 비롯한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제가 생각하는 '독일스러운 이미지'와 무척 닮아 있어서 보고 또 보게 됩니다. 채도가 높은 컬러 톤에 대비도 강하고 이미지의 선들도 굵습니다. 동시에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는데, 직선의 날카로움이 아니라 곡선의 날카로움 입니다.


저만의 생각인지 다른 이들도 이런 이미지를 '독일스럽다'고 느끼는지 궁금해서 열심히 검색을 해 봤지만, 원래 궁금했던 답은 찾지 못하고 '독일인은 내륙이라 외부와 교류가 비교적 원만하지 않고, 일조량이 적은 날씨 탓에 실내에 머물며 사색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추가 정보만을 확인했습니다. 그에 대한 근거로는 독일 출신의 많은 철학자들을 들고 있습니다. 키르히너도 이런 말을 한 것을 보니 내면을 향하는 민족성이 추상적인 이미지를 많이 그려내게 했다고 봐도 될듯 합니다. 


'라틴 인들은 대상에서 형식을 만들어 내지만 게르만 계 인간은 내면의 환상에서 형식을 만들어 낸다. 눈에 보이는 자연의 형체는 게르만 계 인간에게는 상징에 불과하다. 따라서 라틴계 민족은 현상 속에서 미를 인정하고, 게르만계 민족은 사물의 배후에 있는 미를 추구한다.' 


Ernst Ludwig Kirchner: Potsdamer Platz, 1914 
George Grosz: Stützen der Gesellschaft, 1926   

신 국립미술관에서 표현주의 작품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신 국립미술관 하면 생각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미스 반 데어로에, 초상화의 방, 그리고 나치입니다. 

신 국립미술관의 건물은 바우하우스의 교장이기도 했던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가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유리로 된 빛의 사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라는데, 흐린 날 지나가서였는지 이제는 어딘가에서 많이 본 듯한 건물이어서 그랬는지 눈에 띄지 않아 사진도 하나 남기지 못했습니다. 실내 사진만 몇 개 가지고 있는데, 아래 사진에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의자도 보입니다. 직사각형의 낮은 건물을 보고는 '쉽게 만들었군' 이라는 농담을 던지고 들어간 것은 오로지 무지 탓이었습니다. 바우하우스의 교장이자 건축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그가 설계한 동선을 따라 작품들을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초상화이 방에 들어가 있게 됩니다.

초상화의 방. 이것이 정식 명칭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붙여준 이름입니다. 일층에는 주로 기획전이, 지하에는 상설전이 열리는데 하얀 벽의 지하 전시 실 중, 유일하게 빨간 벽의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곳에 들어가면 그 시대(20세기 초 중반)를 산 작가들이 그린 초상화가 모여져 있습니다. 가운데에 있는 의자에 앉아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 보고, 어떤 그림을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지를 살펴보다가 방을 나가면서 누구의 그림인지 확인하고 나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초상화를 위한 초상화 방은 아니고, 따로 걸기에 애매한 작품들을 모으다 보니 초상화가 꽤 되어서 모아놓은 느낌인데, 다행히도 보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공간입니다. 런던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가 생각났습니다. 신기하게도 사람의 얼굴 그림은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재미있습니다. 

신 국립미술관 실내의 미스 반 데어 로에 의자
초상화의 방



마지막으로, 키르히너나 그로츠, 딕스, 헤켈 등 표현주의 화가들의 그림 설명을 읽는데 유독 'Degenerate Art'라는 단어가 많이 보였습니다. 무얼까 궁금해서 돌아와서 찾아보니, 1937년에 히틀러에 의해 주도된 현대 미술 탄압과 관련된 단어였습니다. 나치는 '퇴폐예술전 (Degenerate Art Exhibition)'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의 30여개 도시에서 순회전을 했다고 합니다.


히틀러도 미대에 가고 싶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역시 역사적 선동가...'라고 감탄해 버렸습니다. 당시 독일 정부의 입장과 다른 그림들을 모아서 전시하며, '이것이 바로 퇴폐한 예술이다, 이들이 정부의 돈을 갉아 먹고 있다' 등의 선전 문구로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반감을 만들게 한 후, 그림을 모아 소각하거나 외국에 팔아서 예산을 벌었다고 합니다.


