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가시거든 김영갑 갤러리에 들르시길. 김영갑 사진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온 힘을 다해 가꾼 앞뜰 구경도 하고, 뒤뜰의 카페에서 차도 한 잔 하고, 그가 찍은 사진도 천천히 감상하세요.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한 눈에 볼 수도 있고, 아름다움에 대하여, 대자연에 대하여, 그리고 사진에 대하여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게 되는 공간입니다.
루게릭 병을 앓았다는 작가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미리 읽고 갤러리에 가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만약 그의 스토리를 알았다면 괜한 동정비슷한 것이 섞여 사진 그대로를 바라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혹자는 '나도 찍겠다'라고 말하는 사진이라지만, 다행히 결코 누구도 쉽게 찍지 못할 사진이라는 것을 알아봤습니다.
'나는 가수다'나 '슈스케'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감동이라는 것은 따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감동하면 나만 감동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 멋진 그림, 기억에 남는 사진이란 듣는 사람과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김영갑 작가의 사진도 그랬습니다. 무엇보다 아름다웠고, 작가는 절대로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지만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작가 자신이 느낀 대자연의 감동을 보는 이에게도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냈을지도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감동이란 그것을 만든 사람이 얼마나 그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았느냐와 관련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기하게도 그것은 보는 이에게도 전달이 됩니다. 찌릿, 하고요.
언젠가 사진을 찍는 분에게 그 분의 사진을 쭈욱 보고나서 "왜 사람이 없는 사진을 찍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단순한 의문이었는데 그 분에게도 저에게도 꽤 오랫동안 따라다닌 질문이었습니다. 그 의문은 베를린에서 풀렸습니다. 물론 저 스스로 내린 결론이고, 대답이 되었다기 보다 더이상 궁금하지 않았다는 편에 가깝지만요.
헬뮤트 뉴튼(Helmut Newton)의 사진 박물관에서 그의 인물 사진을 한참을 보고 나와 서점에 들러 마틴 파(Martin Parr)의 사진집을 보며 피식피식 웃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진작가들이 인물 사진을 찍는 이유는 사람 사진이야 말로 보는 이가 가장 공감하기 좋은, 다시 말해 감동을 주기 쉬운 피사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덕분에 사람 없는 그림(사진)으로 보는 이들을 감동시키는, 다시 말해 어려운 길을 택하고도 인정을 받은, 터너(J.M.William Turner)나 안셀 아담스(Ansel Adams), 그리고 김영갑이 새삼 위대하게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