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26, 2012

[inspiration] 홍대 카페 앤트러사이트(Anthracite), 변신 공간과 브랜딩에 대한 몇 가지

(image: www.anthracitecoffee.com)


저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앤트러사이트(Anthracite, 무연탄)' 카페. 무한도전에도 나왔다죠? 역시 좋네요. 커피 맛도, 분위기도, 무엇보다 이들의 모토가요. '재활용, 자급자족, 자립' 이랍니다. 


카페에 대한 소개는 아래 글로 대신합니다.


+ [복합문화공간7] 폐공장 재활용, 당인리커피공장 ‘앤트러사이트'  

브랜드와 마케팅에 대한 정의는 수백개가 존재하지만, 언젠가부터 마케팅은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것이고, 브랜딩은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마트에 가서 1+1 행사 때문에 보통 사던 우유를 사지 않고 A 우유를 산다면 A 우유는 저라는 소비자에게 선택받아서 마케팅에 성공한 것이겠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늘 B라는 우유를 산다면 그 우유는 브랜딩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랑을 하면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 사람이 마냥 좋습니다. 물론 그 사람은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겠지만요. 그래서 브랜드 이론가 중 하나는 '브랜딩은 마케팅을 불필요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에 빠뜨리면 나를 선택하게 하려고 굳이 애를 쓰지 않더라도 나를 찾게 된다는 말이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브랜드는 소비자를 사랑에 빠뜨릴 수 있을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언행일치입니다. 말한대로 행동하는 것이지요. 요즘 사람들은 기업에 대한 불신감이 크기 때문에 자신이 말한 기업의 미션, 철학대로 제품을 만들고, 광고를 찍고, 프로모션을 하는 기업에게 쉽게 호감을 보입니다.

또 애플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애플이 Think Different하겠다고 말하고, 그에 따른 제품을 만들고 광고를 찍고 신제품 런칭 쇼를 하고 매장을 만들고 직원들을 훈련시켰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그에 열광한 것입니다. 프라이탁도 '재활용'하겠다는 모토 아래에서 제품도 그렇게 만들고 작은 리플렛 하나까지에도 그 정신을 따르게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앤트러사이트는 브랜딩을 잘 해가고 있지 않나 합니다. '재활용, 자급자족, 자립'이라는 모토 아래에서 공간을 만들고, 커피를 볶고, 직원을 채용하고, 수익을 나누고, 또 2호점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 기사를 읽어 보시면 알 것 같아요. 말한대로 행동하고 있기에 오늘 길이 차가 없다면 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늘 손님이 북적입니다.

'지행합일' '언행일치'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존경하고 그것이 완벽하다면 성스러운 인간, 성인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수많은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기업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업이 있다면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사실 이 카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서울에도 와핑 프로젝트(Wapping Project)같은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였습니다. 공간 재활용은 요즘 공간 구성의 유행이기도 합니다. 수력 발전소를 개조해서 카페겸 갤러리로 활용되고 있는 런던의 와핑 프로젝트, 화력발전소였던 런던의 테이트모던(Tate Modern), 맥주 양조장이었던 베를린의 문화 복합 공간 컬처 브로어리(Kulturbrauerei), 와인 창고가 변신한 파리의 베르시 공원(Bercy village), 자동차 공장을 개조한 파리의 시트로앵 공원(Park Andre Citroen), 원래는 도살장이었던 파리의 라 빌레트(La Villette) 등 해외 사례도 많이 소개되었죠.


그런데 막상 와 보니, 단지 기존의 공장 공간을 재활용해서 변신했다는 공간 구성 컨셉에만이 아니라, 이 조직이 살아가는 방식에 관심이 갔습니다. 와핑 프로젝트의 아류가 아닌 언행일치를 노력하는 곳 같습니다. '철학의 전략화'라는 말과 어울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홍대에 가면 당인리 발전소 근처로 가 보세요.







+



Mar 21, 2012

[inspiration] 베를린 프란츠라우어의 바, 본침머(wohnzimmer)










wohnzimmer, Berlin


사진으로 다시 보니 햇살 가득한 행복이 가득한 집의 거실같지만, 사실은 찌든 담배 냄새가 인상적이었던 베를린의 바. 대낮에 가서 전세 낸 듯 쉬다 왔는데 다시 가게 되면 자정 무렵게 가렵니다.