히틀러라는 희대의 캐릭터에 대해서 하나하나 알아갈 때마다 놀라는 것은, 나도 만약 당시에 독일 국민이었다면을 떠올렸을 때, 어쩌면 나 역시 게르만 만세를 외치며 옆집의 유대인을 벌레보듯 바라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퇴폐미술전 시작 전에 히틀러는 무려 한 시간 동안 연설을 했으며, 전시장 벽에는 그림을 나치당 입맛에 맞게 재 분류해서 '독일 여성에 대한 모욕' '미술관의 거물들은 이런 작품을 독일 민족의 예술이라 부르는가?' 등의 제목을 달아 놓았다고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예술가들을 바로 수용소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들을 모아 대중에게 보여주고 설득한 후 그 예술가들을 탄압한 인물. 미술 전시조차 자신의 목적에 맞게 설계해서 선동할 줄 알았던 이 인물. 새삼 또 한 번 놀랐습니다.









Nov 6, 2011

[brand] 브랜드를 책으로 배웠어요 2. 저렴하게 경영하라, 알디(ALDI)






(알디(ALDI)는 독일의) 알브레히트 형제가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시작한 구멍가게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소매상으로 거듭났다. 이들 형제는 <포브스> 선정, 세계 3위의 부자가 되었고 단순함이라는 경영원칙을 내세우며 오늘날의 성공신화를 창출하였던 것이다. 초저가할인매장 체인인 '알디'의 성공은 기업 성공에 머물지 않고 이른바 '알디화'라는 신조어까지 등장시키며 일종의 사회적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단순하게 경영하라 (알디 마케팅의 황금률)>의 교보문고 북리뷰에서 카피해 왔습니다. 알디는 몇 마케팅 서적에서 케이스로 간단히 다뤄진 것을 보고 알게 된 후, 알디에서 임원을 지냈던 저자가 쓴 이 책을 읽고 감명, 감복했었습니다. 책만 읽어서는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브랜드가 있을수 없습니다.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하는 완벽한 전략에, 엄청난 매출, 그리고 고객만족으로 이어지는 브랜드로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기사에 참고하기 위해 읽은 책이었지만 굉장히 잘 구성되어 있고, 쉽게 쓰여졌고, 무엇보다 촌철살인에 가까운 문장들이 엄청나게 쏟아지기에 누군가가 경영 사례집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늘 꼽는 책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독일에 가면 꼭 방문해보리라 다짐했었습니다. 글로 읽은 전략들이 눈으로 보면 어떨가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첫 번째 알디를 발견했습니다. 호주 멜번의 프라한 마켓 옆이었습니다. 이 알디가 그 알디임을 확인하고 친구를 먼저 보낸 후 떨리는 마음으로 매장 안으로 향했습니다. 정말 약간 긴장했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물건과 가격, 인테리어, 직원들, 매장 안의 소비자들을 살피는 동안 뭔가 내가 잘못된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해외 브랜드'라고 하면 모두 세련되고 멋진 외관에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질 것 같은데, 알디의 첫 느낌은 뭔가 많은 것들이 생략된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선반도, 조명도, 직원도, 굳이 필요 없는 비용이 될 만한 것은 모두 생략되어 있었습니다. 짠돌이 형제의 기업인만큼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싼 가격의 상품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제품의 박스가 선반을 대신하고, 조명도 한톤 어둡고, 음악이나 방송은 있을리 없고, 무표정한 직원들도 몇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전략에 충실한 모습이었겠지만 왠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돌아와서 친구에게 물어보니 싸지만 잘 가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멜번을 떠나 시드니에서도 알디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드니에서 오래 산 친구는 몇몇 제품을 살 때에는 꼭 알디에 간다고 합니다. 그 가격에 그 제품을 살 수 있는 곳은 알디 뿐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알디에 대한 결론은 본토인 독일에 가서 내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를린의 한 알디 매장입니다. 모든 제품이 PB 상품이며(제가 찾은 Private label이 아닌 제품은 누텔라가 유일했습니다), 몹시 저렴한 가격과 불필요한 것은 모두 생략한 인테리어는 멜번이나 시드니 매장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른 것이라면 독일 내에서의 평판과 경쟁구도입니다.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독일에서 유학중인 방 주인에게 알디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유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되도록이면 알디 대신 리들(Lidl)에 가라며, 알디에서 사면 안 되는 제품까지 일러주었습니다. 알디는 싸지만 때때로 상하거나 제대로되지 않은 상품들이 놓여져 있기도 하다고 합니다. 그 친구가 말해준 리들이 바로 알디의 가장 큰 경쟁 상대입니다. 리들 역시 알디만큼 몹시 저렴한 PB상품을 파는 디스카운트 체인 스토어이지만 알디에 비해 인심은 덜 잃은 모양입니다. 베를린이나 알디와 리들이 동시에 진출해 있는 북유럽에서도 알디보다 리들의 매장이 더 눈에 많이 보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멜번의 첫 알디에서 느낀 그 기분이 살아났습니다. smart한 브랜드일 것이라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왠지모르게 depressed 되어 나왔던 날이었습니다. 저녁 찬거리를 사며 활기차야 할 곳에서 왠지 모를 우울함을 느꼈던 것은 단지 조명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단순하게 경영하라'가 아니라 '저렴하게 경영하라'가 되다보니 '싼' 가격이 우선이 되어 고객들의 안전과 즐거움도 생략시켜버렸나 봅니다. 


