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26, 2012

[culture] 지는 도시의 뜨는 갤러리, 터너 컨템포러리(Turner Contemporary)

Margate, Turner Contemporary



다행입니다. 매일매일 캘린더에 그 날의 스케줄을 기록해 놓은 덕에 작년의 오늘에는 터너 컨템포러리(Turner Contemporary)에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야말로 발견입니다.

터너 컨템포러리. 뭔가 범상치 않음이 느껴지시나요? 예, 맞습니다. 영국의 국민화가이자 손꼽히는 풍경 화가인 윌리엄 터너의 이름을 딴 갤러리 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저도 처음에는 터너의 작품들을 모아놓은 갤러리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터너의 작품을 보려거든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으로 가시는 편이 낫습니다.

터너는 생전에 터너 컨템포러리가 위치한 마게이트라는 도시를 종종 방문했고, 이곳 해변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갤러리 이름을 짓고, 상징적으로 그의 작품을 한 작품(제가 방문했을 당시) 걸어 놓고 있었습니다.

작년 4월에 오픈했고, 계절마다 전시를 바꾸며, 영국의 갤러리답게 무료입장이 가능하고, 멤버십 혜택이 꽤 괜찮습니다.

단점이라면,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한 시간쯤 가야 도착하는 도시, 마게이트(Margate)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행기나 유로스타 등이 발달하기 전, 대륙과 통하는 대표 항구도시였던 마게이트는 이제, 뭐 하나 내 놓은것 없는 죽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물론, 터너 컨템포러리가 오픈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갤러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죽은 도시에 현대 갤러리를 오픈하며, 국민 화가의 이름을 빌려와 이름을 지은 것. 생김새도 분위기도 뭉뚱한 이 해변 도시에 유명 건축가와 함께 날카로운 외관의 건물을 짓고, 엣지있는 기획전을 벌이고 있는 것. 덕분에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었고, 런칭한지 1년도 안 되어 목표의 두배에 가까운 30만 명의 관객을 유치한 것.

게다가 작년에는 여왕을 방문하게 하고, 지금은 트레이시 에민의 기획전을 열고 있는 것.

도대체 누굴까요?

마게이트와 터너 컨템포러리에 관한 글은 밤새라도 쓸 수 있을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마을, 흥미로운 갤러리, 흥미로운 전시, 흥미로운 동행, 그래서 흥미로운 여행이었다는 주제로 장편 소설도 하나 쓸 수 있을 것 같고, 도시 브랜딩 사례연구 논문도 하나 쓸 수 있을 기세입니다. 그러나 아껴두고 싶네요.

런던에 계신 분이라면 브라이튼 해변이나 옥스포드만 다녀오지 마시고, 마게이트에도 한 번 들러보세요. 올드 타운에 새로운 가게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고 하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작년보다 더 놀거리가 많아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갤러리 구경을 하고 기차역에서 왔던 길을 따라 걷다보면 숨겨진 아름다운 해변에도 도착할 수 있습니다.

런던에 계신 분들이 새삼 부럽네요. 윔블던, 올림픽, 테이트 모던 데이만 허스트 전, 터너 컨템포러리 트레이시 에민 전, 사우스뱅크 위의 룸 포 런던... 즐기세요!

그나저나, 데미안 허스트 전은 예약해야만 갈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 본래 걷는 속도의 세 배쯤 되는 속도로 걷느라 제대로 된 사진이 많지 않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도시, 아름다운 갤러리 입니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고 들르세요. 홈페이지 바로가기













Jun 24, 2012

[culture] 윔블던 테니스 대회







Wimbledon 2011


내일 25일, 올해의 윔블던이 시작됩니다. 올해에도 조코비치와 나달이 결승에서 만날까요? 영국 사람들은 그래도 열심히 머레이를 응원하겠죠? 하얀 유니폼만 허용하는 윔블던의 전통이 깨진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올해에는 다른색의 유니폼도 볼 수 있을까요?

