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21, 2012

이 나라의 문지기(gate keeper)들을 응원하며




여행 중에 국제적으로 엄청난 사건들이 몇 있었는데, 3월의 일본 대지진, 5월에 빈 라덴 사망, 10월에 스티브 잡스 사망이 기억납니다. 그 중 5월 2일에는 시드니에서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온 매체가 그의 사망 소식을 알렸고, 커스텀 하우스에 가서 신문 보는게 일이던 저는 각 매체의 헤드라인을 흥미롭게 들여다 보았습니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한 덕에 매체의 색(지향점)에 따른 헤드라인 뽑기와 그것에 미치는 데스크(나아가서 자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큰 사건이 있을 때 의도적으로 각 언론사의 제목 뽑기를 비교해서 본 적은 거의 없네요.

다행인지, 어쩐 일인지, 작년 5월 2일은 빈 라덴 덕에 신입생 시절 신문학 개론 시간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위 사진은 시드니에 발행되는 주요 일간지 중 3개 표지입니다. 헤드라인의 단어들로만 보아도 어떤 신문이 가장 황색지에 가깝고 어느 신문이 정론지를 지향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널리즘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접하는 첫 단어 중 게이트 키퍼(gate keeper)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자든 PD든 언론인들은 정보의 장에서 문지기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정보를 보고 문 안으로 들여 보낼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가려내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나아가서 문을 통과하는 정보가 '빈 라덴의 사망'이라면 그것에 '악마'라는 딱지를 붙일 지, 사실 그대로 '빈 라덴(이름)'이라는 딱지로 통과시킬 지도 그들의 몫입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언론인들과 언론사 자체가 많아졌기에 그들의 영향력이 상당히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적인 영향력으로 보았을 때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각설하고 최근 MBC를 시작으로 한 언론 3사의 파업을 보며 느끼는 바, 그리고 저널리즘을 공부한 이로서 부끄러운 바가 많습니다. '파업 지지 선언'에 동참하는 것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주위에 <무한도전> 팬들에게 김태호 PD가 월급 많이 받으려고 편집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리고 싶습니다. 동시에 한국은 언론 의식에 있어 공인된 후진국이라는 사실도요.

런던에 머무는 동안 BBC 홈페이지를 통해 지역 정보를 얻곤 했는데, 우연히 South Korea를 입력했던 적이 있습니다. 국가 정보에서 언론사라 그런지 Media 카테고리로 한국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서 읽다가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국경없는 기자회의 세계언론자유지수를 근거로 평가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후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몇 나라들보다 자유도가 낮은 수준으로 쓰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위를 확인해 보고 싶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그 내용은 사라졌네요. 업데이트가 자주 이루어지는 모양입니다.)

+ BBC South Korea profile

더불어 아직도 영국과 호주 뉴스에는 미디어 재벌 루퍼드 머독 비판 기사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며 부러움을 느낍니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미디어 그룹인 뉴스 코퍼레이션(News Corporation) 사의 창업자인 머독은 호주 태생이지만 미국으로 귀화했습니다. 뉴스 코퍼레이션은 셀 수 없는 정도의 영국, 미국, 호주 언론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의 영향력은 엄청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죠.

그와 관련된 최근 이슈 중에는 상속 문제와 해킹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기 재벌들과 다르지 않게 회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사장과 그것을 반대하는 주주들, 그리고 시민들 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결국 사장의 뜻대로 이루어졌지만 '언론사는 사회적 책임이 있는 조직'이라는 이유로 머독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해킹 건은 여전히 진행중인 것 같은데, 뉴스 코퍼레이션 사가 여러 정치인과 유명인들의 전화를 해킹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이 정도로 지독하게 물고 늘어질까 싶을 정도로 (제가 알기로만)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 사건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갑자기 경제 성장을 이룬 덕에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아직 얻지 못한 것도 많습니다. 그 중 국민들의 높은 사회 의식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아직 얻지 못한 것입니다. 먹고 사는 고민에서 벗어난지 몇십년 되지 않았기에 우리보다 수십년 혹은 백년 이상 앞서 있는 서양의 나라들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우리 부모님 세대와는 다른 고민을 해야 할 때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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