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27, 2012

[culture] 멜번, 런던, 파리의 공공 도서관 이야기


Melbourne State Library


아프리카의 투와레그 족에는 '한 명의 노인이 죽는 것은 하나의 도서관이 불 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중고등학교 때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한 귀로 흘려버리게 된 핵가족화라는 것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배울 지혜를 책에 의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책에 많은 빚을 지고 있지요.

이 블로그에서도 소개한 뉴욕도서관 100주년 기념행사에 앞서 도서관의 디렉터는 한 인터뷰에서 도서관에 대하여 이런 말을 남긴적이 있습니다. "You walk inside and suddenly you feel anything is possible. And there are so many real treasures inside." 실제로 여행을 하다 지쳐갈 때 즈음에 도서관에 가서 사진집이든 여행책이든 잡지든 무엇이라도 집어들고 책장을 넘기고 있다 보면 어느새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요즘 한국의 도서관들은 책을 보러 가는 곳이 아니라 공부할 자리를 맡으러 가는 독서실이 되어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동시에, 사회의 자정작용을 믿는 제게 들려온 최근 파주 출판단지의 한 도서관 이야기는 반가웠습니다. 그 도서관은 도서관의 본질을 회복하겠다는 의미로 부러 열람실 없는 도서관을 열었다고 합니다.

야구 구단 마케팅 팀에 계시는 선배님의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나라의 입시 정책과 노동 정책이 바뀌면 프로야구 시장은 완전히 변할거야." 이 둘이 바뀌면 비단 프로야구와 도서관뿐만 아니라 뭔들 안 바뀔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며 즐겨 찾았던 도서관들을 소개합니다. 도서관은 여행자에게 생각보다 유용하고 흥미로운 공간입니다. 대부분 무료 와이파이가 지원되고 그 도시의 여행책자나 한국에서 찾을 수 없는 책들이 발견되가도 하며 왠지 로컬들의 일상을 엿보고 있는 기분도 듭니다. 여행이 지루해질 즈음이라면 도서관에 들러보세요.


멜번 주립 도서관 (Melbourne State Library)
멜번은 유네스코 창의도시 중 문학의 도시입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건너온 문학가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곳이며 덕분에 초기부터 출판업이 번성했고, 시드니보다 '문학적'인 도시로 통합니다. 이 도시의 특색을 알지 않더라도 여행자로서 멜번에 간다면 멜번 주립 도서관은 들를만 한 곳입니다. 이 도시의 많은 젊은이를 만날 수 있고, 아무런 제지없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료 전시나 공연도 종종 열리니 홈페이지나 도서관에 비치된 책자를 보고 그 날의 행사에 놀러가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무료 인터넷을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입니다. 

1층 입구 맞은편 끝의 예술의 방은 사진집과 그림집을 마음껏 볼 수 있고, 3, 4층의 열람실은 고풍스러운 나무 책상과 의자에 앉아 우아하게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동서양을 막론하고 엎드려 자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또한 입구 왼쪽의 Mr. Tulk라는 카페는 커피와 음식이 무난하고 위치가 좋아 주말에는 거의 자리가 없으니 여유로운 시간대에 들러보세요. 

멜번 시립 도서관 (Melbourne City Library)
시립 도서관은 주립 도서관에 비하면 단독 건물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규모도 작지만 왠지 아담해서 또 다른 분위기를 냅니다. 그런데 시립 도서관에는 책을 보러 가기 보다는 약속 장소로 활용하거나 1층의 분위기 좋은 카페 저널(Journal)을 더 많이 이용했네요.

시드니 커스텀 하우스 (Sydney Custom House)
호주의 도서관들은 대부분 대중에게 오픈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나다 쉬거나 책이나 잡지를 보기에 좋습니다. Circular Quay 근처 커스텀 하우스는 책도 책이지만 1층의 잡지와 신문 코너가 좋습니다. 호주에서 발행되는 거의 모든 신문과 잡지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분위기도 좋달까요.

런던 대영 도서관 (British Library)
브리티스 라이브러리는 안타깝게도 여행자에게는 출입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영국 거주자 혹은 외국인 중에서도 조사의 목적이나 특별한 허가를 받은 사람에게만 오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찾은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많아서였지만) 1층 박물관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본이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노트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헤드폰을 끼고 성우가 그것을 읽어주는 것을 듣는 재미가 있습니다. 마치 할머니가 어린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자상하고 때론 드라마틱한 목소리로 읽어 줍니다. 

이 도서관은 박물관에 가까운 도서관이어서인지 출입 조건도 까다롭습니다. 모든 짐을 맡겨야 하고, 들고 갈 수 있는 문구류도 연필류로 제한되는가 하면, 사진 촬영도 금지고 등등 책을 잘 보존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대영 도서관을 제외한 공공 도서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어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에 좋습니다. 가방 검사를 하긴 하는데, 그것은 음식물 반입 때문입니다. 숙소 근처에 있던 켄징턴 공공 도서관에 종종 찾았는데 놀란 것은 그들도 자리를 맡기 위해 새벽같이 도서관에 간다는 것입니다. 

파리 국립 도서관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파리 국립 도서관은 미테랑 도서관으로 더 유명합니다. 문화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미테랑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파리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베르시 공원에 들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La Cinematheque Francaise) 구경을 하고 작은 다리만 건너면 국립 도서관입니다. 

이화여대 ECC를 설계해서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가 책을 네 권 세워놓은 형태로 지은 건축물 자체도 멋집니다. 이곳 역시 회원카드가 있어야 열람실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책을 보기에는 무리지만 워낙 건물이 웅장해서 건물 구경만 해도 흥미롭습니다. 카페테리아 정도는 이용할 수 있으니 현지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맛도 있습니다. 파리지앵들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모습은 잘 상상이 안 갔는데 이 곳에 가니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가득한 것도 의외였습니다.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Jan 25, 2012

[culture] 태양을 피하지 않는 방법

LSE, London
Metropolitan, London 
Metropolitan, London
Commercial bar, London

이 사람들, 왜 이러는 걸까요? 

