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계속 눈에 밟히거나 마주치게 되는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그다지 연결이 될 만한 고리가 없는데도 자꾸 인연이 닿게 됩니다.
지금 제게 <모노클(monocle)>이라는 잡지가 그렇습니다. 처음 모노클을 알게 된 건 작년입니다. 일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어떤 분이 저희 회사에서 만드는 잡지를 보고 마치 한국의 모노클 같다고 하시기에 도대체 무슨 잡지인가 하고 찾아 봤습니다. 한국에 수입이 되지 않았기에 어렵게 구한 한 권을 가지고 여러 명이 보다 별 감흥없이 내려 놓았던게 첫 기억입니다.
그리고 우연히 멜번의 카페에서 모노클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좋아하던 프라한 마켓에 있는 마켓 레인 커피(market lane coffee)에서 자신들을 소개한 호를 책꽂이에 놓아 두고 있었습니다. 런던에 도착해서는 머물로 있는 플랏 가장 윗 층에 사는 언니가 모노클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관심을 두고 있던 비틀즈 브랜드(저 혼자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비틀즈의 가족들과 관련된 브랜드를 비틀즈 브랜드라 부르고 있고, 언젠가 비틀즈 브랜드 족보를 한 번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를 조사하다가 우연히 또 모노클을 만나게 됐습니다.
제가 찾고 있던 건, 폴 메카트니의 딸인 스텔라 메카트니의 남편, 앨러스데어 윌리스(Alasdhair Willis)에 관해서 였습니다. 엘러스데어 윌리스가 런칭한 가구 브랜드 Established & Sons가 흥미를 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프로필을 살피던 중, 우연히 또 모노클이라는 이름을 마주했습니다. 앨러스데어 윌리스는 유명한 디자인 잡지 <월페이터(Wallpaper)>의 창립 멤버 중 하나였고, 그 창립 멤버 중 또 다른 한 명이 모노클의 편집장이자 발행인인 타일러 브륄레(Tyler Brûlé)였습니다.
네, 복잡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이번에는 타일러 브륄레의 뒷조사가 시작됐고, 얼마 전에 있었던 현대카드 슈퍼토크 영상을 보고는 모노클이 좋아졌습니다. 모노클을 저희에게 소개해주신 분도 현대카드에 계신 분이었고, 현대카드는 최근 팝업 북 스토어에 모노클도 들여놓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둘의 관계가 좋은지 모노클에 가장 많이 소개되는 한국 브랜드 역시 현대카드입니다.
아무튼 여기 동영상 링크가 있습니다. 이 젊은 편집장이 어떤 생각으로 모노클을 런칭하고 운영하는 지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사실 이 뒷조사를 하기 전에, 메릴본을 쉬엄쉬엄 걷다가 모노클 런던 샵에 들렀던 적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아담한 샵을 구경하다가, 같은 잡지를 어떤 사람의 사인이 있는 호라면 비싸게 팔기에 점원에게 이 사인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때 그 점원의 눈빛은 '어떻게 타일러 브륄레도 모르면서 모노클샵에 올 수가 있지?'라는 약간은 경멸에 가까운 그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모노클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편집장 싸인이 있다고 비싸게 파는 책 따위는 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메릴본 하이스트릿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하지만 팬의 입장이 되고 나니, 어찌 BBC에서 일하다 전쟁터에 파견되어 불의의 사고로 한쪽 팔을 못 쓰게 된, 그렇지만 저널리스트로서의 날카로운 감각은 무뎌지지 않아 그 감각에 비즈니스 감각을 더해 <월페이퍼>를 창간하고 대성공을 이룬 후, <월페이퍼>를 뉴스코퍼레이션에 넘기고 다시 <모노클>을 창간한, 게다가 잘 생긴 이 남자의 잡지를 보고 시큰둥 할 수 있겠습니까.
