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30, 2011

[brand] 여기는 시드니, 폴 바셋(Paul Bassett)을 찾습니다! 아니, 찾기는 했습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서울에서 가장 hot하다는 카페 중 하나가 폴 바셋(Paul Bassett)이었다. 고소한 라테 맛에 담백한 인테리어, 그리고 역대 최연소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가 만든 커피 전문점이라는 스토리가 더해져서, 약속이라도 있을라치면 을지로로 사람들을 유인했었다. 게다가 폴 바셋 2호점이 있는 페럼타워 지하에는 맛있는 음식점으로 가득하고, 그 향기로 그득하다. 그래서 이 모든걸 운영하는(것 같은) 매일유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했었다.

그립다, 서울. 아무튼, 그래서! 호주에 가면 꼭 폴 바셋의 카페를 찾겠노라 다짐했었다.

페럼 타워의 폴 바셋 2호점, 그의 커피 철학

호주에서의 첫 도시였던 멜번은 커피의 도시라고 불리는 만큼 수많은 카페와 바리스타들, 그것을 소비할만한 사람들과 커피 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폴 바셋은 모르더라.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폴 바셋 아니?'라고 물어볼 때마다 '아니, 걔가 누구야?'라는 대답을 들었다. 멜번과 시드니는 역사적으로 라이벌 관계였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난, '폴 바셋이 시드니 출신이라 그런가보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드니에 와서도 다르지 않았다. '호주의 유명한 바리스타, 폴 바셋'은 훌륭한 홍보 문구였단 말인가. 아무리 구글링을 해봐도 시드니 어디에도 그의 카페는 없다. 폴바셋닷컴을 통해서 그가 실존인물이긴 하고나, 하고 안심할 뿐이었다.

그러다 <메트릭스>를 찍은 곳으로 유명한 마틴 플레이스에서 드디어 그의 이름을 대면했다. 이렇게 소박하게.



서울의 팬시한 폴 바셋과는 너무 다른 모습의 폴 바셋. 게다가 단지 그의 블렌드를 사용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날 이미 마실 커피는 마신 뒤였지만, 그를 마주친 이상 지나칠 수 없어서, 라테를 한 잔 사서 벤치에 앉았다.

그런데 내가 마신 시드니의 커피 중에서 거의 최고의 맛 아닌가. 조울증에 걸린 호기심 소녀처럼 언제 우울했냐는 듯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그 키오스크로 돌아가서 커피를 내려준 바리스타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역시나 호주에 그의 카페는 없고, 그는 단지 커피를 공급하고 있으며, 가끔 여기에 들르고, 무려 good-looking guy라는 엄청난 정보를 전해줬다. 친절하게도 그가 무슨 요일 몇시쯤에 자주 등장한다는 말도 덧붙여서.



만나면 인터뷰라도 하려고 그 시간에 맞춰 대기하고 있었으나, 천재지변(에 가까운 개인사정)으로 그 시간에 마틴 플레이스에 갈 수 없었다.

가끔 이렇게 '알고보면 다른' 정보들을 접하곤 한다. 이럴 때마다 마케팅 업계에 몸을 담고 있던 자로서 홍보를 잘 했다고 칭찬을 해야할 지, 순수한 고객 입장에서 속았다고 비난을 해야할 지 고민이다. 그러나 내 입장이 무엇이 되었든, the age of transparency에서 기업이 취해야 할 입장은 분명할 것이다. 누굴 속이겠나, 속여서 무엇하겠나, 그 부메랑은 다시 나에게 돌아올 것을.

매일유업의 이야기는 아니다. 단 내가 갖고 있던 폴 바셋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컸을 뿐이다. 매일유업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나 같은 극소수 고객에 대한 기대관리의 실패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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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5, 2011

[brand] 사라진 이름, 버진 블루(virgin blue)

옛날 옛날 50여년 전에 영국에 어떤 용감한 여성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지만, 당시에 조종사는 남자만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시도 조차 안 했으면 '용감한 여성'이라고 했을리 없다. 그녀는 남장을 하고 남자 목소리를 흉내내어 실제로 비행기 조종사가 됐다. 이 여성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 아이가 4살 정도가 되었을 때였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녀오던 길에 아이를 차에서 내리게 한 후 집까지 혼자 찾아오게 했다. 그 이후로도 종종.