물론 이 책이 실제로 쓰여질 당시에는 알디가 독일의 노동자계급의 일상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그것만으로도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였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친구만의 경험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설사 그것이 단 한 번이었다 하더라도 정상적이지 않은 상품으로 소비자의 건강을 위협했고, 경쟁사에 의해 시장 점유율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

Nov 3, 2011

[culture] 거리에서 브랜드를 생각하다

S E O U L, B R A N D  V I E W 


며칠 전에 가로수길에 다녀왔습니다. 역시 서울은 잠깐만 자리를 비워도 쉴새 없이 무언가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뜨거운 도시입니다. '빨리빨리'가 우리의 약점이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커다란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변화의 여지가 크니까요.

가로수길에 새로 생긴 한 카페에서는 요즘의 대세가 뭔지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습니다. 각자가 가진 경험들을 쏟아 놓고 이야기 하다보니 어느새 괜찮은 카페의 컨셉이 하나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컨셉은 너무 괜찮아서 비밀일 정도로 모두가 동의했지만, 문제는 '어디에' 열어야 할 것인가 였습니다.

홍대, 가로수길, 삼청동, 이태원은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그 다음으로 효자동, 가회동, 유엔빌리지, 경리단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심지어 서판교까지 갔다가 다시 가로수길로 돌아왔습니다. 문제는 '임대료'였습니다. 뜬다는 거리는 어김없이 임대료가 비싸고, 곧 뜰것 같은 거리는 곧 비싸질 것이고, 우리의 카페는 한 곳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데 과연 비싸지는 임대료를 감당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친구들이 합정으로 갈 것이냐 차라리 대전으로 갈까로 고민하는 사이 저는 혼자 '언제부터 이렇게 거리가, 동네가 브랜드화 되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브랜드화 되었다기 보다는 '이제는 거리를 브랜드라고 우겨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브랜드라는 말이 일상화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맞을것 같습니다. 가로수길, 경리단길, 서래마을. 각자가 가진 아이덴티티가 있고, 소비자들은 그 동네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높은 값을 지불합니다.

브랜드(brand)라는 말은 옛날 옛적에 소와 같은 가축을 키우는 사람들이 자기 소유의 가축을 구분하기 위해 뜨겁게 달궈진 쇠로 소의 엉덩이 등에 찍은 마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나 브랜드라는 가져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지만 사실 브랜드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5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브랜드계의 구루라고 불리는 데이비드 아커, 케빈 켈러, 장 노엘 캐퍼러 모두 브랜드 이론의 1세대이지만 아직도 정정 하십니다. 브랜드가 경영학에서 하나의 실제하는 이론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브랜드라는 말이 처음에는 회사의 로고 정도로 받아들여 졌지만, 지금은 이렇게 어디에도 브랜드를 가져다 놓아도 어울리는 이유는 이것은 하나의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업에게 유용한 관점이기에 상업적으로 비추어지기도 하지만 브랜드적 사고는 어쩌면 일상의 효율화를 만드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창업을 할 때에도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 돈을 많이 벌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브랜드로 만들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면접을 볼 때에도 어떻게 하면 나를 브랜딩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동네 세탁소 아줌마에게도 나는 어떤 브랜드로 비춰질까를 생각해 보면 당연히 실보다 득이 많을 것입니다. 자칫 과하게 포장을 하면 사기꾼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브랜드의 핵심은 아이덴티티, 즉 자기 정체성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유니타스브랜드에서 배운 '자기다움으로 만드는 남과 다름'이라는 말이 가장 훌륭한 브랜드에 대한 정의가 아닐까 합니다. 