런던에서는 길을 걷다가 종종 이런 풍경을 마주하곤 합니다. 한 곳에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 있습니다. 주변은 한적하고 그 곳에서 파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서 있기도 하고 바닥에 앉아 있기도 합니다. 런던정경대(LSE) 캠퍼스 안이든, 소호 한 가운데든, 외진 이스트 런던이든, 노팅힐같은 주택지의 골목 안이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곳들은 펍(pub) 입니다. 영국인들이 가장 수다스러워진다는 그곳 말입니다. <영국인 발견>이라는 책의 한 챕터는 영국인들의 펍 문화에 대해 재미있게 정리해 놓고 있습니다. 영국인에게 펍의 의미, 펍에서 술 사기 룰, 대화의 룰, 단골 손님 문화 등은 관광객이 꿰뚫어 보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궁금했던 것은 왜 이들은 펍 안에 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나와서, 그것도 자리도 없이 서서 맥주를 마시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먹고 마셔야 대접받는다고 느끼는 우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영국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날씨' 때문이랍니다. 영국인은 그들 특징의 많은 부분을 날씨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저도 그 외의 답은 못 찾겠습니다. 대화의 시작도 늘 날씨 이야기입니다. <영국인 발견>에서도 아마 초반 챕터에 날씨와 영국인다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비, 으스스한 겨울과 봄 가을, 부족한 일조량 덕분에 이들은 '해 뜬 날'에 열광합니다. 영국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프랑스, 독일, 북유럽의 국가들 모두 그렇습니다. 영국 잡지 <모노클>에서 한 도시를 소개할 때 '일 년 중 해 뜬 날'로 그 도시를 설명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여러 도시를 다니며 느낀 것 중 하나는 새삼 '환경, 특히 기후'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의무교육과정 중 사회 교과서 첫머리에서 읽은 '대한민국은 사계절이 뚜렷하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여기지만 단지 이 땅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누리고 있는 것들이 상당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래 사진사럼, 날씨 좋은 날이면 공원에 누워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이 이제 더이상 이국적이라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필요에 의한 것이겠죠. 최근 읽은 책에서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의 안정을 향한 우리의 열망에 대답하기 위해서 서양의 소비 사회는 지난 50년 동안 일광욕의 개념을 정립해 왔다'

Berlin



Jan 20, 2012

[inspiration] 첼시에서 신발만 보기, 그리고 벵시몽(Bensimon)








20110525, Chelsea, London 

여행자는 생각보다 그리 낭만적이지도 자유롭지도 않습니다. 특히 도시 여행자는 더 그렇습니다. 하루 잘 곳, 먹을 것, 상점 폐점 시간, 내일 갈 갤러리 조사, 생존을 위한 현지인 친구 사귀기 등을 하다보면 내가 이 도시에 온 목적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사실 목적이랄 것도 없지만 하루살이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하루를 살다 잠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공백이 생기면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자리를 잡습니다. 커피를 한 잔 사와서 홀짝거리며 카메라 셔터를 기계처럼 눌러댑니다. 하나의 목표물을 정한 후에 말입니다. 이 방법은 전에 모시던 직장 대표님에게 배운 것인데, 신입 마케터 시절 서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돌며 사람들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신발이든, 가방이든, 손에 들고 있는 무엇이든 하나만 정해서요.

이 날의 제 목표물은 신발이었습니다. 런던에서도 부자 동네인 첼시의 사치 갤러리 옆 쇼핑가의 벤치에 자리잡고 이 동네 사람들은 주로 어떤 신발을 신나 구경을 했습니다. 힐을 신고 다니는 이는 가뭄에 콩나듯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에 집중을 하면서 우리 문화와 비교도 하고 최근 트렌드에 대한 추측도 하다보면 생각 보다 꽤 생산적인 시간 때우기가 되곤 합니다. 그리고 의외의 수확을 거둘 때가 많습니다.

당시에는 수확을 거둔지도 몰랐는데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다 보니 벵시몽(Bensimon)의 사진이 찍혀 있네요. 아래 보이는 신발이 프랑스의 국민 운동화라는 벵시몽입니다. 벵시몽이 맞는 발음인것 같은데 주로 '벤시몽'으로 알려져 있는 모양입니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많이들 신고 있고, 한국에서는 정재형을 비롯한 몇몇 스타들이 신으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컨버스와 비슷한 구석이 많은데 가격이 저렴하고 누구나 신을 수 있는 편한 신발입니다. 또한 컨버스도 그렇듯 이들의 브랜딩 활동이 눈에 띕니다. 역사로 보자면 100년 넘은 컨버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30여년 동안 이들이 성장해온 길을 보면 많은 브랜드가 참고할만 합니다.

이들의 브랜딩 이야기는 후에 이어 나가도록 하고, 오늘은 이들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벵시몽닷컴(www.bensimon.com/en)을 반년 정도만에 들렀는데, 또 바뀌어 있습니다. 이전 홈페이지 메인 페이지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었는데, 바뀐 메인 페이지도 벵시몽스럽습니다. 뭔가 오밀조밀 귀여운 이미지입니다.

왠지 모르게 프랑스 브랜드들의 홈페이지들은 마음에 듭니다. 이미 소개한 호텔 코스테(Hotel Costes)의 홈페이지처럼 감각적이고 첫 페이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가 하면 벵시몽의 경우 UX도 잘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다음 번에 벵시몽을 자세히 소개할 때는 오른쪽의 메뉴인 BOOK, ART&DESIGN, LIFESTYLE 등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미리 홈페이지에 들러 제품과 이들의 활동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것입니다.


+ 프랑스 브랜드 둘
1. 호텔코스테 : 홈페이지(www.hotelcostes.com), 관련 포스팅([brand] 파리의 레몬에이드, 코스테 형제(Costes Brothers)의 코스테 월드)
2. 메르시 : 홈페이지(merci-merci.com), 관련 포스팅([brand] 고맙게 돈 쓰게 만드는 영리한 브랜드, 메르시(merci))





Jan 19, 2012

[culture] 문화 해석자가 필요합니다.



하루에도 마음만 먹으면 수십번은 바뀔 수 있다는 듯, 보란듯 비를 뿌렸다 바람을 불게 했다 다시 해를 쨍 하고 나오게 하는 영국의 날씨. 갑자기 쏟아지는 비 덕분에 사우스 켄징턴의 스타벅스 실내는 비를 피한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라테를 한 잔 사서 이층으로 올라가서 다행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 앞자리들 역시 빈 자리 하나 없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인도인 여성이 커피를 두 잔 들고 올라와서 남자 친구로 보이는 남자가 자리잡은 테이블에 커피를 올려 놓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아마도 의자를 찾는 모양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테이블은 있는데 의자가 하나 모자란 두 사람을 위한 자리였습니다.

보통 이 경우에는 남자 친구가 함께 의자를 찾아 나서거나 옆에 와서 앉으라고 하거나 여자 친구를 앉히거나 그것도 아니면 함께 나갈텐데, 남자는 미동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선 여자는 위의 사진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이 multi-cultural의 도시 런던에서 목격한 이 장면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습니다.

문화 해석자가 필요합니다. 이 커플의 미스테리를 풀고 싶습니다.

Jan 18, 2012

[inspiration] London, The Regent Street Window Project 2011

London, Regent Street 

리젠트 스트릿은 런던의 얼굴인 중심 거리입니다. 벌써 작년이 됐군요. 작년 사진을 뒤적이다가 5월 사진들에서 리젠트 스트릿에 자리잡은 매장들 사진이 유독 많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브랜드 혹은 윈도우 디스플레이가 독특한 브랜드의 매장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를 반복하느라 길지도 않은 그 거리를 통과하는데 반나절은 걸리지 않았을까 합니다. 물론 처음이 그랬다는 것이고, 이후로도 들를 때마다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특히 아래 사진의 리바이스 매장에서 전설적인 501모델로 매장 입구에 하나의 전시물을 설치해 놓은 것을 보고, '나중에 brand commitment에 관한 글을 쓸 일이 있으면 사례로 써야겠군'하는 생각을 하며 사진을 찍었던 기억입니다.