이 대단한 어머니의 아들이 바로 버진 그룹(Virgin Group)의 창립자이자 회장, 리처드 브랜슨이다. 난독증 때문에 학교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중퇴할 당시, 교장 선생님은 아이를 보고 "백만장자가 되거나 감옥에나 갈 것"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감옥에도 갔지만 이 아이는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억만장자가 되었다. 지금은 우주 여행 상품을 준비 중이고, 최근에는 불모지라는 해저 개발을 시작했다.

버진은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미국에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있다면 영국에는 리처드 브랜슨과 버진이 있다'고 할 정도로 말많고 탈많고 존경받고 독특하고 사랑받는 기업이다. 적어도 책에서 본 버진은 그렇다. 게다가 그의 자서전 중 하나인 <비즈니스 발가벗기기>나 그의 TED talk을 보면 이름 앞에 Sir이 절로 붙어 나오는 존경스러운 기업가다. 바람을 피워서 이혼을 당했다거나, 세금 탈루 혐의 이야기는 마치 거짓말같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책으로만 배운 브랜드, 특히 말로만 들어도 대단한 버진을 경험하면 어떤 기분일까.

멜번에서 시드니로의 이동을 버진 블루(Virgin Blue)로 선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초저가 타이거 에어웨이(Tiger Airways), 국적기인 콴타스(Quantas)에서 운영하는 젯스타(Jetstar)도 있었지만 버진 블루는 '저가'라는 가격 외에 또 다른 특별함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결과는?




글쎄, 버진의 첫 항공사인 버진 애틀란틱(Virgin Atlantic)이 아닌 Blue였기 때문인지, 내가 기대했던 리처드 브랜슨의 위트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물론 버진 애틀란틱에 그의 위트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단, '브랜드 기대'라는 것이 있다면 그런 기대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애플 제품들에서는 스티브 잡스의 편집증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버진, 아니 버진 블루에서는 어디에서도 리처드 브랜슨을 느낄 수 없었다.

버진 입장에서는 홈페이지에 버진 블루는 버진 애틀란틱과 다르다고 명시했고, 리처드 브랜슨은 회장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와같이 버진을 접한 소비자들은 대부분 버진하면 그를 떠올린다. 리처드 브랜슨으로 기업을 알리고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상, 이런 실망감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기업 아이덴티티의 중심에 분명 '위트'가 있다면, 소비자들도 그 브랜드를 경험했을 때 그것을 당연히 느껴야 제대로 된 브랜드라고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Southwest Airlines와 같은 fun fun함을 기대한 건 전혀 아니지만, 위트는 커녕 수화물 23kg 기준에서 1kg이 넘었다고 15달러를 더 내라고 하는 건, 아무리 저가 항공이어도 british airways 하고나 어울릴법할만큼 엄격하지 않은가. '난 규정대로 할 뿐이야'라는 눈빛을 보내는 버진 블루의 직원이 보는 앞에서 가방을 열고 책 두권을 버리고 나자, 버진 블루가 그냥 싫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전날 여행의 여독도 풀지 못하고 두어 시간을 자고 새벽 비행기를 타러 온 고객에게 수모를 안긴 이 항공사의 엄격한 규정대로라면, 보딩 타임에 1분이라도 늦었다가는 날 두고 시드니로 떠날 것 같아서 보딩 타임 전에 게이트 앞에 가 있기도 오랫만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기대가 남아서 승무원들의 행동거지나 좌석 앞에 꽂힌 잡지들, 인테리어 등도 열심히 보려 했으나, 약간 럭셔리한 저가 항공이라는 것 외에는 뭔가 다름을 느낄 수 없었다.

