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25, 2011

[culture] 커피의 진화 카페의 진화 1. 오지(Aussie) 카페 문화의 자존심, 멜번(Melbourne)




전형적인 오지(Aussie, 호주 사람) 스타일의 라테 잔입니다. 멜번에 처음 도착해서 카페에 들어가 라테를 시켰는데 커피를 저 유리잔에 담아 주기에 사실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서울에서는 물이나 담아 줄만한 컵에, 그것도 이케아에서 1달러는 줬을까 싶은 잔에 커피를 담아주니 말입니다.


그런데 10주 동안 호주에 머물며 저 잔에 라테를 홀짝이던 것에 익숙해져서인지 간사하게도 라테는 저 잔과 가장 궁합이 잘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만약 만약 만약에 카페를 열면 이케아에 가서 저 잔을 잔뜩 산 후, 한 손으로 들고 마셔도 뜨겁지 않을 온도의 부드러운 라테를 만들어 팔겠습니다. 식사를 한 후에 후식으로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홀짝이기 좋은 양입니다. 카페 이름이 오지 카페여도 나쁘지 않네요.


또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오늘 하려던 이야기는 오지 카페 문화입니다. 요즘 오지(호주)와 키위(뉴질랜드)가 카페 문화의 중에 들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5년 전에는 론리 플래닛이 멜번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무얼 하라고 권했을까요? 요즘 론리 플래닛은 멜번에 가면 좁은 골목 골목을 헤매며 발견되는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라고 합니다. 몇년 전만 해도 블럭마다 자리하고 있던 스타벅스가 멜번에 4개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멜버니언들의 로컬 카페에 대한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말해줍니다.


그나저나 오지 스타일의 커피가 뭔지 궁금하실 것 같네요. 특별한 맛이 있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 이들의 커피와 카페에 대한 새로운 태도에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시민들은 커피 맛 자체에 대해서 까다로워졌고, 커피맛 뿐만 아니라 카페의 인테리어나 음식도 평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카페 주인들은 자신만의 블렌딩으로 직접 로스팅을 하고 괜찮은 바리스타를 키워내는가 하면 카페 홍보에도 열을 올립니다.


서울과 뭐가 다르냐고 물어보시는 분의 목소리가 벌써 들립니다. 카페의 생김새는 서울과 거의 같습니다. 서울의 카페들이 일본 스타일에 가깝기는 하지만 인테리어에 많은 신경을 쓴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많이 다릅니다. 먼저 오전 11시에 열어서 자정 근처에 문을 닫는 서울의 카페들과 달리, 이 동네에서는 아침 7~8시에 문을 열어서 오후 4~6시면 문을 닫습니다. 카페가 서울에서처럼 친구를 만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출근하며 커피 한 잔을 하고, 식사하며 신문을 보는 곳이었다는 의미 입니다. 그래서 커피 문화와 카페 문화가 동시에 시작된 서울과 달리, 커피가 생활의 일부였던 멜번을 포함한 서구에서의 새로운 커피 문화는 그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혁명이라고도 말하는 새로운 카페 문화는 멜번과 시드니에서는 5년 정도, 북유럽에서는 20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멜번이 이렇게 빨리 카페 문화의 중심부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생각해 봤습니다. 이번 여행의 첫 도시가 멜번이었기에 그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 돌아보니 즐기는 데 관심이 많은 이 도시의 젊은이들, 시민들을 위해 돈 쓸 준비가 되어 있는 부자 주정부, 지역이 살아야 자신도 사는 지역 매체들의 합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동물은 호주인이라는 농담도 있는데, 멜번에 갔을 때 가장 놀란 것 중 하나는 일할 때는 나무늘보만큼 게으를지 모르는 이 사람들이 놀 때에는 열심히라는 겁니다. 빅토리아주 홈페이지에 가면 거의 매주 축제가 열리는 것을 알 수 있고, 거의 모든 축제에는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Melbourne Coffee Review라는 스마트폰 어플의 공도 큽니다. 멜번의 커피 마니아들은 이 어플로 새로 생긴 카페를 알아보고 최근 가장 별점이 좋은 카페에 찾아다니는 놀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Coffee Guide Melbourne이라는 카페 리뷰 책자도 있습니다. 이제 5번째 에디션을 발간한 이 책에서 별 5개를 받은 카페는 한 해 동안 그 영광을 누립니다. 빅토리아주 대표 일간지인 Age와 멜번의 문화 무가지라고 할 수 있는 Broadsheet 역시 멜번의 카페 문화에 대한 기사나 카페 리뷰를 꾸준히 생산하며 멜번을 커피 시티로 키우고 있습니다.