윔블던에 가시려거든 열심히 예약을 하시고, 실패해서 현장 티켓을 구하시려거든 아침 일찍 도착해서 안내에 따라 얌전히 줄을 서야 합니다. 위 사진의 사람들처럼 여유를 가지고 하안참을 기다리다보면 공항에서처럼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이것이 마지막 관문입니다. 검색대를 지나면 윔블던 파크에 들어갈 수 있지요. 저는 입장까지 5시간쯤 기다렸습니다.

입장권이 20파운드였던가요?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입장료를 내고 파크에 들어가면 메인 3개 경기장의 경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경기를 볼 수 있습니다. 메인 경기도 언던에 앉아 중계되는 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으니 나쁘지 않습니다. 아마도 더 싼 가격에 6시 이후에 입장 가능한 야간권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작년에도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윔블던 앱도 있네요. 관심있으신 분은 다운받아서 실시간으로 정보도 얻고 현장을 느끼실 수 있겠어요.

핌스 한 잔, 맥주 한 잔, 스트로베리 앤 크림 하나, 이렇게 먹고 노닥노닥하다 오고 싶네요.



+ 관련글: [culture] 영국인, 호주인, 덴마크인, 스웨덴인, 노르웨이인, 그리고 핀란드인 발견
+ 윔블던 홈페이지 바로가기




Jun 18, 2012

[culture] Knockin' On Heaven's Door

Beach, near Melbourne


제가 머무는 사무실에는 모든 직원들 자리 앞에 각자가 좋아하는 영화 제목과 함께 자리 주인의 이름을 적어 놓은 작은 푯말이 붙어 있습니다. 제 자리에는 쿠보즈카 요스케가 주연한 영화 <고>가 적혀 있는데, 사실 너무 급하게 고르느라 먼저 생각나는 영화를 적었습니다. 적어 놓고도 내내 '분명 <고>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아닌데, 그럼 뭐지?'라는 자문을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하루하루를 무언가로든 꾹꾹 채우며 지내다가, 얼마전 작년 한 해 동안 찍은 필름을 현상했습니다. 멜번에서 머무는 동안 근처 해변으로 소풍을 갔던 사진을 넘겨보다가 생각이 났습니다. 독일 영화 <노킹온헤븐스도어 Knockin' On Heaven's Door>가 말입니다. 중학교 때 흐린 날 거실에서 친구와 비디오를 빌려다가 봤던 기억입니다. 그후 이 영화는 내내 좋아하는 영화 탑5 안에 들어 왔습니다. 이제서야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아메리칸 뷰티>... 줄줄줄 생각이 나네요.

위 사진에서 날씨만 조금 흐려지면 <노킹온헤븐스도어>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 바다와 꼭 같습니다. 해변에 들어서는 순간, 그 해변을 생각했습니다. 곧 죽음을 맞이해야만 할 두 남자가, (그 중 한 명이 바다를 본 적이 없다는 말에) 바다를 향해 떠나는 로드무비인데, 마지막이 저렇게 낮은 풀숲이 사이로 연결된 바다에서의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런 대사도 있죠.

"천국에서는 주제가 하나야, 바다..."

그때 이후로 제게 키 작은 건조하게 생긴 풀이 바닷바람에 흔들이며 파도소리와 함께 '솨아솨아'거리는(?) 해변은 일종의 로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상치도 않은 멜번의 해변에서 보게 된 것이죠. 열심히 셔터를 눌렀는데, 키작은 풀들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쉽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밥 딜런의 노래 제목과도 같습니다. 영화도 노래도 결코 희망적이지 않은데 이 영화와 마지막 장면의 배경음악을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이런 영화야말로 힐링 무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마음의 평화 그대로 잠들어야겠습니다. 멜번이 아닌 독일의 바다로 가 있기를.






Jun 17, 2012

[photo] a day on earth

daytime drinking, Holborn, London


이 지구에서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때로는 인생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작년 이맘때 쯤, 대낮에 홀본의 펍에서 사무엘 스미스의 브라운 에일을 마시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여기에 있지 않겠죠?

그냥저냥 빈속에 맥주를 들이 붓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졸았던 기억은 있는데, 홀본 역 근처의 이 펍 이름은 기억이 안 나네요. 길가에 자리한 이 오래된 펍에서는 사무엘 스미스를 비롯한 영국 전통 맥주들을 괜찮은 가격에 맛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