아무리 '최고의 항공사, 리처드 브랜슨이 이끄는 항공사, 우리는 달라요, 비행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려고 열기구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했던 버진이라는 것 알잖아요', 라고 광고를 하면 뭐할까. 결국 진짜 고객은 체크인 데스크에서의 경험으로 그 브랜드를 기억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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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 후, Virgin Australia 런칭 기사를 보게 됐다. 버진 블루가 버진 오스트레일리아에 흡수 되고, 버진이 오스트리아 대륙에서의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 모양이다. 어쩌면 난 버진 블루의 레임덕 시기에 버진이라는 브랜드를 처음 경험한 불운을 겪었는지 모른다. 그랬다면 다행일텐데, 그때의 그 경험에서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버진을 좋은 브랜딩 사례로 소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행히 지금은 버진의 고향 런던이니, 가능한 많은 버진의 브랜드들을 체험해볼 생각이다. 만나는 영국인들에게도 버진에 대한 생각을 물어봐야겠다. 나의 안 좋았던 첫 경험의 기억이 지워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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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2, 2011

[culture] 논쟁적 사진작가, 빌 헨슨 (the Bill Henson Controversy)


15 April, Tolarno Gallery in Melbourne


생각보다 세련되고, 생각보다 친절하고, 생각보다 자부심 강한 멜버니언들. 늘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사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멜번에서 알게 된 친구, Danica에게 멜번의 문화를 느낄 수 있을 만한 곳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아티스트답게 멜번 시티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갤러리들과 아티스트들의 작업공간으로 날 초대했는데, 그 중 한 갤러리에서 알게 된 빌 헨슨(Bill Henson)이라는 사진 작가의 스토리가 흥미롭다.

사진 이론을 전공하고 있는 이 친구가 데려간 갤러리 중에서 유일하게 위 갤러리에서, 내가 지금 돈이 있다면 이 사진을 사고 싶다,며 시간을 끌었던 기억이 난다. '아름답다'고 느낀 사진 작품들을 보기도 오랫만이었다. 요즘은 '예쁜, 재미있는, 아무렇지 않은척 하는' 사진이 대세니까.

Danica가 말한대로 마치 카라바지오(Caravaggio)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Bill Henson, Paris Opera Project, 1991

행운이 계속 따른 날이었는지 Danica와 갤러리 매니저가 아는 사이였던 덕분에 사진 하나하나마다 열정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열정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도 그런 마음이어서, 너무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아름답다고 빌 헨슨이 누구냐고 유명한 사람이냐며 물어댔다. 신나서 멜번 출신이고, 뉴욕 파리 런던 등에서도 전시회를 했던 작가라고 설명해주는 매니저와 달리, Danica는 갤러리를 나오면서 사실 이 작가는 굉장히 논란이 많은(controversial) 작가라고 덧붙였다.

간단히 설명을 듣고 돌아와서 찾아보니, 얼마 전 그의 작품을 두고 법적 공방까지 갔었고, 말 아끼기로 유명한 호주의 전 수상, 케빈 러드가 '굉장히 혐오스럽다'고 표현했을만큼이었다고 한다.

논란의 중심에는 '예술 vs 포르노'가 있었고, 더 문제가 되는 건 그것이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사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실제로 한 학교에 찾아가 12세 여자 아이와 13세 남자 아이를 '고른?' 뒤, 부모의 허락을 받고 부모가 동석한 가운데 누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지금 구글 이미지에 Bill Henson을 검색해 보시라.)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작가가 파리의 작가였다면, 이런 논란에 중심에 설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만한 유명세를 탈 수 있었을까? 아마도 Danica는 이런 멜번과 호주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Thank you, Danica!

멜번에 있으며 이 도시는 penalty의 도시로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물론 학교에서 선진의식이라는 것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우는 것 같지만, 과연 penalty가 없다면 이 젠틀하고 질서정연한 겉모습이 유지될까?

친구의 학교에 '도강'을 갔다가 놀란 것이,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의 디테일한 법규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날은 음주법 관련 수업이었는데, '라이센스 없는 곳에서 술 팔면 얼마, 바텐더가 취한 것 같아 보이는 손님한테 경고 없이 술 팔면 얼마, 지정된 지역 외에서 술 먹으면 얼마....'를 듣고 있자니, 엄청난 벌금도 벌금이지만 법 만드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중에 이곳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 분 역시, 이곳의 사회복지 법규가 얼마나 디테일하게 거의 모든 부분을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 입이 닳도록 설명하더라.

