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28, 2011

[travel] Goodbye København! Tak!





Goodbye København! Tak!
안녕, 코펜하겐! 고마웠어!


코펜하겐 일정도 마쳤습니다. 이제 두 도시가 남았네요. 빨리 서울에 돌아 가서 청량고추 넣은 칼큼한 된장찌개와 상큼한 비빔국수, 그리고 등심구이를 먹고 싶습니다. 쌀이 먹고 싶어서 YAM YAM이라는 아시아 음식점에 가서 그린커리를 시켰는데, 맛이 없어서 집이 더 그리워졌습니다. 이제 환청이 들리기도 합니다. 가끔 한국말이 들리는 것 같아서 뒤를 돌아보면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없습니다. 


한 달도 안 남았습니다. 이제 남은 두 나라에서는 대부분 카우치 서핑으로 만난 친구들 집에서 머물게 됩니다. 이틀에 한 번씩은 이사를 하면서 살아야 하니, 한 달 정신없이 보내고 나면 서울행이네요.


처음에 덴마크에 들어오면서는 덴마트의 여자들은 뚱한 바이킹의 후예들이라 불친절하다,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5만원은 기본이다 등등 겁먹을 만한 말을 많이 듣고 온지라 기대도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떠날 때가 되니 제가 머문 도시 중 가장 친절한 도시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덴마크 여자들이 불친절하다는 건 잘 웃지 않아서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지만 도움을 청할 때마다 그 누구도 불친절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하철에서는 제가 가진 동전이 없어서 티켓을 못 사고 있자 자기 카드로 제 티킷을 사 준 친구도 있었고, 호스텔 바에서는 덴마크 전통 술을 먹고 싶다고 하자 한 샷 정도는 괜찮다며 무료로 주기도 하고, 야박하다는 맥도널드에서도 동전이 부족하자 괜찮다며 윙크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루 묵은 호텔에서도 아침 포함이냐고 물어봤을 뿐인데, 원래는 아니라며 식사 티켓을 주기도 했습니다. 


쓰고보니 모두 돈과 관련되어 있네요. 부자 나라 사람들이라 인심이 후한건가요? (하하) 아무튼 또 한 가지 놀라운 건 무가지를 나눠주는 청소년이든, 길에서 만난 할아버지든 할 것 없이 영어를 잘 한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가이드북이 필요 없었습니다. 궁금하면 지나가는 누구나 붙잡고 저건 뭐냐고 물어보면, 이 건물은 17세기에 배를 타던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하며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러다 점심을 얻어먹기도 했었습니다. 


물가에 관해서는 노르웨이보다는 덜 하다고 하지만 베를린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모든게 비싸게 느껴집니다. 사실이기도 하구요. 한끼를 만원에 먹으면 기적에 가깝게 싸게 먹은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지하철 세 정거장 갈 돈이면 카페에서 라테 한 잔을 먹을 수 있습니다. 


다시 오고 싶지는 않지만 (별로라는 의미가 아니라, 일부러 다시 오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왠지 추억을 많이 만들고 가서인지 떠나려니 아쉽습니다. 




+ 참고로 위에 있는 사진만 보시면 코펜하겐 다 보신겁니다. :) 모든 코펜하겐 여행책자의 표지를 장식하는 운하랍니다. 








Sep 27, 2011

[brand] 로열 코펜하겐의 로열 카페(Royal Cafe)







덴마크를 대표하는 몇 가지. 레고, 안데르센,  덴마크식 다이어트(?), 그리고 빠지지 않는 것이 로열 코펜하겐(Royal Copenhagen)입니다. 덴마크 왕실용 자기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이 회사는 역사가 200년도 넘은 그릇계의 명품으로 통합니다. 

그러고 보니 덴마크에는 유명한 브랜드가 참 많네요. 오디오계의 명품이라는 뱅앤 올룹슨, 안경계의 명품이라는 린드버그같은 회사뿐만 아니라, 에그 체어로 유명한 얀 야콥슨(Arne Jacobsen)이나 팬톤 체어의 베르너 펜톤(Verner Panton) 역시 명품 의자를 디자인한 덴마크를 대표하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의 목표 중 하나가 '귀로만 듣던 걸 눈으로도 보고 몸으로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3년 동안 브랜드를 발견하고 관련된 글을 쓰는 일을 하고 나니, 제 눈에 띄는 건 서울에서 볼 수 없었던 브랜드들입니다. 그래서 그런 브랜드 매장이 보이면 들어가서 한참을 노는게 일이 되었습니다. 

로열 코펜하겐 역시 (제 담당은 아니었지만) 다루었던 브랜드라 코펜하겐 중심가에서 매장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들어갔습니다. 사실 제 관심사는 그릇보다는 카페에 있었습니다. 매장 옆에 카페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지라, 커피만은 사치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한 이번 여행에서 꼭 들러야 할 곳 중 하나였습니다.

일할 당시에는 로열 카페가 로열 코펜하겐에서 운영하는 카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숙소에서 가까운 덕분에 요 몇일 다녀보니 완전히 로열 코펜하겐에서 운영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협업에 가깝다고 해얄것 같습니다. 카페에 대한 내용은 이미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 잘 정리를 해 주신 덕분에, 링크로 대신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카페만 가는 건 예의가 아니니 매장에도 들렀습니다. 사진 촬영은 안 되지만, 이 매장은 관광지에 가깝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제품 컷은 최소화한다는 최소한의 매너를 지키며, 아이폰을 꺼내 들었습니다. 