O T H E R  C I T E S,  O T H E R  T H O U G H T S


정신을 차리고 친구들의 수다에 다시 합류했는데 이번에는 UV의 신곡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이태원 프리덤' 중 "강남 사람 많아, 홍대 사람 많아, 신촌은 뭔가 부족해"를 흥얼거렸습니다. '역시 UV는 달라...'라고 중얼거리면서 말입니다. UV를 아끼기에, 이들의 이 한 소절을 '거리 아이덴티티에 대한 풍자'라고 맘대로 해석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문득 거리 브랜드에는 뭔가 다른 역학관계가 함께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제 졸업 논문 주제가 '홍대 문화 정체성과 형성 과정'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2005년이었네요. 그때 논문을 같이 쓴 친구와 술파는 꽃집의 사장님, 빵의 대표님 등을 인터뷰하며 우리가 먹고 마시는 그 공간을 둘러싼 갈등과 고민을 주저리주저리 적어 놓았던 생각이 납니다. A+를 주신 서동진 선생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네, 자랑을 하고 싶었습니다.)

논문을 쓰면서도 나중에는 "뭐야, 결국 부동산 문제잖아"라고 결론 내렸던 기억입니다. 홍대라는 지역의 정체성이 만들어진 것도 임대료가 싼 지역을 찾아 아티스트들이 모여들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뿌리 내리게 했고, 덕분에 문화지구라 불리게 됐지만 그 흥미로운 곳에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려는 자본이 몰려들고, 임대료는 상승하고 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아티스트들은 또 다른 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홍대를 누가 문화지구라고 할까요, 최고의 상업지구겠지요. 그 경계가 더더더 넓어져서 이제는 홍대와 신촌, 그리고 합정을 구분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거리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부동산이라는 역학관계가 함꼐 돌아가고 있는 것은 비단 홍대나 삼청동, 가로수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멜번에서는 피츠로이(Fitzroy), 런던에서는 이스트 런던, 베를린에서는 프렌츠라우어(Prenzlauer), 스톡홀름에서는 쇠데르말름(södermalm)이 모두 같은 문제를 겪었거나 겪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는 과거 동독 시절 부촌이었던 프렌츨라우어가 지금은 여피족이나 돈 잘 버는 아티스트들의 주거 단지가 되면서 비싸지고, 베를린의 싸다는 물가를 듣고 찾아온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은 남쪽의 노이쾰른 쪽으로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임대료에 휘둘리는 삶을 참을 수 없자, 임대업자들을 대상으로 시위를 하도 한답니다. 베를린은 타헬레스(kunsthaus tacheles, 가난한 아티스트들이 폐건물을 불법 점거해서 그곳에서 작업을 하며 예술의 성지가 된 곳, 그러나 지금은 관광지에 가까운)를 탄생시킨 정신을 가진 도시니 이런 적극적 활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멜번에서는 피츠로이의 브런즈윅(Brunswick st.), 스미스(Smith st.), 거트루드(Gertrude st.) 스트릿 부근이 그렇습니다. 피츠로이는 런던의 브릭레인(Brick lane)처럼 이민자들이 살던 동네에 아티스트들이 모여들면서 소규모의 갤러리나 독특한 바, 카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hot하다는 바나 카페들이 즐비합니다. 하지만 임대료는 점점 상승하고 그 임대료를 감당할만한 부자들이 원주민(?)들을 몰아내는 전형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다보니 컨텐츠에 자신이 있는 곳들은 비싼 임대료를 일부러 감당하면서까지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으니 쌩뚱맞은 곳에 둥지를 트는 경우도 많습니다. 멜번 최고의 라테를 맛보게 해 주었던 오마르앤더마벌러스커피버드(omar and the marvellous coffee bird)나 옥션룸(Action Room), 코인론드리(coin laundry) 모두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언제나 찾는 사람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멜번에 머무는 동안 하루는 피츠로이에서 놀다 왔다고 하자 하우스 메이트였던 멜번에서 오래 산 태국 친구가 유튜브 동영상을 하나 보여줬습니다. "그거 알아? 브런즈윅에도 페이크(fake)들이 많아"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브런즈윅에는 '브런즈윅 스타일'로 꾸며 놓고 오리지널, 그러니까 가난한 아티스트가 자신의 정신세계를 담아 쿨 하게 만든 카페나 숍, 인척 하는 곳들이 많답니다. 그래야 클러스터 효과를 봐서 비싼 임대료에 대한 보상을 조금이나마 받을테니까요. 아래의 뮤직비디오의 일부는 그들을 비꼬고 있답니다.