빌 헨슨이름 앞에 늘 'controversial'이라는 단어가 붙는 이유는, 바로 이 '큰 정부'가 유지되기 위한 '규제의 구멍'에서 예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2008년 전시회 오프닝 날, 그의 사진들이 경찰에 의해 압수되고 그는 법정에 섰지만, 결국 풀려난 근거는 '예술이냐 아니냐는 법정에서 다룰만한 소재가 아니다'였다.

이런 아티스트를 규제할 만한 디테일한 규정은 커녕,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에 대처할 만한 정부의 입장도 정리가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당황한 큰 정부는 일단 그를 잡아넣고 보았던 것이다. 덕분에 빌 헨슨은 더 유명해지고 말이다.

'예술 vs 포르노'는 아주아주 오래된 논란일테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논란일텐데, 이것으로 뜨거웠다는 호주의 2008년에는, 사실 빌 헨슨보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그리고 미디어들이 더 달떠있었던 것 아닐까.

멜번이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부끄러원 하는 작가, 빌 헨슨. 이런 멜번, 이런 호주.






a tiny slice of Melbou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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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9, 2011

[culture] 멜번의 옛 닉네임, 멜보링에 대한 수다 (Melbourne is not boring!)




축제가 끝나고 난 오후, 알마데일 하이스트릿
현대적인 건물과 역사적인 건물이 뒤섞인 멜번의 시티
만남의 장소이자, 시위의 장소이자, 피크닉의 장소이자, 책도 보고 인터넷도 할 수 있는 멜번 스테이트 라이브러리
끊임없이 무언가가 열리고 닫히는 페러레이션 스퀘어


시드니에 사는 친구가 멜번의 별명을 알려줬습니다. '멜보링(Melbouring)'이랍니다. Melbourne is boring! 멜번은 따분(boring)하다며 얼른 시드니로 오라고 야단입니다. 처음 들을 때에는 웃어 넘겼는데, 생각해보니 재미있어서 멜버니언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재회해서 친구가 된 다니카(Danica)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고 반 나절을 함께 멜번의 구석구석을 다녔습니다. 인터뷰라기 보다는 수다에 가까웠지만, '멜보링'이란 별명에 대한 의문도 풀리고 멜번의 히든 플레이스도 알게 되었습니다. 

"시드니에 있는 친구가 멜번의 별명이 '멜보링'이래. 정말 그래?"

"하하하, 나도 처음 들어봤는데?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것 같아. 멜번이랑 시드니는 'vs'를 달고 다니잖아. 어느 도시나 그렇겠지만 우리는 자기가 사는 도시를 사랑해. 모든 도시는 흥미롭고, 나에게는 멜번은 전혀 지루하지 않아."

호주에서 멜번과 시드니의 경쟁구도의 역사는 깊습니다. 1901년에 정식으로 나라가 세워지고 나서, 1927년에 수도가 캔버라로 정해지기 전까지 호주의 수도는 멜번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드니를 호주의 수도라고 생각할 만큼 시드니가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는 하지만 멜번 사람들은 원래 멜번이 호주의 수도였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캔버라가 수도로 지정된 이유 중 하나도 두 도시의 경쟁 구도를 고려해서 시드니와 멜번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을 우선 순위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반구 최초의 올림픽도 멜번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시드니 올림픽이 있기 반 세기나 전에 말입니다.

"나도 멜번에 오기 전에는 멜번이 어떤 도시일지 상상이 안 됐어. 그런데 한 달 넘게 지내보니 전혀 지루하지 않아서 친구가 그 말을 했을 때 그냥 웃어 넘겼어. 멜번은 생각보다 굉장히 핫한 도시 같아. 론리 플래닛에서 왜 Lane Culture를 즐기라고 했는지도 알겠어. 멜번에서는 골목의 끝까지 들어가 봐야 거기에 뭐가 있는 지 알 수 있어. 간판도 없고, 조명도 없지만 혹시 하고 들어가 보면 멋진 카페나 바들이 숨어 있더라구."

