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2, 2011

[brand] Quality Hunter, Finnair


"마치 조종석에 앉은 것처럼"








여행자에게 가장 큰 지출은 항공권이다. 대부분의 장기 여행자들은 원월드 세계일주 티켓을 구입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난, 필요할 때마다 항공권을 사되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면 조금이라도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항공사를 택하고 있다.


호주 여행을 마치고 유럽으로 넘어가는 항공사를 핀에어(finnair)로 정한 이유는 온전히 핀란드라는 나라 때문이었다. 내게 아직은 미지의 땅인 북유럽의 국적기는 어떨까, 라는 호기심 하나로 헬싱키를 경유해서 런던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뭐가 달라도 다르긴 다르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 하나로 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적지 않았던 내 기대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먼저, 좌석 앞에 놓인 잡지들에 손이 갔는데, <logbook>이라는 잡지는 이 회사 annual report의 소프트 버전을 보는 듯했다. 물론 메인 컨텐츠는 핀에어와 핀란드 여행에 관한 내용이지만, 회사의 재정 상태와 이사회 멤버를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었다. 자신있게 annual report를 모든 고객이 볼만한 자리에 놓을 수 있는 항공사가 얼마나 될까. 조금 더 찾아보니 핀에어는 가장 오래된 항공사 중 하나이며, 가장 사고율이 낮은 항공사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렇게 객관성을 잃고 호전적으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이미 핀에어의 팬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브랜드 하이재킹,Brand Hijacking>에서 말한 그대로다. 공중납치 돼버렸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은 이착륙 시간이었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착륙 시간은 지루하다. 비행이 거듭될수록 긴장감은 떨어지고 핸드폰에 들어있는 음악을  듣기도 어렵고 잠을 자기에도 불편하다. 여러가지 이유로 그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런데 핀에어는 그 시간에 승객들에게 마치 조종사가 된 듯한 기분을 전해준다.


처음에 개인 모니터에 알 수 없는 영상이 떴을 때, 이건 뭘까 하는 호기심보다는 직원들이 보아야 할 영상이 잘 못 틀어진, 일종의 영상사고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게이트에서 활주로로 이동하는 비행기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다 창밖의 풍경과 묘하게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 차리고는, 이것이 조종석 부근에 설치된  카메라로 촬영되고 있는 영상의 실시간 중계라는 것을 눈치챘다. 


(아래 두 개의 사진은 이착륙 때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정상 궤도에서 이동 중일 때에 찍은 개인 모니터 이미지임)




그때부터 긴장이 시작됐다. 내가 이 airbus-330기의 파일럿과 같은 시선으로 구름을 뚫고 이륙하는 전 과정을 볼 수 있다니! 그 긴장감은 비행기가 활주로로 나가서 속도를 올리고 이륙을 하고 고도를 높여서 정상 궤도에 오를 때까지 계속 됐다. 그리고 두꺼운 구름 기둥을 뚫고 한참 고도를 높이던 중 보여진 계기판 영상을 본 순간, 핀에어가 좋아졌던것 같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브랜드 구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 차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때로는 소비자들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단지 그것을 전달 받고서야, 이것이 내가 원하던 것이었어요!,라고 말할 뿐이다."


내가 계기판 영상에서 느낀 감정이 바로 이런 종류의 것이었다. 계기판 이미지는 기대하지도 않았고, 이미 이륙 과정을 파일럿의 눈으로 간접 체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그 영상을 보는 순간 '바로 이거야!'라는 감탄이 나왔다.


계기판 영상 이전에는, 핀에어는 단지 승객들에게 "당신들에게도 우리가 맨 앞에서 보는 것을 공유하겠어요. 뭐 그쯤이야 어렵지 않으니까요"라고 말하고 싶은 줄 알았다. 승객들을 위한 서비스나 쇼의 일종으로 말이다. 그러나 계기판을 보는 순간, "자, 우리는 하나예요. 함께 비행을 하고 있다고요. 재미없는 이 영상을 모든 좌석에서 의무적으로 보게 하는 이유는 이건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안전하게 당신들을 헬싱키까지 모셔야 하는 우리의 부담감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니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자, 아주 약한 난기류에도 캡틴이 방송을 하고 안전벨트 사인이 켜지면 "손님! 손님!"하고 소리를 지르면서라도 말 안듣는 승객을 자리에 앉히는 이 항공사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브랜드를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단어가 무엇일지 생각을 하던 중에, 역시나 <logbook>에서 그 답을 찾았다. 바로 quality. 실제로 작년에는 quality hunters라는 이름으로 프로모션이 진행되기도 했다.


덕분에 같은 12시간 정도의 비행이었지만 호주 왕복의 말레이시아 항공 때와는 달리, 지루하지 않은 비행을 즐겼던 것 같다. 비록 식사 시간이 되면 여전히 닭장 속의 닭처럼 고개를 빼곰 내밀고 눈웃음과 함께 "치킨 플리즈"를 속삭였지만, 적어도 이착륙 시간에는 파일럿이라도 된 양 비행에 집중하며 airbus-330과 일체감을 느꼈다.
다른 항공사에도 이런 서비스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헬싱키-런던 구간에서도 그 많은 사람들이 착륙 때에 모니터와 창 밖을 번갈아 보며 집중하고 있었던 걸 보면, 아직 흔치 않은 서비스일 것이다. 비행기 앞에 카메라를 하나 달고, 기내 영상 프로그램 채널을 하나 더 늘였을 뿐인데, 이 사소한 배려로 아시아나 항공으로 마일리지가 적립되는 스타얼라이언즈 마일리지를 다 써버리고, 핀에어가 소속된 원월드로 갈아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헬싱키-런던 행에서는 먹구름을 머금은 런던의 두꺼운 구름 기둥을 뚫고 착륙을 하는데, 이건 마치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기분이었다. 활주로에 비행기의 바퀴가 닿을 때의 그 느낌이란!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항공사의 마케터라면? 이 서비스를 제대로 즐기게 할 수 있을 텐데. 예를들어, 핀어에를 처음 타는 승객들에게 3D 안경을 기념품으로 주는 거다. 그 안경으로 모니터를 보면 3D효과를 느끼며 이착륙 시간을 즐기게 하고, 대신 그 이벤트로 다른 승객들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 이 안경이 주는 효과를 '재미'가 아닌 '안전과 quality'에 맞춰서 전달하고...


여기까지 생각하다 현실적인 문제로 생각을 접었다. 3D 모니터에.. 영상에.. 안경 제작비에...






+ 추가: 이후에 알아보니 핀에어의 잦은 딜레이, 높은 수화물 분실 사고율 등의 안 좋은 이야기가 많이 들립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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