(테일러 브륄레는 게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그가 게이 감성을 가졌기에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지 않나라는 완연한 팬의 감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진실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들이 말하는 그들의 일하는 방식이 몹시 마음에 듭니다. 광고로부터의 독립성(어디까지를 독립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을 지켜내고, 자신들이 직접 확인한 정보만을 싣는다고 합니다. 광고로부터의 독립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두번째 이야기는 이 잡지가 다루는 정보의 범위를 생각해 보면 좀처럼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전 세계의 주요 대도시(뉴욕, 런던, 파리, 도쿄, 상하이) 뿐만 아니라 아부다비, 방콕, 베이루트, 모스크바, 그리고 몰디브같이 지역적 한계로 혹은 언어의 한계로 좀처럼 쉽게 그 도시 소식을 알 수 없는 곳의 소식도 꾸준히 전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전 세계 구석구석에 직원이든 특파원이든 컨트리뷰터든 누군가가 모노클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런던 본사의 직원이 수백명도 아니고 서른명 남짓의 작은 규모라고 하는데, (이 서른 명이 모노클만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아니랍니다), 어떻게 이 컨텐츠들이 매달 만들어지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취재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기사는 어떻게 씌여지고, 편집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편집장은 컨텐츠에 어느 정도 관여를 하고, 매달의 주제는 어떻게 결정 될까요?
많은 의문을 품고 다시 모노클 샵에 가서 과월호를 두 권 샀습니다. 과월호가 더 비싸더군요. 정가가 5파운든이데 과월호는 무려 10파운드나 했습니다. 하지만 고운 포장지에 정성스레 포장을 해 줘서 마음이 좀 누그러 들었습니다. 마치 명품 가방이라도 파는 듯, 영수증도 모노클 로고가 그려진 영수증 용 케이스에 직접 손으로 써서 넣어 주더군요. 테일러 브륄레가 '럭셔리 브랜드'에 관심이 많다는 게 사실인것 같습니다.
두 권의 과월 호와 최근 호를 얻어서 읽다가 아주 잠깐 제 여행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모노클을 정기 구독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꼼꼼히 읽고 있었다면, 과연 이 돈을 들여 이 여행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지금 모노클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한 토막의 기사로 읽는 것과 제가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것은 다르겠죠.
자꾸 우연히 연결되는 이 잡지가 제 운명이 아닐까 해서, 편집장에게 이메일을 보내 놓았습니다. 5년 안에 내가 무언가 이루어 놓을 테니 같이 일 하자고, 내가 한국의 컨트리뷰터가 되겠다고, 그리고 우선 3년 후에 인터뷰 요청 할테니 인터뷰 해 달라고요. 그런데 답장이 없습니다!
이제 모노클이라는 잡지에 대한 소개를 할 차례인데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그래서 홈페이지 링크로 대신합니다.
http://www.monocle.com/
참 성의없네요.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전 세계의 비즈니스와 문화, 특히 디자인에 관한 기사들을 싣고 있습니다. 온라인에 컨텐츠는 제공하지 않고, 철저히 회원을 중심으로 컨텐츠가 공유되는 것이 정책입니다. 정기구독료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같고, 하나의 잡지가 아니라 브랜드로 키울 욕심이 있는지 모노클이라는 라벨을 단 제품들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타겟은 전 세계의 최고경영자일것 같습니다. 그들 대신 출장을 가주는 컨셉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 구석구석의 짧막한 새로운 비즈니스(브랜드) 소식이 대부분입니다. 특집 기사들은 그들만의 관점으로 글로벌 트렌드를 정리하곤 합니다. 한 분야의 전문적인 소식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기 좋은 잡지랄까요.
돌아가자마다 정기구독을 할 계획인데, 그 이유는 온라인 컨텐츠들이 탐나기 때문입니다. Programmes 메뉴에는 회원이 아니더라도, 공개되는 컨텐츠의 양과 질이 상당합니다. 쉽게 얻을 수 없는 정보들이라는 측면에서요. 특히 편집장과 편집자들끼리 수다를 떠는 오디오 컨텐츠(Monocle in Brumberg)가 공유되는데, 이것만 듣고 있어도 재미있는 주간지의 특집 기사를 읽고 있는 기분입니다.
혹자는 모노클의 빤히 보이는 상업성을 보고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무엇보다 저의 관심사와 딱 드러맞는 컨텐츠를 매달 쏟아내고 있다는 것에 이 잡지의 홍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