+ www.wohnzimmer-bar.de

이 나라의 문지기(gate keeper)들을 응원하며




여행 중에 국제적으로 엄청난 사건들이 몇 있었는데, 3월의 일본 대지진, 5월에 빈 라덴 사망, 10월에 스티브 잡스 사망이 기억납니다. 그 중 5월 2일에는 시드니에서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온 매체가 그의 사망 소식을 알렸고, 커스텀 하우스에 가서 신문 보는게 일이던 저는 각 매체의 헤드라인을 흥미롭게 들여다 보았습니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한 덕에 매체의 색(지향점)에 따른 헤드라인 뽑기와 그것에 미치는 데스크(나아가서 자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큰 사건이 있을 때 의도적으로 각 언론사의 제목 뽑기를 비교해서 본 적은 거의 없네요.

다행인지, 어쩐 일인지, 작년 5월 2일은 빈 라덴 덕에 신입생 시절 신문학 개론 시간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위 사진은 시드니에 발행되는 주요 일간지 중 3개 표지입니다. 헤드라인의 단어들로만 보아도 어떤 신문이 가장 황색지에 가깝고 어느 신문이 정론지를 지향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널리즘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접하는 첫 단어 중 게이트 키퍼(gate keeper)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자든 PD든 언론인들은 정보의 장에서 문지기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정보를 보고 문 안으로 들여 보낼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가려내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나아가서 문을 통과하는 정보가 '빈 라덴의 사망'이라면 그것에 '악마'라는 딱지를 붙일 지, 사실 그대로 '빈 라덴(이름)'이라는 딱지로 통과시킬 지도 그들의 몫입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언론인들과 언론사 자체가 많아졌기에 그들의 영향력이 상당히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적인 영향력으로 보았을 때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각설하고 최근 MBC를 시작으로 한 언론 3사의 파업을 보며 느끼는 바, 그리고 저널리즘을 공부한 이로서 부끄러운 바가 많습니다. '파업 지지 선언'에 동참하는 것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주위에 <무한도전> 팬들에게 김태호 PD가 월급 많이 받으려고 편집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리고 싶습니다. 동시에 한국은 언론 의식에 있어 공인된 후진국이라는 사실도요.

런던에 머무는 동안 BBC 홈페이지를 통해 지역 정보를 얻곤 했는데, 우연히 South Korea를 입력했던 적이 있습니다. 국가 정보에서 언론사라 그런지 Media 카테고리로 한국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서 읽다가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국경없는 기자회의 세계언론자유지수를 근거로 평가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후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몇 나라들보다 자유도가 낮은 수준으로 쓰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위를 확인해 보고 싶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그 내용은 사라졌네요. 업데이트가 자주 이루어지는 모양입니다.)

+ BBC South Korea profile

더불어 아직도 영국과 호주 뉴스에는 미디어 재벌 루퍼드 머독 비판 기사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며 부러움을 느낍니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미디어 그룹인 뉴스 코퍼레이션(News Corporation) 사의 창업자인 머독은 호주 태생이지만 미국으로 귀화했습니다. 뉴스 코퍼레이션은 셀 수 없는 정도의 영국, 미국, 호주 언론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의 영향력은 엄청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죠.

그와 관련된 최근 이슈 중에는 상속 문제와 해킹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기 재벌들과 다르지 않게 회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사장과 그것을 반대하는 주주들, 그리고 시민들 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결국 사장의 뜻대로 이루어졌지만 '언론사는 사회적 책임이 있는 조직'이라는 이유로 머독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해킹 건은 여전히 진행중인 것 같은데, 뉴스 코퍼레이션 사가 여러 정치인과 유명인들의 전화를 해킹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이 정도로 지독하게 물고 늘어질까 싶을 정도로 (제가 알기로만)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 사건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갑자기 경제 성장을 이룬 덕에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아직 얻지 못한 것도 많습니다. 그 중 국민들의 높은 사회 의식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아직 얻지 못한 것입니다. 먹고 사는 고민에서 벗어난지 몇십년 되지 않았기에 우리보다 수십년 혹은 백년 이상 앞서 있는 서양의 나라들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우리 부모님 세대와는 다른 고민을 해야 할 때인것 같습니다.