로열 코펜하겐 매장의 내부 모습

로열 코펜하겐의 매장은, 
총 세 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은 신상품 중심, 2층은 스테디셀러 중심, 3층은 기념품 중심인것 같습니다. 3층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둬서인지 크리스마스 소품과 아웃렛이 있어서, 여행객이 선물을 사기에 딱 좋은 곳입니다. 접시나 장식용 자기 하나 쯤은 그릇을 좋아하시는 어르신이나 친구들을 위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1~2만원으로는 사기 어려우니 정말 기념만 하고 싶은 분들은  작은 크리스마스 소품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브랜드의 이름만 알 때에는 정말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모두 금 테쯤은 두른, 제품만 파는 줄 알았는데 취재를 하며 제품 카탈로그를 보고서는 왠지 '코렐'스러운 느낌에 호감도가 떨어졌었습니다. 그런데 그 카탈로그는 정말 '판매'를 위한 것이었는지, 카탈로그에 있는 제품들은 비교적 저렴한 제품들이었습니다. 

'로열'스럽다고 느끼는 제품들은 역시나 '왕실에 들어갈만 하군'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지고, 또 비쌌습니다. 0이 다섯개쯤 붙은 크로네였던것 같습니다. 1크로네가 200원이니, 접시 하나에 수백 만원대라고 할까요. 세트로 사면...

그래서 매장 구경은 마치고, 카페로 옮겨갔습니다. 호스텔에서도 잘 안 잡히는 와이파이도 잘 되고(비밀번호는 물어보세요), 제가 좋아하는 잡지 <모노클>도 있고, 커피도 맛있는 저에게는 코펜하겐 최고의 카페였습니다. 







이 카페에서는 몇 가지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주요 타겟이 코펜하겐의 시민들뿐 아니라 관광객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당연히 그릇은 로열 코펜하겐의 제품을 쓰고 인테리어 소품들 역시 얀 야콥슨의 의자 같은 덴마크를 대표하는 제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다른 카페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영어 잡지가 많이 구비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메뉴 역시 영어가 함께 쓰여져 있고 'Danish'라고 강조한 메뉴도 여럿인걸 보아 관광객을 염두에 둔게 틀림없습니다.

전략은 성공적이어 보입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로열 코펜하겐에 들러서 구경을 하고 이 카페에 와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관광객만 채워져 있으면 로컬들은 그곳을 기피하기 마련인데, 이 카페가 로컬들에게도 인기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스무시(Smushi)'라는 음식 때문입니다. 

스무시는 음식의 종류라고 할 수 있을텐데, 덴마크 사람들이 많이 먹는 오픈 샌드위치와 일본의 스시의 컨셉을 결합시킨 음식입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주로 빵에 버터를 바르고 그 위에 치즈나 야채 등을 얹어 먹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포만감도 그렇고 오래된 음식이라는 이미지니까요. 게다가 요즘 덴마크에서는 동양적인 것이 유행이랍니다. 여기에서 착안해서 작은 딱딱한 빵 조각에 치즈를 올리고 그 위에 생선이나 고기를 예쁘게 쌓아 올려서 마치 조금 큰 스시처럼 만들었습니다. 

한 피스에 48 크로네, 그러니까 약 만원입니다. 세 피스를 먹으면 좀 싸고, 일요일에는 팔지 않습니다. 보기도 좋고 맛도 좋습니다. 카푸치노 한 잔이 40 크로네이고, 편의점 샌드위치도 40 크로네 정도인 이 도시에서 이런 새로운 전통 음식을 두 피스 정도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 홍보를 하고 있네요.







어딜 가나 로컬들이 무얼 먹고 무엇 입고 있는지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제부터 계속 보이는 맥주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맥주처럼 생기지 않아서 맥주인 줄 몰랐는데, 메뉴를 보고서야 맥주인지 알았습니다. 디자인 숍에 가도 이 맥주 병이 디스플레이 소품으로 활용되고, 카페에 가도 이 맥주를 마시는 멋진 코펜하겐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한 병을 시키고 맛을 보며 이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는데, 칼스버그에서 만드는 맥주였습니다. 칼스버그 역시 로열 코펜하겐처럼 로고에 왕관이 그려져 있습니다. 왕실과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아, 이 맥주의 이름도 적지 않았네요. 무려 '코펜하겐'입니다. 뭔가 재미있는 스토리가 흘러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안 그래도 여행을 다니며 부티크 맥주 시장에 관심이 생겼는데, 조금 더 조사해서 이 코펜하겐과 함께 호주와 유럽 대륙의 맛있는 부티크 맥주를 소개해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지금 밖에서는 불꽃놀이를 하는 모양인데, 나가기에 너무 추운 밤이라 고민입니다. 사실은 친구가 없습니다. 이층 침대를 같이 쓰며 친해진 일본 친구는 하필 오늘 아침에 떠났네요. 누구 지금 코펜하겐에 없나요?  




[trend] Dunhill과 G-STAR RAW 광고의 주인공






잡지를 볼 때면 가장 첫 페이지부터 어떤 광고가 자리잡고 있나를 보게 됩니다. 과거의 직업병이 아직 남아 있나 봅니다. 로열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하며 <모노클>을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있었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명품 광고가 줄을 잇는 것을 보니, 테일러 브뤼헤의 목적 달성이 코앞에 다다랐구나 하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는 <월페이퍼>의 비즈니스 버전을 만들고 싶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잡생각을 올려 놓고 잡지를 살피다가 던힐(dunhill) 광고에 잠시 멈췄습니다. 그리고 유럽 어딜가나 보이는 지스타로(G-STAR RAW)의 광고를 떠올렸습니다. 이 두 광고의 공통점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두 광고 모두 스타가 아닌 '아티스트'를 모델로 광고 촬영을 했습니다. 모델이 어떤 아티스트임을 밝히는 것은 물론이고, 던힐의 경우 그 인물의 짧은 인터뷰를 지면에 담고 있고 지스타의 경우에도 홈페이지나 지스타에서 발행하는 잡지를 보면 광고 모델의 철학을 광고 카피처럼 활용하고 있습니다.