또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매장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웠지만, 세계지도로 만들어 놓은 윈도우 디스플레이를 보며 '네셔널지오그래피 사람들은 세계 지도를 열어 놓고 일반인이 흔히 가지 못하는 곳에 가서 그 곳의 기록을 남기는 일, 그러니까 지도를 통해서 세상을 보여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이 역시 하나의 작품인 모양이군' 하고 상상해석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얼핏, 그때 보았던 regent street window project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서 조금 전에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다행입니다. 이것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상상해석으로 포스팅 하나를 꾸며냈을지도 모릅니다.

2011년 5월은 RIBA(Royal Institute of British Architects)와 리젠트 스트릿 연합(Regent Street Association)이 협업하여 2010년에 이어 두번째 리젠트 스트릿 윈도우 프로젝트(Regent Street Windows Project)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RIBA의 건축가들과 리젠트 스트릿에 자리잡은 브랜드가 손을 잡고 그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전시물을 함께 기획 전시한 것입니다. 아티스트들에게는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브랜드에게는 신선한 방법으로 자사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흥미로운 프로젝트입니다.

런던은 도시 정체성을 아트 런던(Art London)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단지 유명 갤러리나 작가들을 모셔오고 홍보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아트 런던을 만드는 아티스트들이 공부하고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에도 다른 도시보다 앞서 있습니다. 올림픽 특수가 있는 올해를 대비해서 트레이시 에민과 같은 유명 스타 아티스트와 신인 아티스트를 올림픽 광고 모델로 기용하는가 하면, 스텔라 맥카트니에게도 올림픽 홍보 동영상 촬영을 맡겼습니다. 동시에 이런 아랫단의 작은 아트 프로젝트들이 계속 자라날 수 있는 토양도 만들어서 '한때의 아트 런던'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아마도 1990년대 말에 뮤지컬 산업을 육성하면서 '문화(창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에서 쌓인 노하우도 꽤 있을 것입니다. (예전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웨스트 엔드에는 새로운 뮤지컬이 올라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기대됩니다. 이번 런던 올림픽도, 그 이후에 런던이 얻게 될 '아트 런던'이라는 도시 정체성의 결과도 말입니다.


National Geographic
National Geographic
Macbook Air Window Display, Apple Store

Jan 16, 2012

[brand] 선정적인 미국 옷, 아메리칸어패럴(American Apparel)의 정체 4. 도브 차니






아메리칸어패럴의 광고컷입니다. Fashionable Basics, Sweatshop Free, Made in USA로 자신을 소개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Sexy 혹은 y를 뺀 그것입니다. 다행히 위 광고는 다른 광고에 비하여 배경 덕분에 이들이 지향하는 바를 조금 눈치챌 수 있습니다.


모델의 뒤로는 한 빌딩이 보이고, 엉덩이 사이로 보이는 글씨로 보아 이곳이 아메리칸어패럴의 공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빌딩 위에는 "LA를 합법화시키자(Legalize LA)"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아마도 당시 LA 근교의 수많은 Sweatshop을 비꼬고 자신의 공장에는 불법적인 노동 이슈가 없음을 밝히며 상대적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LA 다운타운에 자리잡은 공장의 탑 배너는 이뿐만 아니라 "아메리칸어패럴은 하나의 산업 혁명이다(American Apparel in an Industrial Revolution)" 그리고 "이민 개혁운동 중!(Immigration Reform Now!)"과 같이 패션회사와 어울리지 않는 정치적 구호가 걸려있곤 합니다. 


위 이미지를 아메리칸어패럴의 아이덴티티를 잘 보여주는 광고컷으로 고른 이유입니다. 창업자 도브 차니는 sexy와 politics를 적절히 브랜딩에 활용하는 영리한 경영자입니다. 아메리칸어패럴의 아이덴티티는 도브 차니와 꽤 밀접해 보입니다. 그와 관련된 뉴스를 검색해보면 (그의 변태 행각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지만) 그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이런 사람이니 이런 브랜드를 20년이 넘도록 경영하고 있겠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4. Dov Charney

애플이나 탐스슈즈 등 일시적인 마케팅이 아니라 브랜딩에 성공한 브랜드를 보면, 창업자의 철학이나 아이덴티티가 그대로 반영된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런 브랜드(경영자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큰)의 경우, 그 리더가 사라짐과 동시에 휘청하게 된다는 취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분명한 색깔을 내는데 이보다 더 좋은 전략(?)도 없습니다. 따라서 아메리칸어패럴을 알기 위해서는 도브 차니에 대해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의 홈페이지 도브차니닷컴(dovcharney.com)은 그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가족사에서부터 학창시절 영향을 준 선생님 이름과 수업 내용, 초기 사업에 영향을 준 친구들과 몬트리올의 유명한 베이글 이야기까지 소소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는 건축가인 아버지, 아티스트인 어머니,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 어린 시절에 다닌 대안 예술 학교의 영향으로 미적 감각을 키웠을테고, 유대인 집안이었던 것으로 보아 어린 시절부터 생존과 관련된 경제 관념에 눈을 뜨고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또한 불어가 공용어인 캐나다 퀘백주의 몬트리올 출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몬트리올과 뉴욕을 오가는 것이 일상이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그가 '경계와 국경'에 집착했다고 회상합니다. 


이런 사실의 나열에 지나지 않고 몇몇 이슈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히는가 하면, 넌지시 그의 성(性) 관념이나 이민 정책에 대한 입장을 읽는 이로 하여금 눈치채게 합니다. 유대인이자 독특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퀘백주 출신의 미국 이민자로서 밝히고 있는 민족주의나 보호무역주의 등에 대한 생각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그의 기행동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인간을 둘러싼 사회와 문화가 개인 정체성에 (나아가서 브랜드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을 하던 차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장이 철저한 계산에 의한 것일 거라는 의심은 놓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성적 자유에 대한 아티클을 써 왔다고 적어 놓았지만, 어린 직원들에 대한 성희롱 건으로 번번히 고소를 당하며 합의금으로 해결하거나 회계 장부상의 문제를 붉어지게 한 그가 미심쩍습니다. 그의 글을 읽고 있다보면 자칫 '이런 똑똑한 인물이 이런 짓을 한데에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거야'라는 생각으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영리한 인물임은 틀림없습니다. 

사회적 기업, 기업의 윤리성이 대두되기 전에 그것으로 주목을 받고, 모두가 그 흐름에 주목하자 이번에는 '그것이 뭐 별거'라는 듯 다른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서 기업을 더 키우고 있는 도브 차니, 지난 글에서 악동같은 창업자가 만든 악동같은 브랜드에 남겨둔 세 가지 의문에 이제 답을 시작합니다. 

1. 아메리칸어패럴은 Fashionable Basics를 만든다고 말하면서, 이 컨셉의 본질은 Basic이 아니라 Sexy입니다. 왜일까요?


