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2, 2012

[inspiration] 러시아 미술, 이동파(Peredvizhniki)의 용기를 바라보기

Nationalmuseum, Stockholm, Sweden

여행자는 이렇게 분류할 수도 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오를 의지가 있는 여행자와 그렇지 않은 여행자. 20대까지만 해도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마무리하는 러시아 여행을 꿈꿨습니다. 소녀 감성으로 일주일쯤 머리를 못 감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죠. 네, 물론 지금은 아닙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기차 여행의 로맨스와 러시아라는 미지에 대한 환상, 그리고 오지에서나 느낄 법한 극체험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만족시킵니다. 제 경우에는 그 중 '러시아'에 대한 환상이 가장 컸습니다. 하얀 눈 위의 차가운 러시아 정교식 건축이 쿠바 거리의 뜨거운 원색 풍광보다 이국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에서는 영어권의 대도시가 목표였기에 러시아는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환상은 가득하고, 러시아 여행에 대한 가능성을 낮았기 때문에 스톡홀름 국립박물관에서 러시아 근대 미술전을 우연히 관람하고는 그것에 매료된 것은 당연했습니다. 러시아 미술의 '러' 자도 몰랐던 덕분에 그들이 담아낸 러시아 풍광에, 독특한 색채에, 묘하게 낯선 분위기에 넋을 놓고 두어 시간은 구경 또 구경했습니다. 

이 전시가 러시아 미술을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뭐라고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Peredvizhniki(이동파)'의 대표작들을 모아 놓은 전시(The Peredvizhniki – Pioneers of Russian Painting)였습니다. 러시아와 가까운 북유럽이었는데도 전시의 취지가 '러시아 국립미술관과의 특별한 만남으로 그 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러시아의 걸작들을 소개한다'는 것을 보니 활자로만 보아왔던 '냉전의 시대'가 실감이 납니다.

이동파는 러시아 왕립 미술학교 쯤에 해당하는 아카데미에 대항하여 만든 예술인 단체입니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가 초까지 활동한 이들은 최초로 '리얼 러시아'를 작품화했다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인상파 화가들이 주목을 받고 있을 때, 러시아에서는 궁전을 나온 화가들이 서민들의 삶을 화폭에 닮아 도시를 돌며 전시를 합니다. 

The Volga Boatmen, 1870-73, Ilya Repin

이들의 스타일을 분류하자면 단순히 리얼리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 생계를 위해 짐을 끄는 노동자들을 그렸으니까요. 그렇지만 단지 리얼리즘의 계파 중 하나로 보기에는, 소비에트 공산혁명 정부에 의해 해체되기 전까지 그림을 왕국 밖으로 가지고 나와 시골 마을을 돌며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공유할 수 있게 하고자 했던 이들의 노력에 대한 예의가 아닌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온실을 뿌리치고 나와 선동가가 된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럴 용기가 없는 우리는 그것을 바라보며 인정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스톡홀름에 계신 분들은 국립박물관에 들러보세요. 1월 22일까지는 보기 힘든 이 러시아 걸작들을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살인적인 물가의 도시라 가난한 여행객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박물관 지하의 카페테리아 뷔폐식 점심도 괜찮습니다. 비싼 값을 한달까요. 


러시아 Peredvizhniki들의 작품 감상과 함께 큐레이터의 의도를 듣고 싶으신 분은 클릭해 보세요. 스웨덴어지만 영어 자막이 함께 있습니다. 이동파에 대한 설명은 이 블로그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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