최근 다시 이 영상을 보며 가사를 함께 봐도 100% 이해할 수 없는 걸 보니, 멜번 사람들의 일상을 모르고서는 이 뮤직비디오를 봐도 피식 웃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곡을 만든 The bedroom philosopher는 코미디언이자 저널리스트이자 풍자가입니다. 이 사람의 짧은 인터뷰를 찾아보니 미국 문화, 영국 문화에 쌓여 정작 호주다움을 못 찾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아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세 번째 앨범은 멜번의 86번 트램 루트를 따라가며 얻은 영감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86번은 개발 붐이 불고 있는 도크랜드와 멜번CBD, 피츠로이를 지나 저 북쪽의 노스코트(Northcote)까지 가는 트램입니다. 다양한 이민자에서부터 비즈니스맨, 아티스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트램이니만큼 멜버니언들의 정체성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은 트램입니다. 하지만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아니라 자학 개그에 가깝습니다. 최근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이 생각났습니다. 덕분에 이 앨범은 멜번, 그리고 호주 사람들의 상당한 공감을 얻은 이 앨범은 2010년 멜번 코미디 페스티벌과 각종 호주 음악 어워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나 봅니다. 



거리가 가진 정체성으로 돈을 버는 임대업자가 있는가 하면, 이렇게 사람들을 웃게하고 동시에 생각하게 하는 아티스트도 있습니다. 






Sep 24, 2011

[brand] 금요일을 기념하야, 금요일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 쇼핑 가이드





프라이탁의 로고
무료로 빌려주는 픽시 바이크와 프라이탁을 유명하게 만든 메신저 백



Heute ist Freitag!
Today is Friday!
오늘은 금요일 입니다!


매주 있는 이 흔하디 흔한 금요일을 기념하야, '금요일(독일어로 프라이탁, Freitag)' 브랜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프라이탁은 제가 로모만큼 좋아하는 브랜드입니다. 태생이 착하고, 디자인이 쿨하고, 하는 짓이 멋진 브랜드랄까요.


+프라이탁이 어떤 브랜드인지 더 궁금하다면, 또 다른 포스팅 '프라이탁을 소개합니다'를 참고하세요. 


그래서 여행하는 동안 자제하고 있던 쇼핑이란 걸 하고야 말았습니다. 한 달 동안 북유럽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하기에 무거운 건 종이 한 장이라도 버리고 있는 요즘, 무언가를 사서 짐을 늘이는 건 큰 부담이지만, 그래도 독일을 떠나면 (온라인이나 10꼬르소꼬모와 같은 비싼 편집 매장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다시는 프라이탁을 사지 못할 것 같아서, '선물'이라는 적절한 핑계를 찾아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새로운 라인인 프라이탁 레퍼런스(Freitag Reference)의 가방이나 노트북 파우치를 사고 싶었지만, 무게 최소화의 원칙에 따라 (사실은 낮은 가격 우선 원칙에 따라) 카드 지갑 세 개를 질렀습니다. 아이폰 케이스도 예쁘게 나왔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은 아이폰 4를 위한 케이스 밖에 없어서 만지작 거리기만 하다 포기했습니다. 곧 아이폰 5가 나온다고 하니까요.