Mar 15, 2012

[trend] 부티크(boutique) 맥주의 세계 5. 베이루트에 가면


베이루트는 레바논의 수도입니다. 레바논이라는 나라가 중동 어느 지역에 위치해 있는지 지도를 보고도 단번에 찾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베이루트라니요. 참으로 낯설어서 베이루트에 떨어지게 되면 무얼 해야 할지 상상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가지고 있는 정보라면 대학 동기 중 레바논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에게 들은, '베이루트에서는 수업을 듣고 있으면 학교 옆으로 탱크가 지나가고 폭탄이 터진다' 정도의 이야기 입니다. 종교, 정치, 역사 등 복잡한 이유들로 내전이 끊이지 않는 나라기 때문이겠죠.

이런 레바논에서도 부티크 맥주가 생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전 <모노클>에서 LB와 961이라는 이름의 맥주 관련 기사를 읽고는 이 맥주뿐만 아니라 베이루트라는 도시도 궁금해졌습니다. 왠지 베이루트에 가면 올리브 나무로 담장이 만들어진 바에서 흙먼지로 지친 목과 코를 이 맥주로 위로해 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도 했습니다.

비록 베이루트에는 가 보지 않았지만, 이 도시의 맥주 이야기는 최근 부티크 맥주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합니다. 서울이나 부산, 담양이나 제주 등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작은 맥주 사업을 꿈꾸는 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레바논에 본사를 두고 있는 그래비티 브로잉(Gravity Brewing)의 창업자 Mazen Hajjar는 이 회사에서 나오는 두 가지 맥주, LB 맥주(Lebanon beer를 의미, lb는 레바논의 인터넷 도메인 코드)와 961 맥주(레바논의 국가번호)의 성공 동력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브랜드 스토리(A good brand story), 디자인(Graphics and labels), 그리고 동료들(A loyal team)이 그것인데, 이 세 가지 요소는 작은 브랜드들이 성공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 스토리
"좋은 맥주를 만드는 것,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좋은 맥주와 함께 할 수 있는 이야기 말이죠. LB가 런칭한 2006년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레바논 기반의 무장 시아파 조직이자 합법적 정당) 간의 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모두가 이곳에서 도망가려 할 때, 우리는 숍을 열었습니다. 포격 속에서 우리의 첫번째 맥주가 탄생했죠."

- 디자인
"창업 이래로 우리는 보기 좋고 다양한, 특히 젊은 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로컬 디자인 회사인 Drive Communication이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레바논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태양을 심볼화 한 것 역시 우리가 레바논을 기반으로 하는 회사라는 것을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 동료
"처음 회사가 만들어질 때에 누구도 맥주 제조에 관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모두가 100% 레바논 기반의 레바논 맥주를 만들겠다는 열정과 도전의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지요. 회사 운영방식 역시 굉장히 유연하고 모든 직원이 주인의식과 자부심을 가지고 맥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Hajjar는 '작은 것이 좋다(small is good)'라는 철학과 '레바논 사람들에게 이전과 다른 경험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작은 양조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레바논 시장을 독점하던 하이네켄 그룹의 맥주인 Almaza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매년 7백만 병을 생산하며(Almaza의 경우 6천만 병) 세계 16개 국으로 수출도 할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성공이라고 말 할 수 있겠죠?

LB 맥주의 성장에는 위 세 가지 외에도, '지역(Local)'이라는 키워드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 했듯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의 로컬화는 최근의 메가 트렌드이기도 하구요.

LB는 디자인 회사도 레바논 기반의 회사와 함께하고, 광고나 프로모션에도 글로벌 스타보다는 레바논 출신의 아티스트나 뮤지션과 협업을 합니다. 지금은 주요 원료인 홉(hop) 을 독일에서 수입해서 쓰지만 조만간 레바논에서 제배된 홉으로 맥주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물론 천연 재료를 사용해서 다 쓴 원료를 지역의 가축 사료로 사용해도 무리가 없게 합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할뿐만 아니라 지역을 알리고, 지역의 경제(일자리)나 환경까지도 고려하는 것이지요.