요즘 브랜드들이 아티스트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아티스트와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은 칼 라거펠트가 H&M과 손잡은 이후에는 그 어떤 경우도 별로 놀랍지 않을만큼 익숙해졌고, 이제는 광고 모델로까지 초대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스타 보다는 싸고, 일반인 보다는 임팩트 있기 때문이라는 일차원적인 이유 이면에 무언가가 꿈틀대로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마도 그들의 아이덴티티, 철학, 정신 등을 높이 사는 차월일 것 같습니다. 왠지 영혼 없어 보이는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보다는 자기 세계 확고하고 쿨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데다 외모까지 괜찮은 아티스트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이 '있어 보이는' 요즘이기 때문일까요?

아티스트가 스타 대접받는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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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26, 2011

[brand, inspiration] 프라이탁 레퍼런스(Freitag Reference)의 런칭 캠페인




(website: www.freitag-reference.com)


프라이탁이 작년에 런칭한 럭셔리 라인으로 추정되는 프라이탁 레퍼런스 웹페이지의 모습입니다. 프라이탁 홈페이지의 뉴스 메뉴만 천천히 살펴 봐도 이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일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데, (이 페이지는 마케터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는 페이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레퍼런스 라인 때에는 얼마나 신났을까 상상이 됩니다.


1년이나 지난 프로모션이었지만, 최근 프라이탁 매장에 갔다가 이들이 만든 신문을 보고는 뒷조사를 좀 해봤습니다. 


이 프로모션은 작년 9월 한 달 동안 이루어졌고, 매일 아침 8시에 팀들이 모여 킥오프 미팅을 하면서 그 날의 인터네셔널 신문들을 모아 놓고, 그들이 생각하기에 좋은 기사들을 고릅니다. 아마도 프라이탁이 지향하는 바와 관련된 기사들로 필터링 됐겠죠. 그리고 그 기사를 공유해서 사람들의 코멘트를 받습니다. 점심 때쯤 이 작업이 마무리 되면 5시까지는 데일리 레퍼런스(The Daily Reference)라는 이름으로 프린트 되어서 취리히의 여러 스팟에 뿌려집니다.


재미있는 건 이 신문이 발행되는 방식이 마치 하나의 퍼포먼스같다는 것입니다. 프라이탁 형제의 스튜디오에 9월 한 달간 1800년대 말에 만들어진 인쇄기를 들여다 놓고, (이 인쇄기는 납으로 된 활자판 하나하나를 손으로 옮겨서 문장을 완성한 후에 찍어내야 합니다), 신문 보이가 직접 거리에서 "신문이요"를 외치며 신문을 나눠줍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21세기 스위스에 19세기를 옮겨 놓은듯 말이죠. 


혹자는 오버스럽다고 말할만한 이런 행동들은 어디서 출발할까요? 일 때문에 경영서적을 읽으며 배운 것들이 많은데, 그 중 아직도 제가 늘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피터 드러커가 말한 '5 WHY'입니다. 무엇이든 5번 '왜'를 물어보면 그 본질에 가까워진다고 합니다. 


전 직장의 상사분 중 한 분은 아이 교육법으로도 이 '다섯 번의 왜'를 활용한다고 하십니다. "아빠, 나 저 장난감 사줘"라고 했을 때, "왜 갖고 싶은데?" "이게 왜 좋아보여? 아빠는 별론데" "그 친구는 그걸 왜 샀대?" 이런 식으로 (다그침이 아니라) 대화를 유도하다 보면 아이가 깨닫든 아이에게 설득 당하든 한답니다. 


아무튼 저는 프라이탁 형제와 대화를 할 수 없으니 혼자서 그 이유를 찾아 봤습니다. 첫번째 의문이었던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만난 신문 발행 스타일은 하나의 컨셉이었던 것 같습니다. 


"Like hot meets cold, the new FREITAG REFERENCE line is the meltdown of neo and retro: on one hand inspired by horse messengers of the 1800s, on the other hand initiated and endorsed by contemporary journalists." 


1800년대 말을 타고 소식을 전하던 메신저들과 현대 저널리스트들이 만난 것처럼 네오(new)와 레스토 스타일을 믹스하겠다는 이 문장은 제품 컨셉 부분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컨셉은 비단 제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프라이탁 레퍼런스와 관련된 모든 활동에 흐릅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프로모션 도구 중 왜 신문을 골랐을까요? 그것도 출판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그들이 직접 100년도 넘은 인쇄기를 스튜디오에 들여놓고 말이죠. 


"Since 1993 FREITAG has been manufacturing riding on wheels. With FREITAG REFERENCE, we turn to those messengers writing on paper. Messenger comes from message; and today the media are the horse that carries him."


메신저백 덕분에 탄생한 그들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메시지는 그 동안에 바퀴달린 무언가에 의해 옮겨졌는데, 이번에는 다른 말(메신저)에 메시지를 담고 싶었나 봅니다. 메신저는 메시지가 있을 때야 비로소 그들의 존재가치가 빛나는 거니까요. 데일리 레퍼런스를 봐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문장은 "The messenger is the messege"였습니다. 


5번까지 가기엔 힘이 드니, 마지막 '왜'와 대답을 찾았습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미디어 중에 왜 신문'이었을까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미디어는 TV프로그램, 영화, 웹페이지 등등 많은데 말이죠. 이 대답을 찾고, '역시, 프라이탁!'했습니다. 


