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13, 2011

[culture] 베를린 필하모닉(Berliner Philharmoniker)



베를린에서는 운이 따르는 모양입니다. 베를린 영화제는 매년 2월에 시작되니 진작 포기했는데, 대신 제가 머무는 동안 베를린 음악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습니다. 독일어는 읽을 줄도 모르지만 Musikfest가 Music festival일 것이라는 눈치 언어는 늘었습니다. 길거리에 있는 광고판에서 본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역시나 9월 2일부터 9월 20일까지 베를린 음악 페스티벌 주간이었습니다. 

이미 상임 지휘자인 사이먼 래틀 경(Sir Simon Rattel)의 공연은 매진 상태라, 세계 3대 교향악단 중 하나라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보고 듣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공연이 있는 날 콘서트홀에 가서 무조건 "cheapest ticket, please"를 외쳤더니 무려 10유로 짜리 티켓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콘서트 홀은 무대가 가운데에 있어서 가장 싼 티켓을 샀음에도 무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비록 오케스트라 뒷편에 위치한 자리였지만요.







평소에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으면 좋아하는 곡을 제외하고는 지루하기 마련인데, 2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 건 듣는 재미만큼 보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휘자의 표정과 손짓, 그에 미묘하게 반응하는 단원들, 각 단원들이 음악을 느끼며 몰입하는 모습들, 들리는 악기 소리를 연주하는 단원 찾기 놀이, 뭔지 모를 이들만의 룰 발견하기 등 눈과 귀가 바쁜 두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분명 보기만 해도 음악 소리가 콘서트 홀 전체에 잘 전달 되도록 설계된 것이 분명한 구조임에도 제가 앉은 자리에서 그 웅장한 소리를 느낄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가장 싼 티켓을 구입한 자의 피해망상일까요? 다음 번에는 앞 자리에서 지휘자의 등을 보고 공연을 보겠노라 다짐하며 공연장을 나왔습니다.






찾아 보니 이 공연장은 1963년에 만들어졌네요. 처음 베를린에 도착해서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 주변을 배회하다 이 건물을 보고 '저건 어떤 건축물이기에 저렇게 특이하게 생겼을까' 했었는데, 바로 베를린 필하모닉의 둥지고, 전후에 파괴된 건물이 한스 샤룬이라는 건축가에 의해 새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재미 있는 건, 이 건물이 서커스 장의 천막처럼 생겼다고 해서 베를린 필하모닉의 별명이 '카라얀 서커스'였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35년 동안이나 이끈 세기의 지휘자 카라얀(Heribert Ritter von Karajan), 그는 이 건물의 설계도를 두고 논란이 많았던 당시 한스 샤룬의 강력한 지지자이기도 했다네요.


찾는 김에 카라얀에 대해서 더 찾아 봤는데, 나치 당원이었다는 정치적인 이슈부터, 음악을 파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는 상업성에 대한 이슈, 그리고 쇼맨십이 너무 강해 오케스트라보다 자신이 더 돋보이고 싶었다는 이야기, 그로 인한 단원들과의 불화, 롤리타 컴플렉스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 분도 엄청난 캐릭터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검색창을 닫았습니다. 닫지 않았으면 한 시간은 또 다시 뚝딱 지나갔을 겁니다. 

오케스트라나 지휘자의 수준을 논할 정도로 클래식의 조예가 깊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타이 탈감의 '위대한 지휘자들처럼 지휘하기'라는 TED Talk를 보고 이 공연을 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지휘자들의 역할과 카라얀이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알고 본 덕분에 공연을 더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링크가 걸린 저 TED Talk도 한 번 열어 보세요. 아주 재미납니다. 이타이 탈감은 이 컨텐츠를 활용해서 실제로 '마에스트로 리더십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합니다. 이것 또한 요즘 유행인 통섭이라면 통섭이고, 융합이라면 융합이겠죠. 경영자들이 지휘자들의 리더십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니까요. 처음에는 이렇게 유행에 발맞춘 적당한 프로그램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몇 지휘자들의 프로필을 살피다보니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궁금해졌습니다.

이성보다 감성으로 살아 온 아티스트가 한 사람의 아티스트에서 리더(지휘자)로 바뀌는 순간, 그들도 큰 혼란을 겪을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지휘자로 성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연주자에서 지휘자로 성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봤을 때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지휘자들과 관련된 글을 찾아보다보면 '000 관현악단과의 불화로 000를 떠나...'와 같은 문장이 많이 발견 됩니다. 이런 과도기를 성공적으로 겪은 지휘자들에게 리더십의 지혜를 배운다는 것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늘 하나를 보면, 두 개가 궁금해 지고, 세 개의 할 일이 생깁니다. 이미 호기심은 많이 해결했으니, 우선 돌아가면 정명훈 씨가 상임 지휘자로 온 서울시향의 공연을 보러 가야겠습니다. 혹시 베를린에 계신 분들이라면 매주 화요일에 있는 런치 타임 콘서트에도 가 보세요. 




+ 베를린 필하모닉 홈페이지 : http://www.berliner-philharmoniker.de/en/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디지털 콘서트 홀 페이지에 가서 공연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물론 볼만한 공연은 유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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