북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자신의 카페를 오픈하겠다고 시장 조사를 나온 어린 친구를 만난 적이 있는데, 이런 분들이 이 친구만은 아닐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께 저는 북유럽보다는 멜번을 추천합니다. 성숙기에 접어든 북유럽보다는 성장기인 이 시장에서 보고 배울게 더 많을테니까요. 무엇보다 더 생기 넘칩니다. 정말 멜번에 카페 트렌드 시장 조사를 가실 분께는 멜번 커피 리뷰 어플이 가장 유용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지 커피에 대한 기사 하나와 멜번을 대표하는 몇 카페를 소개합니다.


런던에 머무는 동안 이 기사(Aussie Rules in London)를 보고 올드 스트릿에 생겼다는 세인트 알리(St. Ali)를 찾아간 이유는 커피 맛도 커피 맛이지만 유리 잔에 담긴 고소하고 부드러운 라테가 그리워서였습니다. 세인트 알리는 멜번에서 오지 스타일의 카페 트렌드를 이끄는 성공적인 카페 중 하나입니다. 아쉽게도 런던의 세인트 알리는 머그잔에 라테를 담아줬지만 그리고 커피 맛보다 사업 확장에 관심이 더 많이 보이지만, 멜번 출신도 아닌 제가 런던까지 진출한 이들이 괜히 대견했습니다.  



마켓 래인 커피 Market Lane Coffee (www.marketlane.com.au)




사우스 야라에 위치한 프라한 마켓 한쪽 귀퉁이에 있습니다. 멜번에서 처음 방문한 카페고, 한국인 바리스타도 있고, 와이파이도 가능하고, 공간도 마음에 들어서 가장 자주 갔었네요. 그 독특한 블렌딩의 맛은 사라졌지만 고객들에게 언제나 친절하고 흥미로운 행사도 자주 기획합니다. 무엇보다 모노클이 늘 멜번의 대표 카페로 꼽는 카페고요. 이 역시 모노클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마켓레인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이 런던 최고의 카페인 몬머스(www.monmouthcoffee.co.uk)의 로스팅 견습생이었다고 하네요. 결국 또 뿌리는 영국이었다니 씁쓸합니다.


옥션룸 Action Room(www.auctionroomscafe.com.au)






노스 멜번에 자리잡은 옥션룸은 실제로 과거에 경매장이었다고 합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말입니다. 임대료 비싼 시티를 벗어나서 다소 위험하고 가난한 동네에 이런 시크한 카페를 낸 것은 자신감 때문이 분명합니다. 커피 맛도 음식 맛도 바리스타도 모이는 손님도 최고입니다.


코인론더리 Coin Laundry




아... 코인론더리... 감탄사를 먼저 뱉지 않을 수 없을만큼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멜번에서 2년을 산 친구 덕분에 카페 투어는 거의 친구를 따라 다녔는데, 이 카페는 머물던 집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직접 발견했다고 볼 수 있기에 더 애착이 가는지도 모릅니다. 항상 새벽부터 문을 닫는 시간까지 북적여서 처음에는 부자 동네 사람들이라 동전 세탁소에 세탁물을 맡겨 놓고 커피 한 잔씩 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마터면 빨래감을 가져갈 뻔 했는데 호기심에 문닫은 카페 안을 들여다 보고서야 카페인 줄 알았습니다. 홈페이지도 없는 이 카페는 제가 멜번을 떠나기 직전에 가장 핫한 카페였습니다. 커피맛도 수준 이상, 음식 맛도 수준 이상, 무엇보다 알마데일이라는 한적한 동네게 자리잡고 있어서 좋습니다.


Omar and the Marvellous Coffee Bird(www.omars.com.au)






이름이 너무 길어서 외우기도 힘든 이 카페는 맛으로는 멜번 최고였습니다.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서 찾아 갔기 때문에 이미 그 처음 맛이 변했을 수도 있습니다. 단단한 의지가 있는 주인이 아니고서야 첫 열정을 똑같이 유지하기는 힘드니 말입니다. 차가 없으면 가기 힘든 사우스 야라 한참 남쪽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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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진화 카페의 진화 1. 오지(Aussie) 카페 문화의 자존심, 멜번(Melbou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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