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3, 2011

[culture] 거리에서 브랜드를 생각하다

S E O U L, B R A N D  V I E W 


며칠 전에 가로수길에 다녀왔습니다. 역시 서울은 잠깐만 자리를 비워도 쉴새 없이 무언가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뜨거운 도시입니다. '빨리빨리'가 우리의 약점이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커다란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변화의 여지가 크니까요.

가로수길에 새로 생긴 한 카페에서는 요즘의 대세가 뭔지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습니다. 각자가 가진 경험들을 쏟아 놓고 이야기 하다보니 어느새 괜찮은 카페의 컨셉이 하나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컨셉은 너무 괜찮아서 비밀일 정도로 모두가 동의했지만, 문제는 '어디에' 열어야 할 것인가 였습니다.

홍대, 가로수길, 삼청동, 이태원은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그 다음으로 효자동, 가회동, 유엔빌리지, 경리단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심지어 서판교까지 갔다가 다시 가로수길로 돌아왔습니다. 문제는 '임대료'였습니다. 뜬다는 거리는 어김없이 임대료가 비싸고, 곧 뜰것 같은 거리는 곧 비싸질 것이고, 우리의 카페는 한 곳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데 과연 비싸지는 임대료를 감당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친구들이 합정으로 갈 것이냐 차라리 대전으로 갈까로 고민하는 사이 저는 혼자 '언제부터 이렇게 거리가, 동네가 브랜드화 되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브랜드화 되었다기 보다는 '이제는 거리를 브랜드라고 우겨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브랜드라는 말이 일상화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맞을것 같습니다. 가로수길, 경리단길, 서래마을. 각자가 가진 아이덴티티가 있고, 소비자들은 그 동네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높은 값을 지불합니다.

브랜드(brand)라는 말은 옛날 옛적에 소와 같은 가축을 키우는 사람들이 자기 소유의 가축을 구분하기 위해 뜨겁게 달궈진 쇠로 소의 엉덩이 등에 찍은 마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나 브랜드라는 가져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지만 사실 브랜드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5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브랜드계의 구루라고 불리는 데이비드 아커, 케빈 켈러, 장 노엘 캐퍼러 모두 브랜드 이론의 1세대이지만 아직도 정정 하십니다. 브랜드가 경영학에서 하나의 실제하는 이론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브랜드라는 말이 처음에는 회사의 로고 정도로 받아들여 졌지만, 지금은 이렇게 어디에도 브랜드를 가져다 놓아도 어울리는 이유는 이것은 하나의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업에게 유용한 관점이기에 상업적으로 비추어지기도 하지만 브랜드적 사고는 어쩌면 일상의 효율화를 만드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창업을 할 때에도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 돈을 많이 벌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브랜드로 만들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면접을 볼 때에도 어떻게 하면 나를 브랜딩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동네 세탁소 아줌마에게도 나는 어떤 브랜드로 비춰질까를 생각해 보면 당연히 실보다 득이 많을 것입니다. 자칫 과하게 포장을 하면 사기꾼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브랜드의 핵심은 아이덴티티, 즉 자기 정체성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유니타스브랜드에서 배운 '자기다움으로 만드는 남과 다름'이라는 말이 가장 훌륭한 브랜드에 대한 정의가 아닐까 합니다. 



O T H E R  C I T E S,  O T H E R  T H O U G H T S


정신을 차리고 친구들의 수다에 다시 합류했는데 이번에는 UV의 신곡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이태원 프리덤' 중 "강남 사람 많아, 홍대 사람 많아, 신촌은 뭔가 부족해"를 흥얼거렸습니다. '역시 UV는 달라...'라고 중얼거리면서 말입니다. UV를 아끼기에, 이들의 이 한 소절을 '거리 아이덴티티에 대한 풍자'라고 맘대로 해석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문득 거리 브랜드에는 뭔가 다른 역학관계가 함께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제 졸업 논문 주제가 '홍대 문화 정체성과 형성 과정'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2005년이었네요. 그때 논문을 같이 쓴 친구와 술파는 꽃집의 사장님, 빵의 대표님 등을 인터뷰하며 우리가 먹고 마시는 그 공간을 둘러싼 갈등과 고민을 주저리주저리 적어 놓았던 생각이 납니다. A+를 주신 서동진 선생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네, 자랑을 하고 싶었습니다.)

