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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끝나고 난 오후, 알마데일 하이스트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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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건물과 역사적인 건물이 뒤섞인 멜번의 시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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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장소이자, 시위의 장소이자, 피크닉의 장소이자, 책도 보고 인터넷도 할 수 있는 멜번 스테이트 라이브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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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무언가가 열리고 닫히는 페러레이션 스퀘어 |
시드니에 사는 친구가 멜번의 별명을 알려줬습니다. '멜보링(Melbouring)'이랍니다. Melbourne is boring! 멜번은 따분(boring)하다며 얼른 시드니로 오라고 야단입니다. 처음 들을 때에는 웃어 넘겼는데, 생각해보니 재미있어서 멜버니언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재회해서 친구가 된 다니카(Danica)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고 반 나절을 함께 멜번의 구석구석을 다녔습니다. 인터뷰라기 보다는 수다에 가까웠지만, '멜보링'이란 별명에 대한 의문도 풀리고 멜번의 히든 플레이스도 알게 되었습니다.
"시드니에 있는 친구가 멜번의 별명이 '멜보링'이래. 정말 그래?"
"하하하, 나도 처음 들어봤는데?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것 같아. 멜번이랑 시드니는 'vs'를 달고 다니잖아. 어느 도시나 그렇겠지만 우리는 자기가 사는 도시를 사랑해. 모든 도시는 흥미롭고, 나에게는 멜번은 전혀 지루하지 않아."
호주에서 멜번과 시드니의 경쟁구도의 역사는 깊습니다. 1901년에 정식으로 나라가 세워지고 나서, 1927년에 수도가 캔버라로 정해지기 전까지 호주의 수도는 멜번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드니를 호주의 수도라고 생각할 만큼 시드니가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는 하지만 멜번 사람들은 원래 멜번이 호주의 수도였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캔버라가 수도로 지정된 이유 중 하나도 두 도시의 경쟁 구도를 고려해서 시드니와 멜번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을 우선 순위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반구 최초의 올림픽도 멜번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시드니 올림픽이 있기 반 세기나 전에 말입니다.
"나도 멜번에 오기 전에는 멜번이 어떤 도시일지 상상이 안 됐어. 그런데 한 달 넘게 지내보니 전혀 지루하지 않아서 친구가 그 말을 했을 때 그냥 웃어 넘겼어. 멜번은 생각보다 굉장히 핫한 도시 같아. 론리 플래닛에서 왜 Lane Culture를 즐기라고 했는지도 알겠어. 멜번에서는 골목의 끝까지 들어가 봐야 거기에 뭐가 있는 지 알 수 있어. 간판도 없고, 조명도 없지만 혹시 하고 들어가 보면 멋진 카페나 바들이 숨어 있더라구."
"맞아, 그런데 이렇게 변한 건 얼마 되지 않았어. 20년 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어. 그때는 지루했을지도 몰라. 그런데 60년대부터 개발의 붐이 불면서 70-80년대에는 동쪽으로 도시가 점점 더 넓어졌고, 근교로 갔던 사람들이 아이들의 교육같은 문제로 다시 중심부로 모이면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건 뭐야?"
"글쎄, 나도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워. 지금 멜번은 모호(ambiguity)해. 이 단어 '모호함, 애매함'은 내가 좋아하는 말이기도 해. 내 작품들의 중심 생각이기도 하고 말야. 모호하다는 건 계속 자라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 지금의 멜번이 그런 것 같아."
"브로드쉿(Broadsheet)알아? 그 웹사이트에서 니가 하는 말과 비슷한 문장을 읽은 것 같아. 잠깐만 웹사이트에 들어가보자. 바로 이거야. 편집장 겸 발행인이 자신들을 소개하는 페이지에 쓴 글이야."
From where we’re standing Melbourne is going through an extraordinary boom at the moment. I think most would agree, it's virtually unrecognisable from the city we remember as kids. There seems to be an energy about the city right now; things are really happening.
"어때?"
"음...보자... 맞아, 나도 완전히 동의해. 내 말도 이 말이었어."
"그럼 그 다음 문장은 어때? 마지막의 컴플렉스란 뭐지? 너희들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인가?"