"More than 15 years after we started FREITAG, we finally know what we're about: cycles. We cycle to work. We cycle tarps. And we think in cycles. So our newspaper THE DAILY REFERENCE which we edited from 3th through 30th cycles content"


그들은 일을 시작한지 15년 째가 되어서야 자신들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사이클'이랍니다. 단지 재활용품을 활용하는것 뿐만 아니라 그들은 무언가를 계속 다시 돌아가게 연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메신저, 메시지, 자전거, 바퀴, 재활용품, 실과 바늘... 모두 사이클(순환, 재생, 다시)과 관련되어 있지 않나요? 


그래서 데일리 레퍼런스의 컨텐츠도 온전히 생산하는 게 아니라 '재' 생산합니다. 주요 일간지의 주요 기사를 오려내서 그 기사에 자신들의 생각을 덧붙여서 재 발행하는 것이죠. 신문은 그 종이 자체를 재활용할 수도 있으니 여러모로 '사이클'이라는 그들의 존재 이유와 닮아 있습니다. 


어떤가요? 프라이탁 대변인 같은가요? 그렇지만 브랜드를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일을 하면서 느낀 건, 이렇게 여러번 "왜"를 물었을 때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브랜드는 몇 안 된다는 겁니다. 만약 제가 왜를 다섯 번 물었을 때, 망설임 없이 프레스 용 답변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브랜드가 있다면 저는 지갑을 열 의향이 있습니다. 프라이탁이나 탐스슈즈, 로모, 그리고 홍대의 더 페이머스 램같은 카페, 제이미 올리버 같은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생각이 명확한 브랜드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 데일리 레퍼런스는 홈페이지에서 pdf 버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매장에서 실제 신문을 한 뭉치 얻어 왔는데, 베를린 떠나는 마지막날 기차 시간 앞두고 서둘러 찍느라 제대로 못 보여드려서 아쉽네요.


Main Picture와 그와 관련된 url을 서너개 골라 놓는 것이 주요 포맷
인테리어 소품이 된 베를린 플래그십 스토어의 데일리 레퍼런스








[inspiration] 종합예술인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의 인터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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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site: interviewproject.davidlynch.com)






오늘은 한량처럼 호스텔 라운지에서 종일 빈둥댔습니다. 여행 중에도 가끔 이렇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습니다. 다행히 코펜하겐의 호스텔들은 시설이 매우 훌륭하고, 스칸디나비안의 유명한 디자인 감각 때문인지 인테리어도 멋져서 하루종일 놀아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제가 묵고 있는 제너레이터 호스텔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유명한 단 호스텔에 대항하기 위해서인지 경쟁력을 갖기 위해 애쓴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단 호스텔의 최근 리뷰를 보면 불친절 하고, 침대 커버부터 시작해서 많은 부분 추가 요금이 있기 때문에 저렴한 것이 아니라는 불평들이 많은데, 다행히 이곳에서 그런 불만은 없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1층 라운지는 밤이 되면 마치 클럽같이 변합니다. 한 쪽은 쿵쿵쾅쾅 크게 음악을 틀어 놓고 맥주를 한 잔 하거나 춤도 추고 당구를 치거나 체스를 두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조용하게 수다를 떨거나 노트북을 가지고 내려와 각자의 시간을 갖습니다. 칼스버그도 20크로네면 마실 수 있고, 바에서 놀다보면 심심치 않게 다양한 덴마크 술들을 공짜로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쓰고 보니 술만 마시는 것 같지만, 오늘은 오후 내내 한쪽 구석에서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와 놀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심란한 영화를 만드는 예술 영화 감독으로 알려져 있죠. 사실 <세븐>을 만든,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인,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가 없었다면 이름이 비슷한 데이비드 린치는 덜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의 대표작이라는 <이레이저 헤드> <트윈 픽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도 두 편은 대학 수업 중에, 다른 한 편은 3편 동시 상영하는 심야영화관에서 보다가 잤던 기억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데이비드 린치에 관한 기사들을 연달아 보게 되면서 이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끔 '이 사람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을까?'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재미있는 사람을 만납니다. 최근에는 데이비드 린치가 그렇습니다.

런던에 있는 동안 사치 갤러리에서 발행하는 잡지를 주워와서 보는데, 데이비드 린치 특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를 크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그가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작곡도 하고, 비밀스럽게 가구 디자인도 하는 아티스트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 놀란 것은 David Lynch Coffee의 존재였습니다. 이름만 듣고 런던의 한 카페인가 해서 찾아보니, 그의 시그니처 블렌딩이었습니다. 데이비드 린치의 커피 사랑은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의 몇 영화에서도 커피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고 하는데,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영국에서는 그의 열혈 팬 중 한 명이 커피를 유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브뤼셀에서 유로스타에서 발행하는 잡지를 보다가 또 그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파리의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커뮤니티의 리더이기도 하답니다. 잡지를 스크랩 해 놨는데, 베를린을 떠나며 버렸는지 그 클럽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네요.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해서 또 다른 창작물을 만드는 커뮤니티였던 것 같습니다.

과연 이 종합예술인은 무슨 생각으로 이 많은 일들을 벌이는 걸까요? 조금 찾아 보니 몇년째 똑같은 옷을 그것도 목 바로 아래까지 단추를 채워 입고 매일 같은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할 정도의 괴짜라고 합니다. 그의 도무지 알 수 없는 행보는 팬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데이비드 린치의 미스테리한 세계, 부조리의 도시(www.thecityofabsurdity.com)'라는 이름의 웹사이트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둘러봤는데, 데이비드 린치가 인터뷰 중에 한 말인 "You build your own world", 이것이 바로 그가 하고 있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당신만의 세계를 짓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하고 있는 일 중에 가장 독특한 건 '데이비드 린치 재단'의 활동입니다. 일종의 명상 센터라고 해야 하나요. 데이비드 린치는 오랫동안 명상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가꿔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명상법을 학생들이나 교도소의 수감자들, 노숙자와같은 이들과 공유하는 재단입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의 활동 중 가장 재미있는 프로젝트는 지금부터입니다. 


