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30, 2011

[brand] 여기는 시드니, 폴 바셋(Paul Bassett)을 찾습니다! 아니, 찾기는 했습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서울에서 가장 hot하다는 카페 중 하나가 폴 바셋(Paul Bassett)이었다. 고소한 라테 맛에 담백한 인테리어, 그리고 역대 최연소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가 만든 커피 전문점이라는 스토리가 더해져서, 약속이라도 있을라치면 을지로로 사람들을 유인했었다. 게다가 폴 바셋 2호점이 있는 페럼타워 지하에는 맛있는 음식점으로 가득하고, 그 향기로 그득하다. 그래서 이 모든걸 운영하는(것 같은) 매일유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했었다.

그립다, 서울. 아무튼, 그래서! 호주에 가면 꼭 폴 바셋의 카페를 찾겠노라 다짐했었다.

페럼 타워의 폴 바셋 2호점, 그의 커피 철학

호주에서의 첫 도시였던 멜번은 커피의 도시라고 불리는 만큼 수많은 카페와 바리스타들, 그것을 소비할만한 사람들과 커피 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폴 바셋은 모르더라.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폴 바셋 아니?'라고 물어볼 때마다 '아니, 걔가 누구야?'라는 대답을 들었다. 멜번과 시드니는 역사적으로 라이벌 관계였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난, '폴 바셋이 시드니 출신이라 그런가보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드니에 와서도 다르지 않았다. '호주의 유명한 바리스타, 폴 바셋'은 훌륭한 홍보 문구였단 말인가. 아무리 구글링을 해봐도 시드니 어디에도 그의 카페는 없다. 폴바셋닷컴을 통해서 그가 실존인물이긴 하고나, 하고 안심할 뿐이었다.

그러다 <메트릭스>를 찍은 곳으로 유명한 마틴 플레이스에서 드디어 그의 이름을 대면했다. 이렇게 소박하게.



서울의 팬시한 폴 바셋과는 너무 다른 모습의 폴 바셋. 게다가 단지 그의 블렌드를 사용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날 이미 마실 커피는 마신 뒤였지만, 그를 마주친 이상 지나칠 수 없어서, 라테를 한 잔 사서 벤치에 앉았다.

그런데 내가 마신 시드니의 커피 중에서 거의 최고의 맛 아닌가. 조울증에 걸린 호기심 소녀처럼 언제 우울했냐는 듯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그 키오스크로 돌아가서 커피를 내려준 바리스타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역시나 호주에 그의 카페는 없고, 그는 단지 커피를 공급하고 있으며, 가끔 여기에 들르고, 무려 good-looking guy라는 엄청난 정보를 전해줬다. 친절하게도 그가 무슨 요일 몇시쯤에 자주 등장한다는 말도 덧붙여서.



만나면 인터뷰라도 하려고 그 시간에 맞춰 대기하고 있었으나, 천재지변(에 가까운 개인사정)으로 그 시간에 마틴 플레이스에 갈 수 없었다.

가끔 이렇게 '알고보면 다른' 정보들을 접하곤 한다. 이럴 때마다 마케팅 업계에 몸을 담고 있던 자로서 홍보를 잘 했다고 칭찬을 해야할 지, 순수한 고객 입장에서 속았다고 비난을 해야할 지 고민이다. 그러나 내 입장이 무엇이 되었든, the age of transparency에서 기업이 취해야 할 입장은 분명할 것이다. 누굴 속이겠나, 속여서 무엇하겠나, 그 부메랑은 다시 나에게 돌아올 것을.

매일유업의 이야기는 아니다. 단 내가 갖고 있던 폴 바셋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컸을 뿐이다. 매일유업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나 같은 극소수 고객에 대한 기대관리의 실패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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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1. 아 저도 폴바셋 커피 엄청 좋아하는데.. 을지로는 많이 못가봤고, 신세계 백화점 지하에 있는 폴바셋만 자주 갔어요. 광주 다녀갈때 굳이 신세계백화점도 들를 정도였는데, 이런 스토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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