이 브랜드는 무엇인든 대 놓고 하는 건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린 섹시해요'라고 말하고 섹시를 컨셉으로 한다면 얼마나 촌스럽습니까. 그래서 패셔너블한 베이직 스타일이라고 말하지만 모두 그것이 섹시함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들 정치적인 문구를 브랜딩에 활동하기 시작하자 한 발 빼서 이민 정책이나 노동 문제로 자사 홍보를 하지 않은 이유도 같다고 봅니다. 남들이 다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동시에 남들이 안 하는 것 중에서 돈이 될만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마치 세스 고딘의 최근 저작 <이상한 놈들이 온다(대중의 죽음과 별종의 탄생)>에서 말하는 별종(별종 브랜드)이 바로 도브 차니와 아메리칸어패럴일 것입니다. 새로운 정상(별종)을 새로운 도덕으로 만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선정적인 광고에 대하여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이 별종 사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메리칸어패럴은 Youth Culture을 담고 있고, 그 중 Sex는 참 중요한 부분이다.” 이 한 마디로 아메리칸어패럴은 또 다시 보이는 것 이면에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는 브랜드로 포장 되었습니다. 단지 섹스가 아니라 유스컬처를 이해하는 브랜드가 된 것이지요. 명민한 별종입니다.

2. 하지만 최근 아메리칸어패럴은 1,500명의 불법 체류자를 해고해야 했습니다. 덕분에 경영 악화는 가속화 되었습니다. 왜일까요? 도브 차니는 천사의 탈을 쓴 악덕 기업주였을까요?


이전 글에서 말했듯 아메리칸어패럴은 최상의 노동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며, 매년 5월 1일에 이민자 퍼레이드에 직원들이 참가하는 것을 허용하기 위해 그 날을 휴일로 두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이민 정책에 관심이 많은 (그 역시) 이민자입니다. 그래서 최근 경영악화의 원인이기도 했던 1,500명 직원 해고와 1,000여명의 퇴직은 의외였습니다. 이 기업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는 이민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홈페이지를 통해서 추측할 수 있었는데, 도브 차니는 일관되게 이민자들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대우해 주는 것이 좋은 '전략'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니 부러 불법체류자를 고용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시 정권부터 오바마 정권까지 변해 온 이민 정책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보니, 그 변화의 피해자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바뀜에 따라 분명 더 나아지는 것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희생양도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한국 언론 상의 보도는 '불법체류자 고용'으로 났지만, 현지에서는 정부 정책과 관련되어 많은 언론이 이 브랜드를 헐뜯고 돕고 하며 시끄러웠던 모양입니다. 해고된 불법체류자들은 오바마 정권 이전에는 합법 체류자였던 것이지요.


3. 그는 왜 이민자이면서 Made in USA를 메인 슬로건으로 삼아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들었을까요? 심지어 이름도 '미국 옷'으로 지어가며 말입니다. 어떤 이는 아메리칸 드림을 파는 브랜드라고 평하기도 하는데 그럴까요?


한 자료에 의하면, 그가 어려서부터 미국 문화의 열광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름도 '미국 옷'이라 짓고,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메리칸어패럴은 결국 아메리칸드림을 판다며 말이죠. 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이것 역시 전략일 뿐입니다. 미국이라는 더 큰 시장에서 더 나은 사업 조건(이를테면 값싼 노동력과 넓은 부지, 사업자에게 더 유리한 정책)을 만들고, 더 많이 팔기 위한 전략. 왜냐하면 그는 고향인 몬트리올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밝히고 다니는가 하면, 캐나다의 한 잡지에서는 그를 자랑스러운 캐나다인으로 소개하며 아메리칸어패럴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캐내디언 해리티지'라고 꼽고 있기 때문입니다. 


등등으로 미뤄보아, 아메리칸어패럴은 도브 차니 개인의 역사, 철학, 정체성 등에 상당 부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지고 있고, 그가 없는 아메리칸어패럴이 벌써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극단의 도덕함과 극단의 부도덕함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지만 알아 갈수록 흥미롭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한 책에서 저자가 도브 차니를 만난 후 이 브랜드에 대한 생각을 적어 놓은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많이 옮겨 적는 것이 괜찮지 않은 것은 알지만, 롭 워커가 쓴 노란색 표지의 <욕망의 코드>에서 가져왔으니 더 궁금하신 분은 책을 참고하세요. 따옴표 안은 도브 차니의 말, 그렇지 않은 부분은 저자인 롭 워커의 말 입니다.




“의류업계에서 노동력 착취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의류 제조업체들이 지나치게 로고의 힘에 의존한 나머지 품질에 신경을 쓰지 않고 저비용으로 아웃소싱함으로써 야기되는 제반 문제를 참고 있기 때문이다.”
(...)
차니가 스웨트엑스에서 얻은 산 교훈은 기업의 윤리적 관행 위주로만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이 소비자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좋은 전략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윤리적 판매는 지나치게 제한되어 있다. 말하자면 윤리적 판매는 기껏해야 틈새 전략에 불과했다. 아메리칸어패럴이 윤리적 판매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 그는 틈새시장이 아니라 한 세대 전체를 원했다. 요컨대 ‘젊음과 섹스였다. 
(...)
이 회사가 ‘반착취적 공장’ 상표 전략을 썼다면 이뤘을 성장보다 차니의 방식에 따라 훨씬 더 큰 브랜드가 되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팀버랜드나 메소드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칸어패럴은 윤리적 이미지를 구축하기보다는 윤리적 제품을 만드는 일에 더 신경을 쓴 모범적인 기업이다.
(...)
물론 가능한 널리 상품을 판매하는 일에도 신경을 썼다. 처음 차니와 이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을 때, 그는 로버트 그린의 <권력의 법칙>을 꺼내어 열세 번째 법칙을 읽어주었다. 그 책에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자비심에 호소하지 말고 그들의 이기심에 호소하라”는 말이 있었다. 그는 책을 덮으며 “이게 바로 반착취 공장의 문제다. 자비와 감사를 구걸해 소비자들이 매장으로 걸어 들어가도록 할 수는 없다. 윤리적 제품이든 아니든, 뭔가를 팔고 싶다면 사람들의 관심에 호소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Jan 13, 2012

[brand] 선정적인 미국 옷, 아메리칸어패럴(American Apparel)의 정체 1. 2. 3.


매달 하나의 브랜드 이야기로 꾸며지는 <매거진 B>의 이번 호 주인공은 일본의 캠핑 용품 브랜드 스노우 피크(snow peak) 입니다. 1호의 프라이탁, 2호의 뉴밸런스에 이어 스노우피크라니, 역시 다음 호가 기대됩니다. 프라이탁은 이미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번 소개했을만큼 좋아하는 브랜드이고, 뉴밸런스는 스티브 잡스의 신발이기도 하지요. 이번 스노우피크는 소문만 익히 듣고 직접 체험해 보지 못해서 더욱 궁금합니다. 잡지 이야기는 이번 호를 보고 나서 자세히 이어 나가겠습니다. 