"맞아, 그런데 이렇게 변한 건 얼마 되지 않았어. 20년 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어. 그때는 지루했을지도 몰라. 그런데 60년대부터 개발의 붐이 불면서 70-80년대에는 동쪽으로 도시가 점점 더 넓어졌고, 근교로 갔던 사람들이 아이들의 교육같은 문제로 다시 중심부로 모이면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건 뭐야?"

"글쎄, 나도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워. 지금 멜번은 모호(ambiguity)해. 이 단어 '모호함, 애매함'은 내가 좋아하는 말이기도 해. 내 작품들의 중심 생각이기도 하고 말야. 모호하다는 건 계속 자라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 지금의 멜번이 그런 것 같아."

"브로드쉿(Broadsheet)알아? 그 웹사이트에서 니가 하는 말과 비슷한 문장을 읽은 것 같아. 잠깐만 웹사이트에 들어가보자. 바로 이거야. 편집장 겸 발행인이 자신들을 소개하는 페이지에 쓴 글이야."

From where we’re standing Melbourne is going through an extraordinary boom at the moment. I think most would agree, it's virtually unrecognisable from the city we remember as kids. There seems to be an energy about the city right now; things are really happening.

"어때?"

"음...보자... 맞아, 나도 완전히 동의해. 내 말도 이 말이었어."

"그럼 그 다음 문장은 어때? 마지막의 컴플렉스란 뭐지? 너희들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인가?"

Don’t worry, we wont bang on about how Melbourne is hailed for its restaurant scene, laneways and boutique shopping; that’s well beyond the point of cliché and, frankly, reeks of an inferiority complex.

"나도 단언하기는 어려워. 그렇지만 호주가 역사적 기반이 영국이나 독일, 네덜란드에 비해서 약한건 사실이야."

"좋아, 그럼 내가 멜번에 궁금한 것 더 물어볼게. 지금은 멜번에서 가장 핫한 서버브(suburb)는 어디라고 생각해?"

"그건 니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 다를꺼야. 만약 비주얼 아트에 관심이 많다면, 우리가 처음 만난 피츠로이 쪽이지 않을까?"

"피츠로이 갤러리 투어는 정말 멋있었어. 너 아니었다면 브런즈윅 스트릿(Brunswick st.)의 뒷골목 이층에 갤러리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을거야. 멜번에는 그런 숨은 갤러리가 많아? 시드니보다 많을까?"

항상 시드니와 비교하는 제 질문을 불편해 했는지 모르겠지만, 다니카는 언제나 객관적으로 이건 자기 의견이고 정확한 수치는 확인해 보지 않았다며 겸손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시드니의 아트 시장이 더 크겠지만 멜번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를 멜번 시티에 있는 숨은 갤러리들로 데려가 주었습니다. 덕분에 빌 헨슨(Bill Henson)이라는 사진 작가도 알게 되었고, 그 복잡한 스완스톤 스트릿(Swanston st.)에 신생 아티스트들에게 스튜디오 겸 전시 공간을 빌려주는 빌딩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시티 라이브러리 옆 건물이었는데 일층에는 편집 매장들이 있고, 오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건물 밖과는 전혀 다른 아티스트들의 세상이 펼쳐집니다. 

이제 막 떠오르는 작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아트 스쿨을 졸업한 학생들이 자신의 포트폴리오와 일종의 제안서를 내고 통과가 되면 공간을 저렴한 가격에 빌려주고 전시도 후원해 준다고 하네요. 우리 나라에도 이런 플랫폼 역할을 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있겠죠?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번은 아티스트가 활동하기 어렵다고 한참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일단 물가가 비싸니까요.





몇 군데의 갤러리들을 돌아 본 후에 시티 라이브러리의 작은 세미나 룸에 들어가 조용히 수다를 떨 수 있었습니다. 

