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19, 2011

[culture] 바캉스의 도시, 8월의 파리와 파리 플라주(paris plages)

51 rue de Bercy, Paris, La Cinematheque Francaise

오늘의 허탕,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요즘 파리는 어딜 가나 50%의 확률이다. 갤러리든, 독특한 샵이든, 서점이든, 카페든, 레스토랑이든 할 것 없이 반은 문을 닫았다. 장 뤽 고다르가 "내가 배워할 모든 것은 시네마테크에서 배웠다"고 했다는, 그 시네마테크가 바로 위 사진에 보이는 저기다. 영화학도가 되고 싶던 소녀 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누벨바그의 현장에 가 본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일이었는데, 문은 굳게 닫혀 있을 뿐이었다. 아래 보이는 이런 종이 한 장을 문에 걸어 둔 채. 그래도 스페인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했다는 건물 외관은 봤다(로 만족해야 하나?).

10 rue Hérold, Paris, L'eclaireu 
7 rue de Lille, Paris, L7


"언제부터 언제까지 문을 닫는다"는 내용이 전부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이상이지만, 3주는 보통이다. 이게 모두 바캉스 때문이다. 문득 '8월의 파리는 파리지앵들은 모두 바캉스를 떠난 관광객의 도시다'라는 문장을 여행 책자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 떠올리면 뭐하랴, 이미 파리에서 동행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허탕녀'로 낙인 찍힌지 2주 째인걸.


+ 파리에서의 주요 허탕 리스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www.cinematheque.fr/fr/practical-information.html)
: 이런 문화공간을 찾는 이유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카페, 서점, 갤러리, 그리고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다. 인기있는 갤러리나 극장, 도서관에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에는 그것을 즐길만한 취향의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이든 그들을 만족시킬만한 퀼리티가 보장되곤 한다. 멜번 시티 라이브러리 내의 카페 저널(Journal)이나, 런던 바비칸 센터 내의 푸트코드, 더블린의 IFI(Irish Film Institute), 그리고 IMMA(Museum of Modern Art Ireland)의 카페가 생각난다. 그래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카페와 레스토랑, 전시공간과 도서관도 기대를 했으나 9월이 되어서야 직원들이 휴가에서 돌아온단다.
대신, 입구를 등지고 연결된 공원을 따라 가다 보면, 센느강을 건너는 보행자 전용 다리가 나오는데, 그 다리를 건너면  프랑스 국립 도서관(Bibliotheque national de France, BnF)이 나온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받은 상처는 이 도서관에서 모두 치유됐다. 저렴한 학생 식당과 괜찮은 자판기 커피, 무료 와이파이에, 이화여대 ECC를 설계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가 설계한 건물 안에서의 산책, 그리고 공부하다 말고 나와서 수다떠는 파리지앵 구경까지. 리딩 룸에는 못 들어가지만, 파리에서 더운 날 피서를 즐기기에 가장 적당한 곳이다.


칼 라커펠트의 서점, L7 
: 이제 책은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 된 모양이다. 이 서점을 알게 된 것도 H&M에서 발행하는 잡지에서 얼마전 'fashionable read'라는 제목으로 패션 브랜드와 책(서점)과의 관계를 다룬 흥미로운 기사를 본 직후다. 많은 브랜드들이 책으로 매장 인테리어를 하는 것에서 나아가서, 럭셔리 브랜드들은 하나 둘 자기 이름을 단 서점에 욕심을 내고 있다. 뉴욕에는 마크 제이콥스의 북마크(Bookmarc)라는 서점이 생겼고, 런던의 루이비통 플래그십 스토어 1층에도 아트북 서점 Maison Librairie가 생겼다. 그리고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파리에도 샤넬의 칼 라커펠트가 자신의 스튜디오에 서점을 열었다. 물론 책 팔아서 돈을 벌겠다는 의지는 아닐테지만, 그들이 가진 '결핍'을 책에서 찾는게 또 하나의 트렌드인가 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 (www.henricartierbresson.org/index_en.htm)
: 르 코르뷔지에 재단에서 운영하는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집들에 다녀오고 난 후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이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몽파르나스 주변에는 이 외에도 사진 갤러리가 여럿 검색 된다. '결정적 순간'을 담은 대 스타의 사후는 고향에서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몽파르나스 주변의 갤러리 탐사의 날을 잡았으나, 허탕.