이런 지역 기반 브랜드들의 지역에 주는 것도 있지만 받는 것도 있습니다. 특히 도시(국가) 이름을 네이밍에 활용한 경우 도시(국가) 브랜딩과 윈윈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칼스버그의 코펜하겐 맥주나, 위의 LB 맥주의 경우가 대표적으로 도시의 혹은 나라의 아이덴티티를 적극 활용하는 예입니다. 코펜하겐의 경우에 워낙 오래된 역사와 단단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브랜드가 도시의 덕을 보는 경우지만, 반대로 레바논과 베이루트는 LB 맥주의 성공으로 후광효과를 누리고 있지 않을까요? 저만해도 전쟁의 도시였던 베이루트에도 쿨한 이미지가 추가되었으니 말입니다.

맛이 궁금할 뿐입니다. 런던의 레바논 스트리트 푸드 전문점인 얄라얄라(Yalla Yalla)에서 마셔 본 Almaza의 맛을 떠올려보면, 그보다 나쁠 수는 없을 겁니다. 제가 마셔본 맥주 중에 가장 맛이 없는 맥주였거든요. 하이네켄 그룹에서 곧 Almaza를 되팔든, 투자를 해서 더 좋은 맥주를 만들든 해서 레바논에도 맛있는 맥주들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Almaza, Lebanon no.1 beer
Yalla Yalla, Lebanon street food restaurant, London


웬 남의 나라 걱정이냐구요?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도 레바논보다 조금 나은 정도지 맥주 애호가들에게는 좋은 사정의 나라는 아닙니다. 한국에도 어서 괜찮은 부티크 맥주 회사들이 하나 둘 생기고, 그 회사들이 도심에 직영 펍도 열어주길 희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관련 법이 개정되어야 하겠군요.



부티크(boutique) 맥주의 세계 1맥주맛도 모르면서
부티크(boutique) 맥주의 세계 2. 멜번 편, 스몰 브로어리와 모던펍의 만남
부티크(boutique) 맥주의 세계 3. 런던 편, 보기 좋은 맥주가 맛도 좋다
부티크(boutique) 맥주의 세계 4. 코펜하겐 편, 왕실 맥주의 실험작
부티크(boutique) 맥주의 세계 5. 베이루트에 가면



Mar 5, 2012

[trend] 부티크(boutique) 맥주의 세계 4. 코펜하겐 편, 왕실 맥주의 실험작



덴마크 브랜드 중 로고에 왕관이 그려져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로열 코펜하겐과 칼스버그(Carlsberg)가 대표적입니다. 이것은 왕실에 납품을 했던(하는) 브랜드임을 증명하는 즉, '왕실 인증' 마크라고 봐도 무관합니다.

코펜하겐에서 이런 브랜드들을 보며 참 부러웠습니다. 브랜딩하기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만의 고충이 없을리 만무하지만, 요즘 브랜드들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라도 갖고 싶어하는 '헤리티지와 오리지널리티, 히스토리와 스토리...' 등등의 단어를 이미 등에 업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특히 칼스버그는 세계 4위의 공룡 맥주 회사로 성장한 지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스버그의 '없을리 만무한' 고민 중 하나는, 맥주 시장 전반의 침체일 것입니다. 칼스버그 그룹에는 수많은 브랜드의 개별 브랜드가 있습니다. 덴마크 시장 1위에 빛나는 깔끔한 Tuborg Green도 있고 칼스버그의 클래식이자 알콜 도수 7도가 넘는 강한 맥주 엘리펀트도 있습니다. 코펜하겐의 편의점에서 맥주 코너에 가면 대부분이 칼스버그 그룹의 맥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맥주가 기네스이듯, 덴마크를 대표하는 맥주가 칼스버그임도 분명해 보입니다. 기네스는 아일랜드의 국민 맥주로 국가적 위기도 함께 견뎌 온 존경받는 기업의 타이틀까지 얻고 있는데, 칼스버그의 경우에는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칼스버그 그룹의 제품 포트폴리오 중, 코펜하겐(Copenhagen beer)이 있는 것은 의외였습니다. 디자인 숍이나 인테리어 소품 매장에 전시용으로 놓여져 있던 '코펜하겐'이라는 이름의 병을 처음 보았을 때, 특별 제작되었거나 디자인 용품 회사에서 만든 음료수 병이라고 생각했는데, 칼스버그에서 생산한 맥주였기 때문입니다.