"멜번은 마치 스위스의 바젤 같아. 바젤도 굉장히 작은 도시인데 골목마다 개인 갤러리든 공공 갤러리든 없는 블럭이 없을 정도야. 덕분에 바젤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것 같았어. 실제로 바젤 시립 미술관(Kunstmuseum Basel)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개인 컬렉션을 시에 기증하면서 만들어 졌대. 그 중에는 피카소의 작품같은 유명 그림들도 상당했다나봐. 원래 그 동네 사람들은 예술을 사랑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디자이너 친구는 유럽 여행을 할 때 꼭 바젤에 가 보라고 권하기도 하던데, 바젤 가 봤어?"

"응, 아트 바젤 페어도 유명하잖아. 바젤 좋아. 그런데 멜번은 바젤만큼은 아니야. 멜번도 2년에 한 번씩, 불행히도 올해는 아니지만, 아트 페어가 열려. 하지만 규모 면에서 바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아. 말했지만 호주는 역사가 길지 않거든. 덕분에 호주의 예술문화는 젊다고 할 수 있어."

"꼭 비주얼 아트를 말하지 않더라도 멜번은 문화적인 도시같아. 페스티벌 일정이 달력에 빼곡하고, 주 정부에서도 관리를 잘 하는 것 같던데, 아니야?"

"음... 주 정부의 예산은 스포츠에 가장 많이 쓰이지 않을까? ^^ 비주얼 아트 부분에는 포션이 매우 작고, 페스티벌이나, 뮤지컬, 오케스트라 같은 다른 문화 활동에는 적지 않을거야."

"그렇구나. 아무튼 언제든 즐길 거리가 있는 멜번 사람들이 부러웠어. 어느 주말에든 나가 놀 거리가 있던데? 게다가 커피도 맛있고, 맥주도, 와인도 맛있잖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문화들이 많아 보여."

"그걸 두고 핫 하다고 할 수 있을 거야. 뜨겁지.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소비 중심적인 문화라고 생각해. 쉽게 소비할 수 있는 먹고 마시고 놀 거리가 많이 생겼지. 그런 면에 있어서 멜번의 아트 씬은 좀 달라. 숨겨져있고 뭔가 혼합되어 있어."

"역시, 모호한건가?"

"맞아. ^^ 멜번의 아트 씬은 한 번도 주류가 된 적은 없어. 그렇지만 안에서 더 커지고 있어. 애매하지만 말야. 우리는 행운아야. 우리에게는 많은 자유가 있거든."

"와, 어쩜... 내가 묻고 싶었던 걸 어떻게 알고 대답한거니? 서점에 갔다가 <The Lucky Country>라는 책을 봤어. 이 책을 쓴 도널드 혼(Donald Horne)이 마지막 챕터에 이 말을 쓰고 제목으로 붙이고 나서 이 단어가 호주의 별명처럼 됐다고 하더라구. 정말 너희들은 스스로 행운이 가득하다고 생각해?"

"응,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가진 자원이나 자연환경을 봐. 그렇지만 그건 미디어 센세이셔널리즘(media sensationalism)의 하나이기도 해. 일종의 프로파간다지. 그런데 지금 우리가 정말 럭키할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 비싼 의료보험 시스템을 봐, 엄청나게 비싼 렌트비는 또 어떻구."

멜번대에서 순수 예술을 전공한 이 친구와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6시가 돼서 도서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우리는 오프닝 행사가 있는 다른 갤러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쉽게도 뭔가 착오가 있어서 오프닝을 보지는 못했지만, 뭔가 멜번에 대한 많은 의문이 풀려서 신이 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를 골라달라고 했습니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1살 부터 28살까지 유럽, 아메리카 대륙, 아시아, 그리고 알라스카까지 안 가본 곳이 없었습니다. 현지에서 돈을 벌며 여행을 하고 다시 호주에 왔다가 다시 여행을 떠나기를 반복한 후에 29살이 되어서야 공부가 하고 싶어서 대학에 왔다고 합니다. 

지금은 여러 단체의 후원을 받으며, 여러번의 전시회를 연 신생 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그녀가 보여준 작품 중에 저는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뭔가 감정 이입이 되었다고 하는게 맞을까요? 숍의 한 구석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한 여자가 자신의 발에 맞지 않지만 맘에 드는 구두를 억지로 신는 모습을 연속 촬영한 이미지 입니다. 