제목에서 이미 아메리칸어패럴(American Apparel)과 관련된 내용일 것임을 넌지시 이야기 하고는 <매거진 B>로 시작한 이유는 아메리칸어패럴 역시 브랜드 이야기로 한 권의 책은 충분히 만들고도 남을만큼 흥미진진한 브랜드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칸어패럴이 media-friendly는 아닌것 같아 걱정이기는 합니다만, 언젠가 <매거진 B>에서 아메리칸어패럴 이야기를 다뤄주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있겠지요. 


American Apparel, Paris 
American Apparel, Dublin


그럼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봅니다. 아마도 이 브랜드 역시 프라이탁만큼이나 긴 여정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게 aa로 불리는 두 개의 브랜드가 있습니다. 두 개 모두 좋아하는 브랜드인데, 하나는 의류 브랜드 아메리칸어패럴(American Apparel)이고 나머지 하나는 홍대의 카페이자 리빙숍 aA디자인뮤지엄입니다.


aA디자인뮤지엄이 오랫동안 준비한 리빙숍을 오픈했다고 하는데 아직 가보지 못했으니, 다녀온 후에 이야기를 풀어 놓는 편이 낫겠습니다. 아메리칸어패럴의 경우 대학 때부터 애용한 브랜드입니다.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은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티셔츠 브랜드로 시작해서 지금은 바지, 셔츠, 수영복 등 衣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팝니다. 저는 주로 이너웨어나 액세서리를 구입하게 되는데 레깅스든 양말이든 속옷이든 꽤 오랫동안 입게 됩니다. 남자분들의 경우 셔츠 퀄리티를 높게 평가합니다.

가끔 (경제적 여유가 없더라도)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홍대나 명동의 매장에 들릅니다. 새로나온 제품도 보고, 직원들의 스타일도 살피고, 쇼핑온 사람들도 힐끔거려 봅니다. 자사 제품으로 스타일링을 한 무표정한 직원들과 그들처럼 입고 있는 손님들, 공간을 채우고 있는 마네킨과 음악이 '참 아메리칸어패럴스럽'습니다.

혹자는 아메리칸 어패럴스럽다를 '야하다, 변태같다, 퇴폐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아니, 혹자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으로 수정하겠습니다. 실제로 선정성 논란도 많습니다. 그것의 호불호는 갈리지만 섹시함을 컨셉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입니다. 저는 이 분명함이 좋습니다.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 섹시하며, 그 컨셉에 충실한 이 브랜드가 저는 쿨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풀오버 광고컷 입니다. 그런데 시선은 내 목을 따듯하게 감싸줄 풀오버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비단 남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래의 광고컷은 란제리 광고니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티셔츠 광고 하나도 결코 기능에만 호소하지 않습니다. 






아메리칸어패럴의 홈페이지(www.americanapparel.net)에 가면 이들의 퇴폐적(?)인 광고를 맘껏 감상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민정책이나 노동환경과 관견된 정치적 메시지가 발견되어도 놀라지 마십시오. 저도 그랬지만, 이 브랜드는 하나 하나 알아 갈수록 재미있는 사실들이 눈 앞으로 튀어 올라 깜짝 놀라게 합니다. 아메리칸어패럴 코리아가 적극적인 PR을 하지 않아서일까요? 


여하튼 홈페이지에서 말하는 자사의 아이덴티티 키워드 세 가지가 이 브랜드를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Fashionable Basics, Sweatshop Free, Made in USA입니다. 종종 브랜드 아이덴티티(브랜드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정체성)와 브랜드 이미지(소비자가 생각하는 브랜드 정체성)의 괴리가 있는 브랜드가 있는데, 아메리칸어패럴은 그런 의미에서 그 격차가 크지 않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에 하나 더, 창업자 도브 차니(Dov Charney)를 추가하고 싶습니다.

1. Fashionable Basics

언젠가 온라인에서 '아메리칸어패럴의 옷을 입고 예쁜 엉덩이 컨테스트에 참여하세요'라는 프로모션을 봤습니다. 파리에 있는 동안은 'American Apparel Summer Camp'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세일 파티 광고도 봤습니다. 매장에 와서 술이나 진탕먹고 30% 세일하는 속옷도 사고, 술마신 김에 쇼핑이나 하자는 광고였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매장을 통해서밖에 이 브랜드 소식을 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품과 매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느낌 정도로만 아메리칸어패럴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데,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보니 이 브랜드는 '정체가 뭐야?'라고 중얼거리게 되는 악동같은 브랜드였습니다. 

'패셔너블한 기본 아이템'을 지향하는 아메리칸어패럴은 옷에 로고를 새겨 넣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는 유니클로와 닮았습니다.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디자인부터 생산, 유통까지 한 번에 하는 의류 제조업체를 이르는 말로, 디자인만 해서 생산은 아웃소싱을 하는 대부분의 의류 업체와 달리 초기 투자 비용은 상당하지만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된다. ZARA, H&M 등 대부분의 패스트패션 브랜드는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에 저렴한 가격대를 유지할 수 있다.)라는 점, 컬러 베리에이션에 강점이 있다는 점, 가격 대비 퀄리티가 좋다는 점도 비슷하군요.

그렇지만 유니클로와 다른 점은 아메리칸어패럴에는 SEXY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입니다. '모두를 위한 옷'을 만드는 브랜드가 유니클로라면 아메리칸어패럴은 '패션의 완성은 몸매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젊은이들에게 어울리는 옷을 만듭니다. 물론 XXL의 옷도 생산되지만, 아메리칸어패럴의 XXL는 타 브랜드의 XL라고 보면 됩니다. 몸에 완전히 피트된 옷을 소화하고 있는 광고 모델들을 봐도 이들이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습니다. 

광고 모델 이야기까지만 한다면, 아메리칸어패럴의 광고 모델들은 창업자이자 CEO 도브 차니와 동료들이 길거리 캐스팅을 한 일반인이거나 매장을 찾은 손님 중에 선발된 사람들입니다. 홈페이지에 직접 자기 사진을 보내서 선발되는 모델도 있고, 광고 모델 중 일부는 실제 포르노 모델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메리칸어패럴은 SEXY의 다른 말을 Fashionable Basic이라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2. Sweatshop Free

Gluten Free, Duty Free, Alcohol Free는 익숙합니다. 그런데 '스웻샵(Sweatshop)이 없다'는 Sweatshop Free는 뭘까요? Sweatshop이란 저임금 노동력을 착취하여 원가를 낮추고 이익률을 높이는 일부 악덕기업, 특히 의류계에 만연한 노동착취를 비유하는 말입니다. 뜨겁게 돌아가는 기계에 둘러싸여 땀 흘려가며 종일 일하는데 (1990년대 기준) 한 시간에 1달러도 벌지 못하는 의류계 노동자들이 아메리칸어패럴에는 없습니다.

사실 이것이 처음 아메리칸어패럴을 유명하게 만든 슬로건입니다. 도브 차니는 아메리칸어패럴이 성장하던 초기 시절에 작은 예술 잡지에 '노동 착취 없음'이라는 문구와 함께 광고를 실었습니다. 하나 더, '사람들을 골탕먹이는 브랜드를 골탕먹이자'라는 광고도 있었다고 하는데, 원문이 뭐였는지는 검색이 안 됩니다. 