+ 바로가기 : 칼스버그 홈페이지


게다가 코펜하겐 맥주의 홈페이지에 가보면, 이 맥주는 마치 부티크 맥주들이 사용하는 단어들로 자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름이 그 지역 이름인 코펜하겐인 것도, 그래서 라벨에 코펜하겐의 위도인 북위 56도가 표시되어 있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Copen*hagen is a new beer. And it’s quite a different beer. If you haven’t had the pleasure yet: Be prepared for a chilling surprise. It’s extra-ordinarily refreshing. Crisp, easy and smooth. Without bitter aftertaste. Brewed with nothing but natural ingredients and cold filtered for purity. Copen*hagen is like an open invitation. Scandinavian minimalism. Being beautifully stylish and refreshingly approachable, it allows you to enjoy beer in a discerning, stylish and modern way


Daring in its sophistication Copen*hagen is refreshing to all your senses. From its very name, over the stylized hop leaf to the shape of the bottle it’s made to satisfy every taste- and style-conscious lovers of life. Copen*hagen is made with a little help from our friends. Like you – and the likes of you – who care about design, taste and quality. You told us what you were looking for: a crisp, delicate and refreshing beer that looks great.  Together we redefined beer itself, its idea, design and taste. Today we can enjoy what we have accomplished together:   Something refreshingly different.


Copen*hagen it is.

맥주는 '술(알콜)'이라고 생각해온 전통적인 남성 맥주 소비자들은 '스칸디나비안 미니멀리즘의 모던하고 스타일리시한 감각의 맛 좋고 품질 좋은 맥주'라는 이것을 허세 맥주나 게이 맥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패스트컴퍼니에서도 이 맥주를 두고 '세계 최초의 양성 맥주 (병)'이라고 했는데,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 관련기사 : Is This The World’s First Androgynous Beer Bottle?

실제로 많은 여성 고객들이 맥주를 마시지 않는 이유는, 마초의 이미지, 배부름, 칼로리 등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펜하겐은 칼스버그에서 생산하는 대부분의 맥주 소비자에서 제외되어 있는 '맥주 맛 자체와 스타일을 소비하는 여성(혹은 남성)' 소비자군을 끌어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이 소비자군이 얼마나 넓을 지, 또 많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올해부터 시장을 유럽에서 아시아 등으로 넓힌다고 하니 기대는 해 보겠지만, 왠지 왕실 맥주의 실험작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맥주가 작은 부티크 맥주 기업의 것이 아니라 대자본와 글로벌 유통망을 가지고 있는 칼스버그의 것이기에 섣부른 판단은 조심스럽습니다.

음료수처럼 상큼한 청량감이 돋보이는 특색있는 맛, 예쁜 병 디자인, (아직은) 소량 생산, 지역색 등 부티크 맥주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모두 갖춘 코펜하겐. 성공여부를 떠나 다시 맛보고 싶군요. 샐러드나 스시, 그리고 로열 카페에서 맛 본 스무시처럼 무겁지 않은 음식들과 잘 어울립니다. 그나저나 평생 다시 그 맛을 볼 기회가 있을까요?


+ 관련 글 : [brand] 로열 코펜하겐의 로열 카페(Royal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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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3, 2012

[trend] 부티크(boutique) 맥주의 세계 3. 런던 편, 보기 좋은 맥주가 맛도 좋다

Meantime



Meantime beers and Dishoom pop-up store, London

런던의 부티크 맥주 회사로는 단연 민타임(Meantime)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얽힌 추억이 많아서 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맛과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위트 넘치는 디자인 때문입니다. 

Dishoom이라는 인도 음식점에서 여름철 동안에만 일시적으로 운영했던 사우스뱅크의 팝업스토어에서 처음 이 맥주를 발견했습니다. 사우스뱅크에 해변을 옮겨 놓았다는 소개글을 읽고 찾아 갔는데, 실체는 인공 해변이었습니다. 실망감이 적지 않았지만 그 실망감은 곧 메뉴판에 'London Lager'와 "Vienna Style Amber Lager'라고 적힌 맥주를 받아 들자마자 잊혀졌습니다.

라벨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라벨을 한참동안 들여보다 한 모금 마셨는데 기분 탓인지 '세상에 이런 맛이!'를 외치고는 친구와 각각 한 병 더 주문하고 말았습니다. 