원래는 베를린을 떠나기 하루 전 날 베를린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세 개의 디자인을 골라 놓았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사지 못해서 코펜하겐으로 오는 동안에 환승지였던 함부르크에서 대신했습니다. 운명이었는지 유럽에 7개 밖에 없는 매장이 함부르크에 있었습니다. 베를린 매장에서 본 제품과 꼭 같은 것은 없었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만약 프라이탁에서 무언가를 살 일이 있다면 주의하세요. 프라이탁에 완전히 똑같은 제품이란 없습니다. 모든 제품은 하나하나 잘라지고, 컬러 조합을 고려해서 손으로 직접 꿰매 만들어집니다. 컬러 조합이 비슷하더라도 원재료의 손상 정도나 후가공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느낌이 모두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골라 놓고 다음 번에 가서 사야지 혹은 다른 매장에서 사야지 하고 마음 먹으면, 골라 놓은 그 제품을 사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베를린 플래그십 스토어
창고이자 디스플레이 역할을 맡고 있는 한쪽 벽면





베를린에 머물면서 미테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프라이탁 매장에 들른 이유는, 이 브랜드가 고객과 만나는 접점에서는 어떨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프라이탁은 주로 온라인으로 판매 됩니다. 유럽에 6개, 뉴욕에 1개 있는 매장은 플래그십 스토어에 가깝습니다. 그들도 그렇게 부르고 있고요. 매장의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런칭 파티가 열리기도 하고 실험적인 프로모션의 현장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베를린에 도착해서 매장 위치를 북마크 해 놓고, 처음 매장을 방문한 날에는 기대가 상당했습니다. 첫 날에는 제품 구경, 인테리어 구경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지만 매니저가 저를 알아 볼 때 쯤이 되어서는 편안한 분위기 자체를 즐겼던것 같습니다. 혹시 베를린 매장 사람들만 그럴까 싶었는데, 함부르크 매장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신 제품의 광고컷을 보고 무심코 던진 질문 때문에 온 매장의 직원들이 소집되었습니다. 왜 광고 모델이 낙타인지, 낙타에 숨은 의미가 있는지, 아니면 그냥 귀여워서인지 물었는데 다른 직원들을 불러서 의미를 아느냐고 물어보며 일 분 정도 이상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매장을 나가면서 언제나 그렇듯, '난 프라이탁이 너무 좋다, 사랑하는 것 같다'라고 했더니 한 매니저는 '내가 너보다 더 사랑할껄'이라고 하기에, '내가 졌소'라며 두 손을 드는 포즈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백팩 라인을 기념하는 문제의 낙타 광고 컷 (사진: www.freitag.ch)

여러모로 멋진 브랜드입니다. 최근 놀란 것 중 하나는, 위에서 사고 싶다고 말한 프라이탁 레퍼런스 라인의 런칭 캠페인입니다. 베를린 매장에 신문같은 것들이 쌓여 있기에, 다른 매장들이 그러는 것처럼 인테리어 소품의 하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프라이탁 레퍼런스 런칭 당시에 한 달 동안 찍어낸 신문이었습니다. 매니저가 한 뭉치를 보라고 주기에 들고 와서 훑어 보고는 또 한 번 프라이탁에 반해 버렸습니다.


프라이탁 레퍼런스 소개까지 하면 저도 쓰다 지치고, 읽으시는 분들도 읽다 지치실 것 같아 따로 포스팅을 해야겠습니다.


+ 프라이탁 레퍼런스 런칭 캠페인 이야기


마지막으로 지갑을 사고 선물용이니 포장도 되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또 한 번 제 눈에서 하트를 뿜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선물용 포장은 없고 따로 담아서 밀봉해 주겠다고 하기에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공중에 달린 공업용 제봉틀 같은 기계로 드르륵 박아주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놀란 이유를 설명하자면 또 한참이 걸릴것 같지만,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브랜드 컨셉에, 그러니까 본질에,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한 브랜드임을 알 수 있는 일종의 퍼포먼스같았기 때문입니다.


함부르크 플래그십 스토어
화룡점정




프라이탁의 모든 활동은 '연결'을 상징합니다. 네 가지 각기 다른 원재료(폐비닐, 폐차의 안전벨트와 에어백, 그리고 폐 자전거 타이어의 안쪽 고무)를 바늘과 실로 연결해서 하나의 제품을 만들고, 이들의 시초는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누비는 메신저들을 위한 메신저백이었습니다.


프라이탁 형제는 탁월한 아티스트가 맞는 모양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구체화해서 표현하고 그것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작품(상품)을 팔아 돈도 벌구요. 결국 아티스트도 같은 일을 하는 것 아닐까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보부셰 디자인 워크샵의 프라이탁 형제 워크샵이 듣고 싶어 졌습니다. 과연 내년에도 이들이 참여할까요?