덕분에 아메리칸어패럴의 생산직 직원들은 '세계에서 가장 수입이 좋은 의류 생산직'으로 불리며(중국 노동자가 시간당 40 센트를 받을 때, LA의 직원들은 12달러를 받았습니다), 각종 휴가와 건강 관련 혜택, 무료 점심식사와 버스 패스 제공, (대부분 이주 노동자이기에) 무료 영어 강좌, 마사지 테라피, 무료 자전거 대여, 무료 주차 등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아메리칸어패럴 공장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이력서를 들고 줄을 섰다는 이야기가 전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최근 아메리칸어패럴은 1,500명의 불법 체류자를 해고해야 했습니다. 덕분에 경영 악화는 가속화 되었습니다. 왜일까요? 도브 차니는 천사의 탈을 쓴 악덕 기업주였을까요?

3. Made In USA

아메리칸어패럴의 창업자에 관하여 한 때 '한국인'이라는 소문 아닌 소문이 있었습니다. 이 대단한 브랜드의 창업자가 한국계였으면 그렇게 금방 사라질 소문이 아닐 것인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찾아보니 창업자가 아니라 초기 동업자였습니다. 

도브 차니가 LA에 아메리칸어패럴을 세울 당시, LA 대부분의 의류 공장은 한국인들 차지였다고 합니다. 그 중 명품 브랜드를 아웃소싱으로 생산하던 두 명의 한국인(Sam Lim, Sam Kim)이 도브 차니와 파트너가 되어 이 브랜드를 정식 런칭했습니다. 아메리칸어패럴이 상장을 하고 더 큰 회사에 팔리면서 이 둘의 이름은 사라졌지만, 초기 공동 창업자가 한국인이었다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도브 차니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자신의 역사이자, 이 브랜드의 역사를 설명하며 한국인에 대한 기억을 적어 놓았습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자신이 돈을 빌리고 제때 갚지 못했는데도 자신을 도와주었다며 한국인들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한국인들은 단지 '성실함' 때문이 아니라 '정'이라는 한국인의 문화적 소양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도 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입니다.

One of the earliest American Apparel ads highlighted this connection in a fun way
(출처: dovcharney.com)

여하튼, 이 챕터에서는 도브 차니 역시 미국인이 아니었는데 Made in USA를 강조하는 이 브랜드의 의아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다른 기업들이 모두 공장을 중국으로 옮길 때 우리는 미국에 공장을 짓고 미국에 사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생산한다'고 자신을 알린 이 브랜드가 미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도브 차니는 캐나다인이었습니다. 그 역시 이민자였던 것입니다. 

그는 왜 이민자이면서 Made in USA를 메인 슬로건으로 삼아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들었을까요? 심지어 이름도 '미국 옷'으로 지어가며 말입니다. 어떤 이는 아메리칸 드림을 파는 브랜드라고 평하기도 하는데 그럴까요?

4. and "Dov Charney"

Fashionable Basics, Sweatshop Free, Made in USA로 설명되는 이 브랜드에 마지막으로 창업자인 '도브 차니'를 넣은 이유는, 위 각 파트에서 제가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을 그가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 대답을 다 하려면 잠을 못 잘것 같으니, 며칠 뒤로 미룹니다. 그래도 너무 궁금하신 분은 그의 홈페이지에 놀러가 보세요. 위 질문에 대한 대답과 함께 이 흥미진진한 인물의 정신세계, 그리고 무척이나 영리한 경영자의 보이지 않는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Dov Charney on the cover of Pig, an Italian fashion magazine
(출처: dovcharney.com) 

공장에서 속옷만 입고 다니며 피팅을 직접하고, 직원 성폭행 관련 고소 건이 (드러난 것만) 이미 네 번째지만 천재 경영자 소리를 듣는 기이한 괴짜가 바로 도브 차니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런 독한 브랜드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합니다. 그는 이 브랜드의 최대 자산이자 최대 걸림돌이라는 말이 실감이 갑니다.




+ 이후 글 : 선정적인 미국 옷, 아메리칸어패럴의 정체 4. 도브 차니









Jan 12, 2012

[brand] 브랜드/브랜딩 관련 추천도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뒤돌아 보면 늘 계획을 머릿속에 그려놓지만 그 그림대로 걸어온 흔적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는 제 인생에 브랜드라는 단어가 꽤 비중있게 들어오리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반 브랜드주의자 나오미 클레인의 <노 로고(No Logo)>를 텍스트로 읽으며 공부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눈에 보이는 것이 그것(브랜드)입니다.

'좋은 영화 추천해 주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며 살 줄 알았는데, '좋은 브랜드 책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더 많은 지금입니다. 10년 후에는 또 상상도 못할 질문을 받으며 살기를 기대하며, 브랜드/브랜딩 관련 추천 도서 목록 정리해 봅니다.


'브랜드가 대체 뭔데?' 하는 분들께
브랜드에 대한 정의는 너무나 많습니다. '로고는 아니다'에는 합의가 이루어진 이후에 이 생명체같은 개념은 무성생식이라도 하듯 커지고 커졌습니다. 지금도 어떤 학자(혹은 전문가라 일컬어지는 브랜드 실무자자)는 또 자기만의 의미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더이상 데이비드 아커나 알 리스, 케빈 켈러의 책을 뒤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4D 브랜딩>
최근에는 유럽 출신의 작가들이 쓴 브랜드 서적들이 번역되고 있습니다. 브랜드는 형이상학적이려면 한없이 형이상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어서 비즈니스 관점이 중심에 있는 미국의 책들보다 유럽의 책들이 깊이있어 보입니다. 이 책의 저자 토마스 가드는 스웨덴 출신입니다. 스웨덴이 은근히 브랜드 왕국인것 아시죠? 볼보, 아케아, H&M 모두 스웨덴 브랜드입니다. 이 책의 앞 부분은 브랜드의 개념, 뒷 부분은 자신이 정립한 4D 개념에 맞추어서 사례분석을 합니다. 앞 파트는 브랜드에 대한 (최근 경향의) 개념 정립에, 뒷 부분은 실무자들이 활용하기에 좋은 컨텐츠를 담고 있습니다.

<긍정적 알파 컨슈머를 만드는, 유니크 브랜딩>
위의 <4D 브랜딩>이 가장 낫다고 생각하지만, 쉽고 빠르게 브랜드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이 책이 좋습니다. 유명한 강연자답게 (강연 내용을 그대로 책으로 옮겼는지) 한 챕터, 한 챕터가 아주 잘 읽힙니다. 마치 강연을 듣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직원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대표님들, 다른 부서분들을 설득하기 위한 브랜드 담당자들에게 추천합니다.