제가 오후 내내 놀았던 곳도 바로 여기, 인터뷰 프로젝트(interviewproject.davidlynch.com)입니다. 처음에 사치 매거진에서 보고는 데이비드 린치 정도 되니 전 세계의 유명인사들을 연달아 인터뷰 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09년에 미국 대륙을 종횡무진하며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총 121명의 인터뷰가 올라와 있는데, 한 인물당 3~4분 정도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평균연령은 50세쯤 되는 것 같습니다. 도시가 아닌 시골 마을에는 젊은이들이 없어서인지 인터뷰에 응해주는 사람이 보통 마음 넓은 할머니 할아버지였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사진을 보고 가장 말끔해 보이는 사람의 인터뷰를 골라 봤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냥 순서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누가되든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 정도 본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의 투아레그 족의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노인이 죽는 것은 하나의 도서관이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 50여명의 적어도 50년은 산 어른들의 자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촬영 방식도, 편집 방식도, 음악 선곡도 영화감독 출신답게 세련되어서 신선한 에세이집 한 권을, 아니 반 권을 읽은 기분입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위기가 언제냐고? 그건 내가 지루해질때지." 이런 멋진 말들도 툭툭 흘러 나오고, 한 게이는 "만약 신을 믿는다면, 너는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거야."라고 말하며 웃기도 하고, 25년 째 자식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한 할아버지는 "그래서 뭐? 난 60살이고, 이렇게 멋진 은발이 가득하고, 키도 6피트나 되는데!"라며 너털 웃음을 짓기도 합니다. 가끔 "내 여자친구가 전 남자친구를 죽이러 가기 전날..."과 같은 단편소설의 주인공같은 이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희극보다 비극에 가까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자기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말합니다. 몇몇은 눈물 짓기도 하지만, 그 나이가 되면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가 봅니다. 덕분에 오후 내내 심심하지 않게 이곳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즐겁네요!

북마크 해 놓고 심심할 때 마다 하나씩 골라 보세요. 영어 공부도 되고,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를 눈으로라마 하는 것 같아 재밌습니다. 




Sep 25, 2011

[brand] 쏘쿨 쏘핫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을 소개합니다




프라이탁(Freitag)을 알게 된 건 4년 전 쯤 입니다. 이제는 메신저백도 프라이탁 스타일(컬러풀한 & 비닐 소재로 만든)의 가방이 많이 보이지만, 당시 저에게는 이런 브랜드의 존재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버리는 트럭 덮개와 사고난 자동차의 안전벨트로, 그러니까 쓰레기로 가방을 만들어 판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이들의 본사는 컨테이너 박스라는 이야기를 알게 되고는 항상 주시하는 몇 안 되는 브랜드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두었습니다.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를 쓴 브랜드 거부주의자 닐 부어만(Neil Boorman)같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 브랜드를 싫어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소모품인 가방을 이십 만원 이상 주고 사는 짓은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제외입니다. 





(사진: www.freitag.ch)




프라이탁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1993년에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프라이탁 형제(Markus and Daniel Freitag)가 만든 착하고 쿨하고 멋진 브랜드입니다. 

먼저 탐스 슈즈(TOMS SHOES)처럼 좋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법니다. 탐스 슈즈가 '소비자가 한 켤레의 신발을 사면 다른 한 켤레가 아프리카의 신발이 없는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신선한 비즈니스 모델로 사람들을 놀라켰다면, 프라이탁은 남들이 버리는 처치곤란의 쓰레기를 가지고 멋진 가방을 만들어 냈습니다. 

주 재료는 타폴린(트럭을 덮는 방수용 천), 자동차의 안전벨트와 에어백, 자전거 타이어 안쪽의 고무입니다. 이 재료들은 폐기하는 데만도 비싼 돈이 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라이탁에게 이 쓰레기는 귀한 원재료가 됩니다. 쉽게 말해 '재활용 브랜드'다, 라고 하면 된다는 걸 이렇게 구구절절 써 놓고서야 깨달았네요.

탐스와 프라이탁의 또 하나의 공통점 선한 목적을 가진 태생 이전에 쿨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스토리를 모르더라도 사고 싶게 생겼는데, 알고 나면 꼭 사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들이 하는 활동들을 지켜봐도 단지 '장사'만 하려는 것 같지 않아서 좋습니다. 에이전시에 돈을 주고 아이디어를 사는 브랜드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신제품 프로모션이나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보여줍니다. 특히 작년에 있었던 프라이탁 레퍼런스 런칭 프로모션은 과거에 신문방송학도여서 그랬는지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25일을 몇일 앞두고 직원들 한 명 한 명이 직접 카드를 써서 회원들에게 보내는 이벤트가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들은 이야기라 확인은 못했지만, 멋지지 않나요?

어떻게 이런 브랜드를 생각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서 조금 더 찾아 보았습니다. 프라이탁 형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리히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을 때, 그들은 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는 작은 플랏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근처에 폐기물 처리장이 있었는지 매일 무언가를 가득 실은 트럭이 그 고속도로를 지났는데, 일년 중에 평균 127일이 비가 오는 취리히이기에 대부분 컬러풀한 방수용 덮개로 덮힌 트럭들이었던 모양입니다. 