Sep 19, 2011

[culture] 악동 도시 베를린의 ATM party!






"어젯밤에도 여기서 파티가 있었나보네."
"응? 여기 은행이잖아."
"베를린은 어디에서도 파티를 할 수 있어. 밤에 문도 열려 있고, 춥지 않고, 공간도 넓고 좋잖아."
"농담이야, 정말이야?"
"농담삼아 ATM 파티라고 해. 그런데 진짜야. 언젠가는 밤새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파티를 한 적도 있어. 데이티켓 하나면 베를린 전체가 파티장이야."


베를린에서 만난 영국인 친구와 돈을 뽑으러 갔다가 ATM 파티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베를린은 이렇습니다. 밤이 되어 거리에 나가면 맥주 병을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습니다. 친구를 만나러 바에 가는 길이거나 오늘 갈 클럽을 찾아 헤메는 무리일 것입니다. 그리고는 "Red is new green!"이라고 깔깔대며 무단횡단을 합니다. 이렇게 자유롭지만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신나는 도시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독일'에 대한 고정관점과는 굉장히 다릅니다. 그렇지만 이건 베를린 사정입니다. 뮌헨과 같은 남쪽 도시들은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독일'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한 국경 안에서 살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은 연방 국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베를린에서 나고 자란 한 친구는 남쪽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차가 없어서 빨간 불에 건너려는데 한 아주머니께서 "아가씨, 지금 건너면 벌금이 50유로야"라고 조용히 일러주시기에 놀랐다는 에피소드를 마치 다른 나라 여행하고 온 듯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베를린의 이 공기가 너무 좋습니다. 마치 악동의 도시에 놀러온 기분입니다. 며칠 전에는 기념품 샵에 들어갔다가 재미있는 기념품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베를린스럽군'이라고 생각하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a tiny slice of Berlin







[culture] 도시 정체성을 넘어서 산업이 된 베를린의 그래피티 (Berlin and Graffiti)

로모그래피에서 나온 <베를린 시티 가이드>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지금의 베를린은 마치 70년대의 런던, 80년대의 뉴욕과 같다. 여기는 자유의 공기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이게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베를린에서 3주 정도 지내고 나서 이 문장을 읽고는 '바로 이것!'이라며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내리칠 뻔 했습니다. 지금의 베를린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문장을 발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가장 먼저 베를린의 그래피티를 떠올리지 않을까 합니다.

처음 이 도시에 와서 놀란 것은 '파리의 그래피티는 애교'라는 생각이 들만큼 스케일이나 수준이 스트릿 '아트'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위의 두 사진이 주로 (베를린에서 찍은) 파리 스타일의 그래피티입니다. 물론 런던에서도 브뤼셀에서도 더블린에서도 지하철 역이나 외진 골목에서 이런 타이포 위주의 그래피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파리 스타일이라고 한 건, 파리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었고 사람이 어떻게 올라갔지 싶을 만한 곳, 이를테면 5층 건물 높이의 외벽이나 고가 도로의 옆면이나 아랫면과 같은 곳에도 이런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북역 근처에서는 런던이나 더블린에 비하면 아티스틱한 그래피티들을 보고 깜짝 놀라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베를린은 일단 그 스타일이 다양합니다. 처음에는 벽을 캔버스 삼아 아티스트들이 그림 연습을 하나 싶은 순수한(?) 상상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용도도 다양합니다. 단순한 장식용부터, 안내판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개인 블로그를 홍보하기도 합니다. 유리창에 그려진 그래피티는 스테인드 글라스 같기도 합니다. 







아래 사진의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는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에 아티스트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해서 하나의 거대한 전시 벽이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베를린의 그래피티는 이제부터입니다.



숨은 카페와 재미있는 샵들이 많은 Kreuzburg의 Oranien Strasse 입구에서 발견한 베를린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그래피티입니다. 멀리서 봐도, 가까이에서 봐도 압도적입니다.


베를린 북쪽의 Prenzlauer 지역의 마우어 벼룩시장이 서는 동네의 그래피티 입니다. 나이키에서 아티스트를 고용해서 그린 그림인가 싶기도 하지만, 가장 윗 부분에는 Welcome to Berlin이라고 써 준 센스에 미소짓고 말았습니다.