<마켓 3.0>
2010년 브랜딩/마케팅 분야에서 최고로 주목 받은 책이 아닐까 합니다. 책의 내용보다는 무려 경영의 구루로 통하는 필립 코틀러가 썼기 때문입니다. 사실 책의 내용은 위의 두 책에서 이미 주장한 바와 중복됩니다. 그렇지만 '브랜드는 영혼이다'와 같은 류의 주장을 '돈을 벌기 위해 마케팅/브랜딩은 유용하다'와 같은 주장을 펼치던 필립 코틀러가 했다는 데에 모두 놀랐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과거를 부정한 것이니까요. 책은 쉽고 마케팅/브랜딩의 최근 경향을 이해하기 좋습니다.

그 외에는 <브랜드 하이재킹> <브랜드 챔피온> <전설이 되는 브랜드 만들기> 정도가 좋습니다. 

무엇이든 제대로 공부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라면
단연코 <뉴패러다임 브랜드 매니지먼트>를 추천합니다.
장 노엘 캐퍼러라는 세계 3대 브랜드 구루 중 한 분의 저서입니다. 요즘 브랜딩의 대세인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한 개념을 최초로 주장하신 분이라 더 주목받고 있는것 같습니다. 여전히 열심히 개정판을 만들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고, 3대 구루 중 가장 브랜드에 대해 완전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저의, 그리고 제 전 직장의 취향이 반영된 판단입니다. 그렇지만 브랜드의 개념에서부터 어떻게 유통, 소비자 접점에까지 연결할 것인지에 대하여 아주 두꺼운 책에 열심히 정리해 놓으셨습니다. 무척 교과서스러운데, 실제로 많은 MBA의 교재로 쓰이고 있습니다. 

꼭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경영에 대한 감을 잡고 싶으시다면,
<경영이란 무엇인가>도 명저지만, 게리 하멜만큼 거시적인 관점에서 미시적인 사례까지 제시하는 학자는 많지 않습니다. 그의 <꿀벌과 게릴라>는 자칫 제목만 보아서는 편견을 갖기 쉽지만, 굉장히 깊이있으며 쉽게 쓰여진 책입니다. 물론 그 이후의 <경영의 미래>도 좋습니다. 경영학도로서 게리 하멜의 생각 자체가 좋은것 같기도 하군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는 참 훌륭한 책입니다. 입으로만 해도 되는 '기업 경영'에 대해서 누구도 정량적 자료를 가져다 놓고 '이 자료를 봐, 맞잖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바로는 짐 콜린스 연구팀을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그의 팀은 6,000여 개의 기업을 5년 동안 조사해서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대한 기업의 공통점을 찾았습니다. 물론, 최근 그의 연구 결과가 드러맞지 않았다는 반론들이 많고, 그 역시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도 냈지만, 꼭 그 결과대로 내 브랜드에 적용해 보아야지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책임은 분명합니다.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은 위 책과는 관련 없습니다. 원제도 다릅니다. 출판사의 짐 콜린스 효과를 보기 위한 작전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렇지만 최근 경영자들에게 충분히 영감을 줄 만한 책입니다. '깨어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에서 기업 경영에 대한 고찰을 담았습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들, 번 돈을 좋은데 쓰고 싶은 기업인들에게 추천합니다. 대다수의 경영자들은 이럴 여유 없다며 싫어할 만한 책입니다.

케이스 스터디용을 찾으신다면,
브랜드 관점을 가진 경영자의 머릿속이 궁금하다면, 스티브 잡스나 리처드 브랜슨의 자서전이 좋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은 읽어보지 않은 터라 말하기 어렵지만 읽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물론 오역 논란은 차치하고요. 리처드 브랜슨의 경우 <비즈니스 발가벗기기>나 <내가 상상하면 현실이 된다> 모두 쉽고 재미있고 영감을 받으며 읽을 수 있습니다.
이케아나 알디, 유니클로 관련 책도 케이스 스터디 용으로 좋습니다. 모두 소비재 브랜드이긴 하지만, 하나의 브랜드 풀 스토리를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저는 그중 알디의 경영 전략을 담은 <단순하게 경영하라>를 좋아합니다. 
한 브랜드에 대해서 10 페이지 내외의 케이스 스터디를 기대한다면 유니타스브랜드가 좋습니다. 물론 그 호의 주제에 맞게 편집되기 때문에 기사 방향이 읽는 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를 수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담고 있지 않나 합니다. 온라인에서 컨텐츠가 제공되지 않으니 홈페이지나 네이버의 책 정보에서 각 호의 목차를 살피며 케이스 스터디 용 브랜드를 찾는 것이 좋습니다. 이제 20호를 훌쩍 넘겼으니, 케이스 스터디만으로 200개 브랜드는 족히 담고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브랜드에 반감을 가진 분들이라면,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 한 권이면 됩니다. 브랜드 중독자였다가 '브랜드 화형식'을 계기로 모든 브랜드와 차단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런던의 닐 부어맨 이야기입니다. 왜 사람들이 브랜드에 열광하는지에 대한 감정적인 이유에서부터, 브랜드에 대한 어원 및 학자들의 정의 인용구도 얻을 수 있고, 우리에게 브랜드 없는 삶이란 어떨지도 보여줍니다. 닐 부어맨이 직접 말이죠. 아주 흥미로운 책입니다.
조금 더 관심 있는 분이라면 나오미 클레인의 <노 로고>를 추천합니다. 반 브랜드주의를 외친, 그리고 실천하고 있는 저자의 아주 오래된 책이고 아주 유명한 책이죠. 아마 한국에서는 절판된 것으로 압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최근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그녀의 후속작이 나왔더군요. 저도 아직 읽어보지 않았는데, 읽어보시고 어떤지 소개해 주세요.






Jan 5, 2012

[inspiration] 생각을 사러 책방에 갑니다



잡스러운 것은 싫은데, 잡지도 좋고 잡지식도 좋고 최근에 읽은 하루키의 <잡문집>도 마음에 듭니다. 어쩌면 '잡스럽다'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싫을뿐 잡스러운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을 하며 어느 도시에 가든 가장 많이 찾은 공간은 카페, 그 다음은 서점입니다. 혼자서 북키시 프로젝트(Bookish Project)라며 각 도시의 아름다운 서점들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쌓아가고 있었는데, 이미 벌써 <유럽의 명문서점>이라는 책이 나와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아차 싶었습니다. 

그 중 요즘 자주 생각나는 서점은 베를린의 모토(Motto) 입니다. 예술 서적과 독립 출판물을 전문으로 하며 Schlesische Tor 역에서 크레우츠베르 (Kreuzberg)로 가는 길 초입의 한 호프(Hof, 독일식 건축의 안 뜰)에 둥지를 트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낯선 도시, 낯선 주제의 잡지나 개인이 만들어서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출판한 책들을 한참동안 뒤적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은 작은 동네 서점이 아니라 생각 전시장이구나. 자기의 생각을 글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표현한 종이 묶음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아이디어입니다. 덕분에 낯설게하기 효과를 주는 제목, 날선 편집 디자인, '나는 달라'라고 외치는 문장과 이미지가 가득한 생각 전시장에서 생각 수집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손과 눈과 뇌의 자극을 즐기며 '서울에도 이런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되뇌던 날이었습니다.