Don’t worry, we wont bang on about how Melbourne is hailed for its restaurant scene, laneways and boutique shopping; that’s well beyond the point of cliché and, frankly, reeks of an inferiority complex.
"나도 단언하기는 어려워. 그렇지만 호주가 역사적 기반이 영국이나 독일, 네덜란드에 비해서 약한건 사실이야."
"좋아, 그럼 내가 멜번에 궁금한 것 더 물어볼게. 지금은 멜번에서 가장 핫한 서버브(suburb)는 어디라고 생각해?"
"그건 니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 다를꺼야. 만약 비주얼 아트에 관심이 많다면, 우리가 처음 만난 피츠로이 쪽이지 않을까?"
"피츠로이 갤러리 투어는 정말 멋있었어. 너 아니었다면 브런즈윅 스트릿(Brunswick st.)의 뒷골목 이층에 갤러리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을거야. 멜번에는 그런 숨은 갤러리가 많아? 시드니보다 많을까?"
항상 시드니와 비교하는 제 질문을 불편해 했는지 모르겠지만, 다니카는 언제나 객관적으로 이건 자기 의견이고 정확한 수치는 확인해 보지 않았다며 겸손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시드니의 아트 시장이 더 크겠지만 멜번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를 멜번 시티에 있는 숨은 갤러리들로 데려가 주었습니다. 덕분에 빌 헨슨(Bill Henson)이라는 사진 작가도 알게 되었고, 그 복잡한 스완스톤 스트릿(Swanston st.)에 신생 아티스트들에게 스튜디오 겸 전시 공간을 빌려주는 빌딩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시티 라이브러리 옆 건물이었는데 일층에는 편집 매장들이 있고, 오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건물 밖과는 전혀 다른 아티스트들의 세상이 펼쳐집니다.
이제 막 떠오르는 작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아트 스쿨을 졸업한 학생들이 자신의 포트폴리오와 일종의 제안서를 내고 통과가 되면 공간을 저렴한 가격에 빌려주고 전시도 후원해 준다고 하네요. 우리 나라에도 이런 플랫폼 역할을 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있겠죠?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번은 아티스트가 활동하기 어렵다고 한참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일단 물가가 비싸니까요.
몇 군데의 갤러리들을 돌아 본 후에 시티 라이브러리의 작은 세미나 룸에 들어가 조용히 수다를 떨 수 있었습니다.
"멜번은 마치 스위스의 바젤 같아. 바젤도 굉장히 작은 도시인데 골목마다 개인 갤러리든 공공 갤러리든 없는 블럭이 없을 정도야. 덕분에 바젤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것 같았어. 실제로 바젤 시립 미술관(Kunstmuseum Basel)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개인 컬렉션을 시에 기증하면서 만들어 졌대. 그 중에는 피카소의 작품같은 유명 그림들도 상당했다나봐. 원래 그 동네 사람들은 예술을 사랑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디자이너 친구는 유럽 여행을 할 때 꼭 바젤에 가 보라고 권하기도 하던데, 바젤 가 봤어?"
"응, 아트 바젤 페어도 유명하잖아. 바젤 좋아. 그런데 멜번은 바젤만큼은 아니야. 멜번도 2년에 한 번씩, 불행히도 올해는 아니지만, 아트 페어가 열려. 하지만 규모 면에서 바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아. 말했지만 호주는 역사가 길지 않거든. 덕분에 호주의 예술문화는 젊다고 할 수 있어."
"꼭 비주얼 아트를 말하지 않더라도 멜번은 문화적인 도시같아. 페스티벌 일정이 달력에 빼곡하고, 주 정부에서도 관리를 잘 하는 것 같던데, 아니야?"
"음... 주 정부의 예산은 스포츠에 가장 많이 쓰이지 않을까? ^^ 비주얼 아트 부분에는 포션이 매우 작고, 페스티벌이나, 뮤지컬, 오케스트라 같은 다른 문화 활동에는 적지 않을거야."
"그렇구나. 아무튼 언제든 즐길 거리가 있는 멜번 사람들이 부러웠어. 어느 주말에든 나가 놀 거리가 있던데? 게다가 커피도 맛있고, 맥주도, 와인도 맛있잖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문화들이 많아 보여."