민타임은 런던에게 가까운, 그리니치 첨문대로 유명한 그리니치(Greenwich)를 베이스로 한 부티크 맥주 회사입니다. 마음에 들었던 비엔나 스타일의 엠버 라거는 런던의 아티스트 레이 리차드슨(Ray Richardson)이 1999년 이 회사가 처음 시작할 때에 그려준 것이라고 합니다. 

민타임은 스몰 브로어리다운 신선하고 다양하며 높은 질의 맥주를 만들어 왔고, 'Be local'을 실천하고 푸드마일(Food Miles)을 최소화 하기 위해 근교에서 난 원료로 맥주를 제조 합니다. 음식 폐기물은 동물들의 식량으로 활용하고 플라스틱이나 병 등의 재활용에도 적극적입니다. 커피 맥주의 경우 영국 최초의 페어 트레이드 맥주로 기록되었고, 채식주의자들을 배려한 원료를 사용합니다. 

이런 부티크 맥주 회사라면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인디 자본주의의 성공적인 기업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어 보입니다. 실제로 런던을 기반으로 10년 이상 꾸준히 성공한 덕에 몇년 전 행사에는 보리스 런던 시장이 직접 참석했고, 매출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통에 있어서도 테스코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지만 세인즈버리(Sainsbury)나 웨잇로즈(Waitrose)와는 협업도 하고 납품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예뻐서 용서한다'는 생각으로 알게 되었다가 '보기 좋은 맥주가 맛도 좋다'는 생각으로 관심을 갖게 된 후에 알면 알 수록 관심이 커지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민타임에서는 10 종 정도의 맥주를 생산하는데, 라거나 페일 에일, 필스너와 같은 대중적인 맥주 종류 외에도 밀 맥주나 초콜릿, 라즈베리 맛 등의 독특한 맥주도 생산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커피 맥주를 마셔보고 싶었는데 번번히 실패했고, 마셔본 것 중에서는 초콜릿 맛 맥주가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병 디자인도, 정말 초콜릿 맛이 나는 맥주 맛도, 그 두 맛의 어울림도 좋습니다.

호주의 부티크 맥주 회사 리틀 크리에이처스에서 운영하는 멜번의 다이닝 홀처럼, 민타임 역시 그리니치에 직영 펍을 운영합니다. 리틀 크리에이처스만큼 쿨한 느낌은 아니지만 근처에 계시거나 그리니치 천문대에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슈퍼에서보다 다양한 민타임 맥주를 맛 볼 수 있습니다. 

+ 바로가기 : 민타임 홈페이지


민타임 맥주를 가장 흡족하게 즐긴 곳은 런던의 초콜릿 팩토리라는 문화 복합공간 입니다. 런치 메뉴로 있는 오픈 샌드위치와 민타임 런던 라거를 골랐는데 음식도 맛이 좋아서 조화가 훌륭했습니다. 배가 고파지네요.

샌드위치와 맥주만큼 괜찮은 조화는 스시와 맥주입니다. 특히 런던에 머무는 동안 가끔 사치로워지고 싶은 날에는 홀푸드에 들렀습니다. 연어 스시 세트를 하나 사서, 지하의 맥주 코너를 어슬렁거리며 마음에 드는 라벨 디자인의 맥주를 골라서 숙소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맥주나 와인을 고를 때, 무엇을 사야할지 고민이 되면 라벨 디자인으로 판단합니다. 라벨 디자인에 신경을 쓴 회사치고 맛이 별로인 맥주나 와인을 만드는 곳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잘 고를 것처럼 생긴 사람(?)이 고른 맥주나 와인을 따라 샀을 때에도 후회가 적었습니다.