다니카는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주는데, 이렇게 사진이 되기도 하고 설치 미술이 되기도 하고 조각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늘 고민하고 그것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고민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이런 그녀가 꼽은 최고의 도시는 바로 '베를린'이었습니다. 역시 아티스트답게 최근 아티스트들의 성지라는 베를린에 꼭 가보라고 합니다. 

"하나를 꼽아야 한다고?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 그렇지만 베를린이라고 말할게. 베를린에는 다양성이 있어. 국경을 넘나드는 다양성. 그리고 굉장히 현실적이고 강렬해. 멜번은 규제와 압력이 있다는 점에서 베를린을 따라가기 어려워. 지금의 베를린은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고 있거든. 
"무엇보다 이야기를 하기 위한 플랫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이 베를린을 움직이게 한다고 생각해.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실제로 이야기를 해. 좀 전에 네가 멜번 사람들도 이야기를 하기 좋아한다고 말했지? 그런데 그건 좀 다른 차원이야. 멜번 사람들의 대화는 조킹 컬처(joking culture)라고 할 수 있어. 
"베를린에는 프로페셔널리즘이 있어. 사람들은 진지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어해. 내 생각에는 유럽은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들이 서로 가까이에 붙어 있잖아. 그래서 오랫동안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대화를 했어야 하는 것 같아. 그 문화가 베를린에도 있는것 같아. 서로를 알리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려는 공간이 자연스럽고 도시 각지에 굉장히 많아. 베를린 또한 모호함을 가지고 있는 도시야. ^^"




Thank you, Danica!













Apr 17, 2011

[travel] Good morning, sunshine!



























멜번에서의 8주 중에 한 달을 보낸, 주소도 모르는 이 18번 플랏에는 매일 늦잠을 자는 제가 살고 있습니다. 매일 밤 내일 아침에는 일찍 나가서 멜번 사람들의 출근 모습도 구경하고 아침 햇살도 카메라에 담아 와야지, 하며 다짐을 하곤 했지만 결국 외박을 하고 들어오는 길에야 아침 햇살 구경을 했네요. 

볕이 워낙 좋기도 했고, 친구네 집에서 제 방까지 오는 길에 해가 제 뒤에 있어 준 덕분에 햇살이 잘 담겼네요. 손에 카메라는 있는데 사진 찍기도 귀찮은 날이 있어요. 그런 날에는 해를 등지고 걸으며 셔터를 누르세요. 해가 땅에 가깝게 떠 있는 때 일수록 좋아요. 많은 힘을 들이지 않아도 그들이 알아서 좋은 사진들을 남겨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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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6, 2011

[brand] Borders, American Apparel, and Grameen bank




보더스, 아메리칸 어패럴, 그리고 그라민 뱅크. 각기 다른 의미로 좋아하는 브랜드들인데, 최근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보더스와 아메리칸 어패럴은 파산 위기를 겪고 있고,  그라민 뱅크에서는 창립자 무하마드 유누스가 해임 됐다고 한다.

보더스는 개인적인 추억이 있는, 아메리칸 어패럴은 brand identitiy, brand concept보다는 brand ethos로 표현되어얄것같은 '뭔가'를 가지고 있는, 그라민 뱅크는 그 창립 자체가 놀라운 브랜드.

앞의 두 브랜드는 일시적인 문제일 수도 있으니 잠시 제쳐두더라도, 그라민 뱅크와 무하마드 유누스 관련해서는 조금 더 찾아 보니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은행 측에서는 '법대로' 했을 뿐이라는데, 유누스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편에서는 그라민 그룹이 대기업이 되면서 '예전같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 친구들에 의하면 정부와 유누스는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방글라데시를 세계에 알린 공은 높이 사지만, 서민을 위한 정책을 주장하는 그가 정부에게는 눈엣가시란다. 

많은 브랜드가 그토록 갖고 싶어하는 '영향력' 면에 있어서 그라민뱅크는 제 3세계 문제 해결, 사회적 기업의 대표 주자를 넘어서 현대 자본주의에까지 영향을 미친 엄청난 기업인데, 그 기업의 중심인 유누스의 해임은 또 어떤 영향을 만들어 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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