"그걸 두고 핫 하다고 할 수 있을 거야. 뜨겁지.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소비 중심적인 문화라고 생각해. 쉽게 소비할 수 있는 먹고 마시고 놀 거리가 많이 생겼지. 그런 면에 있어서 멜번의 아트 씬은 좀 달라. 숨겨져있고 뭔가 혼합되어 있어."
"역시, 모호한건가?"
"맞아. ^^ 멜번의 아트 씬은 한 번도 주류가 된 적은 없어. 그렇지만 안에서 더 커지고 있어. 애매하지만 말야. 우리는 행운아야. 우리에게는 많은 자유가 있거든."
"와, 어쩜... 내가 묻고 싶었던 걸 어떻게 알고 대답한거니? 서점에 갔다가 <The Lucky Country>라는 책을 봤어. 이 책을 쓴 도널드 혼(Donald Horne)이 마지막 챕터에 이 말을 쓰고 제목으로 붙이고 나서 이 단어가 호주의 별명처럼 됐다고 하더라구. 정말 너희들은 스스로 행운이 가득하다고 생각해?"
"응,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가진 자원이나 자연환경을 봐. 그렇지만 그건 미디어 센세이셔널리즘(media sensationalism)의 하나이기도 해. 일종의 프로파간다지. 그런데 지금 우리가 정말 럭키할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 비싼 의료보험 시스템을 봐, 엄청나게 비싼 렌트비는 또 어떻구."
멜번대에서 순수 예술을 전공한 이 친구와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6시가 돼서 도서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우리는 오프닝 행사가 있는 다른 갤러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쉽게도 뭔가 착오가 있어서 오프닝을 보지는 못했지만, 뭔가 멜번에 대한 많은 의문이 풀려서 신이 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를 골라달라고 했습니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1살 부터 28살까지 유럽, 아메리카 대륙, 아시아, 그리고 알라스카까지 안 가본 곳이 없었습니다. 현지에서 돈을 벌며 여행을 하고 다시 호주에 왔다가 다시 여행을 떠나기를 반복한 후에 29살이 되어서야 공부가 하고 싶어서 대학에 왔다고 합니다.
지금은 여러 단체의 후원을 받으며, 여러번의 전시회를 연 신생 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그녀가 보여준 작품 중에 저는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뭔가 감정 이입이 되었다고 하는게 맞을까요? 숍의 한 구석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한 여자가 자신의 발에 맞지 않지만 맘에 드는 구두를 억지로 신는 모습을 연속 촬영한 이미지 입니다.
다니카는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주는데, 이렇게 사진이 되기도 하고 설치 미술이 되기도 하고 조각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늘 고민하고 그것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고민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이런 그녀가 꼽은 최고의 도시는 바로 '베를린'이었습니다. 역시 아티스트답게 최근 아티스트들의 성지라는 베를린에 꼭 가보라고 합니다.
"하나를 꼽아야 한다고?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 그렇지만 베를린이라고 말할게. 베를린에는 다양성이 있어. 국경을 넘나드는 다양성. 그리고 굉장히 현실적이고 강렬해. 멜번은 규제와 압력이 있다는 점에서 베를린을 따라가기 어려워. 지금의 베를린은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고 있거든.
"무엇보다 이야기를 하기 위한 플랫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이 베를린을 움직이게 한다고 생각해.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실제로 이야기를 해. 좀 전에 네가 멜번 사람들도 이야기를 하기 좋아한다고 말했지? 그런데 그건 좀 다른 차원이야. 멜번 사람들의 대화는 조킹 컬처(joking culture)라고 할 수 있어.
"베를린에는 프로페셔널리즘이 있어. 사람들은 진지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어해. 내 생각에는 유럽은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들이 서로 가까이에 붙어 있잖아. 그래서 오랫동안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대화를 했어야 하는 것 같아. 그 문화가 베를린에도 있는것 같아. 서로를 알리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려는 공간이 자연스럽고 도시 각지에 굉장히 많아. 베를린 또한 모호함을 가지고 있는 도시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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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 Danic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