한 가지 더, 홀푸드는 민타임뿐만 아니라 영국과 미국의 여러 부티크 맥주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물론 테스코나 세인즈버리보다는 비싸지만 행사 상품이 많으니 자주 들르다보면 맛있는 맥주 세트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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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티크 맥주에 '본격'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멜번의 핫 플레이스라는 브런즈윅 스트릿(Brunswick st.)의 이곳, Little Creatures Dining Hall 때문입니다. '요 귀엽고 작은 피조물'이라는 이름의 부티크 맥주 회사, 리틀 크리에이처스에서 나온 에일 맥주는 이미 맛을 본 후였습니다. 그렇지만 양조장의 느낌을 살린 다이닝 홀에서 생맥주와 함께 도톰한 감자튀김을 아이올리 소스에 찍어 먹지 않았다면 부티크 맥주 회사들의 홈페이지까지 방문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카스나 하이트에서도 이런 직영 펍을 운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공장 투어나 대학생 대상 행사들은 잘 운영되고 있는 것 같은데 간단히 홈페이지를 둘러본 바로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대형 맥주 제조사와 스몰 브로어리를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지만, 리틀 크리에이처스와 같은 작은 회사들에서 영감을 받을만한 것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리틀 크리에이처스의 다이닝 홀은 이 회사의 플레그십 스토어 역할을 하는 모던 펍입니다. 호주에서도 가장 문화적인 도시로 꼽히는 멜번에, 멜번에서도 가장 쿨한 지역으로 꼽히는 피츠로이에 자리잡은 이곳에서는 리틀 크리에이처스의 여러 종류의 맥주와 어울리는 간단한 음식을 맛볼 수 있고, 그곳의 분위기나 공간 구성, 점원들과 손님들의 느낌에서 이 브랜드를 경험하게 됩니다. 보통은 작은 브로어리들이 브로어리에 체험관 개념의 펍을 운영하는 것 같지만 이렇게 도심에 직영 펍을 운영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호주에는, 특히 멜번에 속해있는 빅토리아 주에는 와이너리가 많은데 와이너리 투어를 하다가 우연히 하얀 토끼(White Rabbit) 사의 부티크 맥주 양조장을 발견하는 행운도 있었습니다. 시음도 하고 샵 구경도 했는데, 기사를 찾다보니 이런 작은 브로어리들을 정부 차원에서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며 지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카페 트렌드를 이야기하면도서 느꼈지만 호주는 자국(혹은 개별 도시)의 정체성을 다지고, 국민들의 놀거리를 지원하고, 나아가서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에도 국가 정부와 주 정부가 보이지 않는 손을 참 구석구석에 뻗치고 있습니다.

아무튼, 작은 브로어리들의 직영 펍은 괜찮은 유통 전략이기도 합니다. 사실 주류 시장은 유통 전쟁입니다. 더 많은 술집에 우리 술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느냐 마느냐가 매출을 상당부분 좌지우지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장에서 작은 브로어리들이 주류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기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도 못 됩니다. 그 시장에 발도 들여놓기 힘들죠. 따라서 이런 직영 펍에 투자하는 것이 브랜드 인지도와 가치를 높이고, 푸시 마케팅이 어려운 시장에 풀 마케팅으로 고객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White Rabbit Brewery, Victoria


사진은 멜번에서 즐겨 마시던 두 종류의 부티크 맥주 입니다. James Squire에서 나온 골든 에일과 Little Creatures의 페일 에일입니다. 이 두 맥주 회사는 맛있는 맥주도 만들지만 홈페이지도 들러볼만 합니다. James Squire은 그들의 스토리텔링이, Little Creatures는 브랜드 심볼과 홈페이지 디자인이 탐납니다.



호주는 영미권에서 짧은 역사와 범죄자 선조를 둔 덕에 문화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 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호주에 머무는 동안 이들이 얼마나 그 조상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그들 자신의 문화에 자신감을 가지고 알리려 노력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티크 맥주들 또한 '오지(Aussie, 호주) 커피 스타일'이 자리잡은 것처럼 '오지 맥주'로 그 색깔을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실제로 호주 맥주들의 경우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사탕 수수를 원료로 하여 독특한 맛을 낸다고 하니 유럽의 오래된 맥주 회사들과 경쟁할 만한 차별점으로 내세우는건 어떨까요. 오리지널리티를 브랜드 자산으로 가지고 올 수 없다면, 일단은 품질(특별한 맛)과 트렌드(부티크 맥주)로 승부수를 띄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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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부티크(boutique) 맥주의 세계 1. 맥주 맛도 모르면서

MEANTIME Brewing Company, London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아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마시는 것들 중에서는 라테와 맥주가 그것입니다. 라테에 대해서는 카페 트렌드 이야기를 하며 할만큼 한 것 같으니 오늘은 맥주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 관련 글 : [culture] 커피의 진화 카페의 진화

맥주 소비량이 매년 줄어들고 있고, 맥주 좋아하기로 유명한 영국에서는 오래된 펍들이 망해간다고 하는데 어쩐 일인지 제 주변에는 맥주 애호가들 뿐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하는 동안 그 친구들과 맛있는 맥주들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각 도시의 대표 맥주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작은 양조장(brewery)에서 공수해 온 신선하고 풍미가 엄청난 맥주들 혼자 즐겨야 했으니 말입니다.