에클레러 히든 샵 (www.leclaireur.com)
: 며칠 사이에 홈페이지가 리뉴얼 됐다. 직전의 홈페이지 구성이 아주 흥미로웠는데 말이다. 에클레러(L'eclaireur)는 콜레트(Colette)만큼 유명한 파리의 편집 매장이다. 콜레트와 다르게 파리에 여러개 매장이 있는데, 매장마다 컨셉과 목적이 다른 것 같다. 오페라와 레알(Les Halles) 사이 Herold 거리에 숨어 있는 이 매장은 간판도 달려있지 않아서 주소만 보고 찾아가야 했는데 결국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해 미련이 가득하다. 


유럽피안 포토 갤러리 (www.mep-fr.org)
: 카우치 서핑을 통해서 알게 된 파리의 사진작가 친구에게 가장 좋아하는 사진 갤러리를 알려달라고 했다. 생폴 역에서 마레 지구 바로 반대편에 있는 이 갤러리는 무척 괜찮다. 비록 전시는 볼 수 없었지만, 건물의 느낌이나 공간 구성, 리플릿에서 느낄 수 있었던 전시의 수준, 구경하고 나오는 파리 젊은이들의 미모(?)만 봐도 알 수 있다. 매주 수요일 6시 이후에 무료 입장이라고 알고 갔는데, 가보니 아니었으니 확인 후 가면 좋을 것 같다. 


Cafe Breizh (www.breizhcafe.com)
: 마레에서 커피 한 잔을 하며 쉬다가 옆 자리의 게이 친구들에게 추천 받은 카페. 요즘 유럽에서는 팔라펠과 파르페가 유행인데, 이 카페는 파르페로 유명하다고 한다. 많은 파르페 집 중 이 카페가 유명한 이유는 파르페의 본 고장인 파리에서 '일본식 파르페'를 팔기 때문. 몽생미셸과 일본에도 지점이 있다.


스웨덴 문화원 (www.si.se/English)
: 이곳 역시 마레 지구에 있는 문화 공간. 스웨덴을 알리는 전시와 음악 공연, 영화 상영 등이 수시로 열린다. 함께 운영되는 카페도 괜찮다는 소문이 있는데, 모든 가구가 스웨덴 브랜드 이케아로 꾸며졌다고 한다. 런던 이스트에도 이케아 비즈니스 프로젝트의 도움으로 모든 인테리어가 이케아 가구로 꾸며진 카페(crisis skylight cafe)가 있어서 비교해 보고 싶었는데, 역시나 바캉스를 떠났다. 파란 문 앞에서 허망하게 바캉스 알림 글을 보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은 우이 아니어서 위로가 됐다. 


11 rue Payenne, Paris, closed Swedish Cultural Center

8월에 파리에 머문 덕분에 그곳들의 멋진 대문들만 잔뜩 구경했지만, 그리고 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쉬고 있는지도 확인했지만, 또 하나의 커다란 수확이 있다면 '파리 플라주(Paris Plages)'를 경험한 것이다. Plages는 영어로 Beach를 뜻한다. 우리말로 '파리 해변'인 이 여름 행사는 2002년부터 매년 세느강변에서 7월 8월 사이에 열린다.



고등학교 때에 불어반이긴 했지만 "메흐시 보끄, 파흐동, 실부쁠레, 오흐브와, 마담, 므슈" 정도에서 바닥나는 실력이다. 덕분에 거리에서 이 파리 플라주 광고판을 거의 매일 봤음에도 파리 플라주의 존재를 알기 전에는 이 광고판도 이방인인 내게 아름다운 파리의 배경 화면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것이 바캉스를 떠나지 못한 파리지앵들을 위한 센느 강변의 인공 비치라는 것을 알고는 시테섬 주변에 갈 때에는 파리의 스카이라인(이랄 것도 없지만)을 올려다 보기 보다는 강변을 내려보게 됐다.




2002년 새롭게 당선된 진보 성향의 파리 시장이 처음 계획한 파리 플라주는 대표적인 시민을 위한 정책으로 꼽힌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바캉스를 떠나는 파리에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위해 인공 모래 사장을 만들고, 야자수를 심고, 선 베드를 무료로 빌려주고, 음악 공연 등의 행사도 마련한다. 10년 정도가 지난 이 정책은 인기가 높아 질수록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고 도심 속 인공 비치의 인기는 베를린, 암스테르담, 코펜하겐, 브뤼셀 등 다른 유럽 도시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기사도 발견된다. 그렇다면 '서울 플라주'는 어떨까?