그걸 보고 문득 저걸로 가방을 만들어볼까? 하고 실행에 옮겼다고 합니다. 취리히 사람들은, 특히 젊은 사람들은 자전거를 많이 타는데 비가 많이 오는 동네기 때문에 방수용 가방이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끼리 만들어 메다가 팔고 싶다는 샵들이 나타나자 시장성을 보고 사업에 뛰어들어 대성공을 이룹니다. 

수많은 미투(me too) 브랜드들이 창궐(?)함에도 불구하고 18년째 건재한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위에도 이미 말 했지만 돈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아닐까요. 돈 때문에 시작한 브랜드는 돈 때문에 끝납니다. 성장의 지표를 매출로 보기 때문에 어느 순간 매출이 떨어지면 불안해 하고 리뉴얼을 고민하고, 새로운 광고 에이전시를 찾으며 전전긍긍하죠.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프라이탁은 자신들의 성장의 지표를 매출에서만 찾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시할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적어도 매출이 떨어진다고 금방이라도 망할 것처럼 조바심 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프라이탁을 보면 카메라 브랜드 로모(LOMO)가 생각납니다. 로모의 활동들을 보면, 창업자들이 '잘 놀기 위해' 시작한 브랜드인 만큼, 로모그래퍼들을 어떻게 즐겁게 해줄까를 먼저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이전에 '우리가 어떻게 하면 로모그래퍼들이 한 번 더 웃길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것 같달까요. 그러고보니 로모도 1990년대 초에 시작되었네요. 이들의 20주년 행사는 어떨까요? 벌써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프라이탁의 광고컷 몇 장 소개합니다. 광고를 홈페이지나 매장 외에 다른 매체에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스위스 사람들로서 얼마나 퀄리티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이렇게라도 보여주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나 봅니다. 이들은 이 광고컷을 '광고'라고 말하지 않고, '새 제품의 성능 테스트를 하는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아래는 작년에 새로 런칭한 백팩이 얼마나 튼튼한지 보여줍니다.
(사진 : www.freitag.ch)




Sep 24, 2011

[brand] 금요일을 기념하야, 금요일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 쇼핑 가이드





프라이탁의 로고
무료로 빌려주는 픽시 바이크와 프라이탁을 유명하게 만든 메신저 백



Heute ist Freitag!
Today is Friday!
오늘은 금요일 입니다!


매주 있는 이 흔하디 흔한 금요일을 기념하야, '금요일(독일어로 프라이탁, Freitag)' 브랜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프라이탁은 제가 로모만큼 좋아하는 브랜드입니다. 태생이 착하고, 디자인이 쿨하고, 하는 짓이 멋진 브랜드랄까요.


+프라이탁이 어떤 브랜드인지 더 궁금하다면, 또 다른 포스팅 '프라이탁을 소개합니다'를 참고하세요. 


그래서 여행하는 동안 자제하고 있던 쇼핑이란 걸 하고야 말았습니다. 한 달 동안 북유럽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하기에 무거운 건 종이 한 장이라도 버리고 있는 요즘, 무언가를 사서 짐을 늘이는 건 큰 부담이지만, 그래도 독일을 떠나면 (온라인이나 10꼬르소꼬모와 같은 비싼 편집 매장을 통해서가 아니라면) 다시는 프라이탁을 사지 못할 것 같아서, '선물'이라는 적절한 핑계를 찾아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새로운 라인인 프라이탁 레퍼런스(Freitag Reference)의 가방이나 노트북 파우치를 사고 싶었지만, 무게 최소화의 원칙에 따라 (사실은 낮은 가격 우선 원칙에 따라) 카드 지갑 세 개를 질렀습니다. 아이폰 케이스도 예쁘게 나왔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은 아이폰 4를 위한 케이스 밖에 없어서 만지작 거리기만 하다 포기했습니다. 곧 아이폰 5가 나온다고 하니까요.


원래는 베를린을 떠나기 하루 전 날 베를린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세 개의 디자인을 골라 놓았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사지 못해서 코펜하겐으로 오는 동안에 환승지였던 함부르크에서 대신했습니다. 운명이었는지 유럽에 7개 밖에 없는 매장이 함부르크에 있었습니다. 베를린 매장에서 본 제품과 꼭 같은 것은 없었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만약 프라이탁에서 무언가를 살 일이 있다면 주의하세요. 프라이탁에 완전히 똑같은 제품이란 없습니다. 모든 제품은 하나하나 잘라지고, 컬러 조합을 고려해서 손으로 직접 꿰매 만들어집니다. 컬러 조합이 비슷하더라도 원재료의 손상 정도나 후가공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느낌이 모두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골라 놓고 다음 번에 가서 사야지 혹은 다른 매장에서 사야지 하고 마음 먹으면, 골라 놓은 그 제품을 사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베를린 플래그십 스토어
창고이자 디스플레이 역할을 맡고 있는 한쪽 벽면





베를린에 머물면서 미테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프라이탁 매장에 들른 이유는, 이 브랜드가 고객과 만나는 접점에서는 어떨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프라이탁은 주로 온라인으로 판매 됩니다. 유럽에 6개, 뉴욕에 1개 있는 매장은 플래그십 스토어에 가깝습니다. 그들도 그렇게 부르고 있고요. 매장의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런칭 파티가 열리기도 하고 실험적인 프로모션의 현장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베를린에 도착해서 매장 위치를 북마크 해 놓고, 처음 매장을 방문한 날에는 기대가 상당했습니다. 첫 날에는 제품 구경, 인테리어 구경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지만 매니저가 저를 알아 볼 때 쯤이 되어서는 편안한 분위기 자체를 즐겼던것 같습니다. 혹시 베를린 매장 사람들만 그럴까 싶었는데, 함부르크 매장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신 제품의 광고컷을 보고 무심코 던진 질문 때문에 온 매장의 직원들이 소집되었습니다. 왜 광고 모델이 낙타인지, 낙타에 숨은 의미가 있는지, 아니면 그냥 귀여워서인지 물었는데 다른 직원들을 불러서 의미를 아느냐고 물어보며 일 분 정도 이상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매장을 나가면서 언제나 그렇듯, '난 프라이탁이 너무 좋다, 사랑하는 것 같다'라고 했더니 한 매니저는 '내가 너보다 더 사랑할껄'이라고 하기에, '내가 졌소'라며 두 손을 드는 포즈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백팩 라인을 기념하는 문제의 낙타 광고 컷 (사진: www.freitag.ch)

