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O C I A L E N T E R P R I S E
'social'이라는 단어는 아직도 한국에서는 완전히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 단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순간, 사회주의, 공산주의, 빨갱이...로 이어지는 연상 작용이 일어납니다. 특히 아버지 세대에는 여전히 부정적인 효력이 남아있는 덕분에 얼마 남지 않은 서울 시장 보궐 선거에서도 한 쪽에서는 다른 쪽에 빨간 딱지를 붙여서 공격하곤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SNS(Social Network Service)는 사회적이라는 이름 대신 '소셜'이라고 영어 그대로 부르는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한 기업이라 알려지고 있는 Social Enterprise는 '사회적기업'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social이라는 단어는 완전히 받아들이기에는 껄끄럽고 거부하기에는 대세를 거스르는 것같아 마음 편하지 않은 과도기 단어이기 때문이겠죠.
여행을 시작하기 전 최근 한국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는 사회적기업에 대해서도 조사해 보겠다는 다짐이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생각만큼은 하지 못하고, 안 한것 같습니다. 못한 이유를 생각해보니, 눈에 보이는 것 위주로 자세히 들여다본 여행에서 많이 보이지 않은 것은 그만큼 (서울에서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마이너리티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 한 이유는 제가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보려는 노력, 그러니까 관심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L O N D O N A N D U K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사회적기업의 활동은 바로 <빅이슈>입니다. 작년에 한국에도 런칭한 노숙자의 자립을 돕기위한 이 잡지는 많은 도시에서 <빅이슈> 혹은 다른 유사 잡지의 형태로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빅이슈>의 고향은 런던입니다. 실제로 노숙자 생활을 하던 존 버드(Johe Bird)가 바디샵의 창립자인 아니타 로딕의 남편, 고든 로딕(Gordon Roddick)과 1991년에 공동창업한 이후에 커다란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덕분에 사회적기업의 성공사례로 늘 꼽히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런던은 우리에게도 유명한 <빅이슈> 외에도 많은 사회적기업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려
6만여 개의 사회적기업이 전체 고용의 5%를 담당하고 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국 정부는 30년 전부터 사회적 기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는 정부의 역할을 민간에게 떠넘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감당하기 버거운 사회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고 손 내밀자 그러겠다는 착한 시민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여 지금 영국은 사회적기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에는 북유럽에 가면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사회적기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스웨덴의 한 친구에게 너희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사회적 기업이 뭐냐고 물었었습니다. 국가 의료 시스템에 대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였기에 당연히 대답을 들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사회적 기업이 뭐야?'라는 대답이 대신했습니다.
북유럽은 사회주의 의식이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작은 사회 문제까지도 이미 국가의 손길이 뻗쳐 있습니다. 덕분에 그 틈을 민간 기업이나 개인이 파고들 기회가 영국이나 미국, 일본이나 한국보다 적습니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논의가 가장 활발한 곳이 영국인 이유, 이름만 들으면 동양인이 이끌 것 같은
아쇼카 재단의 창립자가 미국인인 이유만 생각해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C R I S I S S K Y L I G H T C A F E
사회적기업의 천국(?) 영국에서 기억에 남는 사회적기업 중 하나는 이스트 런던에 있는 카페, 크라이시스 스카이라이트 카페(Crisis Skylight Cafe)입니다. 교육을 받은 노숙인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카페이고, 카페의 슬로건이 'Homelessness Ends Here'인 것을 알고 찾아갔기 때문에 이 카페의 이름이 마치 '위기 속의 빛 한 줄기'로 자의적 해석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무슨 기대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첫 방문에서는 카페의 인테리어가 생각보다 멋지지도 않고 커피 맛이 썩 괜찮지도 않아서 실망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홍대에 있던
오요리(Organization Yori)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오요리 역시 한국에 사는 이주 노동자들이 교육을 받아서 직원으로 일하는 사회적기업이자 레스토랑인데, 맛도 좋고 인테리어도 여느 홍대의 카페나 레스토랑에 뒤지지 않아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 잘못된 기대를 탓해야 했습니다. 오요리는 레스토랑 자체가 그들의 한국 사회 적응뿐만 아니라 영리를 목적으로 합니다. 그래야 직원들의 월급을 주고 레스토랑을 운영하니까요. 그렇지만 스카이라이트 카페는 물론 수익을 내야 하지만 그에 앞서 노숙인들의 교육장의 의미가 큽니다. 때문에 훌륭한 커피 맛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인테리어의 경우에도 이케아 비즈니스(IKEA Business)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리노베이션한 것이 지금의 모습이라니 이 공간의 본질이 카페보다 교육장에 가깝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 이케아 역시 흥미로운 브랜드인데, 참 여러가지 활동을 합니다. 그 중 이케아 비즈니스 홈페이지에서는 이 카페가 이케아에 의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볼 수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이 링크를 클릭.
이 카페를 카페로 알고 찾아갔지만, 사실 이 카페는
크라이시스 그룹이라는 영국의 오래된 노숙인 재활 자선단체의 활동 중 일부였습니다. 카페가 자리한 곳 역시 크라이시스 그룹 본사의 한켠이었구요. <빅이슈> 역시 '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빵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는 의미에서 박수를 받은 사회적기업인데, 크라이시스 그룹의 역사를 살펴보니 <빅이슈>보다 이전에 그야말로 노숙인들의 '자립'을 위해서 애쓴 흔적들이 보입니다. 그들에게 돈을 던져주고 살 집을 마련하고 먹고 살 준비를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집을 구하고 일자리를 구하고 그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기술들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B R A N D G E N E R O S I T Y
파리의 편집 매장 메르시를 소개하면서도 잠깐 이야기 했지만, 요즘은 관대한 브랜드가 인기입니다. 그리고 사회적기업은 관대한 브랜드의 극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브랜드)은 소비자를 속여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하는 탐욕적인 존재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반대로 기업의 존재 자체 혹은 돈을 버는 방식이 관대한(소비자를 위하는, 사회를 위하는) 브랜드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앞으로 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쇼설 미디어의 발달로 비밀은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투명성(transparency)'이라는 단어가 최근 경영계의 화두이며, 위키리크스가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또 한 가지는 기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회적기업들이 기업이라는 영역에 뛰어든 이상, 경영학 원론 첫 시간에 배운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라는 기업의 범위는 확대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주주 가치 극대화'를 위해 존재하는 기업들은 '사회 가치 극대화'를 위해 존재하는 사회적기업들을 무시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