논문을 쓰면서도 나중에는 "뭐야, 결국 부동산 문제잖아"라고 결론 내렸던 기억입니다. 홍대라는 지역의 정체성이 만들어진 것도 임대료가 싼 지역을 찾아 아티스트들이 모여들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뿌리 내리게 했고, 덕분에 문화지구라 불리게 됐지만 그 흥미로운 곳에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려는 자본이 몰려들고, 임대료는 상승하고 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아티스트들은 또 다른 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홍대를 누가 문화지구라고 할까요, 최고의 상업지구겠지요. 그 경계가 더더더 넓어져서 이제는 홍대와 신촌, 그리고 합정을 구분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거리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부동산이라는 역학관계가 함꼐 돌아가고 있는 것은 비단 홍대나 삼청동, 가로수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멜번에서는 피츠로이(Fitzroy), 런던에서는 이스트 런던, 베를린에서는 프렌츠라우어(Prenzlauer), 스톡홀름에서는 쇠데르말름(södermalm)이 모두 같은 문제를 겪었거나 겪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는 과거 동독 시절 부촌이었던 프렌츨라우어가 지금은 여피족이나 돈 잘 버는 아티스트들의 주거 단지가 되면서 비싸지고, 베를린의 싸다는 물가를 듣고 찾아온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은 남쪽의 노이쾰른 쪽으로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임대료에 휘둘리는 삶을 참을 수 없자, 임대업자들을 대상으로 시위를 하도 한답니다. 베를린은 타헬레스(kunsthaus tacheles, 가난한 아티스트들이 폐건물을 불법 점거해서 그곳에서 작업을 하며 예술의 성지가 된 곳, 그러나 지금은 관광지에 가까운)를 탄생시킨 정신을 가진 도시니 이런 적극적 활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멜번에서는 피츠로이의 브런즈윅(Brunswick st.), 스미스(Smith st.), 거트루드(Gertrude st.) 스트릿 부근이 그렇습니다. 피츠로이는 런던의 브릭레인(Brick lane)처럼 이민자들이 살던 동네에 아티스트들이 모여들면서 소규모의 갤러리나 독특한 바, 카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hot하다는 바나 카페들이 즐비합니다. 하지만 임대료는 점점 상승하고 그 임대료를 감당할만한 부자들이 원주민(?)들을 몰아내는 전형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다보니 컨텐츠에 자신이 있는 곳들은 비싼 임대료를 일부러 감당하면서까지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으니 쌩뚱맞은 곳에 둥지를 트는 경우도 많습니다. 멜번 최고의 라테를 맛보게 해 주었던 오마르앤더마벌러스커피버드(omar and the marvellous coffee bird)나 옥션룸(Action Room), 코인론드리(coin laundry) 모두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언제나 찾는 사람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멜번에 머무는 동안 하루는 피츠로이에서 놀다 왔다고 하자 하우스 메이트였던 멜번에서 오래 산 태국 친구가 유튜브 동영상을 하나 보여줬습니다. "그거 알아? 브런즈윅에도 페이크(fake)들이 많아"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브런즈윅에는 '브런즈윅 스타일'로 꾸며 놓고 오리지널, 그러니까 가난한 아티스트가 자신의 정신세계를 담아 쿨 하게 만든 카페나 숍, 인척 하는 곳들이 많답니다. 그래야 클러스터 효과를 봐서 비싼 임대료에 대한 보상을 조금이나마 받을테니까요. 아래의 뮤직비디오의 일부는 그들을 비꼬고 있답니다.






최근 다시 이 영상을 보며 가사를 함께 봐도 100% 이해할 수 없는 걸 보니, 멜번 사람들의 일상을 모르고서는 이 뮤직비디오를 봐도 피식 웃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곡을 만든 The bedroom philosopher는 코미디언이자 저널리스트이자 풍자가입니다. 이 사람의 짧은 인터뷰를 찾아보니 미국 문화, 영국 문화에 쌓여 정작 호주다움을 못 찾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아쉬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세 번째 앨범은 멜번의 86번 트램 루트를 따라가며 얻은 영감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86번은 개발 붐이 불고 있는 도크랜드와 멜번CBD, 피츠로이를 지나 저 북쪽의 노스코트(Northcote)까지 가는 트램입니다. 다양한 이민자에서부터 비즈니스맨, 아티스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트램이니만큼 멜버니언들의 정체성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은 트램입니다. 하지만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아니라 자학 개그에 가깝습니다. 최근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이 생각났습니다. 덕분에 이 앨범은 멜번, 그리고 호주 사람들의 상당한 공감을 얻은 이 앨범은 2010년 멜번 코미디 페스티벌과 각종 호주 음악 어워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나 봅니다. 



거리가 가진 정체성으로 돈을 버는 임대업자가 있는가 하면, 이렇게 사람들을 웃게하고 동시에 생각하게 하는 아티스트도 있습니다. 






3 comments:

  1. 언니 이거 너무 재밌다. 옛날 생각도 나고.
    같은 주제를 가지고 단 몇 년을 파도, 이만큼 쌓이는구나 느껴져서 더 좋기도 하고. 올 한 해가 큰 의미였겠구나 짐작도 해보고.
    해 바뀌기 전에 한번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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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고마움! 힘을 내야지 :) 올해 가기 전에 만나! 겨울에 만났는데 다시 겨울이라니! 늦겨울과 초겨울이긴 하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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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언니 글은 정말 책으로 내도 좋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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