여러모로 멋진 브랜드입니다. 최근 놀란 것 중 하나는, 위에서 사고 싶다고 말한 프라이탁 레퍼런스 라인의 런칭 캠페인입니다. 베를린 매장에 신문같은 것들이 쌓여 있기에, 다른 매장들이 그러는 것처럼 인테리어 소품의 하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프라이탁 레퍼런스 런칭 당시에 한 달 동안 찍어낸 신문이었습니다. 매니저가 한 뭉치를 보라고 주기에 들고 와서 훑어 보고는 또 한 번 프라이탁에 반해 버렸습니다.


프라이탁 레퍼런스 소개까지 하면 저도 쓰다 지치고, 읽으시는 분들도 읽다 지치실 것 같아 따로 포스팅을 해야겠습니다.


+ 프라이탁 레퍼런스 런칭 캠페인 이야기


마지막으로 지갑을 사고 선물용이니 포장도 되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또 한 번 제 눈에서 하트를 뿜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선물용 포장은 없고 따로 담아서 밀봉해 주겠다고 하기에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공중에 달린 공업용 제봉틀 같은 기계로 드르륵 박아주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놀란 이유를 설명하자면 또 한참이 걸릴것 같지만,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브랜드 컨셉에, 그러니까 본질에,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한 브랜드임을 알 수 있는 일종의 퍼포먼스같았기 때문입니다.


함부르크 플래그십 스토어
화룡점정




프라이탁의 모든 활동은 '연결'을 상징합니다. 네 가지 각기 다른 원재료(폐비닐, 폐차의 안전벨트와 에어백, 그리고 폐 자전거 타이어의 안쪽 고무)를 바늘과 실로 연결해서 하나의 제품을 만들고, 이들의 시초는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누비는 메신저들을 위한 메신저백이었습니다.


프라이탁 형제는 탁월한 아티스트가 맞는 모양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구체화해서 표현하고 그것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작품(상품)을 팔아 돈도 벌구요. 결국 아티스트도 같은 일을 하는 것 아닐까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보부셰 디자인 워크샵의 프라이탁 형제 워크샵이 듣고 싶어 졌습니다. 과연 내년에도 이들이 참여할까요?











Sep 19, 2011

[culture] 악동 도시 베를린의 ATM party!






"어젯밤에도 여기서 파티가 있었나보네."
"응? 여기 은행이잖아."
"베를린은 어디에서도 파티를 할 수 있어. 밤에 문도 열려 있고, 춥지 않고, 공간도 넓고 좋잖아."
"농담이야, 정말이야?"
"농담삼아 ATM 파티라고 해. 그런데 진짜야. 언젠가는 밤새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파티를 한 적도 있어. 데이티켓 하나면 베를린 전체가 파티장이야."


베를린에서 만난 영국인 친구와 돈을 뽑으러 갔다가 ATM 파티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베를린은 이렇습니다. 밤이 되어 거리에 나가면 맥주 병을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습니다. 친구를 만나러 바에 가는 길이거나 오늘 갈 클럽을 찾아 헤메는 무리일 것입니다. 그리고는 "Red is new green!"이라고 깔깔대며 무단횡단을 합니다. 이렇게 자유롭지만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신나는 도시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독일'에 대한 고정관점과는 굉장히 다릅니다. 그렇지만 이건 베를린 사정입니다. 뮌헨과 같은 남쪽 도시들은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독일'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한 국경 안에서 살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은 연방 국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베를린에서 나고 자란 한 친구는 남쪽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차가 없어서 빨간 불에 건너려는데 한 아주머니께서 "아가씨, 지금 건너면 벌금이 50유로야"라고 조용히 일러주시기에 놀랐다는 에피소드를 마치 다른 나라 여행하고 온 듯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베를린의 이 공기가 너무 좋습니다. 마치 악동의 도시에 놀러온 기분입니다. 며칠 전에는 기념품 샵에 들어갔다가 재미있는 기념품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베를린스럽군'이라고 생각하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a tiny slice of Berlin







[culture] 도시 정체성을 넘어서 산업이 된 베를린의 그래피티 (Berlin and Graffiti)

로모그래피에서 나온 <베를린 시티 가이드>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지금의 베를린은 마치 70년대의 런던, 80년대의 뉴욕과 같다. 여기는 자유의 공기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이게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베를린에서 3주 정도 지내고 나서 이 문장을 읽고는 '바로 이것!'이라며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내리칠 뻔 했습니다. 지금의 베를린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문장을 발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가장 먼저 베를린의 그래피티를 떠올리지 않을까 합니다.