농담이다. 만약 정말 서울 플라주가 만들어진다면, 상당히 다른 컨셉이 필요할 거다. '도심 속의 인공 비치'라고 하면 무척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그리고 실제로 낭만적이지만, 파리 플라주가 10년의 역사를 향해 가며 규모가 더 커지고 있는 이유는 이것이 이 도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센느강이 역사적으로 파리 시민들의 레저를 담당하지 않았다면, 만약 파리가 일조량이 충분했다면, 그래서 태양을 쫓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태양을 피하는 것이 바캉스의 의미였다면, 파리 플라주는 파리지앵들에게 도시의 경관을 헤친다는 이유로, 혹은 어떤 이유라도 비난 받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해가 나는 날이면 어디든 누워 태닝을 하고 책을 보는 것이 일인 이 사람들에게 파리 플라주는 집 근처 공원에서도 즐길 수 있는 태양맞이를 센느강변에서 즐기며 해변이 없는 파리에서 해변에 바캉스 온 듯한 기분을 선물한다.



만약 한강에도 인공 비치가 생긴다면, 먼저 많은 파라솔을 먼저 준비해야 할거다. 3일 내내 태워도 빨갛게 변했다가 다시 하얘진다는 이들의 피부와 달리, (그래서 이렇게 종일 태양 아래 누워 있다가 피부암에 걸리나보다), 우리는 몇 시간만 태양에 노출되어 있어도 집에 돌아오면 감자를 붙여서 열을 식여야 하니까.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달라져야 할테지만, 그것들을 나열하는 것보다 무조건 따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도시에서 지내다 보니, 한 도시의 사람들이 그 도시를 즐기는 방법은 모두 다르고 그 방법은 그 도시의 문화와 환경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영국 사람들이 호주 사람들의 스테레오 타입을 '맥주 병을 한 손에 들고 공원에서 바비큐를 하는 모습'이라며 약간은 깔보듯 말하고, 호주 사람들은 영국인을 보고 '평소에는 수줍어 하다가 펍에 가면 욕이나 해대는 John Bull'이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호주인에게 바비큐와 영국인에게 펍의 의미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비롯되는 오해인것 같다.

그럼 우리는 서울을 어떻게 즐겨야 하지? 어느 도시보다 (도시의 외관뿐만 아니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의식도) 빠르게 변하는 서울이기에 뭐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머문 도시와 비교해 봤을 때 서울만이 가지고 있는 건 뜬금없게도 '산'이라는 걸 발견했다. (물론 '밤'도 있지만, <Monocle>에서도 서울은 잠자지 않는 도시로 소개하지만, '밤의 문화'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긍정적으로 소화하기에 어려운 면이 있기에 넘어간다.) 등산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서울 사람들, 그리고 근처에 산이 없어서 못할뿐 일부러 산으로 하이킹 가는 호주나 유럽 사람들을 떠올리면 뭔가 서울만의 바캉스 문화를 산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외국 친구들에게 다음 휴가 때는 한국에 놀러 오라고 하면서도, '정말 오면 어디에 데려가지?'를 고민하게 된다. 전국의 탬플 스테이, 지리산 종주 코스, 북한산 올레길, 제주도 올레길... 이것들은 중국이나 일본에 없는 것 같다. 

있나?



1 comment:

  1. 음~ 사진만 봐도 좋은데? ^^ 요즘 난,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즐기기 위해서는 자기의지도 참 중요하다는 것을 느껴. 미국에 와서는 아무것도 없다, 별것 없다...이런 말이 입에 붙었는데 내가 그 동안 거친 콜로라도 덴버, 필라델피아, 그리고 여기 피닉스 메트로폴리탄 지역 까지- 내가 모르는 채 지나가고 있는 것들이 정말 많고 학교에 파묻힌 채로 놓치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 그래서 이젠 스스로의 의식을 좀 개선해서 학교 밖으로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누릴 수 있는 것들도 놓치고 있으면서, 뉴욕, 빠리, 그리고 서울을 목놓아 그리기만 하는데, 이런 태도로 산다면 결국 어디에 있더라도 매한가지 아니겠나 싶어. ㅎㅎ

    ReplyDele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