다행히 돌아와서 보니, 모토와 같은 공간이 서울에도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홍대의 유어마인드나 땡스북스, 더북소사이어티, 이태원의 포스트 포에틱스가 그렇습니다. 아직 모두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곧 모두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Motto, Berlin

Jan 4, 2012

[culture] 독후감. 알랭 드 보통.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열린 토마스 스트루스 전의 광고. 그 안의 그의 작품. 뮤지엄 연장 중 하나. 로마 판테옹을 채운 관광객.

1. 토마스 스트루스의 사진과 알랭 드 보통의 글

언젠가부터 갤러리에 가면 걸려있는 사진이나 그림, 때론 설치 작품을 보면서 그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이 작가는 도대체 왜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 자체를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사실 아름다움이란 보는 이에 따라 다르고 당시의 시대정신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작품을 보면 그 앞에 한참을 머물게 되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느껴질 때만큼은 아닙니다.

지난 여름, 런던 화이트채플(Whitechaple) 갤러리에 들렀을 때 독일의 사진작가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토마스 스트루스를 처음 알게 됐지만, 그의 대표작들, 특히 뮤지엄 시리즈를 보며 작가와의 작은 공감대가 만들어졌다고 느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의도에 공감했기에 작품이 알려지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 않나 합니다.

+그의 작품은 구글 이미지에서도 많이 검색 되지만, 여기 사이트에서 봐도 좋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알랭 드 보통의 신작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읽다가 다시 토마스 스트루스의 사진을 만났습니다. 이 책은 무신론자에게 종교가 어떤 (긍정적) 의미가 있는지, 또한 무신론자에게 종교를 대체할 수 있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 중 '미술'이 종교를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챕터에서 토마스 스트루스의 뮤지엄 연작(로마 판테온이나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유명 작품 앞에서 우르르 몰려가 작품의 제작 연도나 화가의 이름을 확인하는 듯한 관광객을 찍은)을 예로 듭니다. 알랭 드 보통은 '지금의 뮤지엄/갤러리들이 과연 교회/성당/절을 대신할 수 있을까?'에 회의적인 입장을 토마스 스트루스의 사진을 통해 보여줍니다. 그 역시 그와 작은 공감대를 형성했던 모양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보는 사람들을 보고 느낀 감정도 이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과연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 두어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고는 '모나리자 봤으니 됐어'라며 한 시간도 채 둘러보지 않고 나가는 (저를 포함한) 관광객들에게 박물관은, 또 그 유명 작품들은 무슨 의미가 있는것일까요. 


이런 스치고 지나가는 삶의 의문들, 느끼기는 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알랭 드 보통은 명확하게 활자로 풀어내곤 합니다. 느낌을 논리적 활자화하는 능력, 이것이 알랭 드 보통의 힘입니다. 그가 국내에서는 소설가로 소개되지만 외국에서는 writer보다 philosopher로 소개되는 이유기도 할 것입니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울림이 있었던 또 하나의 주장은 '문화가 종교를 대신할 수 있다'입니다. 신을 믿는 절친한 친구들의 집요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의 늦잠을 포기할 수 없다'는 핑계로 교회나 절에 가지 않는 제가 일요일 아침에 갤러리나 영화관, 도서관에 놀러가는 일에는 본능을 거스르면서도 기어이 나가는 기현상을 설명해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인생의 키워드 중 하나로 '문화'를 꼽는 배경으로도 적당한 주장입니다. 

책에서 말한대로 '우리는 심지어 미술관에서도 가끔 교회에 있을 때처럼 지루함을 느끼지만, 그곳을 나설 때만은 -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이' 듭니다. 


2. 맞설 이데올로기도 없는 지금을 사는 아티스트들에게

다시 그림 이야기로 돌아가면, 토마스 스투르스의 사진을 보고 난 후 이 책을 읽으며 어딘가서 읽었던 이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아티스트의 본질은 선동가다'. 예술을 위한 예술의 시대, 즉 순수 예술을 선언한 시대 이전에 아티스트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는 선동가였습니다. 선동은 마치 파시스트의 어휘같아서 한 발 물러서게 되는 경향이 있지만, 바로 이것이 제가 예술 작품을 보며 찾고자 하는 '이 작가는 말하고 싶은 바가 무엇일까'에 관한 것입니다.

다니엘 벨은 이미 1960년대에 이데올로기의 종언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겪어보지도 못한 제게 새삼 이제서야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것 같습니다. 현대미술을 보고 해석이 무의미하다라고 하는데, 무조건 비난하기 어려운 이유는 어쩌면 현대미술은 대항마로 세울만한 이데올로기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장 미로는 스페인의 민주화라는, 독일 표현주의자들은 파시즘이라는, 러시아의 이동파는 권위적인 왕궁이라는 적이 있었기에 그들의 작업에 사회적인 의미가 덧입혀졌습니다. (물론 그 전에는 종교라는 엄청난 이데올로기가 있었지요.) 원래 공공의 적이 있을 때 공공들은 똘똘 뭉치고 쉽게 공감하기 마련이니 어쩌면 이데올로기에 시큰둥한 현대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현대의 아티스트들을 불리한 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아티스트들이 선동가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프로파간다, 이데올로기, 이런 단어들은 듣기만 해도 벌써 무겁습니다. 대신 요즘 movement라는 말이 적당히 가볍고,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는 것 같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운동이라고 하면 될텐데, 우리 사회에서의 운동은 또 다시 이데올로기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 같으니, 그냥 무브먼트라고 하렵니다.

트레이시 에민처럼 작품에 분명한 자기 생각을 담는 아티스트도 좋고, 칼 라커펠트처럼 내추럴본크리에이터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제 취향은 얼마전 소개한 안드레아 지텔(Andrea Zittel) 쪽입니다. 아름다운 작품으로 귀여운 무브먼트를 만드는 아티스트는 좋아하는 것에서 나아가 지지하게 됩니다. 



얼마 전 소개한 이스트 런던의 크라이시스 스카이 라이트 카페는 1967년에 캔 로치(Ken Loach) 감독의 영화 Cathy Come Home을 보고 충격을 받고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을 담고 있는 예술 작품은 다른 이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은 사람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행동을 취합니다. 켄 로치의 영화를 본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재미없는 영화를 만드느냐고 하지만, 이것이 아티스트 켄 로치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이라고 불리겠죠. 


+ 찾기는 어려워도 금세 사랑에 빠져버리는 갤러리, 스톡홀름 마가신3에서 만난 안드레아 지텔
+ 이스트 런던의 사회적기업 카페, 크라이시스 스카이라이트 카페(crisis skylight cafe) 


알랭 드 보통의 신작을 읽고 독후감이나 써야지 하고 시작한 포스팅인데 결론은 '아티스트들 만세'로 끝나버렸습니다. 열심히 갤러리든 도서관이든을 찾으며 이 시대에 의미있는 작품을 남기는 아티스트들에게 감사합을 표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