처음 이 도시에 와서 놀란 것은 '파리의 그래피티는 애교'라는 생각이 들만큼 스케일이나 수준이 스트릿 '아트'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위의 두 사진이 주로 (베를린에서 찍은) 파리 스타일의 그래피티입니다. 물론 런던에서도 브뤼셀에서도 더블린에서도 지하철 역이나 외진 골목에서 이런 타이포 위주의 그래피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파리 스타일이라고 한 건, 파리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었고 사람이 어떻게 올라갔지 싶을 만한 곳, 이를테면 5층 건물 높이의 외벽이나 고가 도로의 옆면이나 아랫면과 같은 곳에도 이런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북역 근처에서는 런던이나 더블린에 비하면 아티스틱한 그래피티들을 보고 깜짝 놀라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베를린은 일단 그 스타일이 다양합니다. 처음에는 벽을 캔버스 삼아 아티스트들이 그림 연습을 하나 싶은 순수한(?) 상상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용도도 다양합니다. 단순한 장식용부터, 안내판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개인 블로그를 홍보하기도 합니다. 유리창에 그려진 그래피티는 스테인드 글라스 같기도 합니다. 







아래 사진의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는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에 아티스트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해서 하나의 거대한 전시 벽이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베를린의 그래피티는 이제부터입니다.



숨은 카페와 재미있는 샵들이 많은 Kreuzburg의 Oranien Strasse 입구에서 발견한 베를린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그래피티입니다. 멀리서 봐도, 가까이에서 봐도 압도적입니다.


베를린 북쪽의 Prenzlauer 지역의 마우어 벼룩시장이 서는 동네의 그래피티 입니다. 나이키에서 아티스트를 고용해서 그린 그림인가 싶기도 하지만, 가장 윗 부분에는 Welcome to Berlin이라고 써 준 센스에 미소짓고 말았습니다.


Jannowitzbrucke 역과 Ostbahnhof 사이 슈프레 강 건너편에 자리잡은 재미있는 공간, Kater Holzig의 한 쪽 벽면입니다. 날씨 좋은 날 강 건너에서 봤을 때에는 귀여웠는데, 비오는 오늘날 바로 앞에서 보니 좀 공포스럽더군요.


Friedrichshain과 Kreuzburg 사이의 Schlesische Strasse에 있는 재미있는 이 그림은 금 시계 겸 수갑을 찬 남자가 넥타이를 매고 있고, 오른쪽의 두 사람은 서로의 마스크를 벗기려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 멋대로 이름 없는 아티스트가 무언의 메시지를 남긴 그래피티라고 생각하고는 매우 감격했었는데, 알고보니 유명한 그래피티 아티스트 Blu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하긴 저 정도의 그림을 그릴 정도면 몇일 밤낮은 그렸어야 할테니 뱅크시 식의 게릴라 그래피티는 불가능 했겠죠.


Schlesische Tor 역에서 나오면 보이는 재미있는 그래피티 입니다. 일본 스타일의 일러스트같기도 한데 자세히 한참 들여다 보고 있으면 무언가 독특한 스토리가 튀어 나올 것 같습니다.


Prenzlauer Burg에서 Mitte로 걸어가다 발견했습니다. 저 글자들은 무슨 의미일까요? 창문도 없는 이 폐 건물에 왜 이런 그림을 그려 놓았을까요?


이렇게 베를린의 벽들은 그래피티로 가득합니다. 그들 스스로도 이 거리 그림들이 장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다른 도시와 다르게 기념품 샵에 가면 베를린의 주요 관광지 엽서와 나란히 멋진 그래피티를 찍어 놓은 엽서들을 팔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베를린스럽다'고 느끼기 때문이겠죠.


스트릿 아트의 신화적 인물이라고 하면 될까요? 런던의 스트릿 아티스트 뱅크시(Banksy)도 미테 지역에 흔적을 남겼다고 하고, 어떤 이는 이런 베를린의 거리를 보고 'bombed city'라고 이름 붙여줬다고 합니다. 정말 거리를 걷다보면 스프레이 폭탄에 습격이라도 받은듯 합니다.

어제는 베를린에 사는 친구에게 그래피티는 불법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받는 가장 많은 질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질문이라며 준비된 듯한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물론 불법이지만 시에서 강력하게 제지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는 것이 대답이었습니다. 베를린 시도 알겠죠? 이제 그래피티는 베를린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Antigraffiti Task Force라는 것도 운영하고 있고요. 이거야 말로 전시 행정인가요?

궁금해져서 조금 더 찾아보니, 이제 베를린의 그래피티는 자유의 표현 혹은 정치적 슬로건 보다는 '산업'에 가깝다고 합니다. 만약 이 불법행위를 강력하게 제지하면 베를린 관광 산업뿐만 아니라 스프레이를 파는 로컬 샵들이 다 죽어 나갈 것이라는 재미있지만은 않은 글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로모그라피 베를린 시티 가이드의 첫 문장을 생각해 보면, 과거의 런던과 뉴욕같이 지금의 베를린도 언젠가는 다른 도시에게 그 역할을 내 줄 것입니다. 아티스트들이 모여 도시에 생기를 불어 넣고 그 생기를 찾는 사람들이 모여들면 돈도 따라 모여들테고, 그렇게 되면 가장 먼저 임대료가 비싸지고 생활 물가도 올라가겠죠.

요즘은 건물주들이 건물의 홍보를 위해서나 건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그래피티 아티스트에게 돈을 주고 벽을 맡기기도 한답니다. 몇몇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손을 걷어 붙이고 그림을 팔고 있기도 하고요. 이렇게 비단 그래피티의 상업화만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도시가 커나가는 속도를 보면,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이 베를린으로 모여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싼 물가' 때문이라고 하는데 왠지 이럴 날도 오래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베를리너들도 알고 있는지, 미테의 유명한 타헬레스(kunsthaus tacheles)의 한 쪽 벽면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습니다. 불안함인지 체념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그들 그리고 베를린이 얼마나 갈 것인가에 대한 자문이 아닐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