특히 호주에 머무는 동안 부티크 맥주들에 길들여지고 난 후,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그 도시의 부티크 맥주들을 찾아보곤 했습니다.

'부티크(boutique)'라는 이 단어가 마음에 들어서 부티크 맥주라고 부르는 것일뿐, 특별하게 다른 것은 아닙니다. 개인이 제조하는 하우스 맥주보다는 규모가 크고, 하이네켄이나 칼스버그, 맥스만큼은 아닌 작은 양조장에서 소규모로 생산, 유통하는 맥주들을 말합니다.

이 단어에 주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최근의 트렌드 키워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검색창에 이 단어를 입력해 보면 개인 숍의 이름에서부터 한 산업군을 아우르는데까지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boutique는 본래 프랑스어로 shop을 의미합니다. 주로 패션 산업에서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디자인 의류를 전시 및 판매하는 곳을 일컬어 말하곤 했는데, 최근에는 이 단어가 '다소 비싸고 작지만 독립적이고 개성있는'이라는 의미를 함축하는 형용사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부티크 호텔'이 유행을 한 이후에 가속이 붙지 않았나 합니다.

맥주 시장에 부티크라는 단어를 끌고 들어온 것은 호주 사람들 같습니다. 호주에 머무는 동안 이 단어에 익숙해 졌고, 검색을 해 보니 boutique beer를 down under(오스트레일리아를 일컫는) beer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다른 영어권에서는 이를 small brewery beer, microbrewery beer, craft beer가 대신합니다. 어쨌든 이 맥주들은 조금 더 비싸고, 더 맛있고, 더 재미있습니다.

시장도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판매가가 더 높고, 유통이나 광고에 대한 비용 부담이 크지 않으니 더 많이 남을테고 자연스레 뛰어드는 사업자도 많아지고 있지 않나 합니다. 이런 부티크 맥주 시장의 활황을 보고 혹자는 맥주 르네상스라고 칭합니다. '영원한 사양산업이란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다시금 그 말을 떠올려 보게 됩니다.

+ 부티크 맥주 시장 관련 기사Heady times for boutique beer

또한 부티크 맥주들의 홈페이지를 찾아가보면 (믿거나 말거나지만) '맥주에 대한 헌신'이라는 표현이 많이 보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맥주 사업을 했다기 보다는, 맥주가 좋아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기업은 꼭 성장해야 할까?' 성장은 끝이 없다는 것이 딜레마지만, 많은 기업들이 다음 해 목표를 '올해 보다 더 많은 매출'로 정하지만 않아도 이 세상의 수많은 문제들이 나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최근 월가에서 벌어진 점령 운동(Occupy Wall Street)도 같은 생각의 흐름에서 읽힙니다. 미국에서 상위 1% 자본가들이 벌이는 탐욕에 대한 반대 시위였으니까요. 한국에도 상륙했다는 이 운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사실 신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논쟁은 오래되었고 지금은 그 대안들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고 있는 시기로 보입니다. 최근 본 기사 중에는 '인디 자본주의(indie Capitalism)'라고 이름 붙여서 정리한 아래 기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 관련기사 : 4 Reasons Why The Future Of Capitalism Is Homegrown, Small Scale, And Independent

같은 맥락에서 보면 부티크 맥주 시장도 이러한 인디 자본주의, 깨어있는 자본주의에서의 기업의 행태이며, 더 작아지고(small, independent) 지역화되고(local) 있는 소비 경향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시 부티크 맥주로 돌아가서, 여러모로 부티크 맥주 시장이 커지고 한국에서도 이런 작은 브로어리들이 자리잡길 바라며 멜번, 런던, 코펜하겐 등에서 만난 부티크 맥주 회사들을 소개합니다. 맥주 맛도 모르면서, 라고 말하곤 하는 분들에게 기쁘지만 슬픈 글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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