Jannowitzbrucke 역과 Ostbahnhof 사이 슈프레 강 건너편에 자리잡은 재미있는 공간, Kater Holzig의 한 쪽 벽면입니다. 날씨 좋은 날 강 건너에서 봤을 때에는 귀여웠는데, 비오는 오늘날 바로 앞에서 보니 좀 공포스럽더군요.


Friedrichshain과 Kreuzburg 사이의 Schlesische Strasse에 있는 재미있는 이 그림은 금 시계 겸 수갑을 찬 남자가 넥타이를 매고 있고, 오른쪽의 두 사람은 서로의 마스크를 벗기려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 멋대로 이름 없는 아티스트가 무언의 메시지를 남긴 그래피티라고 생각하고는 매우 감격했었는데, 알고보니 유명한 그래피티 아티스트 Blu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하긴 저 정도의 그림을 그릴 정도면 몇일 밤낮은 그렸어야 할테니 뱅크시 식의 게릴라 그래피티는 불가능 했겠죠.


Schlesische Tor 역에서 나오면 보이는 재미있는 그래피티 입니다. 일본 스타일의 일러스트같기도 한데 자세히 한참 들여다 보고 있으면 무언가 독특한 스토리가 튀어 나올 것 같습니다.


Prenzlauer Burg에서 Mitte로 걸어가다 발견했습니다. 저 글자들은 무슨 의미일까요? 창문도 없는 이 폐 건물에 왜 이런 그림을 그려 놓았을까요?


이렇게 베를린의 벽들은 그래피티로 가득합니다. 그들 스스로도 이 거리 그림들이 장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다른 도시와 다르게 기념품 샵에 가면 베를린의 주요 관광지 엽서와 나란히 멋진 그래피티를 찍어 놓은 엽서들을 팔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베를린스럽다'고 느끼기 때문이겠죠.


스트릿 아트의 신화적 인물이라고 하면 될까요? 런던의 스트릿 아티스트 뱅크시(Banksy)도 미테 지역에 흔적을 남겼다고 하고, 어떤 이는 이런 베를린의 거리를 보고 'bombed city'라고 이름 붙여줬다고 합니다. 정말 거리를 걷다보면 스프레이 폭탄에 습격이라도 받은듯 합니다.

어제는 베를린에 사는 친구에게 그래피티는 불법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받는 가장 많은 질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질문이라며 준비된 듯한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물론 불법이지만 시에서 강력하게 제지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는 것이 대답이었습니다. 베를린 시도 알겠죠? 이제 그래피티는 베를린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Antigraffiti Task Force라는 것도 운영하고 있고요. 이거야 말로 전시 행정인가요?

궁금해져서 조금 더 찾아보니, 이제 베를린의 그래피티는 자유의 표현 혹은 정치적 슬로건 보다는 '산업'에 가깝다고 합니다. 만약 이 불법행위를 강력하게 제지하면 베를린 관광 산업뿐만 아니라 스프레이를 파는 로컬 샵들이 다 죽어 나갈 것이라는 재미있지만은 않은 글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로모그라피 베를린 시티 가이드의 첫 문장을 생각해 보면, 과거의 런던과 뉴욕같이 지금의 베를린도 언젠가는 다른 도시에게 그 역할을 내 줄 것입니다. 아티스트들이 모여 도시에 생기를 불어 넣고 그 생기를 찾는 사람들이 모여들면 돈도 따라 모여들테고, 그렇게 되면 가장 먼저 임대료가 비싸지고 생활 물가도 올라가겠죠.

요즘은 건물주들이 건물의 홍보를 위해서나 건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그래피티 아티스트에게 돈을 주고 벽을 맡기기도 한답니다. 몇몇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손을 걷어 붙이고 그림을 팔고 있기도 하고요. 이렇게 비단 그래피티의 상업화만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도시가 커나가는 속도를 보면,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이 베를린으로 모여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싼 물가' 때문이라고 하는데 왠지 이럴 날도 오래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베를리너들도 알고 있는지, 미테의 유명한 타헬레스(kunsthaus tacheles)의 한 쪽 벽면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습니다. 불안함인지 체념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그들 그리고 베를린이 얼마나 갈 것인가에 대한 자문이 아닐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