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26, 2011

[inspiration] 종합예술인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의 인터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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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site: interviewproject.davidlynch.com)






오늘은 한량처럼 호스텔 라운지에서 종일 빈둥댔습니다. 여행 중에도 가끔 이렇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습니다. 다행히 코펜하겐의 호스텔들은 시설이 매우 훌륭하고, 스칸디나비안의 유명한 디자인 감각 때문인지 인테리어도 멋져서 하루종일 놀아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제가 묵고 있는 제너레이터 호스텔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유명한 단 호스텔에 대항하기 위해서인지 경쟁력을 갖기 위해 애쓴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단 호스텔의 최근 리뷰를 보면 불친절 하고, 침대 커버부터 시작해서 많은 부분 추가 요금이 있기 때문에 저렴한 것이 아니라는 불평들이 많은데, 다행히 이곳에서 그런 불만은 없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1층 라운지는 밤이 되면 마치 클럽같이 변합니다. 한 쪽은 쿵쿵쾅쾅 크게 음악을 틀어 놓고 맥주를 한 잔 하거나 춤도 추고 당구를 치거나 체스를 두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조용하게 수다를 떨거나 노트북을 가지고 내려와 각자의 시간을 갖습니다. 칼스버그도 20크로네면 마실 수 있고, 바에서 놀다보면 심심치 않게 다양한 덴마크 술들을 공짜로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쓰고 보니 술만 마시는 것 같지만, 오늘은 오후 내내 한쪽 구석에서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와 놀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심란한 영화를 만드는 예술 영화 감독으로 알려져 있죠. 사실 <세븐>을 만든,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인,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가 없었다면 이름이 비슷한 데이비드 린치는 덜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의 대표작이라는 <이레이저 헤드> <트윈 픽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도 두 편은 대학 수업 중에, 다른 한 편은 3편 동시 상영하는 심야영화관에서 보다가 잤던 기억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데이비드 린치에 관한 기사들을 연달아 보게 되면서 이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끔 '이 사람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을까?'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재미있는 사람을 만납니다. 최근에는 데이비드 린치가 그렇습니다.

런던에 있는 동안 사치 갤러리에서 발행하는 잡지를 주워와서 보는데, 데이비드 린치 특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를 크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그가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작곡도 하고, 비밀스럽게 가구 디자인도 하는 아티스트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 놀란 것은 David Lynch Coffee의 존재였습니다. 이름만 듣고 런던의 한 카페인가 해서 찾아보니, 그의 시그니처 블렌딩이었습니다. 데이비드 린치의 커피 사랑은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의 몇 영화에서도 커피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고 하는데,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영국에서는 그의 열혈 팬 중 한 명이 커피를 유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브뤼셀에서 유로스타에서 발행하는 잡지를 보다가 또 그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파리의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커뮤니티의 리더이기도 하답니다. 잡지를 스크랩 해 놨는데, 베를린을 떠나며 버렸는지 그 클럽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네요.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해서 또 다른 창작물을 만드는 커뮤니티였던 것 같습니다.

과연 이 종합예술인은 무슨 생각으로 이 많은 일들을 벌이는 걸까요? 조금 찾아 보니 몇년째 똑같은 옷을 그것도 목 바로 아래까지 단추를 채워 입고 매일 같은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할 정도의 괴짜라고 합니다. 그의 도무지 알 수 없는 행보는 팬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데이비드 린치의 미스테리한 세계, 부조리의 도시(www.thecityofabsurdity.com)'라는 이름의 웹사이트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둘러봤는데, 데이비드 린치가 인터뷰 중에 한 말인 "You build your own world", 이것이 바로 그가 하고 있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당신만의 세계를 짓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하고 있는 일 중에 가장 독특한 건 '데이비드 린치 재단'의 활동입니다. 일종의 명상 센터라고 해야 하나요. 데이비드 린치는 오랫동안 명상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가꿔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명상법을 학생들이나 교도소의 수감자들, 노숙자와같은 이들과 공유하는 재단입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의 활동 중 가장 재미있는 프로젝트는 지금부터입니다. 


제가 오후 내내 놀았던 곳도 바로 여기, 인터뷰 프로젝트(interviewproject.davidlynch.com)입니다. 처음에 사치 매거진에서 보고는 데이비드 린치 정도 되니 전 세계의 유명인사들을 연달아 인터뷰 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09년에 미국 대륙을 종횡무진하며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총 121명의 인터뷰가 올라와 있는데, 한 인물당 3~4분 정도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평균연령은 50세쯤 되는 것 같습니다. 도시가 아닌 시골 마을에는 젊은이들이 없어서인지 인터뷰에 응해주는 사람이 보통 마음 넓은 할머니 할아버지였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사진을 보고 가장 말끔해 보이는 사람의 인터뷰를 골라 봤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냥 순서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누가되든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 정도 본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의 투아레그 족의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노인이 죽는 것은 하나의 도서관이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 50여명의 적어도 50년은 산 어른들의 자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촬영 방식도, 편집 방식도, 음악 선곡도 영화감독 출신답게 세련되어서 신선한 에세이집 한 권을, 아니 반 권을 읽은 기분입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위기가 언제냐고? 그건 내가 지루해질때지." 이런 멋진 말들도 툭툭 흘러 나오고, 한 게이는 "만약 신을 믿는다면, 너는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거야."라고 말하며 웃기도 하고, 25년 째 자식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한 할아버지는 "그래서 뭐? 난 60살이고, 이렇게 멋진 은발이 가득하고, 키도 6피트나 되는데!"라며 너털 웃음을 짓기도 합니다. 가끔 "내 여자친구가 전 남자친구를 죽이러 가기 전날..."과 같은 단편소설의 주인공같은 이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희극보다 비극에 가까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자기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말합니다. 몇몇은 눈물 짓기도 하지만, 그 나이가 되면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가 봅니다. 덕분에 오후 내내 심심하지 않게 이곳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즐겁네요!

북마크 해 놓고 심심할 때 마다 하나씩 골라 보세요. 영어 공부도 되고,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를 눈으로라마 하는 것 같아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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